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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사람이 되라(2) (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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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예배에 참석한 우리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을 향하여 본문 에베소서 4:22~23절에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라고 말씀합니다.

새 사람이 되라는 주제로 지난 주일에 말씀에 이어 두번째로 전합니다. 새 사람이 되라는 말씀은 "가치관을 새롭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지식인은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앙인은 "믿는다."라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그 "알고, 믿는"것이 새 삶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이 생활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 신앙은 아직도 구습을 벗어나지지 못한 상태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그 구태 의연했던 옛 모습은 완전히 벗어야 합니다. 17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22~23절 말씀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옛날에 매이고 구습에 연연하여 육신의 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면 그 사람은 구습을 쫓는 사람밖에 안 됩니다. 그러므로 변화된 삶을 위해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가치관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신앙인인 새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해 마땅히 새로워져야 하는 것은 그 구원을 위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값비싼 죄의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그 구습을 벗어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구태 의연합니까? 차를 타고 가다 신호대기에 걸려 서 있으면 버스가 쌩하고 지나갑니다. 누구는 서 있고, 누구는 지나가야 합니까? 그렇게 가 버린 버스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속에서 자괴감이 일어납니다. 참 비통한 마음이 듭니다. 백 번 양보해서 버스나 청소차나 택시가 그랬다면 그냥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승용차를 운전하는 젊은 사람들이 쌩하고 지나갈 때는 신호동을 건너가는 사람들 마음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답니다. 가다가 창밖으로 담배꽁초라도 내던지고 가는 것을 보면 속에서 혈압이 더 오른답니다. 그래서 속으로 욕을 해준답니다. "너는 차를 타고 다닐 자격이 없는 놈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답니다. 그러면 자기가 운전할 때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가 운전을 할 때는 역시 같은 방법으로 삽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다니면 신호등이 너무 많아 보이고, 걸어 다니면 건널목 신호등이 너무 적어서 투덜거리곤 합니다. 심지어 회사에 가서 준법 투쟁을 한다고 위협합니다. 세상에 이런 엉터리가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무법적인 생활 습관이 어디를 간들 안 나타나겠습니까?

미국에서 밀렵꾼을 잡고 보면 90%가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이 무식해서 그렇습니까? 지식인들은 안 그렇습니다. 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닙니다. 요즘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이자 놀이에 바쁘다고 합니다. 요즘 은행에서 경쟁적으로 카드를 발급해 주니까 만들어서 쓰고 다니다가 돈을 갚을 날이 오면 돈이 없어 카드를 돌려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잣 돈을 빌리는데 100만원을 빌려 주는데 선이자로 10만원을 떼고 빌려 줍니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열흘 치 이자로 10만 원을 떼고 80만 원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 날짜에 갚지 못하면 10일마다 10만 원씩 이자가 붙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지성의 공간이라고 하는 대학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성을 가지고 납득도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모습들입니다.

지성인은 누구보다도 자기를 조절하는 강해야 하고, 그렇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삶은 을 부정할 수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지성인이요, 인격인데 지금대학생들은 그럴 만한 힘이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학교의 풍속도입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같이 이렇게 소유나 도박이나 유흥에서 낙을 찾고, 육적인 삶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존재들이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기에 "가치관을 새롭게 하라"는 말씀을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구원받은 신앙인들은 말씀 속에서 기쁨을 얻고, 봉헌과 헌신과 수고에서 행복을 얻고, 절약과 검소함과 질서를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보람과 의미를 발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말씀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같은 구태 의연한 생활 습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대를 변화시키며,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능력 있는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옛사람을 버려야합니다.

그러면 옛사람이 무엇입니까?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사람,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 죄악 된 생활을 멈추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옛사람입니다.

또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죄를 이기는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옛 사람입니다. 못된 습관들을 버리지 못하고 옛 생활입니다. 잘못된 습관과 못된 습관들을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습관과 못된 습관들은 새해에 그대로 가지고 간다면 옛사람 그대로입니다.

첫 번째 새롭게 살아가는 삶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23절)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 즉, 심령을 새롭게 하라는 말은 새 사람, 새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

그러면 새사람을 입으라는 의미는 무엇 입니까? 이렇게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소극적으로 벗어버려야 할 것이 있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입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기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일과 아울러 새 사람을 입는 일도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새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닮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점을 닮도록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닮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다 이렇게 새 사람을 입게 된 것입니다.

