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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은혜를 받아야 할 때! (고후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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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엄청 좋아하시는 목사님과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토요일에 설교 준비를 마치기가 무섭게 맞수인 장로님을 모셔다가 두 분이 바둑을 두었습니다. 한판이 두판이 되고 두판이 열판이 넘어갑니다. 장로님과의 바둑에서 별로 이기지를 못하고 토요일 밤을 꼬박 지새운 목사님께서 주일 아침에 예배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강단에 서시기는 했는데 성령 충만은 고사하고 피곤과 졸림만이 충만했습니다.

또 바둑을 지게 된 실착이 머리에 떠올라서 설교하시기가 영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날 따라 할머니들이 많이 나오셔서 강단에서 내려다보니까 성도들의 머리가 검은 돌, 흰 돌로 보여서 애를 먹었습니다. 겨우 설교를 끝내고 축도를 할 차례가 되어서 축도를 합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다리!"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파도를 일으켜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주시는 은혜의 파도를 사모하십시오. 세상의 어떤 것으로 내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주시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의 은총으로 내 영혼에 감격의 파도가 일어나기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세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오묘한 은혜의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시간 찬양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저와 여러분의 영혼에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잔잔한 영적 바람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이 영적 바람을 경험하지 못하면 예수를 믿어도 피곤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거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답답하여 숨이 막힙니다. 마찬가지로 내 영혼에 영적 바람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답답하여 짜증만 납니다. 그래서 입술에는 감사 대신에 불평과 원망만 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영혼에 영적 바람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지금 굉장히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영혼에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영적 바람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그렇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생기의 바람이 지금 이곳에서 여러분의 심령에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성령의 파도를 타십시오. 영감이라고 하는 말은 생령의 바람이라는 말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생령의 숨결이 강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어 넣어주시는 생령의 바람을 마음껏 받아들이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곳에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기를 사모하십시오. 더 많이 사모하십시오. 사모하는 만큼 은혜를 받습니다. 때문에 많이 사모하는 사람은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적게 사모하는 사람은 적은 은혜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예 사모함이 없는 사람은 근심과 염려를 가득 안고 차가운 마음으로 이곳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원수인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철철 넘쳐흐르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이 시간 내 영혼을 휘감고 있는 모든 어둠의 영들이 떠나갈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하나님께로 나아감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모든 영적 장애물들이 깨어지고 무너지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중요하고도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에 내 영혼을 휘감고 있는 모든 어둠의 영들이 천리만리 떠나갈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에 영적 장애물들이 깨어지고 부셔지고 무너질 것입니다. 이 은혜와 능력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미국의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집회인도를 위해서 비행기를 탔는데 한 남자 승객이 술에 취하여 욕설을 하면서 지나가는 스튜디어스를 희롱하는가 하면, 자기가 조종사에게 지시해야 한다고 하면서 조종석으로 가려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승무원들이 그를 가까스로 붙들어 좌석에 앉혔는데, 마침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바로 앞자리였습니다. 그 사람이 계속 소란을 피우고 있을 때에 앞좌석의 한 신사가 그에게 점잖게 나무랐습니다. "이보시오, 선생. 당신 뒤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앉아 계시는 것도 모르오? 좀 조용히 하시오" 그랬더니 술 취한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를 향해 서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 당신이 그 유명한 설교자 빌리 그래함 목사시오? 악수나 한 번 합시다. 나도 교회에 나가는데 당신의 설교에 은혜를 아주 많이 받고 있소."

