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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할 때 강함 주시는 주님 (고후 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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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오늘은 시원한 가을의 문턱을 알리는 입추입니다. 그동안 무더위로 많은 불편함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뜨거운 날씨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곡식을 잘 여물게 하시고 머지않아 우리 모두에게 결실의 복된 소망들로 풍성케 하실 줄 믿습니다.

거룩하고 복된 주일을 맞이하여 주의 전에 달려 나와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 위에 우리 주님이 주시는 좋은 일들이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 릭 워렌 목사님은 주일마다 평균 6차례의 설교를 한다고 합니다.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극히 평범하게 생기셨고 몸은 정상인보다 훨씬 뚱뚱합니다.

어떻게 보면 재적교인 8만 명의 대형교회를 감당할 것 같지 않은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목회자 중의 한 분으로 평가받으며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설교하는 순간마다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뇌 기능 이상(brain disorder) 증상을 가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에게는 간질증세가 있었고 자주 기절을 했습니다. 파킨슨병처럼 떨리는 증상도 있으며 그래서 워렌 목사가 졸도할 경우를 대비해 예배 때마다 다른 목사를 대기시켜 놓았다고 합니다.

그의 병은 간질병은 아닌데 이와 비슷한 희귀병 입니다. 미국에서 16만 명이 이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워렌 목사는 아드레날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종종 설교 전에 아드레날린 주사를 맞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론 앞을 천으로 가린 듯 설교 원고도 교인들도 제대로 안보일 때가 있다고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절대로 선택해서는 안 되는 직업이 목사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5년간 하나님께 이 질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를 했지만 이제는 그 문제로 기도하지 않는다며 제 몸의 가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알게 됐다고 고백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된 비결은 자기의 무능과 부족함을 깊이 절감하고 죽도록 하나님께 매달린 데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사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에서 태어났으며, 율법에 비추어도 전혀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율법에 철저했던 사람입니다.

학문적으로 당시 석학이며 랍비인 가마리엘의 문하생이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신앙적으로도 자랑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1절에서 4절에 보면 그가 한 사람을 소개하는데 세 째 하늘을 갔다 온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가 바로 바울 자신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세 째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천국을 말합니다. 그가 천국을 보고 왔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남들에게서 보기 드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안질이었는지, 말라리아 열병이었는지, 간질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여러분의 살을 찔러 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사탄은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바울의 눈을 찌르고, 마음을 찌르고, 삶을 찌릅니다.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이 떠나기를 세 번이나 기도했는데, 이것이 작정기도였는지, 금식기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죽기 살기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해 보니까 이 가시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은 바울이 약할 때에 강해지고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을 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째, 우리의 약함을 통하여 기도하게 하십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육체적인 가시가 있었으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만듭니다. 만약 기도할 수 있는 약함이라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반대로 풍요와 번영이 나에게서 기도를 빼앗아 간다면 그것은 저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테너 최승원 씨의 간증이 있습니다. 그 분은 한쪽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주기도문 송 1천 번을 부르면 낫는다고 해서 그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1만 번을 불렀습니다. 그런데도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원망보다는 감사가 넘쳐나게 되었고 이제는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 은혜에 감격하며 신령한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약함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까지도 사용하셔서 인생을 값지고 복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비밀을 깨달았기에 자신의 고난과 약점까지도 감사하며 자랑했습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영혼 속에는 하나님으로 채움 받을 공간이 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 채움 받을 공간을 상실하면 우리의 영혼은 정말 곤고하고 갈급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할 공간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세상 것은 아무리 많은 것으로 채우고, 많은 것을 누려도 여전히 곤고할 뿐입니다. 사람이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퍼 마실 수는 없습니다. 마셔도 마셔도 더욱 목마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8절 말씀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심각한 고난이 임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저는 때때로 성도들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에는 그토록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고 그리고 응답을 받았노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간증했던 사람들이 기도 생활을 쉴 때입니다.

목회생활 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사람이 기도 안 하는 것이 시간이 없거나 게을러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만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고 또 다른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좋은 신앙인 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한심령이라고 했습니다. Broken heart, 즉 깨진 심령, 상하고 병든 심령, 곤고한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상한 심령을 가져야만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은 얍복강에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약할 때요, 형인 에서의 칼날 앞에서 가장 상한마음을 가졌을 때입니다. 이 때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사생결단의 영적인 사투였습니다. 환도뼈가 다 으스러져도 꼼짝 않고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기도가 그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그가 가장 약할 때 강함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약할 때에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이 상했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약한 나를 고쳐 주십니다. 약한 나를 세워 주십니다. 약한 나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는 간질 때문에 그렇게 아파했던 바울이 빌립보서 4장 12절에서 위대한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약할 때에 엎드리는 삶을 통하여 더욱 온전하여지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 째, 약함을 통하여 겸손하게 하십니다.

본문 6절 말씀에 보면 바울은 자랑할 것이 너무 많다고 했고, 7절 말씀에는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이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아 스스로 교만해 질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몸에 가시를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느 농촌마을에 무식하고 난폭한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신앙생활이 아주 못마땅하였습니다. 농부는 부흥회에 참석하느라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아 교회에 들어섰습니다.