갈 3:2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새 사람의 모습인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한 성품들도 가만히 두면 자꾸 소멸되어지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옛 성품들은 자꾸만 살아나고, 새 성품들은 자꾸만 소별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단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회개하여 거듭났기에 한번으로 새롭게 다 되었다 생각하지 말고 계속해서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작업과 새사람을 입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계속하여 주님을 닮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신령한 일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22절-24절을 읽으시겠습니다. 엡 4:22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다고 했습니까?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가능다고 말씀합니다. 롬 12:2에서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중요합니다.

잠언 23:7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이 그 사람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자는 말은 결국 마음으로 새로워지자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이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우리 마음은 외부적인 단정으로 새로워 질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결심으로만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성령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새 사람이 되려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새로워지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받아야 할 신령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20절에 새사람의 삶을 살 것을 권고합니다. 20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의 손에 붙잡혀 순종함으로 새 사람으로 승리하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에게 배워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4:20)

여기서 그리스도를 배웠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인품, 품성을 배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지 못하고는 그리스도와 교제를 할 수가 없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제1단계는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4:20) 여기 새사람의 교리적인 근거가 나옵니다. 이방인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옛사람에서 새사람이 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에 허망한 것들을 행함같이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본래 에베소교인들,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의 가치관으로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본문 21절에 “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찐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원하는 것, 혹은 하나님이 이루신 것들을 우리가 가르침을 받은 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말은 좀 더 쉽게 말하면 믿은 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고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 믿은 대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을 신행일치라고 말합니다. 언행일치가 아니고 신앙과 행동의 일치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려면 들어야 합니다.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4:21중) 그에게서 듣는다는 말은 예수님에 관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듣는 것입니다. 새사람,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는 삶입니다.

듣기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4:21)

그리스도 안에 라고 하지 않고, 예수 안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 역사 속에 나타나신 그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즉,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교사도 되시고, 가르침의 내용도 되시고, 목적도 되시고, 또한 그 자신이 학교도 된다는 뜻입니다.

21절에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순종이 나오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습니다. 전부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시게 되면 몇 가지 구분을 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을 구분을 시키시는 분입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워지도록 계속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1) 하나님과 무신론 사상을 구분시켜야 합니다. 가장 큰 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서 무신론사상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계획과 우연을 구분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았다면 이제 부터는 우연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과 선택해 주신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를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영생을 얻어 천국까지 철저한 인도함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경륜을 이루는 도구요, 하나님 나라 확장과 모든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계획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선한 도구로 살아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진리와 무지를 구분시켜야 합니다. 무지가 진리를 흐리게 하는 때가 많습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면 우리가 신령한 지혜를 얻고, 진리의 말씀을 배움으로 인해서 명철함이 생기게 됩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고, 진리와 무지를 구분하게 됩니다.

4) 생명과 망각상태를 구분해야 합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얻어야 할 생명은 얻게 됩니다.

5) 축복과 저주를 구분시킵니다. 축복의 삶과 저주의 삶의 혼돈 속에서 살면 안 됩니다. 이것은 심령의 변화가 일어날 때 구별되어지는 은혜가 임합니다.


세 번째 그러면 어떻게 심령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요?

1) 심령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거듭나야합니다.

요한복음 3: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바라새인 니고데모에게 선언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거듭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광명이 찾아옵니다. 실패가 물러가고, 성공이 찾아옵니다. 절망이 물러가고 소망이 넘쳐납니다.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넘쳐납니다. 죽음이 사라지고 생명과 구원을 얻습니다. 염려 걱정 근심,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 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영접하면)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있습니다.

1)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선언합니다.

2) 새것이 된 상태로 머물러 있지 말고 동시에 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그리스도로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된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위엣 것을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 새롭게 되어라. 는 동사를 문법적으로 말하면 현재 부정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매일매일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계속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속사람이 매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고, 바라봄으로 새로워질 때 우리도 새롭게 될 것입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은 항상 위로부터 오는 힘을 통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신앙의 위인들이 자주 기억한 말씀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신앙선언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당하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이 주신 해결책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사40:31)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자나 자기 힘을 믿는 인본주의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 있는 자는 알아듣는 말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이 말은 영적으로 깨인 사람들만 알아듣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본문 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을 자세히 생각해 봅시다.

