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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존재하는 이유 (롬 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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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을 마무리 하는 주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무더위로 휴가를 떠나서인지 거리가 한산해진 느낌입니다.
거룩하고 복된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달려나와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 위에 우리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노인들만 남은 시골, 그나마 홀로 남은 노인들이 많아 누군가 생을 끝내고 마방에 불을 밝히고 상을 치루고 나면 그날로 그 집은 폐가가 되고 맙니다. 며칠 전 충남 서천의 석동마을에서 모처럼 마을잔치가 열렸습니다.

서울서 직장을 다니다 귀농을 한 30대 부부가 딸아이를 낳은 것을 축하하느라 동네사람들이 돈을 모아가지고 돼지고기와 떡, 막걸리를 차렸습니다. 새끼 꼬고 참숯 구워 금줄도 걸어주었습니다. 20가구 41명이 사는 이 마을에 18년 만에 태어난 아기는 이웃들에게 “은총” 이라는 이름 그대로였습니다.

이 기사는 최근 한 농촌마을의 풍경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그래서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없는 적막한 동네, 그 곳에 18년 만에 새 생명이 태어났기에 신문기사가 되고 뉴스가 되었습니다. 생명 탄생, 그것은 분명 예삿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 생명을 통하여 작게는 마을 전체에 잃어버렸던 웃음과 삶의 희망을 찾게 해 주었고, 크게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소명을 주셔서 이 세상에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또한 그 어린 생명을 잉태한 채 남들이 떠나간 시골로 찾아간 젊은 부부의 도전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완벽하게 진행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지혜의 부요하심을 찬양하며 태초에 세우신 창조의 목적을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는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보냈습니다. 즉 존재해야 할 이유를 주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이 복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되기에 복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목적을 알 때에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삶이 의미가 있고 어떤 어려움이나 위기 앞에서도 낙심치 않고 그 목적을 이룰 힘과 용기를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첫 째,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31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달 전 한국일보에는 참으로 희한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보도되었습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 수 십 억원의 당첨금을 받고도 절도범행에 가담하여 장물을 처분해 오던 40대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금년 46세의 전 모 씨는 다른 사람이 훔친 물건들을 대신 처분해 주는 속칭 장물아비를 해오며 수차례 감옥을 들락거렸습니다. 이후 전씨는 2003년 5월 우연히 구입한 로또복권이 1등에 당첨되면서 34억원의 당첨금을 받았습니다.

전씨는 이 돈으로 서울에서 대형 성인오락실을 사들였으며, 57평의 아파트와 시가 20억원이 넘는 땅을 구입했습니다.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부탁으로 장물아비를 계속하다가 결국 쇠고랑을 찼습니다. 대개가 로또복권에 당첨되면 과거를 잊고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보통인데 전씨는 여전히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어울려서 범법행위를 계속해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목적의식이 없을 때 여러 다른 것들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갑니다. 그 중의 하나가 죄의식입니다. 타락 후 인간의 마음에는 죄의식이 생겼습니다. 죄의식은 수치심을 동반하는데 죄의식에 이끌려 살게 되면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일생을 방어하며 소비하며 삽니다.

죄의식 외에도 상처로 인한 쓴 뿌리, 원한, 분노 등도 우리 마음을 지배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건의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그 일이 성격과 인격의 일부가 되어 나를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 황실아카데미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피터 구르퍼라는 사람은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소원인 스트라디벨리우스라는 사람이 만든 바이올린으로 연주해보기를 원했습니다. 마침내 이 분이 258년 전에 스트라디벨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을 가지고 핀란드에 가서 연주하게 되었는데 그는 흥분한 나머지 바이올린을 안고서 올라가다가 넘어져서 그만 그 바이올린이 깨지고야 말았습니다.

실망 가운데 있는 그에게 런던의 악기를 손질하는 기사가 “내가 그 악기를 고쳐보겠다”고 했습니다. 그 기사가 다시 악기를 잘 만져서 감쪽같이 고쳐주었습니다.

그 후 전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로 연주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다 깨어졌던 사람들 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아니면 고침 받을 수 없는 상처투성이인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쓸모없던 우리들을 주님께서 사랑의 손길로 붙드셔서 치유해 주시고, 온전케 하셔서 과거보다 더 좋고 더 귀한 존재로 변화시켜 주신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18:13에 보면 예수님은 상한 마음을 안고 성전에 올라간 한 세리의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상한 마음을 안고 성전에 올라간 세리는 그 곳에서 자기의 아픈 마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며 기도하는 중에 깨끗하게 치유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안고 예배에 참석하셨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상하고 아픈 마음 다 내어놓으시고 깨끗하게 치유 받고 상쾌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와 아픔들을 치료받지 못하면 잘못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모릅니다. 한국 사람들이 야채가게나 과일가게를 많이 하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프에르토리코나 남미에서 넘어온 히스페닉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일 시키기가 힘이 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워낙 놀기를 좋아해서 만약에 한 달 치 봉급을 주면 월급을 받은 돈을 다 쓰느라 며칠 씩 안나온다고 합니다. 실컷 쓰고 돈 한 푼 없으면 다시 나와서 일을 한다고 합니다. 미국은 주급을 주로 주는데, 금요일에 주급을 주면 또 한 이틀 씩 안나온다고 합니다. 그 돈을 다 쓰느라 그렇다고 합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마치 미래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쉬지 않고 일하는 한국 사람이 불쌍하다고 합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모았어도 제대로 쓰지를 못합니다. 어렵게 살았던 그 가난의 아픔, 과거의 실패의 아픔을 치유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휴가 한 번 못갑니다. 돈을 벌면 벌수록 더 못 쉽니다. 가게 하루 문 닫으면 그 돈이 얼만데 하면서 부들부들 떱니다. 그래서 못 가고, 일생을 그렇게 삽니다.

