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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간절히 원하는 바는..." (롬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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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이세상은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일런지는 모르나 주님이 오시고 세상은 심판을 받으며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세상이 영원하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세상은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세상의 끝은 멸망입니다. 모든 체질이 바뀌어 집니다. 하늘의 모든 별이 사라집니다. 해와 달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그러한 세상에서 제한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세상이 영원하리라 몸부림을 친다 해도 그것은 인간의 한갓 욕심에 지난 것이지 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무엇입니까? 심판과 구원입니다. 심판을 받느냐 구원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끝을 생각하지 못하기에 오늘도 먹을 것 입을 것 누릴 것 때문에 더러운 짖을 하고 남을 속이고 폭력을 사용하고 남의눈에서 눈물나게 하고 거짓으로 위장을 하고 탐욕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심판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현실에 매여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은 불쌍합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돈을 많이 가졌다는 것이 무슨 자랑입니까? 권력을 잡았다는 것이 무슨 자랑입니까? 고시에 합격했다 그게 무슨 자랑입니까? 일류대학에 갔다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중요한 것은 남들보다 더 가졌고 더 위에 있고 더 좋은 자리차지 했으면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이지요. 저 한목숨 위해서만 살았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지요. 짐승이지요. 짐승 중에서도 더러운 개나 돼지 같은 인간이지요. 저 밖에 모른다면 하나님이 남보다 더 귀한 것을 주었더니 저밖에 모른다면 그를 기다릴 것은 심판이지요.

오늘 성경에는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와 축복을 아낌없이 자기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바친 사람의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1-3)

이 고백은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는 이방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자기 민족이 구원받는 것에 대하여 잠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요즘말로는 당시에 잘나가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학문을 한 사람입니다. 로마의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행전 21장 22장에 걸쳐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유대인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그 와중에 천부장이 바울을 끌고 영내로 들어가 심문하는 중 바울에게 채찍질 하며 심문을 하라고 백부장에게 명합니다. 백부장이 채찍질 하기위해 바울을 가죽 줄로 맬 때 바울이 백부장에게 말하지요.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

그 말을 들은 천부장이 쫓아와서 묻지요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하지요 이때 바울이 나는 나면서 부터라. 더 이상 할말이 없지요. 나면서부터 라는 데 대단한 가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거기 모인사람들이 그 말 한마디에 다물러가고 천부장도 두려워했다 했습니다. 바울이 이런 사람입니다. 그뿐입니까? 바리새인이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해 다 투자했습니다. 다 버렸습니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더욱이 오늘 본문에 보면 그의 목숨까지도 투자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원이 그 어느 것보다도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저는 구원을 받지 못한 인생은 마약을 먹고 사는 사람과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보세요. 마약이라는 것은 먹는 순간 그 사람을 황홀하게 만들어 줍니다. 마약을 먹고 있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세상의 행복이라는 것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그것을 소유하는 순간만 행복한 것입니다. 마약을 먹은 사람이 마약기운이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금단 현상으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것으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그것이 떨어지면 방황하고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비관을 하고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은 마약을 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축복받아야 할 삶을 저주로 끝내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인생은 그의 끝이 파멸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기 민족이 이렇게 망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마지막 숨을 쉬며 죽어가는 부모나 자녀를 두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을 더러 봅니다. 그들은 육신의 죽음을 두고 그렇게 슬피 울며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육신은 이 세상 어떤 사람이든 다 죽습니다. 조금 먼저가고 늦게 간 것뿐이지 죽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 영혼의 문제는 다릅니다. 영원히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어찌 우리가 이 사실 앞에서 오늘 이 현실만 바라보고 살겠습니까? 중요한 문제 입니다. 어 어 하다가 끝날 수도 있고,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끝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책에 보니 알프스에는 밤에만 우는 새가 있답니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날만 새면 날만 새면. 하고 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알프스의 기온이 낮에는 해가 떠서 따뜻한데 밤에는 갑자기온도가 떨어져서 대단히 춥답니다. 그런데 이새는 낮에 따듯하니까 집을 짓는 것을 잊어버리고 놀다가 밤에는 갈 곳이 없어 나뭇가지에 앉아 너무 추우니까 날만 새면 집을 짓겠다고 날만 새면 날만 새면하고 우는데 날이 새면 또 잊어버리고 그래서 또 날만 새면 그러다가 일생을 마친다는 것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제가 확인해본 것이 아니기에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도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일생을 마칠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지, 기도해야지 하다가 평생에 한번도 기도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치는 인생도 있습니다. 전도해야지 전도 해야지 하다가 한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모든 가족을 몽땅 지옥 보내는 인생도 있습니다.

오늘 바울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 목숨을 담보 삼았습니다. 자기 목숨을 내 놓고 하나님께 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족들을 사랑합니까? 부모님을 사랑합니까? 자녀를 사랑합니까? 형제자매를 사랑합니까? 여러분이 예라고 대답하기를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니오. 하고 대답하면 더 할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라고 대답한다면 다음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 질문은 여러분의 가족이 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부모나 자녀 가운데 또 일가친척 가운데 예수를 믿지 않는다 하면 여러분의사랑은 가짜입니다. 그것은 파멸하는 것을 방조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적어도 하나님 계심을 믿는다면 멸망이 잇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그렇게 무책임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자기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사랑하기에 그냥 놔둘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기에 그냥 지옥에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그래서 나가서 전도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바울에게서 자기민족 유대인이란 어떤 존재들입니까? 바울에게서 유대인이란 원수들입니다. 그가 평생을 두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해가 된 사람들이 유대인입니다. 그를 돌로 친 사람도 유대인이요, 그를 재판에 부친 사람도, 그를 감옥에 보낸 사람도 동족인 유대인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정말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동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동족을, 자기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어떻게 자기 민족에 대한 이런 사랑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사는 저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하고자 하신다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모르는 저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저들을 볼 때 안타 까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구원과 심판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천국과 지옥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바울의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 주변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할렐루야
(김영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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