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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를 선택하라 (골 3:12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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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에 패배한 한 일본인 장교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패전의 후유증으로 인해서 그에겐 온통 원망과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그가 원망과 불평의 삶으로 일관하다 그만 전신마비라는 중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몸 뿐 만이 아니라 손과 발조차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만 것입니다. 치료의 과정 중에 그는 정신치료사 후시다라는 사람을 만나서 권면을 듣게 되었는데, 후시다는 그 장교에게 “당신의 병을 고치려면 하루에 만 번씩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됩니다.”라고 권면을 하더랍니다. 이 장교는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 날 이후 부터 미친 사람처럼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도, 원수를 만나도, 어떤 상황을 만나도 그는 늘 감사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아주 잘 익은 먹음직스러운 감 2개를 가지고 와서 아버지에게 드시라고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아들의 정성이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을 왈칵 쏟으며 손을 내 뻗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손을 내 뻗는 순간, 그의 온 몸의 마비가 풀리게 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그 반복적인 말 속에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를 하게 되었고, 그의 병이 깨끗하게 나음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이처럼 중요합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상징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바로 감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극한 가난과 수많은 핍박 속에서도, 끊임없는 조롱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점점 감사를 잃어가고만 있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감사에 인색해가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은 가장 큰 비극이요, 불행의 시작입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는 순간 그의 신앙과 인격의 성숙은 중단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이 비극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세 개의 감사절이 소개됩니다. 첫 번째가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몸담고 있던 그 애굽의 멍에를 벗어나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날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기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절기가 수장절 혹은 초막절입니다. 한 해의 가을 농사를 다 추수해서 저장한 후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감사 절기입니다. 초막을 짓고 1주일 동안 거주하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는 초막절 혹은 저장한다는 의미에서 수장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추수감사절이지요.
  세 번째는 칠칠절이라고도 하는 맥추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리 농사를 지어서 저장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이 맥추절입니다. 

  물론 우리는 오늘날 도시생활하기 때문에 보리농사를 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한 해의 절반을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온 것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오늘 맥추절을 통해서 잃어버린 우리의 감사와 찬양의 삶이 회복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감사해야 될까요? 첫째, 감사는 새 사람된 성도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읽진 않았지만, 골로새서 3:1~11절까지의 말씀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성도가 옛 사람의 성품을 벗어버려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우리들은 이제 옛 사람들의 성품을 벗어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옛사람의 성품이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3:5에 보니까 그것은 곧 음란과 부정이요,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과 분냄과 악의와 훼방과 거짓말이라고 그랬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옛 과거의 모습을 벗어버려야 됩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새서 3:12~17 본문은 이제 구원받은 새 사람이 입을 성품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바로 이런 성품의 옷을 입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예수님처럼 서로 용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가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는 서로 용서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라가 되라’고 했습니다. 16절에 보니까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17절에 보니까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성도의 특징이요, 성품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용서가 있고 사랑이 있고 평강이 있고 말씀이 있어도, 그 위에 감사가 없다면 그것은 온전한 크리스쳔의 성품이 될 수 없습니다. 크리스쳔은 바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새 사람된 성도들은 감사의 성품을 다 덧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왜 감사해야 할까요? 감사는 주님의 명령이오,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권면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일 데살로니가전서 5:16 이하의 말씀을 나눴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오,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 번째로 감사할 이유는, 감사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지나가시다가 문둥병자 10명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말입니다. 제사장은 그 당시에 의사와 같습니다. 그래서 이 10명이 제사장을 향해 가다보니까 자기들의 문둥병이 어느새 다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9명은 제사장에게 갔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10명 중에 단 한 명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은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예수께 사례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 한사람만이 문둥병에서 고침 받은 것을 주님 앞에 나와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묻습니다. “10명이 다 고침을 받았는데, 다른 9명은 어디에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할렐루야! ‘이제 네가 문둥병에서 놓임 받은 것뿐만 아니라 네 영혼까지도 구원을 받았느니라.’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능력입니다. 감사하는 사마리아인만이,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받은 축복을 입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능력입니다.

  넬슨 외에 2명이 지은 ‘소망을 이루어 주는 감사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저자는 ‘감사는 삶을 이루어 주는 파동이오, 힘이오, 에너지’라고 소개합니다.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 힘, 파워, 그것이 바로 감사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말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신비스러운 힘이 있습니다. 에머토 마사루라는 사람이 지은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은 물의 결정체를 앞에 놓고 욕을 하고 저주할 때 그 물의 결정체가 아주 보기 흉한 모습으로 깨어져 버리는 결과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의 결정체를 놓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네게 감사한다.’라고 말을 할 때에 그 물의 결정체가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그것을 그대로 연구 결과를 책에 싣고 사진까지 실어놓고 있습니다.

