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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아와 맺으신 언약 (창 8: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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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말씀은 홍수 심판 이후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 일입니다. 본문의 문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아 홍수는 두 가지의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하나는 철저한 하나심의 심판입니다. 다른 하나는 홍수 심판이 심판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을 위하여 일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확증시켜 줍니다.  그것은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후에 방주에서 나와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실에서 더욱 크게 드러납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세상에 기식하는 모든 생물을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이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내려졌고,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노아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노아의 언약은 홍수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증거 합니다.

1.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를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혹자들은 이러한 노아의 특징을 보고 노아가 은혜를 입은 것은 그의 사람됨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어느 곳에서도 노아가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으로서 완전하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노아가 의인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결국 노아의 구원이 노아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 은혜였음을 증거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내리신 은혜는 노아 언약에서 그 특징을 발휘합니다. 언약이라는 용어는 창세기 6:18절에서 가장 처음 나타납니다. 이것을 성경은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언약을 말씀하신 것은 홍수 이전과 홍수 이후 즉 두 차례에 걸려서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본 언약인가? 노아 언약에서 본 언약은 홍수 후에 내려집니다.  그러면 홍수 전에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고 하신 말씀은 무엇 때문인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는 언약의 공식적인 수립보다 앞서 하나님께서 미리 언약을 예견 또한 전제하시고 행동하시는 경우가 종종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언약에서도 홍수 전에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홍수 후에 노아와 맺을 언약을 예견 또는 전제하시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여기서 언약을 예견 또한 전제한 것이라는 사실은 노아와 그의 가족이 홍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은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려고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은혜를 주셨고 구원하셨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언약 때문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가 일어나기 전 노아에게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방주로 들어가는 데는 노아 뿐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였습니다(창6:18). 이것은 처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조금 다른 것입니다. 즉 처음부터 성경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것이 가족이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혜를 입은 것은 노아였습니다. 이에 성경은 노아가 의로웠고, 완전했고,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증거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구원은 노아 뿐 아니라 노아의 가족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노아가 은혜를 입었다고 했는데, 정작 구원에 있어서는 가족까지 포함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약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2. 언약에 대하여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누구와 언약을 맺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언약은 노아와만 맺은 것인가, 아니면 노아의 후손들까지 포함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히 언약의 대상자가 노아뿐만 아니라, 노아의 자손들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증거 합니다. 이에 대하여 본장 9절에는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 세우리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노아하고만 언약을 맺으실 것을 의도하지 않으셨음을 분명히 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노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아의 후손들까지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홍수이전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신 것이 노아만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잘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대한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가 의인이며, 당세에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노아에게처럼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노아의 가족이 구원에 포함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한 가정에서 가장의 의로움이 그의 모든 자녀들을 구원에 포함시키는 토대로서 기여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노아가 의롭고 당세에 완전한 자로,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될 수 있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노아의 가족이 가장의 의로움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시 심판을 받은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노아의 가족이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면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언약의 어디까지, 언제까지 미치는가? (언약의 범위) 노아 언약의 특징은 그 언약이 온 인류 곧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확대되는 언약이며, 또한 그 기간까지도 ‘영원한 언약’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9:16). 언약이 영원하다는 것은 노아 언약이 몇 세대가 지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께서 영원토록 지켜 가실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원한 언약이  모든 생물에게까지 확대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이 모든 생물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의 궁극적 목표가 단지 ‘영혼 구원’이 아님을 증거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의 결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은 구원 받은 자의 삶의 모든 환경까지도  포함하는 구원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본장 11절과  15절에는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11절에는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또한 15절에는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그 홍수와 같은 보편적인 심판이 다시는 없을 것임을 선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심판이라는 측면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오히려 노아 언약의 특징은 심판보다는 구원의 관점으로 이해하여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생명의 보존’입니다. 

이것은 홍수의 물이 물러간 후 노아가 하나님께 감사 제물을 드리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응답하신 말씀에서 뚜렷이 드러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21)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하십니다(창 8:21-22). 즉 하나님께서는 거듭해서 다시는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선언은 하나님께서 노아가 드린 감사 제물을 흥향 하셨기에 주신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셔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지키심으로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도록 자연의 규칙을 보장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연의 규칙을 보장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 때문입니다.   

자연의 규칙을 보장하여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시겠다는 사실은 9:1-7절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그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습니다(9:1,7).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시려는 의도로 모든 생물들 속에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을 주입시키십니다. 이를 본장 2절에는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채소만 아니라 동물들까지 식물을 허용하십니다(창 9:3). 대신 하나님께서 피로 상징되는 생명의 원리를 경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살인자는 반드시 사람의 손에 의해서 취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찍혀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창9:5). 

노아의 언약의 특징이 생명의 보존으로 나타나는 것은 인간이 어려서부터 악하여 심판을 받음이 마땅하고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인간을 구원하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단지 생명 보존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포함한 궁극적 구원의 성취를 하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이제 하나님께서는 노아 언약의 확실함을 증거 하기 위하여 한 가지 증표를 줍니다. 그 언약의 증표는 바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시는 것입니다(9:13).  증표는 일차적으로는 노아에게 나타내는 증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지키시려고 두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본장 14-15절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노아언약이 하나님 자신께서 이루실 언약임을 증거 합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후손들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보면서 하나님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지키심으로 인간을 보존하고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의도인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심은 홍수 때에는  비구름은 두려움과 심판으로 상징되어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오히려 그 구름 가운데 아름다운 비구름을 두심으로서 과거 홍수의 두려움과 심판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며, 또한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이 보존되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영원히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무지개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향하여 이렇게 은혜를 주심으로서 구원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예표 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과거 노아와 그의 가족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처럼, 오늘날 구원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 하나님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고, 전적으로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을 쫓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믿는 성도들이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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