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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부림절 (에 9: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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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에게는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의 삼대 절기가 있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맥추절은 초실절, 수장절을 초막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세 절기 말고도 다른 절기들도 지키고 있습니다.

나팔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나팔절은 유대 달력으로 일곱째 달 첫 날인데 나팔을 불어 이 날을 기념하고 쉬었습니다.(레23: 24, 민 29: 1) 

수전절(修殿節)이라는 절기도 있습니다.
시리아 왕 안테오쿠스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릴 때 예루살렘 성전을 모욕하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마카비라는 독립운동가가 기원전 165년에 성전을 회복하고 깨끗하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수전절이라고 부르며 지켜 기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2절에는 예수님이 수전절에 성전을 방문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전절을 히브리말로 하누카(Hanukkah)라고 합니다.
빛의 절기라고도 한다.

또 하나 부림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에스더서는 부림절의 유래를 설명하는 성경입니다.
오늘은 이 부림절에 대해서 살피는 가운데 은혜와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다른 절기들은 그 이름을 보면 그 절기가 어떤 절기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맥추절이라고 하면 ‘아, 맥(麥), 보리를, 추(秋), 추수하는, 거두어들이는 절기라는 뜻이로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림절은 그 이름을 번역하지 않고 히브리말 그대로를 쓰고 있어서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부림절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뜻이 좀 애매해집니다.
부림절을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제비절,’ 정확하게는 ‘제비들절’이라고 해야 합니다.
공중을 나는 제비〔燕〕와 구별하기 위해 ‘주사위절’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릅니다.
히브리말로 제비를 ‘부르’라고 합니다. 이 ‘부르’의 복수형이 ‘부림’이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페르시아 왕 고레스 때 귀환명령이 내려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습니다.
한편으로 돌아가지 않고 페르시아에 그대로 눌러 사는 유다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에스더라는 유다인 여성이 페르시아 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 때 하만이라는 대신이 있었습니다.
이 하만이 유대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페르시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전멸시킬 음모를 꾸몄습니다.

하만은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입니다. 사울이 아말렉과 싸울 때 사무엘은 아말렉 족속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하였는데 사울은 순종하지 않고 아각 왕과 일부를 남겨 두었습니다. 그 결과, 그로부터 560여 년 뒤에 그 후손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된 것입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항상 이런 불행을 낳습니다.

하만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제비를 뽑아서 유대인들을 몰살할 날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환심을 사서 이 계획을 승인 받습니다.
이 명령이 어명으로 페르시아 전역에 전달되었습니다.
이 때 왕후 에스더가 그의 친척인 모르드개와 협력해 가며 왕에게 하만이 꾸민 음모의 진상을 알립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을 전멸하라는 명령은 취소되고 하만 일당이 처형 되었습니다.
24절과 25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이 하만이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려고 제비 뽑아 정한 날이 오히려 하만과 그 일족, 유대인들을 괴롭히는 세력이 모두 도륙당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 날이 바로 부림절입니다.

유대인의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 같은 절기는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기억하며 그 정신을 살리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부활절과 시기가  비슷합니다.
또 8․15가 되면 ‘8․15는 한국의 유월절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맥추절은 맥추감사주일로, 수장절은 추수감사주일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림절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절기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부림절을 기억해야합니다.
부림절은 유대 달력으로 아달월 14일인데 오늘날 우리가 쓰는 달력으로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가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매년 날짜가 달라지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성경에 나오는 유대 달력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언제,’ 이렇게 하지 못하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사이’ 이렇게 됩니다.
부림절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부터 매년 2월과 3월 사이에 부림절이 며칠인지 알아서 그 날을 교회의 달력에 집어넣고 지키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와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림절의 교훈을 우리의 삶 가운데 살리자는 것입니다.

부림절의 교훈은 어떤 것입니까?

부림절의 교훈은 첫째,  우리의 처지가 언제인가는 좋은 것으로 바뀐다는 소망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22절을 보세요. 부림절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무엇이 되었다고 했습니까?
기쁨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애통이 변하여 무엇이 되었다고 했습니까?
길한 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위기가 변해서 기회가 되었습니다.
몰살당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를 만났는데 그것이 원수 갚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기는 항상 기회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 큰 일을 합니다.
불안이 변하여 평안이 되었습니다.

