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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을 무엇에 비유할꼬 (눅 1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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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과 천국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유명한 목회자 중에 최권능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의 본명은 최봉석으로 평양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생애가 기사와 이적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별명이 최권능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일제시대 때 평양 거리에서 복음을 열심히 전해 70여개의 교회를 세웠는데 늘 길거리에 나가 노방 전도를 하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 말을 풀어보면 “예수 믿으면 천당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인데 오히려 이렇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보다 그냥 단순하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하고 외치는 것이 훨씬 분명하고 강력해 보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당시 평양 시내에서 이 간단하고 단순한 복음전파를 듣고 수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도 전도는 우리 믿는 자들의 최대 최고의 사명인데,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복잡하고 지식적인 방법보다 오히려 단순하고 명료하게 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자, 오늘은 천당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천당’이란 하늘 천(天)에 집 당(堂) 자를 써서 말 그대로 하늘에 있는 집을 뜻합니다. 사실 최권능 목사님의 구호처럼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가 다 이 천당에 가기 위해서 아닙니까? 물론 신앙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만 딱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천당 가기 위해 예수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천당이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천당’이라는 말이 성경에 단 한 번도 안 나온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입니다. 성경에 단 한 번도 안 나옵니다. 물론 ‘천당’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친근하지만 사실 이 ‘천당’이라는 개념은 다분히 불교적인 색채를 가진 낱말입니다. 천당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하늘 위에 있다는 신의 전당’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인 정토’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천당’과 ‘천국’을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천당’이란 불교적인 용어이며 기독교적인 용어로 쓰려면 ‘천국’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러면 대체 ‘천당’과 ‘천국’은 어떻게 다른가? 한자어로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천당’이란 말 그대로 하늘에 있는 집입니다. 천국을 어떤 집 같은 장소나 공간으로 생각하는 불교의 사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천당은 저 하늘 어딘가에 위치한 일정한 장소라고 보는 것이지요.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이렇게 천국은 ‘하늘에 있는 어떤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천국은 장소가 아닙니다. 한자를 보면 하늘 천(天), 나라 국(國), 즉 ‘하늘에 있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아니, 그러면 집이나 나라나 다 어떤 장소나 공간을 뜻하는 것 아니냐?”라고 물으시겠지만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공간이나 장소가 아닙니다.




천국과 하나님 나라

이것을 설명하려면 먼저 복음서에 나오는 천국 개념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복음서를 읽을 때 혹시 발견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특이하게도 마태복음에는 오로지 ‘천국’이라는 표현만 나오는 반면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는 단 한번도 ‘천국’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천국’ 대신 모두 ‘하나님 나라’라는 말로 나옵니다. 오늘이라도 집에 가서 한 번 찾아보십시오. 그런데 마태복음에 나오는 ‘천국’이라는 낱말도 사실은 Kingdom of Heaven, 즉 ‘하늘나라’라는 말을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마태복음은 똑같은 개념을 ‘하늘나라’라고 불렀고 나머지 세 복음서는 ‘하나님 나라’라고 부른 것입니다. 절대 ‘하늘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본디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이라는 개념은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마태만 유독 그곳을 ‘하늘나라’라고 부른 까닭은 마태복음이 유대적인 색채를 강하게 띤 복음서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기를 상당히 꺼려해서 대신에 ‘하늘’ 같은 표현을 쓰곤 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른이나 윗사람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꺼리듯 말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똑같은 개념인데도 ‘하나님 나라’를 ‘하늘나라’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천국’이라는 말 때문에 죽으면 영혼이 저 하늘에 있는 어떤 장소로 올라가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간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제가 옛날 학교 다닐 때 국가의 3대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배운 적이 있습니다. 국가의 3대 구성요소는 ‘영토,’ ‘국민’ 그리고 ‘주권’입니다. 물론 이것은 현대 민주국가의 경우이고 옛날 왕국으로 친다면 ‘영토,’ ‘국민’ 그리고 ‘왕권’ 혹은 ‘통치’겠지요.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한다면 이것은 ‘영토’ 개념이 아니라 ‘왕권’과 ‘통치’의 개념입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심,’ ‘하나님의 통치’를 뜻하는 말인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해 봅시다. 성경이 말하는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냐? 저 하늘에 있는 어떤 장소, 우리가 죽으면 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 후에 부를 찬송가 495장이 참 명 찬송가라고 생각합니다. 1절 가사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입니다. 천국은 나중에 죽으면 가는 저 세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은혜를 체험해보니, 죄 사함을 얻고 보니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는 말입니까? 전에는 슬픔만 가득하고 죄악만 넘쳐나던 이 세상이 어느새 천국으로 변하더라는 말입니다. 기막힌 가사입니다. 천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변화되고 내 인생이 달라지면 내가 있는 그 곳이 바로 천국이며 하나님 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더욱 결정적인 가사는 3절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렇습니다. 내가 높은 산에 거하든지, 거친 들에 거하든지, 작고 초라한 초막에 살든지, 으리으리한 궁궐에 살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주님 모신 곳이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요 천국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계신 곳이 하늘나라요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면 거기가 하나님 나라라는 말입니다. 주님도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라고 대답하십니다. 따라서 나 자신을 하나님이 다스리시면 내가 하늘나라가 될 수 있고 내 가정, 내 사업과 직장, 내 교회를 하나님이 다스리시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요, 반대로 이 모든 곳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곳, 하나님이 다스리지 않는 곳이면 얼마든지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분쟁이 일어나 교인끼리 싸움을 하는 교회들을 보면 온갖 인간적인 방법과 세상 사람들조차 쓰지 않는 비겁하고 더러운 방법이 난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도저히 그런 교회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라고 말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교회를 천국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 교회의 성도가 이런 말을 합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여기가 지옥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더 이상 다스리시지 않으면 지옥과 다름없습니다.