  똑같은 말이지만, 영어의 Thank you든 한국말의 감사든 그 감사라는 말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행복론’이라는 책을 쓴 칼 힐티라는 철학자는 행복의 조건 중의 첫 번째를 감사로 꼽고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젊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기쁨이 따라올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아직 병원에 입원해도 그 삶을 비관하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은 더 빨리 병이 치유 받는 것을 우린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성공을 원하십니까? 인생의 승리와 행복을 원하십니까? 감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가 왜 감사해야 될까요? 감사하지 않으면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기대했던 것과 다른 길로 인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까운 길이 있는데 하나님이 먼 길을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아마 그 길이 더 안전한 길이었기 때문이겠지요. 그 길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하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길로 마음이 상하니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음식 투정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불평이라는 것은 이렇게 전염성이 있습니다.

  한 가지를 불평하게 되면, 매사에 모든 것이 짜증스럽게 보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그렇습니다. 들어올 때에 뭔가 시험이 들면, 그 날 찬양은 아무리 잘 해도 별로입니다. 기도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어도 트집만 잡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아이가 5만원짜리 신발을 산다고 돈을 요구 했는데, 부모가 돈이 없다고 2만원짜리를 사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벌써 마음이 상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평소에 잘 먹던 아이가 국이 싱거우니 짜니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매사에 짜증을 내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전염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길로 인해 마음이 상했지만, 음식의 불평까지 털어놓게 되었고,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불뱀을 내리셔서 죽음의 벌을 내리셨지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지막에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놋 뱀을 만들어 그것을 처다 보는 자마다 치유 받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처럼 불평과 원망은 죽음과 쇠퇴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민수기 13장에 보면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땅을 다녀온 보고가 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믿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땅이니 올라가서 차지하자!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란 희망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10명이 보고한 부정적인 보고에 마음이 기운 많은 백성들은 마음이 상하고 낙심하여 좌절하고 절망해서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을 터뜨리기 시작 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던 열 정탐꾼과 그들에게 동조한 사람들이 모세를 돌로 치고자 했지만, 하나님의 진노로 그 원망의 무리들은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보면, 이 사건을 가리켜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들에게 멸망당하였나니”라 기록하고 있고,  민수기 14장 29절에는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평과 원망은 우리를 죽음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와 갈렙 처럼 감사하는 사람은 축복의 삶을 살 뿐 아니라 성공과 형통의 삶을 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많은 분들이 “목사님, 감사할 것이 있어야 감사하죠? 월급도 줄었어요. 아이가 공부를 잘하나, 집안이 잘 되는 것이 있나, 몸이 건강하길 하냐구요!” 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 경제를 보면 그 말도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감사는 상황을 따지지 않는 감사입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을 보면, 다니엘이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리오란 왕이 통치하고 있을 때, 왕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방인이 왕의 총애를 받아 총리가 되니 그 밑의 재상들이 시기와 질투하게 되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니엘을 없애려고 모함을 하려 하였습니다. 그 꼬투리를 찾던 중에 다니엘이 날마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하는 것을 보고는 왕에게 “이제 법을 만드셔서 한 달 동안 왕 외에 어느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소서”란 공문을 올리게 됩니다. 왕은 그 신하들의 아부성 있는 법을 간파하지 못하고 그 법에 승인하는 도장을 찍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를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란 말씀에서처럼 다니엘은 그 소식을 들었지만 계속 하나님을 향해 하루 세 번씩 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사자에게 먹힐지도 모르는 그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감사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 에게 추격당하면서 다리한번 쭉 뻗고 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기록한 시편들은 감사의 고백으로, 감사의 눈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태풍으로 배의 파손으로 수 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40에 하나를 감한 매를 수도 없이 맞았고, 때로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성 밖으로 광주리에 달려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서신에서는 감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셉은 노예로 끌려갔지만 불평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처럼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여호와의 구원을 인해서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할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속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다니엘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하셨고, 다시 구조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상황과 현실만을 보지 말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또한 우리의 일생을 인도하시는 여호와로 인하여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주실 축복을 기대하면서 감사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감사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국가적으로 감사할 것이 많다고 하면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우리에게는 감사할 것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힘들다 어렵다 불평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잘 사는 나라에 속합니다. 세계 160개국이 넘는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무려 10위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10번째로 잘사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불평하면서 못살겠다고 이민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현실에 쉽게 불평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복을 세어 보고 그 복을 발견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단군 이래 5000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 역사는 가난의 역사였습니다. 일제시대도, 해방 후도, 6.25전쟁 후에도 가난했습니다. 시골에 가면 부잣집 빼놓고는 아침저녁 하루 두 끼 먹는 집이 대부분이었고, 점심때는 아이들이 배고프면 고구마나 옥수수 삶아주는 정도였습니다. 오죽했으면 1960년대 대통령입후보자들의 구호가 “배고파서 못 살겠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란 것이었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너무 배고파서 그런 구호가 인기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굶는 것을 면한 것은 얼마 안 됩니다. 1997년에 우리는 국민소득 1만 불을 돌파했습니다. 일본이 1만 불을 돌파하는데 100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미국은 180년, 영국은 2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대한민국은 1960년 82불에서 1997년까지 36년 밖에 안 걸렸다는 것입니다. 36년 만에 82불에서 1만 불을 돌파한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참 특별한 나라인 것입니다. 참고로 지금 북한의 국민소득은 300~500달러 정도입니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월드컵 4강에 들은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대통령도 너무 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대통령돼서 그보다 더 잘할 자신 있으면 비판하시고, 자신 없으시면 임기를 다 마치시도록 해 주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고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보다 못한 사람이 대통령 대통령되었다고 상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아찔합니까? 그나마도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또한 대통령을 비판해 봐야 우리만 더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불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밖에서 비판하던 사람은 교회 가서 목사님을 비판하게 되고, 집에 가서는 남편과 아내를 습관처럼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비판은 부정적 의식을 낳고, 부정적 의식은 불신앙의 근거가 됩니다. 비판 한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입니까? 비판하는 것은 기자나 방송 칼럼가들에게 맡겨두시고, 우리는 격려하고 기도하는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태도입니다.

