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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사람이 되라.(1)(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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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의 양심이고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어려운 난국이고, 혼란기라면 더욱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그런 때 입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 팔순 어머님을 때려 견딜 수 없는 노모가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게 제발 보호시설로 옮겨줄 것을 요청하였고, 경찰 수사 결과 사실인 것이 밝혀졌는데 그 이유는 치매 노인을 감당 할 수가 없어 경찰이 수사하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폭행을 가했다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윤리적으로, 영적으로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신이 팽배해 있으며 , 모두가 자기중심적이 되어 버렸고,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텔레비젼에 소개된 내용가운데 결국 딸은 교도소로 수감되었고, 팔순노인은 수용시설로 보내졌는데 앞으로의 노인 복지 문제 대문에 대책이 이웃 선진국처럼 필요하다는 내용을 다루면서 소개된 내용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모두가 탄식하고 염려했을 줄 압니다. 저 역시 이런 뉴스들이 보도될 때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우리가 사는 미래가 지극히 어둡고 암담하며, 내일이 소망이 없으며, 희망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세에서 49세까지의 사람들에게 "오늘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만족도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60점밖에 줄 수 없다"고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행복지수가 60점밖에 안 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래서  "다시 태어난다면 어디서 태어나고 싶으냐?"고 물어 보았더니 40%의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50%의 사람들은 "이 나라가 창피해서 이민 가서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 사회는 극도의 불신 사회가 되어 버렸고, 아주 무력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뿐만 아니라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정치가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치가 그런 것이라고는 하지만 너무한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본문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매일 우리가 삶 속에서 두 가지를 행하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Put away your former way of life) "새 사람을 입는 것"(To clothe yourselves with the new self)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참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때에는 누군가가 앞장을 서서 그 시대를 이끌고 나아가 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본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몇 가지 충고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새 사람이 되겠습니까?

첫 번째 분별력 있게 살아야 합니다.(17절)

"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 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지하게 살지 말고 무분별하게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무분별하게 살면 무지해 보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지할 정도로 자기 멋대로 할 짓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분별력 있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알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후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한 말씀이 그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분들이 있으면 그들은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 부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다 해도 우리에게는 옛 성품이 남아 있어서 자꾸 옛날로 돌아가게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새 사람이 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계속해서 우리 성품 가운데 옛 사람으로 돌아 간 부분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죄악된 삶, 허망한 것을 쫒으며 살던 옛 구습들을 청산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옛 사람은 어떤 상태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옛 사람, 이것은 그 속성이 영이 주인이 되어 사는 인간에서 떠나서 육체가 주도적으로 지배하여 살아가는 육적인 본능과 욕망대로 사는 사람, 즉, 타락된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본문의 <옛사람>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던 옛 습관과 삶의 가치관과 인격을 의미합니다. 곧 우리들의 부끄러운 죄악 된 모습이고, 우리들의 과거의 잘못 설정된 가치관을 추구하던 생활방식이고, 우리들의 비뚤어진 땅에 소망을 두었던 것과 물질 중심의 가치관들입니다. 이것들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이 전부인 것처럼 땅에 소망을 두었고, 공로를 내세우며 자랑했던 인간중심 삶과 학연, 지연, 혈연 위주의 생활 방식, 자기중심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빨리 벗어야 할 옛 죄악 된 성품, 옛날 기질, 옛 기억의 옷들을 훌훌 벗어 던질 수가 있어야 새로운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관 전환으로 분별력 있게 사는 것이 바로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시초가 되는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죄악 된 본성을 청산해야 합니다. (17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벗어 버리고, 청산하여야 할 옛 사람의 속성(본성)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본문에서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을 일곱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1) 우리는 허망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Walking in the futility of their mind)에서 떠나야 합니다.

허망하다는 말은 '방향이 없다.', '목표가 없다.'는 뜻입니다. 목적을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주 허무하고, 허망한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며 열심히 살기만 했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사는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사업을 하든지 결혼을 하든지 목적이 없고, 의미가 없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허망한 좌절에 빠져들고야 맙니다.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는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헌신하여 쓰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선한 청기지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바를 마음에 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즉 마음과 생각과 행동은 항상 일치하기 때문에, 어떤 행동의 결과는 그 사람의 생각패턴(thinking pattern)에 의해 좌우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두움가운데 사는 옛 사람의 자아는 그 마음이 허망해져서 (futile,하찮은, 쓸데없다는 이 단어는 '공허한', '비어 있는'다는 뜻인 emptiness와 동의어 입니다.)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쓸데없는 일에만 매달리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2장 17절에서 마음이 허망해져서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두는 사람을 가리켜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가는 안개이며,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두움만이 마련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찮은 일들, 열매 없는 일들,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그것 자체가 공허한 삶을 살아가는 결과(빈 것)를 낳게 됩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기 전에는 다 이렇게 허망한 마음을 가지고 방향이 없는 삶, 목표가 없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사는지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고, 하늘에 속한 자가 되고나니 그 방향이 분명해 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하나님께로 가는 인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사는 것이 가장 소중한 우리 삶의 목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그런 복된 삶을 살아가다가 얼마 안 되어 나도 모르게 또 다시 그런 방향이나 목표를 잃어버리고, 다시 옛날과 같은 허망한 삶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현대의 특징이 이렇게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것인데, 그런 시대를 살다 보니 나도 거기에 동화되어서 허망한 삶을 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허망한 삶을 살아가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1:21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말씀하였고,