물론 성경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천국이 끝이 아니요 완성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곳저곳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다가 마지막 때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때 주님이 온 세계와 우주를 온전히 다스리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과 2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바로 여기서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지나가고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오게 될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 천국을 보여줍니다. 바로 하나님이 온전히 다스리게 될 세계와 우주를 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릅니다. 그 분이 온전히 통치하게 될 세상을 ‘새 예루살렘’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온전한 천국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우리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가고 천국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이 찬송 가사처럼 진정한 천국을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내어드리고, 내 가정, 내 직장과 사업, 우리 교회, 이 나라와 세상을 주님의 통치 하에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위에 천국을 이루어가는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천국의 속성 : 천국은 성장한다.

이렇게 성경은 곳곳에서 천국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특히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끊임없이 천국에 대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고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13장과 마가복음 4장,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인 누가복음 13장이 천국에 대한 비유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마태복음 13장은 수많은 비유와 가르침을 모아 놓았기에 ‘천국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 마태복음 13장을 펴봅시다.

마태복음 13장을 살펴보면 씨 뿌려진 땅에 대한 비유(1~23절)가 나오고 이어서 가라지 비유(24~30, 36~43절), 다음에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31~33절)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밭에 감추인 보화(44절), 값진 진주(45~46절), 그물의 비유(47~50절)가 잇달아 나옵니다. 이 모든 비유가 천국에 대해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기에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을 천국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마태복음 13장에 나온 비유들을 보면 천국의 특성이 자세히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들 가운데 맨 마지막에 나오는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는 천국이 감추어져 있고 아무에게나 다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해 줍니다. 값진 진주의 비유는 마찬가지로 천국이 아무에게나 나타나지 않으며, 그 천국을 알아보고 그 가치를 느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값진 보화를 얻기 위해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44절).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삽니다. 그만큼 천국은 값진 것이기에 내 모든 것이 다 팔고 투자해서라도 얻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24절부터 나오는 가라지 비유는 밭에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이 몰래 뿌린 가라지도 섞여 있어서 그 가라지를 뽑으려면 알곡도 같이 뽑힐 수 있는 것처럼 이 땅 위에 이루어진 천국에도 가라지, 즉 구원 받지 못할 백성도 섞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1절부터는 우리가 이미 누가복음을 통해 살펴본 씨 뿌려진 땅의 비유가 나오고 31절부터는 오늘 누가복음 본문인 겨자씨와 누룩 비유가 나옵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비유들이 8장과 13장에 따로 떨어져 나오지만 마태복음은 천국장인 13장에 같이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 까닭은 이 세 가지 비유가 매우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모두 천국의 속성을 말해주는 비유인데 그 속성 중에서도 바로 천국의 ‘성장성’을 말해주는 비유라는 점입니다. 천국은 ‘자란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번 씨 뿌려진 땅의 비유를 말씀 드릴 때 씨 뿌려진 밭의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데 옥토에서는 백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했지요? 마태복음은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한다고 나와 있는데 작은 씨 하나가 땅에 뿌려져 잘 자라면 놀랍게도 30배, 혹은 60배, 100배까지 성장한다는 말입니다. 이 씨는 복음의 씨이고 밭은 우리의 마음 상태인데 이 씨앗이 결실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서 크게 성장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비유인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어떻습니까? 이번에는 누가복음으로 갑니다. 다 같이 누가복음 13장 18절부터 보십시오.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여기서 천국은 겨자씨 같다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혹시 겨자씨 본 적 있습니까? 저는 이스라엘에서 사온 겨자씨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작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나오는 겨자씨는 학명이 ‘브라시카 니그라 코크’라고 부르는 종자로서 눈에 잘 안 보일 정도로 작고 당시 팔레스틴 지방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들 가운데 가장 씨가 작은 종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장 작은 겨자씨가 다 자라게 되면 키가 3미터가 넘습니다. 따라서 오늘 주님이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설명한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이 겨자씨는 어떤 사람이 자기 채전(‘정원’이라는 뜻)에 갖다 심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씨앗은 씨 뿌려진 땅의 비유처럼 하나님을 통해, 혹은 복음 전도자를 통해 뿌려진 작은 씨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그 시작은 너무도 작고 보잘것없어서 사람들이 발견하기도 어렵고 눈여겨보거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의 씨앗은 엄청나게 자라 결국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여 쉬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상한 영혼들이 참된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여기라는 말이지요.