새사람이란 말은 앞에서 나온 옛사람과 대조되는 말입니다. '새사람'은 문자 적으로 '갓 만들어낸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룩하신 구속사역을 통해 재창조 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된 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거듭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거듭나는 것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과 삶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은 한번 남으로 영원히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으로 거듭나는 것은 일생 계속되는 거듭남입니다. 영적으로는 새 사람이 되었는데 삶이 따라 주지 않기에 교인들이 세상에서 비난받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영적으로는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새사람을 입으라는 말은 생활로 거듭나자는 말씀인 것입니다. (**중요합니다.)

우리의 본 모습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는 우리의 육체를 만드셨고, 우리의 마음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만드셨습니다. 의와 진리는 올바르고 충실한 삶을 말하고, 거룩함은 죄악과 구별되어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성결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의 본 모습을 변질 시켜 놓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은총을 받은 의 대신에 불의를, 진리 대신에 거짓을, 거룩함 대신에 추함을 통해 역사합니다. 이러한 것들로 성도의 본 모습을 변질 시키려고 역사합니다.

불의하고, 거짓되고 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불의, 거짓, 추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불의, 거짓, 추함은 사회와 세상을 파괴합니다. 사탄의 타락시키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더 이상 마귀 사탄에게 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만물보다도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최고의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불의하고, 거짓되고, 추하고, 하나님을 떠나 산다면 가장 가치 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 인간이 어떤 만물보다도 존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합동하여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창1: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 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다라 창조되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힘을 모아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인간은 땅에서 솟아나 것도 아니요,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요, 박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진화된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존귀한 것입니다. 어떤 만물보다 존귀하고, 천사보다 더 존귀한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톤ㅇ해 원죄와 과거의 모든 죄와 불의에서 보혈로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더 이상 우리를 죄악으로 부패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마음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야합니다. 하나님의 본 모습이 회복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아야합니다. 그것이 [의와 진리의 거룩함]입니다. 본문 24절 말씀 다시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만이 역사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라의 김유신 장군 은 모든 면에 훌륭했으나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기생집에 다니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의 어 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타이르기를 "치국평천하"를 꿈꾸는 사람이 주색잡기에 빠져서야 되겠느냐고 간곡히 타이를 때 그는 굳게 결심하고 다시 는 그 기생집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 전쟁터에 나갔다가 승전하고 돌아오는데 너무 피곤하여 마상에서 졸고 있을 때 영리한 말이 전에 다니던 기생집 앞에 와서 다 왔다고 몸을 털더랍니다. 눈을 떠보니까 전에 즐겨 다니던 기생집이었습니다. 웬만하면 결심도 좋지만 이 런 때에는 좀 쉬어가자고 할 수 있었을 터인데 김유신 장군은 말에서 뛰어내려 "누가 나를 이리로 데려오라고 했느냐!"고 호통을 치고 큰 칼 을 뽑아 애마의 목을 치고 뚜벅뚜벅 걸어서 집으로 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나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다 어떤 계기나 동기가 올 때 무심하게 보내지 않고 단호한 결단과 굳은 결심을 하고, 새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새 옷을 입으면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옛 구습을 벗어버리고, 심령이 새로워 져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입니까? 무엇으로 옛사람을 벗고 새 옷을 입듯이 바꾸어 입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늘 24절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하나님의 형상)으로"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잘 만들어진 새 옷을 입어야 새로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성품과 삶을 닮기위한 믿음의 선한 싸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바꾸되 성령님께 사로잡혀 살므로 잘못된 가치관은 과감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옛 구습을 마땅히 버려야 합니다.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거룩한 생각으로 바꾸어야합니다. 거짓된 양심에 사로잡혀 살았다면 회개하여 고쳐야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천국시민이요,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예수님의 보혈의 댓가를 주고 구속된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된 세상적 안목을 최우선 가치로 목표를 삼고 살았다면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 배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로 삼아 내 속에 죄악되고, 불신하며, 죄의 쓴 뿌리가 있다면 결단하여 신령하고, 영적이고, 거룩한 삶을 사모해야 합니다.

새 사람으로 거듭난 존재임을 확신한다면 계속적인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영생을 보존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므로 기둥 같이 쓰임받는 귀한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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