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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하는 신앙생활(7) - 사랑 (롬 8: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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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받은 사람과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KBS TV, 어린 시절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는 프로가 있다. 그 프로에 출연한 사람들의 얼굴이 심히 그늘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의 삶도 대단히 불우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볼 수가 있다.

가난하고 무식한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사랑을 많이 받은 자녀는 학교나 동네에서도 당당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왜 그런가? 부모님이 내 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려움에 처하면 반드시 도와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모님이 계셔도 기죽어서 사는 아이들이 있다. 왜 그런가? 자신이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을 때 자기 편이 되어 주지 않고 도리어 야단만 맞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분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쪽 편은 당당하게 날마다 승리의 보고를 드리는 활력있는 성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 편은 날마다 패배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행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패 배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를 특권을 부여 받은 자녀요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인쳐 주셨다. 아멘!
우리의 아버지는 의붓 아버지가 아니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를 데려다가 입적시켜 양자 삼은 것이 아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 계획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29-30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때로는 낙심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도의 삶은 승리와 영광이 보장된 삶이다. 이 놀라운 비밀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닫고 확신 가운데 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먼저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고도 영원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 증거로 먼저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예수님의 사랑을 질문 형식으로 되묻고 있다.


1.성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 3가지(31-33절)
1)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심(31절)
31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1)“이 일에 대하여...”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곧 과거와 현재와 미래적인 구체적인 구원의 계획을 말한다. 그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완벽한 것이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2)“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심을 의미한다. 우리 편이 되시는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시므로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다. 사단의 전략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흔들어 혼란케 하려는 궤계를 가지고 있다. 사단의 힘이 아무리 강하고 무섭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므로 염려할 것이 없는 것이다.
예)아버지가 사단장이면 그 집안 식구들은 다 사단장, 아버지가 상사면 그 집안 식구들도 다 상사.

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심(32절)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은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다. 그를 제물로 드릴 때 아비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을 때 순종하였다.
창22:12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들이 둘이라도 군대에 보낼 때가 되면 부모의 마음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전에는 3대 독자는 군대도 보내지 않았다. 그 만큼 외아들은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담보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혹 우리를 알아 주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보다 더 우리를 소중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얻은 자녀이기에 하나님 앞에 우리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주고 싶으신 것이다. 은사의 궁극적 목적은 그 아들의 형성을 본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29절).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도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삶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3)우리를 의롭다 하심(33절)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가장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 유대인이다. 인류 역사 가운데 유대인만큼 다른 민족들에 의해 시달림을 당한 민족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사회 속에서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민족이 유대인이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것이 한 가지 있다. “선민의식”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인가? 유대인들보다 한 단계 더 위에 있는 고귀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일 뿐만 아니라, 의롭다함을 받은 거룩한 존재이다. 물론 우리 내면의 육체적 욕구로 인해 수시로 죄를 짓는 연약함이 있다. 그래도 우리를 의롭다하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범죄함을 보고 시비를 걸고 고소한다 해도 의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게서 기각시키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구 죄를 지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롬6: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요, 의롭다함을 받았으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 거룩한 신분에는 손상이 없도록 지켜 주신다는 뜻이다. 나 자신의 생활을 보면 부끄럽고 온통 죄 투성일지라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34-36절)
1)정죄하지 못하게 하심(34절)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마귀의 주 업무는 성도들을 정죄하는 것이다. 계명을 들이 대면서
“네가 집사이면서 제사를 지내? 너 제2계명을 어겼어. 네가 권사면서 시어머니를 박대해..” “네가 장로면서 거짓말하고 도둑질을 해?”.
마귀가 이렇게 계명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들이대면서 정죄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의 구원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다. 성도들을 정죄하는 마귀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예)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어느 장로님 -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사단이 계속해서 계명을 가지고 정죄할 때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롬7:22-25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한다.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공동번역, 새번역 - 누가 감히 정죄하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누가 감히 정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34절 하반부에서 설명되고 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혹 범죄했다 할지라도 낙심치 말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끊임 없이 기도하고 계신다.

2)끊을 수 없는 사랑의 줄로 묶어 놓으심(35-36절)
35-36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를 떼어 놓을 수 있겠는가? 불이 붙었을 때는 끄기가 어렵다. 그 때는 기다려야 한다. 단물이 빠지면 끊어진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사랑은 믿을 수가 없다. 우정도 변질되고, 부모 자식간의 사랑도 자식이 속을 썩이면 끊어진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 딱 한 가지 있다. 아가페 사랑이다.

그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붙잡고 있는 사랑이다. 그 사랑을 알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환경들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을 받게 된다.
예)안이숙 여사의 “죽으면 죽으리라!”

36절의 말씀은 시44:22절의 인용이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성도가 받을 고난과 환난을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설령 성도가 이런 역경 가운데 놓여 있다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주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3.바울의 확신
37-39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청년시절, 동남합성 연구실에서 5년간 직장생활을 했었다. 그 회사는 계면활성제라는 화학약품을 생산하는 업체인데 나의 업무 중에 시멘트와 관련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있었다. 계면활성제가 적당량이 들어 갔을 때 그 콘크리트 구조물 강도가 얼마인가를 측정하는 것이다.

38-39절에서 열거하고 있는 10가지 사항들은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최악의 상황들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가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할지라도 우리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사랑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당한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하여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의 비결임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도 요한 역시 사랑의 능력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촬스 스펄전 - 어느 농가를 방문했을 때 풍향계에 꼬리표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스펄전 목사님이 그 농부에게 물었다.
“하나님의 사랑도 바람불 때 마다 달라진다는 뜻입니까?”
농부가 대답하는 말
“그게 아니라 바람 부는 방향은 달라져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사랑을 깨달은 자는 이 세상에서 비실비실 패배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이미 저와 여러분은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의심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우리를 향하여 여전히 부어 주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들이기 바란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 놀라운 사랑을 알고 예수 안에 뿌리를 내리고 흔들림 없이 날마다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사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한다.

사랑을 받았는가? 얼굴을 펴고 밝게 웃어 보라.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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