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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경고 (히 9: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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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에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을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로시마에는 5월부터 전단지가 대량으로 계속 살포되었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히로시마 시민들에게 경고한다. 히로시마 시민들은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까지 시내로부터 50킬로미터 밖으로 대피하라.. 미 공군' 그런데 그 전단지를 주워 읽은 사람들중에는 경고를 받아들여 떠나는 사람들도 소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심리전으로 위협하는 것일테니 그냥 이대로 있자는 생각으로 도시에 남아 있었습니다. 다른 날과 같이 직장으로 출근하고 학생들도 학교로 등교했습니다. 시간은 8시가 지나고 8시 10분이 되도록 아무런 다른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경고장은 거짓말이었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공연히 경고에 따라 도시를 떠나갔으면 겁장이라고 비웃음거리가 될 뻔했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하늘에 미공군의 B-29 폭격기가 두 대 나타나더니 소형 난로 크기의 물체를 하나 떨어뜨리고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폭음과 함께 섬광이 비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공의 온도는 섭씨 10만도, 지표면은 섭씨 3-4천도에 이르는 엄청나게 뜨거운 열로 시내 전역은 전소되다시피했습니다. 그 열로 231,920명이 타 죽었습니다. 그중에 3분의 2는 시신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녹아 버렸습니다. 또 엄청난 폭풍에 남은 것들이 거의 날라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그 사건 한참 후에 태어난 자손에게까지 지금껏 엄청난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시민들이 미공군이 뿌린 경고의 전단지를 받아 읽으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그날만이라도 피신했었더라면 그처럼 엄청난 인명피해는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경고를 무시하고 위험한 지역에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자신과 가족들까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9장 27절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낸 경고장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믿고 심판을 벗어날 길을 찾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1945년의 히로시마 시민들처럼 경고를 비웃고 제멋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경고하시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어떤 사람들은 이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무시하며 '설마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나려구' 하고 생각하고 아무 대비도 없이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날 디오게네스가 뼈가 잔뜩 쌓인 공동묘지에 앉아서 뼈를 하나씩 하나씩 찾고 있었습니다. 이때 알렉산더 왕이 지나가다가 디오게네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디오게네스의 대답은 "당신 아버지의 뼈를 찾고 있소, 아무리 찾아 보아도 도저히 어느 것이 당신 아버지의 뼈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요." 알렉산더 대왕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며 잠시 할말을 잃었습니다.

이 말은 알렉산더 왕에게 죽으면 누구든지 모두 똑같은 뼈로 변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왕의 뼈든 평민의 뼈든 모두가 같아서 구별조차 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만 얼굴도 다르고 옷 모양도 다르고 키도 다르고 말씨도 다르고 권력도, 부도, 지식도 다르다가 죽으면 모두 하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뼈조차 찾을 수 없는 흙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중에서 하루에 36명이나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삶이 오죽이나 고달프고 지쳤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마는 정말 그들이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을 믿었다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나 하나 죽으면 끝이지 뭐..." 이 말은 절대 잘못된 말입니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각 사람의 모든 죄를 낱낱이 파 헤쳐 그에 상응하는 영원한 형벌을 확정하는 아주 무서운 심판이 기다립니다. 그 심판을 통하여 다시 재심의 여지가 없고 다시는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운명이 확정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살만 안 하면 문제가 없느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번은 죽음의 관문을 다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죽습니다. 사람이 왜 죽습니까? 다양한 답이 있습니다. 병들어서 죽는다. 늙어서 죽는다. 그 사람에게 정해진 수명이 다해서 죽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답변은 게을러서 죽는다는 것이었어요. 사람이 숨을 계속 쉬기만 해도 살 수 있는데 게을러서 숨을 안쉬니까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왜 죽는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창조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거룩하게 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점점 더 악한 죄인으로 변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온갖 죄악을 세상에 가득하게 하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사단에게 사로잡혀 하나님을 도전하는 악한 삶에 점점 깊이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버려두면 사람은 끝없이 악한 죄를 범하고 사악하게 변하여 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의 수명을 짧게 정하신 것입니다. (창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따라서 죽음도 죄때문에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죽음은 일생동안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삼키는 무서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이별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대에 모든 죄가 다 드러난채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네덜란드 시인이 꿈에 죽어서 저 세상에 갔다. 저 세상에 들어서니 한 천사가 그를 맞으며 금빛 나는 책을 보여 주었다.
"그게 무슨 책입니까?"
"그대의 삶을 기록한 것이지."
좀더 가까이 다가가 책의 첫장을 넘겨 보았다. 거기엔 글이 적혀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그대가 저지른 악한 행동들(acts)이지. 참 많구나."
천사가 다음 장을 넘겼더니 거기엔 아까보다 더 많은 글이 쓰여져 있었다.
"이건 그대 입에서 나온 악한 말들(words)이야. 아까 본 행동보다 많지? 사람은 본래 행동보다 말이 많게 마련이야."
시인은 두려웠다. 다음 장을 넘기니 거기엔 더욱더 촘촘하게 기록된 것이 보였다.
"이건 무엇입니까?"
"이건 그대 머리 속에 있던 악한 생각들(thoughts)이야. 엄청나구먼. 사람이란 말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게 많으니까."
시인은 떨리는 음성으로 다음 장도 넘겨야 하느냐고 물었다. 천사가 그 다음 장을 넘기자. 아뿔사! 그것은 마치 칠흙같이 어두운 밤처럼 온통 검게 칠해져 있었다.
"이건 그대의 악한 마음(heart)일세. 검은 마음에서 그 모든 생각이며 말이며 행동이 나오지."