돈을 벌면 벌수록 돈의 노예가 되어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헌금을 명하신 것도 우리를 가난과 얽매인 것들에서 풀어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잔치집입니다.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게 될 때에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고 내 인생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둘 째, 타인에 의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시편 39:6 말씀에 보면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결국 헛된 일에 소란하면 내가 수고하고 애쓴 것들의 결과에 대해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목적의 근거는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받았던 교훈과 혹은 이 시대와 사회가 준 영향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이 기초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난하게 자란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는 목표를 가지기 쉽습니다. 가정 형편상 학교를 제대로 다녀보지 못했던 부모님들은 자신은 밥을 굶어도 자식들 만큼은 대학에 보내려는 목표를 가지고 모진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룬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목표를 이루고 난 후에 진정한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22:28~30에 보면, 말하는 당나귀가 나옵니다. 이유인 즉, 발람이라는 선지자가 모압왕의 사주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나귀를 타고 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서 말하게 하시고 발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발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압왕 발락이 있는 곳까지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입으로는 “궁궐에 가득한 금은을 준다하여도…” 하면서 거절하는 듯 하였으나 결국은 그 마음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발람처럼 두 마리의 토끼를 좇으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고, 하나님의 대적이 제시하는 조건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발람은 하나님의 원수들과 함께 비참하게 칼에 맞아 죽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15~17에서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정해두고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레이몬드 루이스 플랑테(1834~1839)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욕망에 매달리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의복을 입고 싶어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욕망은 다루기 힘들 때 난폭하며 우리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듭니다.

영국의 유명한 부흥전도자인 로랜드 힐 목사가 어느 날 거리를 지나가는데, 여러 마리의 돼지가 마치 양이 목자를 따라가듯 어떤 사람을 줄줄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힐 목사는 돼지들의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이 도살장으로 인도하는데도 돼지들은 아무 반항 없이 따라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게 생각한 힐 목사는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세요, 당신은 어떻게 해서 돼지를 이곳까지 쉽게 몰고 오셨습니까?” 힐 목사의 질문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에게는 비결이 있지요. 보시다시피 나는 완두콩 바구니를 들고 오면서 계속 몇 알 씩 흘려주었지요.”

힐 목사는 이렇게 혼잣말로 말했습니다. “바로 그거다. 그것이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방법이다. 사탄은 쾌락의 콩, 욕망의 콩, 교만의 콩, 명예의 콩, 우매의 콩 등 헤아릴 수 없는 콩알을 계속 우리 앞에 뿌리고 간다. 우리가 그 콩을 주어먹으며 따라 가다보면 우리 영혼의 도살장인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서 5:15 말씀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아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준을 두지 말고, 비교하지도 말고, 주 안에서 내게 주신 은혜들을 헤아리며 자족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육신의 지나가는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 째,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목적을 알고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 36절에 보면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유형이 사람들은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만들어 이 땅에 보내셨을 때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창조주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한 사람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일교회의 김혜란 집사님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새로운 삶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온전히 바치고 싶다면서 자신의 신장을 떼어 청주강서교회 정경숙 사모님에게 주었습니다.

<사막의 꽃>의 저자 와리스 디리 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아프리카 소말리아 유목민 출신의 소녀에서 세계적 패션모델이 된 신데렐라 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13세 때 아버지가 낙타 다섯 마리를 받고 60대 노인과 결혼시키려는 걸 안 순간 목숨을 건 모험을 선택했습니다. 맨발로 사막을 건너 뉴욕까지 온 그녀는 가정부 생활을 거쳐 맥도널드 종업원으로 일하던 중 유명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패선모델이 되었습니다.

그 후 흑진주 나오미 캠벨과 함께 슈퍼모델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사막으로 가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받는 아프리카 여성들을 위해서 입니다. 끔찍하고 수치스런 여성 할례, 즉 면도칼로 여성 성기를 고통스럽게 절개하는 악습을 저지하기 위한 인권운동을 위해서 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유명해진 것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한 사명이 복음전도의 사명입니다. 나를 통하여 전도를 받고 구원받을 사람이 있기에 이 땅에 내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인생코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어떤 젊은 분의 일기장에는 “이 세상의 소풍을 잘 다녀간다”는 본인의 고백이 들어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돌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왕들의 무덤에 가보면 4,000~5,000년 전의 그림들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사람이 죽으면 저울에 달아보는 그림이 있습니다. 임금이든 천한 사람이든 누구든지 벌거벗은 몸으로 저울 앞에 서서 저울에 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렇게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외모의 아름다움도 기껏해야 30~40년이고 사업도, 부귀영화도 아주 짧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디자인해 주신 삶의 목적을 위해서 신령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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