사람도 가지가지이고 은혜도 가지가지인가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를 제대로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은혜가 풍성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느라고 은혜를 헛되이 받고 있습니다.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지금'이라는 단어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내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제를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지금입니다. 때문에 기독교적 시간관은 지금이 바로 종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지금이 바로 주 앞에 서야 하는 종말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시제는 '여기 그리고 지금'입니다. 영어로 "here and now"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 앞에서 은혜 받는 일을 나중에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이 중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은 우리가 정말로 간절하게 은혜를 구해야 하는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내 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애쓰며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로 나아와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손길을 구해야 할 때입니다. 이 일을 미루지 마십시오. 조금 후면 늦습니다. 내일은 더더욱 늦습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강렬한 임재하심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한 역사학자가 물었습니다. "대왕께서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힘 중에서 으뜸가는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왕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지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은혜 받는 일을 미루지 마십시오. 만약에 우리가 은혜 받는 일을 미루게 되면 첫째로, 사모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믿음의 열심도 없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지금 바로 이곳에서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공을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일을 미루거나 약속을 미루면 차차 그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집니다. 내일부터 열심을 내어야지. 조금 있다가 열심히 해야지.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은 언제나 '내일'과 '조금 후'입니다. 이런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결심만 하다가 끝나고 맙니다. 아십니까? 꿈을 꺾는 최상의 적은 미루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미루는 태도는 열정을 깎아먹고 그 꿈은 점점 더 희미해지게 됩니다. 사람이 열정을 잃게 되면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 앞에서 은혜 받는 일을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다음 시간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다음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닙니다. 은혜 받는 일을 다음으로 미루게 되면 신앙생활의 열정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은혜 받는 일을 미루게 되면 둘째로,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기회는 미루는 자에게서 도망친다고 했습니다. 지금 바로 실천하는 자에게 기회는 미소를 짓는다고 했습니다. 아직 이르다고 말하는 자는 곧 너무 늦었다는 자책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은혜 받는 기회는 그렇게 자주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은혜 받을 기회가 있으면 받겠다고 하는 사람 치고 제대로 은혜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받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솔직히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 순간도 우리의 생명은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지나온 모든 순간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지금 바로 이곳에서 붙잡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은혜의 소낙비를 우리들에게 내려주십니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내 영혼이 흠뻑 젖도록 은혜의 소낙비를 맞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오후에 우리는 전교인 산상수련회를 떠납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수련회를 갖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수련회도 갖지 말고 그냥 조용히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최고의 절정에 달하는 휴가철에 가족들과 오붓하게 강으로 바다로 떠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방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휴가는 즐기고 먹고 구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휴가는 놀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영적 재충전의 기회입니다.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흡족한 은혜의 비를 맞는 시간,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육체의 즐거움을 찾아 떠나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 품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 기간에 영적 재무장을 하려고 수련회를 갖습니다. 어떤 가정은 아예 전 가족이 기도원에 가서 한 주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여러분들께서도 오늘 오후부터 갖는 전교인 산상수련회에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참석해서 마음껏 찬송하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 재무장을 확실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여 어떤 분들 가운데 금년에는 못 가고 내년에는 가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생각을 깨십시오. 은혜 받는 기회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년은 내 시간이 아닙니다. 내년 이 시간에도 내가 이 땅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지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더 많이 사모하십시오. 지금 말입니다.