교회적으로도 감사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년 전만해도 성전 건축은 감히 상상도 못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이 웅장하게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 공사가 진행되면서 안전사고 하나 없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며칠 전에 새벽기도 나오다보니 뒤에 누가 따라오셔서 인사하느라 보니까 이마에 멍이 시꺼멓게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지 여쭈었더니 며칠 전에 새벽기도 끝나고 내려가다가 어지러워서 계단에서 구르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었는데도 새벽기도 나오시고 계신 것 이었습니다.
교회 50년을 찾아보면 이런 분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교회에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눈만 오면 계단이 미끄러워서 교회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얼마나 고민 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조금 있으면, 1층에 오면 예배실에 바로 걸어 들어올 수 있게 되고, 2,3 층도 엘리베이터타고 올라올 수 있게 됩니다. 더 이상 계단에서 구를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없다, 부족하다 하지만 우리는 옛날에 비하면 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옛날의 조선왕들보다 훨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세탁기, 냉장고가 있었겠습니까? 또, 권사님들이 다 가지고 계신 핸드폰이 있었겠습니까? 물론 끌줄도 모르면서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시지만 말입니다.
옛날에는 부산에 간 신하에게 말 전하려면 며칠을 말을 타고 달려가야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부산에 있는 아들에게도, 미국에 가있는 딸에게도 전화 스위치만 누르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편리하고, 잘 살게 되었는데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을 바라보며, “내 핸드폰은 보통 핸드폰인데, 옆에 권사 핸드폰은 카메라가 찍히는 핸드폰이야. 나는 왜 이게 없냐 말이야?”, “옆집 권사님 댁에 놀러 갔더니 텔레비전이 얼마나 큰지 벽 전체가 텔레비전이야.”라고 불평합니다.
전화는 통화 할 수 있으면 되지, 잘 쓰지도 못하는 카메라 달리고 안 달리고가 뭐 중요합니까? 텔레비전을 볼 수만 있으면 되지 크면 뭐하고 작으면 뭐하겠습니까? 조금 더 낮은 것을 보고, 조금 더 못한 것을 보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할 것을 찾을 수 있을 때, 삶이 행복해지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12정탐꾼의 이야기처럼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선택입니다.

시편 103편 2절 말씀에 “내 영혼아 내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 지어다.”란 말씀처럼 모든 일에 감사하시고, 감사를 선택하셔서 그 뒤에 이어지는 큰 축복을 받으시는 사랑하는 영신교회 성도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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