마침 아내는 예배당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농부는 여인의 뒷 머리채를 감아쥐고 순식간에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지막지하게 여인을 두들겼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여인은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 면장부인이었습니다. 농부는 면장 부인에게 크게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때 면장부인이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을 하면 용서할 것입니다." 농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높이면 하나님께서 낮추십니다.

사실 저나 여러분은 쥐꼬리만한 것 때문에도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돈이 주위사람보다 좀더 있다고 교만할 수 있습니다. 좋은 집에서 산다고 교만 할 수 있습니다. 좀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교만 해 질 수 있습니다. 옷 좀 잘 입는다고, 날씬하다고, 남편이 돈 좀 잘 번다고 교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모든 것들은 상대적인 것뿐입니다. 자랑할 것도, 교만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깨어지는 과정의 아픔과 힘듦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너무하시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아직도 깨어져야 할 부분들이 남아 있다고 하실 것입니다. 아직 더 깨어져야 한다고, 더 낮아져야 한다고,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땅에 던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교만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울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요, 깨뜨리신 것만큼 바울을 쓰시기 위함입니다.

한국 갤럽은 1984년과 1989년 그리고 1997년에 이어 2003년 1월, 네 번째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에 대한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결과 기독교의 경우 큰 굴곡 없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으나 97년의 경우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로 올랐던 것과는 달리 2003년 조사에서는 불교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습니다. 특히 비 종교인들이 호감을 느끼는 종교에 대해서는 불교가 37.4%로 1위를 차지했고 개신교는 천주교 17.0%보다도 낮은 12.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오늘의 한국 교회는  깨어져야 될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거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 강압 통치시대를 힘겹게 살아갈 때 교회는 희망의 등대였습니다. 군사 독재정권의 칼날에 맞서서 싸웠던 시절에는 교회가 용기 있는 방패의 구실을 잘 감당했습니다. 국민들은 교회를 신뢰했고 그때 한국교회는 크게 부흥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들은 교회 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죄인의 구원보다는 제 교회 살찌우기에만 정신을 쏟으므로 구원의 방주요 역사적 선구자적 사명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섬기는 교회이기 이전에 군림하는 교회로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이번 갤럽 조사 결과도 한국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러시아정교회의 지도자들은 볼세비키혁명이 일어나기 전날 밤 화려한 성전에 모여 천사들이 바늘 끝에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느냐는 문제로 열띤 신학적인 토론을 벌였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금술로 수놓은 성의로 살찐 배를 가리고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장엄한 관을 쓰고 교회가 수탁 받은 사명을 망각했습니다. 이 때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그것을 의지하는 순간부터 깨뜨리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깨뜨리셔서 다시 온전하게, 강하게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질병, 물질적인 어려움, 삶의 아픔과 눈물 등 우리의 모든 약함과 실패를 통하여 우리를 겸손케 하시며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셋 째, 약함을 통하여 강하게 하십니다.

본문 9절 말씀에 보면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약해집니까? 그것은 인생의 태풍이 불어올 때입니다. 바람에 집도 날아가 잃어버리고, 사람도, 물질도 다 떠나가 버릴 때입니다.

저는 개척목회를 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사람 때문에 겪는 어려움, 물질 때문에 겪는 어려움 등등 제힘으론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기도를 통해서 큰 힘을 얻었지만 찬송을 부르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찬송가 503장을 많이 불렀던 것 같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한가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납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문제들 속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움들을 통해서 약한 나를 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경험한 은혜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린 약함 가운데 있는 강함이었습니다..

빅터플랭클이라는 정신 분석가는 그가 쓴 글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매일 죽음의 고통과 싸우는데 사람이 매일 죽어나가고 매일 시체를 치우는 일을 했습니다. 정말 피골이 상접한 가운데 삶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의 가슴속에 어떤 주도적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들이 나를 지금 잡아 가두고 나를 죽일 수는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나는 저들에게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내 생각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내가 주도하겠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인데 내 생각만은 저들에게 포로가 되지 않겠다. 매일 주도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현실은 두렵고 암담했지만 매일같이 주도적인 생각으로 "나는 살 것이다" 를 되뇌이는 가운데 그는 자유를 얻어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요동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황하여 이성을 잃거나 분별력을 잃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도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까치가 지은 까치집은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날씨가 좋을 때는 다른 일을 하다가 바람이 불어오면 까치 부부는 나뭇가지 하나 하나를 열심히 물어다가 바람 속에서 차곡차곡 집을 짓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람 속에서 쌓아 놓은 집이니 만큼 태풍을 이기고도 남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바울의 약점 속에 주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바울의 약점 속에 주님의 능력이 머물렀던 것처럼 우리의 약점을 통해 기도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또한 약한 나를 강하게 하사 예수님의 능력으로 계속 머무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해결되지 않는 약점과 가시 때문에 절망하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바울과 같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교만한 마음도 깨어져서 온전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약함을 하나님께 맡기므로 다스려주시고 치유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김 명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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