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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맺어야 할 열매 (갈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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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목회기도>
하나님, 변덕스럽고 무더운 날씨를 견딜 수 있게 하심 감사합니다.
기둥교회가 세워진 지 34년의 세월 동안
한결 같이 지켜 주시고 부흥케 하심 감사 드립니다.
은혜와 감동이 있고 기쁨이 있는 예배를 드리게 하심 감사합니다.
지난주간, 중고등부 학생회 수련회도 은혜롭게 마치게 하셨음을 감사 드립니다.
세상이 혼란하고 경제가 어려운 때에,
기둥교회에서 믿음으로 자라는 젊은이들을 보며
희망을 갖고 위로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들이 기둥교회의 희망이 되고 이 민족과 세계의 희망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는 기둥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둥교회에 속한 이들 중에 오늘 우리와 함께 예배드릴 수 없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더위에 군 복무중인 이들, 외국에, 객지에 나가 있는 이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믿음이 없어 예배에 참석치 못한 이들에게 믿음을 주셔서
예배의 자리를 귀중히 여기는 삶이 되도록 도와 주시기 원합니다.
기둥교회에 속한 성도들 언제 어디서나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예배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며 사는 경건한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종을 강단에 세우신 하나님!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신령한 말씀, 회복의 말씀,
치료의 말씀, 능력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어제밤에 잘 주무셨나요? 잘~ 주무신 분이 이상하게 느껴지네요. 얼마나 더웠던지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덥다 덥다 했는데 오늘이 벌써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立秋)입니다.
옆의 분들과 "더위를 잘 견디셨습니다. 가을입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중에 어떤 아기엄마가 제가 소화하기 힘든 색깔의 넥타이를 가져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매려고 봤는데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넥타이를 주면서 "최하 100번은 이 넥타이를 하세요"라고 했는데…
오늘 저녁예배때, 어두울 때 용기를 내서 매야할 것 같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옆의 분과 "오늘 복장이 잘 어울리십니다"라고 웃으며 인사합니다.
 
전도서의 말씀에 보면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음"(전 3:4)을 말해줍니다.
제가 바라고 기도하기는 "울 때"와 "슬퍼할 때"를 지나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웃을 때"와 "춤출 때"를 주실 줄 믿습니다.
허락해 주실 것을 믿고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살다 보면 울 때도 있고 슬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계곡을 지나 웃을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는 복된 자리에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매를 찾으시는 주님
 
가을이 되면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을은 [열매]를 거두는 계절입니다. 가을에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매]에 관해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머무시고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시장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배가 고파야 정상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배가 안고프면 병들었거나 너무 늦게 일어난 게으름뱅이 일 것입니다.
저는 아침을 보통 사람들의 저녁보다 더 많이 먹습니다.
왜냐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7시 30분에 아침 밥을 안먹으면 배가 고프고 두통이 옵니다.
그래서 아침을 안 먹는 분들을 보면 이해가 안갑니다.
 
예수님도 아침에 배가 고프셨습니다.
마침 길가에 무화과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열매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마 21:19) 하셨고
무화과나무는 곧 말랐습니다(마21:17~19).
그것을 본 제자들은 이상히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때인 유월절의 절기는
요즘의 계절로 봄(3월 ~ 4월)입니다.
무화과가 먹을 만 하게 열리는 계절(6월)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겠습니까?
단지 시장하셔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무화과 열매가 열리는 때를 몰라서 그랬을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기 이전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 가셔서 하신 일이 '성전정화'였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2절에 보면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마21:12)
 
성전 안에 있는 제사장이나 사람들이 진정으로 예배 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성전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 (마21:13)
굴혈(掘穴, 팔 굴, 구멍 혈)이라는 말은
'나쁜 짓을 하는 무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소굴'과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것과 무화과를 저주하신 사건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예배하는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 뿐 아니라,
예배드리는 자로서의 열매가 없는 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철도 아닌 때에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의 믿음의 열매를 찾으시는 때가 언제 일지…
그 때를 모른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믿음의 열매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열매를 언제 찾으실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찾으실 때…
그때가 언제이든지 '여기 있습니다'하고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꽃 성도>와 <열매 성도>
 
무화과(無: 없을 무, 花: 꽃 화, 果: 실과 과)는
사실 꽃이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무화과를 꽃이 피지 않고 열매 맺는 나무, 무화과라고 부릅니다.
무화과나무는 꽃보다는 열매에 의미가 있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보기 좋게 화려한 꽃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열매 성도'가 되기보다 '꽃 성도'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꽃 성도>는 드러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입니다.
이름이 나야하고, 무대에 서야하고, 자기가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꽃을 보고 감탄하듯이 자신의 드러남으로
사람들이 지르는 탄성과 칭찬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꽃 성도입니다.
 
반면에 <열매성도>는 이름이 나든 나지 않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아 찬사는 받지 못해도
목회자의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하고 감동을 주는 사람입니다.
없는 듯 드러나지 않지만 귀한 결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무화과열매 같은 성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꽃 성도], [열매 성도] 중에 어떤 성도가 되기 원하십니까?
사람의 마음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실 수 있기 바랍니다.
 
