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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에 근거한 믿음 (요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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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는 것은 참으로 복스런 사실입니다. 성경보다 더 가치 있는 책은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지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책들은 다 사람의 말을 기록한 것이지만,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의 지혜로써 알 수 없는 위대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창조주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 인생이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는지, 인류 역사의 종착지는 어디인지를 알 수 있으며, 그리고 구원의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지식은 모르면 좀 불편할 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진리 가운데서 살아가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는 데 열심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성경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하느냐?’고 합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구약 성경은 히브리 민족의 역사와 종교에 대한 기록일 뿐이며, 복음서를 비롯해서 신약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일 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사람들이 그리 인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인정한다고 해서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사실은 성경 스스로가 증거합니다. 이사야서 34장 16절에 보니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으므로 율법이나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구약과 마찬가지로 신약성경 역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사도 바울의 서신에 대하여 “15)…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고 하여 사도 바울의 서신을 성경과 동등하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나 실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 아닙니까 라고 질문할지 모릅니다. 맞는 말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모두 사람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저자들이 자기들의 말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기록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입니다. 이에 대하여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이르기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고, 베드로후서 1장 20절로 21절에는 “20)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나 사도들을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 저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인간 저자들은 단지 필기자의 역할을 한 것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를 비롯해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 책을 오경 또는 율법서라고 합니다. 이 다섯 책은 기원전 1400년경에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서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의 책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기원전 400년경에 기록한 것입니다. 가장 마지막에 기록한 책은 신약성경의 계시록인데 주후 96년경에 기록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900년 전의 책입니다. 따라서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는 최소한 150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인간 저자들의 수도 약 40여명에 이릅니다. 시대가 다르고, 신분이나 지식, 경험이 다른 저자들이 기록한 것이지만 놀랍게도 성경의 모든 내용은 서로 모순됨이 없으며 그 사상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 말씀의 지혜로움과 순결함과 거룩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편 19편에 이르기를 “7)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 보다 더 달도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66권으로 이루어진 신구약 성경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리 학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 땅의 지식으로 하늘의 지식을 알 길이 없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기록한 것이므로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즉 성경을 읽으실 때에는 먼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시고, 성령의 조명 아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일고 묵상하심으로 성도님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밝히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에는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구약성경을 살펴봅시다. 창세기에는 천지만물의 창조에 관해서 진술합니다. 그리고 선민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열 두 아들에 관해서 언급합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율법을 기록했습니다. 레위기는 제사와 관련한 율법입니다.

민수기는 선민의 광야생활에 관한 기록입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출애굽 2세대에게 율법을 다시금 들려준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는 가나안 정복에 관한 기록이요, 사사기는 사사시대의 선민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사무엘서와 열왕기,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 등은 이스라엘 왕국의 건국과 분열, 멸망에 이르기까지와 포로기 이후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은 하나님께 올리는 시가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다니엘서를 비롯해서 말라기서에 이르기까지의 책들을 예언서라고 부릅니다. 이 책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한 많은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시가와 그들에 관한 예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올바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구약 성경이 이스라엘 민족에 관한 내용으로만 되어 있다면 그들과 상관없는 우리로서는 그리 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다고 해서 성경을 역사책으로 보면 안 됩니다. 또한 성경에 시가들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서 성경이 문학책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윤리적인 교훈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서 성경이 윤리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 역사와 문학이나 교훈이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학과 교훈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핵심 내용이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서, 성경의 주제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의 핵심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과연 그러한 지 알아봅시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범죄한 내용이 나옵니다.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는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해 입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셔서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담이 대답하기를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하셨습니다. 아담이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시니, 여자가 말하기를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뱀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고 하셨습니다. 하와를 꾄 뱀을 저주하시면서 여자의 후손에 대하여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지요. 여자의 후손은 곧 메시야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장차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셔서 뱀 곧 마귀를 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15절을 최초의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 2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하였는데, 이 역시 메시야에 대한 약속입니다.

