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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 (시 145: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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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능력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나에게 네 소원을 말하라. 그러면 무척이나 망설일 것이다. 무슨 소원을 말할까?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세상 모든 사람이 동일하다. 중국 장가계에 가면 높은 암자 주변에 열쇠로 가득차 있다. 열쇠를 난간에 채워 놓고 열쇠를 산 밑으로 던진다. 그러면 사랑의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마음에 소원을 갖고 그 소원이 이루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산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소원이 있을 수 있다. 평생을 누워있는 사람은 앉아 있기를 바라는 소원이 있을 수 있고, 앉아서만 있는 사람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소원이 있고, 일어서는 사람은 걸을 수 있는 소원, 걷는 사람은 뛸 수 있는 소원을 갖고서 산다. X-Ray를 찍으면 우리의 속을 볼 수 있는데 마치 X-Ray로 우리 마음의 소원을 찍는다면 과연 어떤 그림이 나올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우리가 어떤 소원을 갖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기도 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소원을 갖는가? 하는 마음을 갖기고 하신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마친 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일생에 한번 밖에 맞을 수 없는 절호의 기회이다. 솔로몬은 내가 이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정확한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정확하게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니 나에게 지혜를 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소원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해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소원이 있다. 그런데 어떤 소원을 갖는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잠언 말씀에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시편의 말씀에도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하지 마시며 그의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스스로 높일까 하나이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소원이 있기 마련이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소원을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사막을 거닐고 있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신이 그들에게 나타나서 한 가지 소원씩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첫 번째 남자는 주저함 없이 이 길을 함께 걸어갈 이쁜 여자를 한 명 달라고 했다. 신은 바로 그 남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었다. 예쁜 여자가 나타나 팔짱을 끼고 함께 걸어갔다. 두 번째 남자에게도 동일하게 물었다. 두 번째 남자는 첫 번째 남자가 부럽기도 했지만 돈에 대한 욕심도 들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내뱉은 말은 “돈 여자 결혼”이었다. 돈과 여자와 결혼의 문제를 다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머리가 돈 여자가 나타나 결혼을 하겠다고 우겨대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욕심을 부리다가 온전한 것 하나 얻지 못하고 도리어 전보다 악화되었다.

내가 갖는 마음의 소원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해야 한다. 내가 갖는 꿈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해야 한다. 영적으로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타나는 변화가 있다. 소원의 내용이 달라진다. 내 자신만의 편리함과 풍성함을 위하여 소원하는 내용이 이웃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는 소원으로 달라진다.

미국 남부를 농경사회에서 농업산업사회로 전환시킨 농업과학자 조지 워싱턴 쿠버라는 사람이 있다. 이는 조지아주 목화밭의 흑인노예의 후손이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께 오늘도 새로운 것을 볼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목화밭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기 위해서 기도했다. 조지아주를 위시하여 목화밭이 벌레 때문에 폐농위기에 처하자 그는 목화대신 땅콩을 심어 300가지 이상의 용도를 발견했다. 고구마 재배를 통해 188가지 포도를 심어 75가지의 사업적 가치를 발견해서 남부에 농업혁명을 일으킨 선각자이다.
자기 자신만의 소원을 갖고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의 유익을 위한 것이 자기의 소원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그것도 하나님은 만족스럽게 이루어 주신다.

그런데 좀더 영적으로 깊어지면 하나님께 이러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바로 영적으로 깊은 경지에 이르렀던 성 프란시스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나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기 보다는, 내가 갖고 싶은 내용을 하나님께 아뢰기 보다는, 내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문제를 아뢰기 보다는, “하나님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라"는 말씀을 들었다. 성 프란시스코의 거룩한 소원이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인데 그 성전이 무너져 내린다. 프란시스코는 각 사람이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기 위해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렸다.
성 프란시스코는 죽어서 자신을 사형당한 사람들이 묻히는 곳에 묻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바로 그곳은 죽음의 언덕이라는 곳이다. 그런데 성 프란시스코가 그곳에 묻히고 나니 죽음의 언덕이라는 지명이 천국의 계단으로 바뀌었다. 한 사람의 마음에 갖고 있었던 거룩한 소원이 죽음의 언덕을 천국의 계단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다.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주신다. 하나님은 그 소원을 만족스럽게 이루어 주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지금도 이루어 가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예레미야를 보라.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하고 나면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 예레미야도 마음이 상하였다. 고통스러웠다.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받았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의 마음에 말씀을 전하고 싶은 뜨거운 마음, 뜨거운 소원을 주셨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 소원을 이루어 가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가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 교회를 봉헌하고 이태리에 가서 두주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이 종에게 이러한 소원을 자꾸 주신다. “우리 베다니교회가 세계 속에 주목받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세계 속에 주목받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이루어 드리다가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계 속에 주목받는 교회로 세워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이 종에게 이러한 소원을 주셨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집회 기간 중에 박지영 변호사의 간증을 들었다. 35세의 미혼 여성 변호사이다. 박변호사는 서울대학교에 처음에 떨어지고 재수하는 중에 인파선 암이라는 선고를 받는다. 시험을 치룰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을 정도이었다. 결국 서울대학교 음대에 합격한다. 졸업 후에 그는 법과대학에 편입하게 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서울대학교 음대와 법과 대학을 졸업한 피아노 치는 변호사이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에 대해서 만족한다. 얼마든지 내가 서울음대를 나오고, 서울 법대를 나와서 변호사가 되었는데 이렇게 이루어 놓은 일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피아노치는 변호사가 되게 하셨으니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무엇을 하실까? 그래서 그가 쓴 책은 피아노 치는 변호사 Next이다. 피아노 치는 변호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음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기 원하시는가? 서울 음대를 나오고 서울 법대를 나온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베이스 켐프라고 한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웅장한 건물을 짓고, 이 건물로 만족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다. 이 건물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한 베이스 캠프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이 종에게 이런 마음을 자꾸 주신다. 이곳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크신 뜻을 마음에 그려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 우리 교회가 세계에 주목받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이러한 소원을 하나님께서 주신다. 주님께서 분명히 만족스럽게 이루어 주실 줄로 믿는다.

그런데 이 소원이 이루어지려면 분명한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겸손한 믿음을 갖으라는 것이다. 암을 극복하고 서울 음대와 법대를 나왔으면 교만한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이것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이것을 생각한다. 주어진 위치에서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 정도 지었으면 우리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 나머지 교만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더욱 겸손한 마음을 갖어야 한다. 시편 10편 17절에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거룩한 소원을 아뢰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족케 하여 주실 줄로 믿는다.

가나안 여인의 딸이 귀신들려 죽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소원을 무시하셨다. 제자들이 이렇게 와서 애원하는데 지나치지 마시고 그 소원을 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 여인은 예수님에게 요청한다. “주인이 준비된 음식을 개에게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을 향하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 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겸손한 믿음으로 간구하는 소원을 주님이 들어 주신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나에게 어떤 소원이 있는가? 먼저 내 마음에 갖은 소원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기를 바란다. 분명한 것은 나의 소원을 통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신다. 내가 성공했다고 하여 그것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 내가 부자가 되었다고 그것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 우리가 큰 교회를 지었다고 이것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세계 속에 주목받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이러한 소원을 주셨다. 이 소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진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자. 겸손히 하나님께 간구하자.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여 주실 줄로 믿는다. (곽 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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