복음의 열매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가 여러 가지이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복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복음의 열매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를 뿌려 얻는 구원의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씨가 된 사람, 열매가 된 사람은 자신이 땅에 묻혀져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열매를 위한 한 알의 씨앗이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는 씨앗이 되셨고,
구원을 받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는 씨앗이 되셨습니다.
이 첫 씨앗이 되신 예수님이 사람에게 심겨지면
그 사람의 삶이, 인생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팔자가, 신분이
송두리째 바뀌는 변화 일어납니다.
첫 열매, 첫 씨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된 한 사람 한 사람은 구원의 열매입니다.
 
그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고전 16:15) 라고 했습니다.
스데바나는 바울이 아가야 지방을 전도할 때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그를 가리켜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지 않던 사람, 스데바나가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인 됨으로 열매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스데바나의 집"이 "열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스데바나만 그리스도인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집'의 식구들이 열매가 되었다는 뜻입니다.(고전1:16 참조)
스데바나가 주님을 영접하여 복음의 씨가 됨으로
온 식구가, 온 집이 전도되는 열매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집안에서 처음으로 예수 믿은 첫열매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디서든지 복음의 씨가, 복음의 열매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첫 열매'가 있었기 때문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 씨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그리스도인되는 '복음의 열매'가 맺혔고,
복음의 열매가 맺힌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열매를 맺음으로 교회가 존재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복음의 씨가 되도록 노력해야 되고
이제는 자신이 가진 복음을 나가서 뿌려야 합니다.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겨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도하는 것, 예수님 향내 풍기는 것, 예수 믿으라고 권하는 것…
그것만 하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둥교회가, 기둥교회 온 성도들이 늘 전도하는
복음의 씨를 뿌리는 교회, 복음의 씨를 뿌리는 성도들이 되기 원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복음의 열매가 맺혀지지 않아서 고민합니다.
교회들이 많이 있지만 새로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씨를 뿌려도 열매를 거두지 못해서 낙심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 교인들이 많아도 새신자가 늘어나지 않고 전도 해도 안되어 낙심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거두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성장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생물학적 성장(Biological growth) 입니다.
생물학적 성장이 되려면 교인들이 자녀를 많이 낳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전도 못하면 아이라도 많이 낳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자녀도 많이 낳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전입성장(Transfer growth)입니다.
다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부천에 이사오면 기둥교회를 찾아 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교회에 대해 좋은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물론 우리 교회도 나쁜 점지만
그래도 좋은 것이 더 많으니 좋은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빌립이 말했던 것처럼 "와 보라, 와 보세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결신성장(Conversion growth)입니다.
예수 믿지 않던 사람들이 예수 믿기로 결심하고
교회에 나와 등록하여 새신자가 되는 성장을 말합니다.
아기를 많이 나아 교회가 성장하는 것도 좋은 일이며,
이사를 와서 교인이 늘어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의 씨를 뿌려서 믿지 않던 사람들이
구원 받은 백성이 되어 늘어나는 성장이 제일 중요한 것이며
그런 결신 성장이 많아야 합니다.
 
기둥교회는 복음의 열매가 충만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새신자가 늘어나고 세례식을 많이 베푸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 1:11)
의의 열매가 많아질 뿐 아니라 전도의 열매도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
 
그리고 복음을 받아 들여 복음의 열매가 된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성령의 열매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성령 받은 사람들이 한 일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성경을 보면 성령을 통해 구원받는 자의 수가 날마다 늘어나게 되었고,
성령을 통해 개인의 삶이 변화되고, 지역이 변화되고,
민족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께서는 복음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의 심령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게 하셔서 그 사람의 속 사람이 달라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변하게 하시느냐 하면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고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게 하십니다.(엡 4:13,15) 
이것이 개인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구원의 감격을 통해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기뻐할 수 없는 조건에서도 '기쁨'(희락)이 넘칩니다.
용서할 수 없는 데도 손잡고 화목의 눈물을 흘리며 '화평'을 누립니다.
참을 수 없는 조건에서도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예수 믿기 전에는 할 수 없었지만…
인간적인 힘으로 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예수 믿고, 성령께서 임하시면 사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찬송가 208장이 그 고백입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1절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2절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
3절  내 맘에 소망을 든든히 가짐은 주 예수 내맘에 오심
후렴)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물밀 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여러분 속에 주님이 들어가심으로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때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행 5:13)
왜냐하면 그들이 변해도 너무 변했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이 어울릴 수가 없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십니까?
어떻게 어울리십니까?
예수 믿는데도 여전히 담배 피우고 술 먹는 자리에 어울리십니까?
예수 믿기 전에는 이런 저런 부끄러운 일에 잘 어울렸는데…
예수 믿고 나서 어울릴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5장 13절에 보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을 칭찬했습니다.
  "…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행5:13)
'전에는 나하고 잘 어울렸는데 예수 믿고 나니 나하고 어울릴 수가 없어.
그러나 그 사람 참 훌륭해' 라는 칭찬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 열매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6절에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7:16)  했습니다.
 
