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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뭄에 단비가 내리면 곡식이 춤을 춥니다.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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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상도 시골 할머니가 서울에 올라와 아들에게 가져다 주려고 짐을 잔뜩 가지고 택시를 탔다고 합니다. 타자 마자 택시 기사가 "어디 가시나요 ?"라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택시 기사의 옆구리를 치며 "그래, 경상도 가시나다."라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마음을 진정하고 기사에게 "개포동까지 차비가 얼마노?”이라고 물으니까 택시 기사는 서울에 처음 올라온 무식쟁이 할머니인 것 같아 봉잡았다고 생각하고 “5만원인데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할머니는 "그럼 짐은 얼마노?"이라고 물었답니다. 택시기사는 인심이라도 쓰듯 시원스럽게 "아, 짐은 당연히 무료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갑자기 얼굴에 화색을 띠며,“아, 그럼 낸 지하철 타고 갈란다, 이 짐만 이 주소로 데려다 주이소!”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택시 기사가 잘 못보았구나 생각하고 "할머니 5만원이라고 말한 것은 농담으로 했고 택시 요금은 이 요금 계산기에 나오는 대로 받습니다. 가시지요."라고 했답니다. 개포동까지 오자 택시 요금이 9800원이 나왔답니다. 할머니는 4500원만 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택시 기사가 "할머니 여기 보소 9800원입니다."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800원어치는 당신이 이미 타고 왔더구먼. 그리고 둘이 타고 왔으니까 반만 주면 되지."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일부의 사람들을 보면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주 돈에 미친 사람같이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가지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저에게 이상한 이메일이 왔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불륜사실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물론 증거 자료도 가지고있고… 만약에 이 사실이 교회에 알려지면 상당한 파문이 일어나겠죠. 그렇다고 악한 맘먹고 당신을 파문으로 몰려는 생각은 아닙니다. 밝힐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조사를 하던 중 알게된 사실이고 나 또한 돈이 필요해서 이렇게 당사자와 직접 거래를 하려고 연락을 드리는 것입니다. 결정은 목사님께서 하시고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신고를 하시던지 회계를 하시던지… 그럼…"

돈에 미친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요즈음 화재가 되고 있는 도청 사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돈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도청테이프를 가지고 돈을 벌기 위해 흥정합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21세기의 세 가지 얼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자본 황금 시대 개막 둘째가 초국적 시민사회의 출현, 셋째가 경제 공동운명체의 소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첫 번째 되는 대표적인 특징이 자본이 신이 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글로벌 시대의 주역은 세계200대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경제는 3만 7천 개의 다국적기업과 17만 개의 자회사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기업 200개 중 172개를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5개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외환시장에서 하루에 움직이는 투기성 자본은 지난 1986년 2,900억 달러이던 것이 1990년에는 7천억 달러로, 1994년에는 각국 통화당국의 통제가 불가능한 1조 3천억 달러로 폭증했다는 것입니다. 자본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우리는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돈보다 믿음이 귀중합니다. 믿음이 사람을 살린다고 믿습니다. 믿음이 행복하게 합니다. 믿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믿음이 미래를 보장합니다. 믿음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냅니다. 예수님은 돈 많은 사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 있는 사람을 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돈 많은 사람과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 있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 맛나게 하고 믿음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천국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가뭄에 단비를 내리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면 곡식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가면 가정이 행복해 집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고 구하면 기도가 응답받습니다. 믿음으로 사단의 유혹과 핍박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인격이 성숙하고 온전해 집니다. 우리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돈은 없어도 믿음만큼은 부자가 됩시다." "예수님이 인정할 만한 믿음을 가집시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로마의 백부장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이 칭찬하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우리도 이런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믿음이 이렇게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1. 돈보다 사람을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돈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어떤 부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분들은 교회에 다니기는 다니지만 늘 돈을 최우선시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늘 돈 문제로 다투었답니다. 어느날 부부가 돈 문제 때문에 다투다가 남편이 화가 나서 소리쳤답니다. "내가 벌어다 주는 돈이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 가정이 여기 있지도 않았어!" 그 때 부인이 맞받아쳤답니다. "맞아요. 그 돈이 아니었으면, 나도 여기 안 있어요." 신앙인은 모든 것이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부요도 가난도 생명도 죽음도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만물의 주인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아직도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믿음 역시 돈버는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도 돈버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탄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의 원리의 종인 된 사람들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백부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대 국가이고 지배국가인 로마 군인입니다. 100명의 군인을 거리리고 있는 장교입니다. 얼마든지 사람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착취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돈보다 사람의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한 사람입니다.