오늘 예배에의 부름 순서에 읽은 말씀은 스가랴서  8장 19절인데 거기에는 금식이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림절에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에스더서 3장 13절을 보면 유다 백성들은 하루 동안에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명령이 각 지방에 전달되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유다 백성은 이제 씨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금식을 했습니다.
4장 3절을 보면 유다 백성은 크게 애통하며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9장 31절에서도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괴상한 일들, 괴상한 주장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이야말로 금식할 때를 만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후 에스더도 시녀와 더불어 심일 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철저한 금식을 한 것입니다.(에4: 16)
모르드개도 그렇게 했습니다.(에4: 17)

그와 같은 금식이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서 58장 6절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에스더의 금식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를 막기 위해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 앞으로 나가기로 결심하고 금식을 합니다.
에스더의 이 금식은 이해하기 어려운 금식이고, 위험한 금식이고, 어리석은 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 앞으로 나갔을 때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나오지?’ 괘씸하게 여기고 금 규를 내밀지 누구를 막론하고 않으면 죽게 됩니다.
왕이 금 규를 내밀게 하기 위해서는 왕에게 잘 보여야합니다. 예쁘게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피부가 고와지도록 않도록 영양을 잘 섭취해야 합니다.
좋은 화장품을 구해 화장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금식을 했습니다.
금식을 하면 아무래도 표가 나지 않습니까?
얼굴이 파리해지고, 수척한 모습이 되고, 피부가 윤기를 잃습니다.
에스더는 그것을 알면서도 금식을 했습니다.
왕이 미모에 반해서 금 규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금 규를 내밀도록 간구한 다음에 왕 앞으로 나간 것입니다.
에스더가 예쁘게 꾸미고 왕 앞으로 나갔다면 왕은 에스더를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삼십 일을 부르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법도를 어기고 제멋대로 왕 앞으로 나왔다고 생각하고 금 규를 내밀지 않고 오히려 꽉 움켜쥐었을 지도 모릅니다.
에스더는 인간적인 계산, 인간적인 방법을 초월했습니다.
기도의 힘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믿은 대로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보여준 이 모범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 어려운 처지 가운데 있습니까?
마음에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까?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 어려운 처지가, 유다 백성들과 같이 즐거움으로 변하고, 염려하던 소리가 환호성으로 변하고, 응답 받을 날이 있는 것을 믿으면서, 나에게도 부림절이 있을 것을 믿으면서, 소망 가운데 사시기 바랍니다.

한 때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라는 대중가요가 크게 히트한 때가 있었습니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이것은 격조 높은 표현은 아니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의 해, 응답의 해, 축복의 해가 밝게, 높게 뜰 날이 있는 것을 믿고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의 삶은 부림절의 소망 가운데 사는 삶입니다.
소망은 성도들이 현재의 고통과 고난을 극복하도록 하는 가장 강한 능력입니다.
고통을 나쁜 결과로 받아들이기보다  소망이 성취되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큰 특권입니다.
부림절은 성도의 소망이 한낱 소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망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시대에는 언제나 하만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많습니다.
그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성도는 핍박을 받게 됩니다.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그런 가운데서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이 실현될 것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슬퍼하고 우는 성도의 삶은 기쁨과 웃음을 예약하는 삶입니다.

이와 같은 소망이 없으면 여러분, 지금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믿음을 버리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와 같은 변화를 맞이하면 함께 기뻐할 자격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소망을 버린 가운데서 변화를 맞이하면 그 변화가 우연인 것으로,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부림절이 있을 것을 믿으면서 살 때 이 변화를 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림절, 나의 부림절이 있을 것을 믿고 바라면서 소망 가운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바랍니다.