죄에는 용서만이 약이다. 아무리 많은 죄라도 어린양의 피로 희게 씻을 수 있다.(R. P. Anderson)
사탄의 시험 중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되는대로 살아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그냥 교회만 다니면 구원을 얻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단에게 속아 심판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교인들도 그와 같은 사탄의 시험에 빠져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교인들은 하나님을 아주 우습게 여기고 만만하게 여기는 경향이 많습니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불손하고 버릇없는 삶을 살아가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쉽고 만만한 분으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입니다. 믿음과 삶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코람데오(coramdeo)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before the face of God)라는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무슨 말과 생각을 할 때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반듯해 지겠습니까?
어느 교회에서 당회 때마다 과열되어 언성이 높아지고 발언이 격해지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당회실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모든 발언의 내용을 녹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자기의 모든 발언이 녹음이 된다는 것을 알게된 당회원들의 언성이 낮아지고 격한 발언이 줄어들었습니다.

사람은 녹음기 앞에서만 서도 반듯해 집니다. 하물며 우리가 우리의 모든 삶을 기억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늘 그 앞에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반듯해 지고 아름다워 지겠습니까?
아무튼 이제까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심판대앞에서 낱낱이 다 드러난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아주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28절 말씀에 보면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하셨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 한 번 자기의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열려진 죄사함의 효력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나타납니다. 구약의 제사는 손으로 만든 성막이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이루어 졌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가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장소의 제한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활하시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한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자기를 바라는 자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두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재림의 소망'에 관심이 모두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분명히 깨닫고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없이 그의 다시 오심을 기쁨으로 기다릴 것입니다.

1863년 링컨이 새해 벽두에 노예해방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그 일로 인해서 링컨은 괴한에게 피살 되었습니다. 자기 생명을 흑인들의 행복과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바친 것입니다. 흑인들은 평생 아브라함 링컨의 은혜를 잊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링컨이 땅에 묻힌 뒤 수년이 지났습니다. 남부에 있는 대 농장에서는 여전히 흑인들은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역사학자가 알라바마에 있는 어떤 흑인을 붙들고 물었답니다. "당신은 링컨을 압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링컨에 관한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해방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링컨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해방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참 놀라운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니 이 노예들의 무식함을 농장 주인들은 최대한 이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던지 무식한 채 내버려 둬라. 가르치지 말라. 그리고 일만 시키자.' 이것이 노예 주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기에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 안에 담겨있는 영적인 의미를 깊이 깨닫는 영적 지식이 부족하면 마귀 좋은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마귀는 '모르는 것이 좋다. 바쁘게 살아라. 인생을 즐기는데만 열심을 내라. 교회만 다녀라. 그 정도면 됐어.' 하고 우리가 십자가 앞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 문을 전부 걸어 잠궈 버립니다. 교회밖에 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한대 멸망해가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이런 잠긴 문 속에 갇힌 성도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행입니다. 비극입니다.

필립 얀시가 말한 것처럼 십자가에는 강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해짐으로 죽음의 고통을 스스로 흡수 해 버린 신비한 사랑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사랑에 우리가 한번 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전부를 소유하게 됩니다. 그 사랑 때문에 텅텅 비었던 가슴에 놀라운 기쁨과 평안이 차오르게 되고 그 사랑 때문에 이 세상을 두려워 하던 사람이 담대함을 갖게 되고 그 사랑 때문에 불만족에 휩쓸렸던 사람들이 날마다 찬송하고 기뻐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죽음은 능력이 있어서 우리에게 영원한 속죄를 안겨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고 헌신하게 만들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의 손에 꼭 사로 잡혀 살게 만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가장 위대한 복음이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 들이시고 심판을 면하기 위해 십자가 앞으로 나오십시오. 십자가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과 은혜를 하루하루 알 수 있도록 계시의 영을 주시고 마음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 십자가의 은혜에 우리가 붙들리기만 하면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도 우리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능력이 십자가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 은혜를 통해서 특별히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고 의로운 새 사람이 되어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십자가의 감격, 십자가의 능력으로 뜨거워지는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의 심령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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