1) 물건처럼 취급받는 자신의 하인의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종 하나가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당시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눅7:2에 보니까 죽을 병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죽는 병도 아닙니다. 6절을 보십시오.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차라리 죽어 버리면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아내도 아들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한 몸 죽어 버리면 고통하지도 않고 산 사람 시원할 지도 모릅니다. 당시 종은 물건에 불과 하였습니다. 그 당시 종이란 살아 있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노예가 고통을 당하든지, 아니면 죽을 위험에 처해 있든지 주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는 그의 저서 [윤리학]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생명이 없는 물건에 대해서는 우정도 정의도 있을 수 없다. 실로 말이나 소에게도 그러하며, 노예를 향해서도 우정이나 정의는 있을 수 없다. 주인과 노예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도구가 생명이 없는 노예인 것과 꼭 같이 노예는 살아 있는 도구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예수님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노예를 물건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그 힘없고 불쌍한 종을 물건처럼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문제도, 자기 아들의 문제도, 아내의 문제도, 형제, 부모의 문제도 아닙니다. 종이 낳는다고 하여 큰 이익도 없고 종이 죽는다고 하여 자신에게 큰 손해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데 영향을 줄만한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일반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기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종에 대하여 그의 존재를 인격적으로 귀하게 생각하였습니다.

6절의 하인이라는 말은 파이스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아들이라는 말로 번역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백부장의 아들이 중풍에 걸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막7:2절에 보면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둘로스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서로 모순되는 표현일까요? 아닙니다. 종합해 보면 그가 아들처럼 사랑하는 종이었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더욱 우리가 그의 이런 믿음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눅가복음 7장 5절의 말씀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유대 장로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는 그가 가진 것으로 유대인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위해 회당을 지어 주었습니다.

2)우리도 돈보다 사람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인격의 사람을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을 이용의 수단으로 생각을 합니다. 더욱 인간은 물건처럼 취급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조금 나으면 거래 관계로 인간을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생명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진정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문제가 있을 때 장애물을 뛰어 넘어 실제적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신문에 보니까 포르투칼의 매주 부흥이 되는 한 교회가 소개 되어 있었습니다. 믿음 좋은 개로 인해 교회가 북적거린다는 것입니다. 개 한 마리가 리스본에는 약 16마일 정도를 걸어서 매주일 교회에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프레타'라는 이름을 가진 개가 홀로 지난 3년 동안 매주일 오전 5시경 집을 출발하여 7시 30분 예배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함께 일어나고 앉으면 그대로 똑같이 따라한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프레타'를 보려고 오는 사람들로 점점 더 부흥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날 점점 믿음이 없는 세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길 "눅 18:8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믿지 못하는 도마를 향하여 "요 20:27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라고 했습니다. 모든 답이 과학문명과 인간 방법과 지혜에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과학으로 풀 수 없습니다. 믿음에 답이 있습니다. 믿음의 인생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의 열쇠입니다. 믿음이 가정을 춤추게 하고 믿음이 자녀를 춤추게 하고 믿음이 세상을 춤추게 하는 것입니다. 삶에 가뭄이 다가 올 때 진정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는 끊임없이 가뭄이 다가 옵니다. 건강에 가뭄, 물질의 가뭄, 믿음의 가뭄, 환난의 가뭄, 사업의 가뭄... 갖가지 가뭄이 기상 예보도 없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진정 믿음이 있는 사람들, 예수님께 칭찬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 주변의 사람들을 춤추게 할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 문제 가지고 허둥대지 않습니다. 그 문제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로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로 인간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은 백부장은 어떻게 했습니까?
1) 백부장은 문제의 해결 방법을 예수님으로부터 찾았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지배하는 식민지 백성이었습니다. 당시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청년 예수를 믿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절에 보면 소문을 듣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과 가르침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지금 같으면 많은 정보를 수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참된 메시야인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주라고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시저가 주인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 만물의 주인이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과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예수님께 겸손히 엎드리는 믿음을 갔습니다.
장애물이 있습니다. 교만의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교만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장교입니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입니다. 수치심의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하였습니다. 체면의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체면에 손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부려움의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위에 이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고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하였습니다.(5) 5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위대한 믿음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진정 주라고 고백하는 믿음, 겸손한 믿음, 장애물을 뛰어 넘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어떤 말을 듣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도 이런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풀 수 없는 나의 문제,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이 사회의 문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고쳐 주시면 해결 되지 않을 문제가 없을 줄 믿습니다.

