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게 주신 은혜를 아는 자 (갈 2:6-10)

  • 잡초 잡초
  • 538
  • 0

첨부 1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마가복음 10:17-22).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 가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는 이렇게 묻습니다.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이 사람의 질문은 이처럼 고상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생을 얻기 위해 늘 깊이 생각하다가 막 달려온 사람처럼 보입니다.
아마 예수님도 이점을 높이 보시지 않았겠나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 사람의 질문을 들은 예수님은 이어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평상시 예수님의 답변은 아주 명쾌한 답변이었는데 비해서
이번에는 좀 이상하게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했다면
이것 저것을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답변해야 명쾌한 답변이 되겠는데... 그렇게 답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영생을 얻는 것이 무엇을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답변할 수 없는 것이 실제적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밖에 답변 할 수 없었던 것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라 하지 말라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계명만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사람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순간, 예수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는 그가 정말 대견스러웠으며 사랑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예수님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답변해 주었는데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 앉고 맙니다.

성경은 그 사람의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우리는 여기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관점입니다.

자기는 계명을 다 지킨 사람이고 영생을 얻기에 넉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뚜껑을 열고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거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어떤 상태 속에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그저 자기가 꽤 괜찮은 사람인줄로만 알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구약 호세아 선지자도 일찌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호세아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무슨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이요
둘째는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도 보면 그렇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뭘 모르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 없는 예수님만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

마음에 깊이 아로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행동이 무슨 행동인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왜 우리가 모르고 그랬다는 것입니까? 다 알고 그랬습니다.
  우리야 말로 사건의 전후문맥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가야바 같은 사람은 지도자이지만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 실수를 합니다.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알지 못하는도다(요한복음 11:49-50).

왜 이런 말 실수가 나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아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아는 것이 또 중요합니다.

만일 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무수한 은혜 속에 살면서도 감사치 못하고 경외치 못하며
불만과 불평과 원망 속에 남과 비교하면서 열등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거나
아니면 자만과 교만의 길로 빠지게 되어
진정 바르게 살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임상심리학자 가운데 폴 호크(Paul A Hauck)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쓰신 책 가운데 『왜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가』(Overcoming the Rating Game)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현대인들의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어려운 병은
열등감과 우울증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남과 비교해보면서 열등감을 자주 느끼고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들을 남과 비교하면서
자주 열등감을 느끼다가는 결국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이건 약으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을 때 건강한 것이지
여기에 실패하면 한없는 열등감과 우울증 속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사실 이 모든 것은 현실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고 또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
불만과 불평, 그리고 열등감과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선택도 내가 한 것입니다!!
그땐 한없이 감사했습니다!! 한없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행복하질 않습니다!! 남편이나 아내에 대하여 속상합니다!! 답답합니다!!
그래서 열등감도 생기고 우울증도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그땐 왜 한없이 감사했고 한없이 행복했던 것입니까?

그것은 남과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 그 여자... 한 사람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한없이 감사하고 행복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도 한없는 감사와 존경을 올려드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 현대인의 남과 비교하면서 생기는 이 열등감과 우울증 문제는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만 알면 해결 할 수 일을 것입니다!!

만일... 이런 생각, 이런 마음, 이런 자세로만 살아간다면 삶은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며
하는 일마다 힘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살면 살 수록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신 분이시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고 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진정 겸손한 자가 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것입니다!! -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지극한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안경을 끼고 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전에는 그렇게 못마땅했는데 은혜라는 안경을 끼고보니
남편도 하나님의 은혜, 아내도 하나님의 은혜, 자식도 하나님의 은혜...
직장도 하나님의 은혜, 건강도 하나님의 은혜
지금의 나, 내가 처한 처지, 그 모든 형편... 다 하나님의 은혜로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10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또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는 생각이나 행동이 성숙하게 됩니다.
성경 시편 116편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심리학자 고든 올파트(Gordon Willard Allport)가 쓴 책에 보면
인간이 성숙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Pattern and Growth in Personality』)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모든 면에서 성숙하게 된다.
  자아감이나 자존감이 확대되고
  전에는 모든 것을 나 중심적으로 사고(思考)하다가
  이제는 어린아이적 사고를 버리고 성숙한 사고(思考)를 하게 된다.

사실 어렸을 땐 몰랐지만 커보니 떼쓴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떼써서 한 일은 잘한 일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는 전적으로 은혜임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은혜요, 형제의 은혜요, 스승의 은혜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반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또한 내게 주신 은혜를 깨닫는 자는 바른 일군이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3장 7-10절 말씀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알았습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특히 하나님 앞에서 과연 그렇게 귀한 직분을 맡을 존재인지 아닌지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디모데전서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는 과거 한때 칼을 들고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눈에 독기를 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독기는 사라지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 가득찬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과거 어떤 사람이었었는지도 비록 부끄러운 과거지만
과감하게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그가 과거엔 비록 그런 자였으나 이젠 완전히!!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정말 하나님의 일군될 자격이 없는 자인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일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깨닫는 자는 자신의 직분을 겸손하게 감당합니다.
교만하게 감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거치는 돌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몸된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자가 되고 덕을 세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신의 몸도 사리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헌신하되 온전히 헌신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비록 순교하는 지경에 이른다 할찌라도 그 길을 걸어갈 줄 압니다.

이것이 내게 주신 은혜를 아는 자의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주신 은혜를 깨닫는 자는 교회 공동체를 화목하게 하는 일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 말씀입니다.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무슨 말씀인가 하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 이후에는
그전에 교회 안에서 사역의 문제로 때론 감정의 문제로
서로 불편한 관계 속에 있었던 야고보 게바 요한과
교제의 악수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 나타난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누굽니까?
그들은 예루살렘 초대교회 공동체의 기둥들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너희들만 사역자냐... 나도 사역자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동안 매사에 불편하고 종종 충돌하는 일도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들도 다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귀한 분들이요 나도 귀한 존재임을 은혜 안에서 깨닫게 된 것이고...
그렇게 싸우고 아웅다웅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에겐 유대인들을 맡기셨고
  바울과 바나바에게는 이방인들을 맡기셨다.

말하자면 분깃(my portion)을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고...
분복(my reward)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 사역 때문에 감정 때문에 서로 대립하면
자신에게 손해요 공동체에도 손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갈라디아서 5:15-23)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심지어 사도 바울은 자기가 당한 모든 일들이
옥에 갇히고 매맞고 굶고 죽을뻔한 위기 속에 몰리고.. 수많은 어려움 속에 놓였던 일들이
지금 와서 보니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었노라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시 내가 처한 오늘의 현실이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래도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시고
그 속에 내가 모르는 놀라운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은혜 위에 은혜를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임 정석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