나뭇잎으로 만든 치마는 인간의 의를 상징하고, 가죽옷은 하나님의 의를 상징합니다. 그런가하면 가죽옷을 만들려면 짐승이 죽임을 당했을 것인데 이 때 희생된 짐승은 범죄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민의 조상으로 택하신 것 역시 메시야에 대한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3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것은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해 받은 복이 무엇입니까?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이스라엘을 택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을 위함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온 천하 만민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이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에 비유한 것을 말합니다.

애굽에서 해방되던 전날 밤에,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집집마다 양을 잡고 그 피를 그릇에 담았습니다. 그런 다음,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피에 적셔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집안에 머물렀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애굽인의 장자를 치실 때 피를 뿌린 이스라엘 자손의 집은 넘어가심으로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인데, 유월이란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날이 바로 유월절이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민수기 21장에 보면, 불뱀 사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할 때였는데, 백성들이 길이 험한 데 마음이 상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니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호소하기를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하시는지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로 15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르시기를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장대에 매단 놋뱀을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받으실 자신에 대한 예언으로 인정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 외에도 우리는 성경에서 이 같은 사례를 더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 관계 상 한 가지만 더 소개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짐승을 제물로 해서 드렸던 각종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한다는 사실입니다.  죄 없는 짐승이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죽임을 당하고 제단에 올려져 불살라졌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9장 11절로 12절에 이르기를 “11)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까지 말씀해 드린 것과 같이, 구약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과 그가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고난 받으실 것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성경을 읽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우리가 바른 삶, 행복한 삶을 살려면 우선 삶의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여러분은 망설이지 않고 분명하게 답할 수 있으십니까? 쏘련이 붕괴되기 전만 해도 공산주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지난날 공산주의자들은 세 가지 각오를 했다고 합니다. 굶어죽을 각오, 맞아죽을 각오, 얼어죽을 각오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공산국가들이 몰락했는데도 공산주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잘못된 사상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면 결국 일생을 그르치고 맙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질적인 성공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삶의 기준이므로 돈벌이만 되면 법도 어기고 윤리도 저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돈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맙니다.

현대를 일컬어 다원화 시대라고 합니다. 다원화란 여러 개의 기준을 허용하는 사조입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가느냐고 충고하는 것조차 부당한 간섭으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누가 무슨 옷을 입든지, 양복을 입고 갓을 쓰고 다녀도 예법에 어긋난다고 말하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통이나 도덕이니 기준이니 하던 것들이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언뜻 보면, 개인의 자유가 한없이 허용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올바른 기준이 없이 제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기 쉽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원주의는 신앙생활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합니다. 종교다원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건, 부처를 믿건, 샤머니즘을 신봉하건 결국은 구원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올바른 기준이 없는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다원주의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더욱 절실하게 깨닫는 것은 올바른 기준의 필요성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시대나 유행에 따라 변질되지 않는 삶의 기준을 제공해 줍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성경은 수천 년이나 된 책이므로 더 이상 현대인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저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므로 결코 낡거나 쇠하는 법이 없으시며 항상 새롭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도 항상 새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는 진리이므로 새로운 것입니다. 정금이 귀한 것은 세월이 지나도 녹이 쓸거나 변질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진리가 시대에 따라서 변질되는 것이라면 그런 것은 진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의 진리를 말씀해 줍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의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인류의 구세주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신 예수님 한 분밖에 없으십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하신 말씀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인정한다고 진리인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또 하늘에서 소리가 있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증거를 받으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준일 뿐 아니라,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십계명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지켜야 할 기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관련된 계명들 뿐 아니라, 인륜에 대한 계명도 지켜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방금 언급한 계명 중에서 지키지 않아도 무방한 계명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이 타락한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제 아무리 시대가 변할지라도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서 살아가심으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누가 무어라 해도 성경에 근거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십시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을 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 양 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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