베드로 전서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처럼 기독교인들 역시 목적 없이 헛된 것에 욕망을 기울이고, 무익하고 공허한 방향으로 넓은 길고 나아는 사람들이 많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라고 말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런 허망한 것을 추구하던 자리에서 돌아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2) 총명이 어두워진 것(Darkened in their understanding)에서 떠나야 합니다.

여기 총명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아는 그런 총명, 그런 지혜에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지식이나 삶의 경험에는 밝았을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는 너무나도 무식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마음은 아예 굳어지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여감으로 기록된 책인데 신령한 말씀에 대해서도 감각을 잃었으며, 죄를 지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총명이 어두워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치 굳은살이 박인 것과 같은 마음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신령한 지혜를 갖게 되었다. 하나님을 발견하는 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잠언의 잠 9:10절의 말씀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인데 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된 총명을 얻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게 되었고, 성경도 열심히 읽게 되었으며, 그 말씀 가운데서 살아가려고 애쓰고 그렇지 못할 때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또다시 죄악 된 세상에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총명을 상실함으로 는 어둡게 되었고, 말씀에 대한 감동이나 깨달음도 무디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양심의 가책마저 별로 느끼지 못하는 돌 같은 마음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은 이런 총명을 상실하여 결국 무지함이나 완고함 같게 되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3) 우리는 무지함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을 무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지함이란 아그노이안 이라는 단어는 도덕적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선악이 모호해 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분간하질 못하는 그런 상태에 빠진 것을 의미합니다.


4) 마음이 굳어짐에서 떠나야 합니다.

마음이  '굳어짐'의 뜻을 알기위해 헬라어를 살펴보면 'porosis' <완악함>는 '돌'을 의미하는 'poros'에서 파생된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능력들에 대하여 전혀 깨달음이나 감격 등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장터에서 피리를 불어도 아무도 춤을 추기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결국 이런 무지와 굳어진 마음은 하나님의 생명과의 분리를 가져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생명을 태내에 갖고 있는 산모가 무지해서 아무런 조심성 없이 약을 복용한다거나, 태내 아기를 생각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음식을 마구 먹거나 심한 운동 등을 한 나머지, 태내에 있는 어린 생명이 결국은 유산 또는 사산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엄마의 무지와 굳어진 마음 때문에 결국 어린 자녀의 생명이 죽어가는 것과 같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무지로 하나님의 생명과의 분리는 인간이 이 땅에서 가장 비참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탯줄이 끊어진 태아를 상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빛이 차단된 곳에 있는 꽃나무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탯줄로부터 끊어진 태아. 빛이 차단된 꽃나무의 생명은 곧 결국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의 생명은 이미 영적으로는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19절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라고 설명합니다. 무지한 옛 사림의 상태를 알려주며,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권고합니다.


5) 우리는 도덕적, 영적 무감각(Moral & Spiritual Numbness)에서 떠나야 합니다.(19절)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본문 에는 빛을 잃은 옛사람이 타락의 길로 접어든 과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감각 마비증에 빠집니다. (Lost sensitivity), 자신이 지금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나의 행동이 부끄러운 것인지, 추한 것인지, 전혀 깨닫지를 못합니다.

예를 들면 술을 마신 사람이 운전을 하게 되면 지금 자신이 차선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구분하지 못하며, 속도감각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술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불신하는 것, 거역하는 것, 불순종하는 것, 미워하는 것, 나태하고 게으른 것,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것, 간음하는 것, 살인하는 것, 도적질 하는 것, 탐욕을 가지ㅐ는 것,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 하는 것 등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바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기회만 나면 죄악 되고, 부패한 본성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계속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가져올 파멸과 심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듯이 죄의 반복성에 떠나지 않으면 토한 것을 또 먹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귀가하던 한 청년에게 사탄이 찾아왔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들고 온 열 개의 병을 내 보이며 청년에게 게임을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이 열 개의 병중에 단 한 개에만 독약이 들어 있고 나머지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있네. 만약 자네가 꿀물이 들어있는 병을 고른다면 엄청난 돈을 주겠네." 청년은 이 사탄의 제의를 받아들여, 병을 하나 골랐습니다. 그리고는 마셨더니 너무도 맛있는 꿀물이었습니다. "와 살았다. 자 어서 약속한 돈을 달라." 의기양양한 청년에게 사탄은 약속대로 많은 돈을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언제라도 돈이 필요하거든 날 찾아오게."