20절부터 나오는 누룩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룩은 부풀어 오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누룩 자신이 부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산화되고 녹아져서 부풀어 오르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여자가 가루 서 말에 누룩을 넣었다는 말은 앞서 어떤 사람이 자기 채전에 겨자씨를 뿌린 것처럼 복음의 씨를 뿌린 것입니다. 그런데 뿌려진 씨가 놀랍게 자란 것처럼 이 누룩으로 인해 가루 전체가(21절 ‘전부’라는 낱말은 ‘가루 서 말 전부’라는 뜻) 부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국은 자라고 커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은 보잘것없이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놀랍게 성장하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갈릴리의 목수 예수와 열두 제자로부터 시작된 작은 복음이 세계를 변화시킨 것처럼, 약 120년 전에 선교사들을 통해 이 땅에 들어온 작은 복음의 씨앗이 오늘날 이 땅에 6만 교회와 천만 성도들로 성장한 것처럼, 1946년 8월 16일 연일면 대잠2동 544번지에서 천막을 치고 아홉 명의 교인이 기도소로 시작한 효자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성장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정말 놀랍게 성장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 보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겨자씨도 성장하고 누룩도 성장하는데 이 두 가지 성장은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겨자씨는 자기 자신이 자라 성장하는 반면, 누룩은 자신이 녹고 산화되어 밀가루를 부풀게 합니다. 천국은 자기 스스로 성장하기도 하지만, 내가 없어지고 녹아져서 천국을 성장시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룩의 비유가 말해주는 중요한 교훈은 우리가 천국을 전하고 파급시키는 데 있어서 스스로를 나타내고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천국을 위해 녹아지고 산화 될 때 그 천국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놀랍게 성장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향력이 커지기 원한다면 우리의 영향력은 작아져야 합니다. 천국이 성장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녹아지고 숨겨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기 원한다면 우리는 조용히 사라져야 합니다.




천국성장을 위한 우리의 사명

오늘 우리는 천국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그 천국은 놀랍게 성장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그 천국을 성장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리라’이며 3대 목표는 ‘예배하는 공동체’ ‘선교하는 교회’ ‘전도하는 성도’입니다. 이렇게 교회 표어와 목표가 선교와 전도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철저하게 선교 지향적, 전도 지향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저 성도들끼리 즐겁고 신나게 지내는 것이 목적인 친교 지향적 교회도 있고, 지역사회 봉사를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봉사 지향적인 교회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선교 지향적인 교회, 전도 지향적인 성도만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 교회요 참 성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천국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제일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 내 주인이며 나를 다스릴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고백 하에 내 자신이 천국이 되어야 하며 나로부터 시작된 천국이 점차 확장되어 내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교회와 주변사람들을 하나님의 통치 하에 들어오게 하여 천국을 만들어 나가고, 나아가 저 필리핀과 세계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킬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천국 확장의 사명을 감당하되 반드시 누룩의 방법을 사용하라는 것, 즉 누룩처럼 소금처럼 나는 산화되고 녹아지고 사라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교회와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교적 사명과 전도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결단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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