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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쓰임받는 은혜 (막 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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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물건이든지, 아니면 인격체이든지 누구에게 쓰임을 받았느냐에 따라 그 주가가 한 없이 높아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이애나가 입었던 드레스와 가운은 약 29억 원에 팔렸다고 합니다. 시중에서 사면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몇 십만 원이면 살 수 있는 것을 다이애나가 입었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고가로 팔렸습니다. 36살에 자살한 마릴린 먼로가 입었던 속옷이 우리 돈으로 5천만 원에 팔렸다고 합니다. 마릴린 먼로가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이라고 하는 영화를 찍을 때에 입었던 것이라고 하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고가에 팔렸습니다. 똑같은 물건이지만 누구에게 쓰임 받느냐에 따라 아무런 가치가 없게 보이는 것도 대단한 값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세상의 나귀 중 가장 가치 있게 쓰임 받은 나귀 한 마리가 나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주님께 쓰임 받는 은혜에 대한 설교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주님께 사용당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 나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힘이 좋은지에 대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평범한 나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에 갔을 때에 나귀를 타 보았습니다.(키는140~15cm, 몸무게 350~400kg) 이 나귀는 그저 짐이나 나르고, 혹 사람이 타자면 태우고 살다가 죽어야 할 볼품없는 짐승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귀가 지난 2천년 동안 말하여져 왔고, 지금도 이렇게 말하여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주님께 쓰임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나귀새끼를 타시고 영광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나귀일지라도 주님이 사용하시면 고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가롯 유다는 예수님께 붓는 나도 향기름을 허비하고 낭비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귀한 일을 하였다고 칭찬하시면서 주님께 쓰임당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위해 쓰이는 시간, 주님을 위해 쓰이는 물질, 주님을 위해 쓰이는 건강은 낭비가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쓰임당하는 것을 기쁨으로 알아야 합니다.

2. 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것을 기뻐합니까?

첫째는 그 분이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유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주인이십니다.(3, 9) 그 분은 창조주이십니다. 이 하늘과 땅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의 것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빈손 들고 왔다 빈손 들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청지기입니다. 그 분이 쓰시겠다면 기쁨으로 드릴 뿐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 행세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쓰임 받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둘째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절에 보면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 둘을 맞은 편 마을로 보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그곳에 가면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누가 왜 푸느냐고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은 그대로 맞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와 여러분들을 제일 잘 아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명 하실 때에는 우리의 형편이나 사정을 다 알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셋째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하시기 때문에 기쁜 일입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이유는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슥9:9-10절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즉 이 나귀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사용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사용된다면 이보다 귀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사정과 능력, 지능, 적성, 한계를 아시고 사용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3. 우리는 주님께 쓰임받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일에 기쁘게 순종해야 합니다. 나귀를 풀러 갔던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제자들이 말하기를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 그 한 마디로 끝이 났습니다. 아무도 이유와 조건을 묻는 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기쁨으로 내어 드릴 뿐이었습니다.오늘 본문에서 주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한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이었습니다. 

먼저 제자들을 보십시오! 맞은 편 마을로 가라고 하실 때에 순종하였습니다. 매여 있는 나귀를 풀어 오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이 명령은 비도덕적이요, 날강도 같은 소리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였습니다. 또 나귀의 주인을 보십시오! 아마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눅19:13,5,6) 이들도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니 다른 핑계나 이유가 없습니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리고 나귀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주인이 아닌 사람이 푸는데도 반항하지 않고 그대로 끌려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을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거역하고 불순종하시면 하나님은 일하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지만 우리가 순종하고 거역하면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지만 우리가 순종함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는 하셨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 물질과 건강, 시간이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쁨으로 내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만일에 베드로가 주님께 쓰임을 받지 못하였더라면 이름 없는 갈릴리의 어부로 살다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를 사용하시니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바울도 그렇습니다. 기생 라합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쓰시니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이름 없는 목동에 불과했으나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니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빛나는 성군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천한 것일지라도 주님이 사용하시면 가장 값진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쓰임 받느냐에 따라 인생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강도에게 쓰임 받으며 아무리 열심히 한다할 지라도 강도일 따름입니다. 만물의 주인신 우리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가치 있고 기쁜 일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자신을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주님께 쓰임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문제이지 내 형편이나 재능이 문제는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순종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시간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무엇에 나를 쓰시기를 원하시는지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교회 리모델링에 귀한 헌금을 드림으로 주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여름 성경 학교를 위하여 쓰임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 큰 일을 위하여 쓰임을 받기를 소원하시기를 바랍니다.

4. 그런데 왜 쓰임을 받지 못하십니까?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순종하지 못합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요 그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제자들도, 나귀의 주인도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이지만 순종 할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 때에 가능합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바다를 잔잔케 하신 분이십니다. 부디 바랍니다. 이성을 신뢰하기보다는, 경험을 신뢰하기 보다는 주님을 더욱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신뢰하기에 나귀를 풀 수 있었고, 주님을 신뢰하기에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씀에 순종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나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까? 요즘 복잡한 때에 더 복잡 해 지지는 않을까? 주님을 위하여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면 내가 더 피곤하고 쫓길 텐데 라는 염려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손해되는 것같이 보일 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보십시오.

혹시 이런 설교를 할 때에 부담스러운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주께 쓰임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 한계를 극복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쓰임 받는 것이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우리가 손해되는 것 같지만 우리의 시간, 우리의 건강, 우리의 물질, 우리의 삶을 주님께 기쁘게 쓰임 받으면 그곳에서 오병이어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옥합을 깨뜨릴 여인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리마데 사람 요셉을 통하여 무덤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위하여 준비를 시키실까요?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쁨으로 쓰임당하시지 않겠습니까?

모쪼록 하찮은 짐승, 나귀라도 주님께 귀히 쓰임 받으니 영광스러운 짐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쓰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물질과 재능이 우리 주님께 쓰임 받을 수만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일 것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 귀히 쓰임 받으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윤 정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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