청년은 쉽게 많은 돈을 벌게 되자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술과 도박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술과 여자와 도박으로 인해 몸은 극도로 나빠졌고, 가정도 모두가 파탄이 났습니다. 그런 중에 점점 나이만 먹어갔습니다. 그리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스스럼없이 사탄을 찾아가서 게임을 하고 돈을 가져왔습니다.

어느덧 청년은 노인이 되었고, 이제 사탄의 병은 두 개만 남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남은 두 개의 병중에 하나를 골라 마셨습니다. 그것 역시 꿀물이었습니다. "내가 이겼어. 마지막까지 내가 이긴 거야. 자, 어서 마지막으로 네가 가진 돈을 모두 내놔라."

기뻐하는 그 노인의 모습을 비웃듯이 지켜보던 사탄은 마지막 남은 병을 자신이 들이켰습니다. "자 이래도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애당초 몇 개의 병중에 독약이란 건 있지도 않았어. 하지만 너는 꿀물이라는 독약으로 인해 이미 죽어가고 있어. 내가 준 턱없이 많은 돈으로 인해 너의 인생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 나는 돈으로 네 인생을 산 것 이야." 라고 하면서 비웃고, 사탄은 승리를 자축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젊은 청년의 타락은 조금씩, 조금씩 이어져 왔기에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전혀 자신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 앞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죄의 무서운 세력 앞에서 피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옛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는 한, 이처럼 죄는 세상적인 쾌락과 즐거움으로 위장한 채, 우리에게 접근해와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양심을 무디게 만들어 우리들 자신을 방탕한 생활로 내몰아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게 만듭니다. 급기야는 양심과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귀를 멀게 하고, 눈을 멀게 만들어 타락의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6) 방임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또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은 방임이라 말씀합니다.
방임이란? 이것을 영어로 말하면 Give up입니다. 즉, 포기상태를 의미합니다. 소망을 잃어버린 상태 인간됨을 포기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기대를 걸 수가 없는 상태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의지함으로 우리의 인생과 모든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변함이 없고, 무한하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목숨, 생명, 피 값으로 저와 여러분들을 구속하여 죄 값을 지불하고 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존귀하고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임하는 자리에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7) 우리는 세상의 욕심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성도가 예수 믿기 전에는 마음이 허망하여져서 방향감각을 잃었고, 총명이 어두워져서 무지하게 되고, 완고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욕심의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의 삶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육체의 가장 악한 본성인 욕심을 좇아 사는 삶이 됩니다. 육체의 욕심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이 세상 것을 사랑하면서 사는 삶이 되어버린 옛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죄악 된 내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게 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기 때문에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다 못 박아 버렸습니다. 더 이상 욕심의 노예로 살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구원받고, 구별된 삶을 우리 성도들은 오히려 다른 면의 거룩한 욕심들이 생겨서 어떻게 하면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복음을 더 널리 전파할까? 어떻게 하면 남을 더 섬길까? 하는 거룩한 욕심에 사로잡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룩한 욕심도 살아가면서 점차 약해지고, 오히려 세상의 욕심이 우리를 지배하는 옛사람의 본성을 따라 살아왔던 생활로 돌아가는 때가 얼마나 많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은 이런 세상에 속한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곱 가지의 죄악 된 본성에 사로잡혀 살아왔던 옛 사람에서 벗어버리고, 떠나라고 명령하고 말씀합니다.  정리하면 옛 사람에게 속한

1) 목표가 허망한 마음과
2) 하나님을 아는 총명이 어두워진 상태와
3)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함과
4)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능력을 깨닫지도 느끼지 도 못하는 마음의 굳어짐의 상태와
5) 죄에 대한 영적 무감각한 상태와
6) 나의 인생과 삶을 포기하는 방임하며 삶을 살아왔던 것과
7) 하나님보다 더 세상을 더 좋아하고, 좇아가는 욕심들을 추구하던 이런 옛 사람의 본성을 벗어버리라는 말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22절절에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이 말은 쉽게 말하면 앞에서 지적한 모습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회개해야 옛사람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잘못되고, 우리 미스바교회가 잘못되고, 내가 잘못되는 것도 모두가 다 내 탓입니다. 모든 회개와 갱신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수피 바야지드가 쓴 자신의 회고록에 보면 청년시절에 "주여 저에게 세상을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하였고, 중년시절에"주여 제게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 하였는데, 노년시절에는 "주여 저에게 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어야합니다.

이제 이 과거의 옛 사람의 본성과 죄악 된 모습을 버리고 새 사람의 모습은 가지는 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합니까? 오늘 본문 가운데서 새 사람이 되는 법은 먼저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22절)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죄악 된 본성을 버리고,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먼저 바로 우리 가운데 죄가 없으시며, 성결하시며, 전적으로 구별되게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도덕적, 영적 기준으로삼아  주님을 닮기 위해 항상 바라보며, 주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매일 믿음의 선한 싸움의 승리자가 되어 성결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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