2)우리도 문제가 있을 때 실제적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해결받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끔 보면 교회는 나오지만 예수님과 정서적으로 끊겨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진정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과 함께 삽니다. 법적으로는 부부입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는 이미 부부가 아닌 사람처럼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같은데 예수님과 정서적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힘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경험도 중요합니다. 지식도 중요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재 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
예수님이 고쳐 주신 근거는 바로 이 믿음(10)이었습니다. 돈이 근거가 아닙니다. 권력이 근거가 아닙니다. 열심히 근거가 아닙니다. 학력이 근거가 아닙니다. 나이가 근거가 아닙니다. 사회적인 지위와 권세가 근거가 아닙니다. 신앙경력이 근거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가뭄에 단비가 내리면 곡식이 춤이 춤을 추듯이 세상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믿음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백부장의 믿음을 통하여 종이 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가정이 치유되고 세상이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 믿음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무엇으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됩니까?
중풍병자를 보십시오(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열두 해 혈루증 앓은 여인을 보십시오(마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린 여인을 보십시오(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모두가 믿음입니다. 믿음이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3. 무엇보다 말씀의 권위를 최우선시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백부장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씀합니다. 다만 말씀만 하시면 내 하인이 났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보고 칭찬을 합니다. 이스라엘 중에 이 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그는 말씀의 권위를 전적으로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만져 주어야만 낳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말씀만 하면 종이 났겠다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위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말씀의 권위를 믿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곧 예수님의 인격으로 믿는 신앙입니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말씀 붙들고 가면 넉넉히 문제가 해결될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말씀을 붙들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으면 모든 문제는 끝이 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같이 천국에 앉게 될 것을 약속받습니다.
13절에 보십시오. "가라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는 축복의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나가면 그 말씀대로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13절 하반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시로 하인이 나았습니다.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나아가는 그 순간 하인의 질병이 나았습니다. 강건하여졌습니다.(눅7:10)
예수님께서는 완전하게 치유해 주셨습니다.

2)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나아가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의 문제 이렇게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완전하게 치유될 줄 믿습니다. 현실을 보며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조건을 보며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같아도 말씀을 의지하고 전적으로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믿음을 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제사는 기뻐하셨지만 믿음 없는 제사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백부장은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역사를 가진 믿음을 가졌습니다. 유대 장로들까지 인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선한 증거를 얻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받게 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께서 기이히 여기실 정도로 큰 믿음이었습니다. 나와 간구하는 믿음,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 겸손한 믿음, 말씀 중심의 믿음 이런 믿음을 통해 주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믿는다는 말만 있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이런 믿음이 되어 가뭄에 목말라하는 소외된 이웃과 세상을 춤추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전해진 후 믿음의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해방당시 30만명이었습니다. 1955년 60만, 1965년 120만, 1975년 350만, 1985년 800만, 1995년 1000만, 그러나 지금은 10년 동안 정체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믿음의 문제입니다. 초기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백부장같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감리교 여선교사였던 왜그너 초기 한국교에의 '김서방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강골이라는 시골에 김서방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는 부인이 2명이었는데 첫째는 부모가 정해준 여인으로 김서방보다 나이가 많았고 둘째는 자신이 직접 선택한 여인으로 매력적이고 지적이었답니다. 어느 날 쪽복음을 받아 둘째 부인과 함께 예수님을 영접했답니다. 목사님이 김 서방에게 첩을 거느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었답니다. 김서방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둘째 부인과 헤어져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작정하고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고 둘째 부인은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고향에 가서 사는데 예답영이라는 부자가 흑심을 품고 불한당을 시켜 보쌈을 하게 했답니다. 보쌈하러온 불한당을 향해 "난 너희들이 두렵지 않다. 난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자 불한당은 놀라서 도망가 버렸다고 합니다. 김서방의 첫째부인은 원래 병자였는데 매일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했다고 합니다. 김서방은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나는 예수를 믿게 됐고 이제 당신만을 사랑할 것이라고 했"지만 첫째부인은 이것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음속 깊은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답니다. 김서방은 부인을 지게에 지고 150리 길을 걸어서 병원에 가 서양 의사에게 아내를 수술을 시켰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부인의 마음도 녹아내려 예수를 믿게 됐고 남편의 사랑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믿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문제에 부딪혀 있습니까? 사업과 직장의 문제입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자녀의 문제입니까? 신앙의 문제입니까? 여러분은 어떠한 불가능에 직면해 있습니까? 백부장은 말씀만으로도 병든 하인이 깨끗이 나을 줄로 믿을 때에, 하인의 병이 즉시 나았습니다. 그의 인격은 예수님을 감동시켰고, 그의 믿음은 예수님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놀라게 할만큼 위대한 믿음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눈 앞에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사업의 문제가, 직장의 문제가, 건강의 문제가, 자녀의 문제가, 신앙의 문제, 이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마8:13절의 백부장이라는 이름대신 우리의 이름을 넣어 크게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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