부림절의 교훈은 둘째, 드러내지 않고 강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이상한 일 하나로 유명한 성경입니다.
무엇으로 유명한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상하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입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에스더서는 비신앙적인 성경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인하는 성경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에스더서야 말로 하나님을 강하게 증거하고 있는, 신앙적인 성경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신구약성경 66권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정경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성경은 기록될 때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지만 각 성경들이 정경으로 결정될 때도 성령이 감동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에스더서가 비신앙적인 성경이라면 정경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일하십니다.’ 그 어느 성경보다도 우리에게 강하게 외치고 있는 성경입니다.
마치 우리가 바람은 볼 수 없지만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물결이 일어나게 하고, 빨래를 마르게 하고, 풍력발전이 가능하게 하고, 바람이 하는 일은 많이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유다 백성은 대적에게 대해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자기들을 몰살시키려 한 사람들 칠만오천 명을 죽였습니다.
이 승리를 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 승리는 깨끗한 승리였습니다.
대적을 무찌르면서 그들의 재물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유대 백성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우면서 그 재산을 탈취하라고 했습니다.(에3: 13)
유다 백성은 왕으로부터 대적의 재산을 탈취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에 8: 11)
그러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유다인들이 대적을 무찌르면서 그들의 재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사실이 9장 10절, 15절, 16절에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하나님이 주신 승리답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백성과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다른 점입니다.

이 승리는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선택되게 한 것,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왕비를 선택하기 위해 그 넓은 페르시아 영토 전역에서 아리따운 처녀들이 뽑혀 왔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가운데서 왕후가 되는 것,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에스더가 왕후로 선출될 수 있었습니다.

아하수에르 왕의 마음을 움직여 유다 백성이 위기를 모면하고 원수를 갚게 하도록 한 것,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 아하수에르 왕은 역사에는 크세르크스(Xerxes)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기원전 485년에서 476년까지 페르시아를 다스린 왕입니다.
아하수에르 왕은  오늘날 이란의 남서쪽인 수산에 궁궐을 마련하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기원전 474년, 지금으로부터 2,479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하수에르 왕은 페르시아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유능한 왕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하수에르라는 이름은 ‘힘센 사람,’ 이런 뜻입니다.
그러나 에스더서에 나타난 아하수에르 왕은 그리 지혜로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잔치를 즐겼습니다.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르 왕이 베푼 잔치 이야기로 시작이 되는데 백팔십 일 동안 잔치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 칠 일 동안 추가 잔치를 했습니다. 대단한 사치입니다.
판단력과 분별력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갖습니다.
충동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하수에르 왕은 또 자랑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왕비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려다가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왕비를 폐위시켰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를 대신 왕비로 선택했습니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라는 도시에서 아하수에르 왕과 관련된 비석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이 비석의 비문에는 아하수에르 왕은 자기를 가리켜 ‘나는 위대한 왕, 왕중 왕, 많은 부족이 있는 지역의 왕, 저 광대한 지역의 왕’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왕이 유다 백성에 대한 일은 바르게 행하도록 한 것,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여러분, 부족한 지도자도 하나님이 쓰시면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손에 잡힌 지도자들, 하나님이 쓰시는 지도자들이 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만은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 백성을 몰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도 세웠습니다.
모르드개를 매달 나무까지 세워 놓았습니다.
그 나무의 높이가 오십 규빗입니다. 오늘날의 도량형으로 환산하면 약 25m입니다.
이 성전 바닥에서 천정까지의 높이와 같습니다. 얼마나 긴 나무를 준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다 무력화시키고 유다 백성이 승리를 거두게 하신 분, 하나님이십니다.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는 것을 알고 이것을 에스더서를 통해 왕에게 알렸습니다.
왕을 암살하려던 사람들은 처형당했습니다.
이 일이 궁중 일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어찌된 셈인지 모르드개에게는 아무런 포상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에스더서 6장을 보면 에스더가 왕 앞으로 나갔던 날, 왕이 잠이 오지 않아 역대 일기를 읽게 하다가 큰 공을 세운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상을 주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만을 시켜 모르드개를 잘 대우하게 했지요.
하만의 음모는 여기에서부터 꺾이기 시작합니다.