중동의 회교도들은 일년 중에 9월이 되면 '라마단' 이라는 특별한 금식 기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해가 뜨고 부터 해질 때까지 일체 금식합니다. 그런데 해가 지면 밤새도록 먹고 마시기 때문에 이 기간에 가장 살이 많이 찐다고 합니다. 낮과 밤만 바꾼 것뿐이지 실제로 금식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주일날 한 시간 예배드리면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서는 언제 은혜 받았느냐는 식으로 여전히 옛사람의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헛된 라마단 금식을 하는 회교도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헛되이'의 원어는 '비어있는, 공허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바라보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도무지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들처럼 공허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언제나 파당과 분쟁이 있었습니다. 음행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받은 은혜를 헛되게 만드는 공허한 신앙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은 마귀에게 쓰임을 받되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넘어지고 실족합니다. 그 사람만 보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은 언제나 사람들 앞에 걸림돌이 되어서 넘어지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받은 사람은 사람들에게 디딤돌이 됩니다. 그 사람 때문에 힘을 얻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위로를 받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용기를 얻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신바람이 납니다. 그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의심은 사라지고 믿음이 생깁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바르게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독일의 나치정권 당시에 독일 고백교회의 목사님이셨던 디트리히 본훼퍼는 '제자의 대가' 라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값싼 은혜는 교회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값싼 은혜란 싸구려 노점상의 물건들처럼 아무 데서나 마구 남용되는 은혜를 말합니다. 현대 교회의 값싼 은혜는 회개가 없는 용서의 설교요, 교회의 교육이 없는 세례요, 참회가 없는 성찬식이요, 개인적인 고백이 없는 사면과도 같습니다. 값싼 은혜는 사도 정신이 없는 은혜요, 십자가가 없는 은혜요,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값진 은혜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도 같습니다. 값진 은혜를 얻기 위해 자기가 지닌 세상적인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것은 상인이 자기에게 있는 모든 물건을 다 팔아 엄청난 값의 진주를 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은혜를 값싼 물건으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아무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싸구려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은혜를 위해서 주님께서는 죽음으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죽이시는 아픔을 치루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이 은혜를 간직하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기 위해서 세상적인 즐거움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인간의 욕망을 포기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받는 은혜는 헛된 은혜가 되기 쉽습니다. 오늘 오후부터 전교인 산상수련회를 떠납니다. 우리는 가서 더 많은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체험을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포기하셔야 합니다. 육체의 편안함을 포기하셔야 합니다. 세상적인 만남도 포기하셔야 합니다. 세상적인 오락과 즐거움도 포기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전부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고자 독생자를 버리시는 전부를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생명이라고 하는 전부를 포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포기는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것을 포기하고 그 대가로 엄청나게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주 작은 한 부분을 선택하고 전부를 버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주 작은 한 부분을 포기하게 전부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2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고 뽑힐 때가 있습니다. 이 때를 놓치면 안됩니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은혜는 지나가는 소낙비와 같다. 그러므로 기회를 잃으면 그것을 못 받는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은혜와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성공하고 멋있게 의미 있게 보람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이 그 때입니다. 지금이말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첫째로, 삶의 빈곳을 은혜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악한 귀신이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나와서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쉴 곳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귀신은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하고 가보니 그 집이 비고 깨끗이 소제되고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악한 귀신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가 거기서 살게 됩니다.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심령의 빈집을 의미합니다.

빈집은 항상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빈집은 언제까지나 빈집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쥐와 같은 온갖 들짐승들이 둥지를 틀게 됩니다. 거미줄이 쳐지고 삭막하게 됩니다. 온갖 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들어 와서 살게 됩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튼튼한 집이라고 해도 사람이 살지 않고 오랫동안 빈집으로 방치하면 폐가가 되어서 무너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빈집은 위험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의 빈집도 위험합니다. 영혼의 집을 깨끗이 소제하고 수리했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그대로 놔두면 악한 영이 들어와서 역사하게 됩니다. 삶의 빈자리에는 언제나 악한 영이 찾아와서 둥지를 틀게 됩니다. 만약에 누군가의 삶의 자리가 비어있다면 지금 그의 영혼은 악한 사단이 침투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변해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삶의 빈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삶의 한 구속을 텅빈 채로 두어서는 안됩니다. 삶의 빈자리가 크면 클수록 사람의 마음은 공허해집니다. 만족함이 없습니다. 누구를 끊임없이 원망하고 비방합니다. 삶의 빈자리가 큰 사람은 모든 일에 섭섭하고 억울합니다. 그저 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의 다른 무엇으로 채워보려고 거리로 뛰쳐나갑니다. 불나방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삶의 빈자리는 공허함만 더해 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독교는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삶의 빈자리에 예수님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빈자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더러운 악한 영들이 더 이상 여러분의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능력의 주님을 마음에 모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으로 내 삶의 빈자리를 채우십시오. 그래서 믿음에 굳게 서서 악한 영들을 대적하여 싸우시기 바랍니다. 싸워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내 삶에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움을 받은 사람은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헌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내 삶의 빈자리를 은혜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둘째로, 은혜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는 어디를 가나 교회가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의 시대입니다. 은혜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는 일에 무관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 받을 기회가 우리의 시간 속에 숨어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의 기회도, 성공의 기회도, 축복의 기회도, 은혜 받을 기회도 바로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지금'이라는 기회를 잘 잡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실패한 사람은 '지금'이라는 기회를 놓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지금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금'이라는 헬라어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때임과 동시에 인간이 그 구원에 응답해야 할 때임을 상기시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구원을 베푸시는 때입니다. 동일하게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에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 앞에서 은혜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은혜를 받아야 할 때에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빌리 그래함 전도대원 중에 단 피아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집회를 하는데 예수를 알지 못하는 부자가 참석했음을 보고 이튿날 그를 전도하려고 찾아갔습니다. 부자는 피아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흥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만달러의 큰 사업계획을 하기 위해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므로 안됩니다. 오늘밤에 당신에게 전화할 것이니 그때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그 날 밤 피아트는 늦도록 그의 전화를 기다렸으나 연락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지난밤에 그 부자가 병원에서 죽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피아트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담당의사는 그 부자가 죽기 전 이 말만 되풀이하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피아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내가 왜 그 사람을 안 만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이라는 때를 놓치면 이미 늦습니다. 내일은, 아니 잠깐 후도 지금은 아닙니다. 기회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지만 이것을 이용할 줄 모르는 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기회라 할지라도 무가치한 것입니다. 은혜 받을 기회는 바로 지금인 것을 깨닫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천국에는 "아멘"과 "할렐루야" 소리로 충만한데, 지옥에는 "걸", "걸"하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이 "걸"은 무슨 걸일까요? "이럴 줄 알았다면 예수 믿었을 걸, 죄 짓지 않았을 걸, 너무 인색하지 말았을 걸, 그렇게 교회 가서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당 가자고 했을 때 예수 믿을 걸, 은혜 받자고 할 때 은혜 받을 걸" 하는 소리가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결국 지옥이라는 곳은 기회를 잃은 사람들이 영원히 후회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 안에서 은혜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로다 이 시간에 은혜 받을 기회로다
믿읍시다/ 받읍시다/ 이후에 기회를 믿지 말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시간이 은혜 받을 기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후에 받을 기회가 있다는 유혹의 소리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하면 받게 됩니까?