오늘 본문(갈5:22~23)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를 구별해 보면
첫 그룹인 <사랑, 희락, 화평>은 자기 안에 표현되는 제일 기초적인 것들입니다.
둘째 그룹인 <인내, 자비, 양선>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성질입니다.
셋째 그룹인 <충성, 온유, 절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는 중요한 것입니다.
 
① 사랑 (Love)
"사랑"이 성령 열매 가운데 제일 먼저 온 이유는
사랑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기 대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성령의 열매"를 설명하는데 제일 먼저 나왔습니다.
      사랑은(고전13:4~7)
      - 오래 참고
      - 투기, 질투하지 않고
      - 자랑치 않고
      - 교만하지 않고
      - 무례하지 않고
      - 자기 유익만 구하는 이기주의가 아니고
      - 성내지 않고
      -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기뻐하고
      -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견디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② 희락 (Joy)
원어는 chara(하라)인데 '은혜'(하리스 charis), '기뻐한다'(하이로 chairo)
'감사한다'(유하리스테오 eucharisteo)와  다 같은 어근(語根)에서 왔습니다.
참으로 은혜 받은 자들만이 참 기뻐하고, 참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일상생활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입니다.
 
③ 화평 (Peace)
사랑하는 사람은 화평할 수 있습니다.
화평은 심리적,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요14:27)이며
세상이 줄 수도 빼앗아 갈 수도 없는 평화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염려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평안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라고 했습니다.
 
④ 오래참음 (Patience, longsuffering)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참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인내는 능히 보복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노할 수 있는데 노하지 않고 자기를 억제하는 것입니다. 인내는 용서를 수반합니다.
용서하지 않고 그 순간만 넘기고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은 참 인내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⑤ 자비 (慈悲, 사랑하고 가엽게 여김, kindness, gentleness)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것이며,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⑥ 양선 (良善, 선한 것, goodness)
마음 뿐 아니라 행위가 수반된 착한 행실을 말합니다.
 
⑦ 충성 (忠誠, faithfulness)
"신뢰성, 정직"을 말합니다.(딛2:10, 마23:23)
하나님 앞에도 충성하지만 사람들에게도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음으로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한 예로,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합니다.
간다고 했으면 가야 하고,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잘못 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성도들이 예배 시간에 '아멘'한 대로만 살면 한국 교회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면 약속은 잘합니다. 그러나 실천이 안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미리 확인전화를 해서 참석하겠다고 한 수대로 식당예약도 하고 다과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모임 시간이 되서 보니 오겠다고 약속한 목사님들 중에 반 정도만 오셨습니다.
못와서 미안하다거나, 못 갈 것 같다는 전화연락도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목사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열이 나고 화가 났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지만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⑧ 온유 (溫柔, 온화하고 부드러움, humility, meekness)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온화하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성질 부리는 분들도 이제는 성질 죽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참 온유입니다.
 
⑨ 절제 (self-control)
성령의 열매 중에 "사랑"이 처음 온 것은 '기초'입니다.
"절제"가 나중 온 것은 '완성'입니다.
이 절제가 마지막에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유불급'(過:지날 과, 猶: 오히려 유, 不: 아닐 불, 及: 미칠 급) 이란 말이 있습니다.
너무 과하면 하지 아니한 것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넘치면 문제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많아야 합니다. 그러나 절제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많고 관심이 많아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언제가도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무더웠던 여름에 어떤 자매에게
"왜 긴 팔을 입고 다니느냐?"고 관심을 보였습니다.
제 마음이 담긴 사랑의 표현이요, 인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팔에 큰 화상이 있었습니다.
저는 몰랐었고, 제가 표시한 관심은 오히려 그 자매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교회에 와서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를 안하는 어는 주일에
어떤 분이 모자를 쓰고 있기에 '모자 벗으세요'라고 했습니다.
이분이 모자를 쓰신 채로 막 뛰어나가면서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어서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서 모자를 쓰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그분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관심이 있고,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하는 말 한마디조차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따로 따로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성령의 열매를 '일체구면'(一體九面)이고 말합니다.
하나의 몸에 아홉 개의 면이 있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이같이 성령의 열매는 하나가 성장하면 다른 것도 함께 성장합니다.
한 열매가 다른 열매를 맺게 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음으로 전도의 열매도 맺고,
성령의 열매도 맺고 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며 살면
가정에서 부부끼리, 부모와 자식끼리, 형제들끼리, 교회에서 성도와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참고, 절제하면 화목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가을, 열매를 맺고 열매를 거두는 계절에
복음의 열매도 맺고 성령의 열매도 맺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치지 않게 하시고 생활속에 전도의 열매를 맺는,
복음의 열매를 맺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5년  8월  7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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