그 날 왕이 잠이 오지 않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모르드개가 큰 공을 세웠을 때 아무런 포상이 주어지지 않게 한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때 모르드개가 거기에 해당하는 상이나 벼슬을 받았더라면 아하수에르 왕은 역대 일기를 읽으면서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데서 그쳤을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시는 자에게는 승리의 축복을 내려 주신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기록된 성경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았으면 우리도 드러내지 않고 믿음의 향기를 내는 성도가 되어야하겠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아동부 여름성경학교, 중고등부 여름수련회, 영어예배부 영어수련회가 잘 끝나고 이제 청년부 수련회가 남았는데 올해 청년부 수련회는 시편 묵상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시편은 신앙시 모음인데 여러분 어떤 시가 좋은 시인 줄 아십니까?
슬프다는 말을 한 마디도 넣지 않고 시를 읽는 사람을 깊은 슬픔에 젖게 하는 시가 좋은 시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또는 많이 쓰지 않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원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 믿습니다!’ 하는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예수님의 향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성도입니다.

여러분,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림절의 교훈은 셋째,  믿음을 가진 여성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부림절의 중심인물은 에스더입니다. 9장의 끝 절 32절을 보세요.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하게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모르드개도 큰 역할을 했지만 부림절의 중심인물은 아무래도 에스더라고 해야 합니다.
부림절을 ‘에스더의 절기’라고도 부르는 것을 통해서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부림절이 되면 에스더서 전부를 읽는 것이 하나의 법도로 되어 있습니다.
.
에스더는 포로 민족 출신입니다.
자기 종족을 감추며 살아야했습니다.(에2: 10)
에스더의 원래 이름, 히브리 이름은 하닷사입니다.
하닷사는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입니다.(에2: 7)
에스더는 페르시아 식으로 바꾼 이름입니다. ‘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포로가 되어 이름까지 바꾸어야했던 비운의 여성이었습니다.
또 고아입니다. 부모가 죽어 친척인 모르드개의 손에 양육되었습니다.

그런 에스더가 어떻게 그렇게 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더는 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왕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모보다 더 큰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미모도 청초(淸楚)한 아름다움이 되어 왕을 감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관능적인 아름다움은 아마도 다른 왕비 후보들이 더 뛰어났을 것입니다.

잠언서 31장 30절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여자가 칭찬을 받습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이것은 꾸민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하면서 생명을 걸고 왕에게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아까 부림절을 ‘에스더의 절기’라고도 부른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에스더와 같이 믿음을 가지고 큰 일을 하는 여성들이 됩시다.’ 하는 교훈을 새롭게 하는 절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북한에는 국제부녀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3월 8일이 국제부녀절이기 때문에 3ㆍ8절이라고도 합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여성의 날이 될 것입니다.
북한의 사전을 보면 국제부녀절은 ‘여성들이 단결하고 투쟁하여 그 위력을 시위하는 국제적 명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여성들은 단결, 투쟁, 이런 것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내세워야 합니다.

「포브스」라는 유력한 경제전문지가 매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을 선정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지난 29일에 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들이 발표되었는데 보니까 정치계 여성들이 앞부분에 나옵니다.
1위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2위는 우이 중국 국무원 부총리,
일본 수상과의 면담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귀국해서 세계를 놀라게 한 분이지요.
중국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는데 중국 여성이 영향력 있는 인물 2위에 선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일입니다.
3위는 율리아 티모센코 우크라이나 총리
4위는 이로요 필리핀 대통령
5위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의 책임자 마거릿 휘트먼,
이것도 이 시대가 디지털 시대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여성 가운데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드는 여성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한국에서는 ‘신앙으로 이와 같이 큰 일을 한 여성 아무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강철 같은 기력과 섬세한 매너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중요 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선정되었는데 이 분이 깊은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 여성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이 분은 작년에도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선정되었었다고 합니다.

여자 성도 여러분, 그리고 나는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있는 모든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면 이 사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이 시대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부림절은 구약의 절기만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의 절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절기입니다.

우리의 처지가 언제인가는 좋은 것으로 바뀔 것을 소망하며 살 때,
자신은 드러내지 않고 강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의지할 때,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약한 존재도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때,
부림절은 우리의 부림절이 됩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유다 백성이 승리를 거둔 기록입니다.
부림절은 아달월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달월은  히브리 달력의 마지막 달입니다.
유다 백성은 마지막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일생도 마지막에는 승리로 끝나기 바랍니다.
오늘은 7월 마지막 주일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날인데, 7월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승리한 달이었다고 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8월도 승리하는 달이 되기 바랍니다.

부림절의 교훈을 살리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 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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