첫째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은혜의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은혜로운 말을 하게 됩니다. 사랑의 행위가 열매로 나타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더욱 큰 은혜 받아서 능력 있는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범사에 형통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고넬료의 가정이 그렇게 큰 은혜가 넘치는 축복의 가정이 된 것은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오늘 이곳에 지금 성령께서 임하셔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져주시기를 사모하십시오.

둘째로,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절망 가운데 빠져서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 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리라"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구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크신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아십니까?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기도는 성도의 최대의 무기입니다. 하나님께는 기회를 드리는 것이요 마귀는 기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하늘의 능력을 덧입는 것입니다.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성도로 하여금 은혜를 못 받게 하려고 각양 각색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활동을 묶어 놓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기도입니다. 초대교회는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하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더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모두가 산상수련회에 참석하셔야 합니다. 참석해서 함께 목이 터져라 찬양하고 부르짖으십시다. 하늘 문이 열리면서 은혜의 빗줄기가 폭포수처럼 우리들에게 임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는 최대의 전략 방법은 '다음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이란 숨쉬는 그 순간, 살아 있는 이 순간을 말합니다. 이 순간, 맥박이 뛰고 심장이 고동 치고 손발이 움직이고 두 눈이 깜박거리고 있는 이 순간을 말합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순간에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종말을 말합니다. 마지막 순간을 의미합니다. 몹시 긴박한 시간을 말합니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됩니다.

은혜를 카이로라고 합니다. 그 뜻은 "유쾌하다,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유쾌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행복합니다. 본문은 은혜와 구원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기쁘고 은혜를 받아야 행복하고 은혜를 받아야 구원의 날에 자랑스럽게 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은혜는 지금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지금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오늘 봉좌산기도원으로 불러 세우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은혜 받고 주 안에서 행복을 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바로 지금이야말로 은혜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 받아야 합니다. 내일은 내 날이 아닙니다. 내일도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지만 내일 나는 변할 수 있습니다. 내일은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이것을 깨달아서 실천에 옮긴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가는 길에 놀라운 길이 구원의 열리게 될 것입니다. 축복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오 주 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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