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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승리 비결 (삼상 17:32-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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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쥐와 고양이 시리즈 두 번째 얘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고양이가 쥐를 발견하고는 쥐를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쥐가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을치는데 어디 숨을 곳이 없습니다. 이번엔 쥐구멍도 없지 뭡니까? 코너로 몰리고 나니, 이제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구나’라는 마음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고양이의 날카로운 이빨이 쥐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을 바로 그 때! 쥐는 문득 오늘 아침 묵상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어느 말씀이냐구요?

고린도 전서 10:13절 말씀! “사람이 감당치 못한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아멘!

‘피할 길을 낸다는’말씀이 머리에 번뜩 떠올랐습니다. “그래, 아무리 위기를 당해도 피할 길이 있지! 솟아날 구멍이 있지!”하고 다짐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쥐를 불쌍히 여기시고 피할 길을 주시옵소서!’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쥐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를 향해 달려오는 고양이를 향해서, 오히려 뚜벅뚜벅 걸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습니다. 그런데 그 속삭임을 듣는 순간 고양이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입니다. 사색이 되어서 슬금슬금 도망쳐버리고 말았다는데...도대체 쥐가 고양이의 귀에 대고 뭐라고 얘기했을까요? 아시는 분 계신가요? ^^

“고양이님, 실은 저 방금 전에 쥐약 먹었어요!” ^^
세상 제일의 고양이라도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려움을 당한 쥐에게도 피할 지혜가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이제는 길이 없다, 소망이 없다고 하지만 반드시 피할 길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끊임없는 싸움입니다. 여름이 되면 무더위와 싸웁니다. 장마와 싸웁니다. 겨울이 되면 추위와 싸웁니다. 때로는 가난과 싸우고, 질병과 싸웁니다. 요즘 한국 국민들은 경제 불황과 싸우고 있습니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은 자기와의 싸움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장애물과 싸웁니다. 때로는 불신 세력과 싸우고, 우리를 넘어뜨리고자하는 마귀의 유혹과 싸웁니다.

그러나 어떤 난관과 위기 앞에 놓이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승리의 길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대적 앞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실패를 넘어 승리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블레셋 대군이 이스라엘 백성을 침입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블레셋에서는 키가 3m에 이르는 골리앗이라는  아주 거대한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갑옷 무게만 해도 57kg이었답니다. 웬만한 남성의 몸무게와 같은 갑옷을 걸쳤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또한 얼마나 큰지 한 번 소리를 지르면 산천이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목소리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눅이 들었습니다. “너희 중에 나와 싸울 자가 있으면 나와 보아라”하고 외치는데, 아무도 선뜻 나올 자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장수들은 누구도 대항할 자가 없는 듯 하고,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이미 전쟁의 승패는 결정 난 분위기였습니다. 싸울 의욕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던 형국이었습니다. 

바로 이 때, 전쟁터에 아버지의 심부름 차 왔던 한 양치는 목동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바로 다윗입니다. 이새의 여덞 아들 중 제일 막내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가 양을 치고 있는데 아버지가 부르시더니, “지금 형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으니 가서 안부를 묻고 오너라. 그리고 필요한 옷가지와 음식물도 전달해주라”는 부름을 받았기에 이 전쟁터까지 찾아왔던 길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곳에 당도해보니, 블레셋의 거대한 장수가 칼을 들고 소리를 지르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그 앞에 주눅이 들어서 도망치기에 급급한 모양새였습니다. 그것을 본 어린 다윗은 의분을 느꼈습니다. ‘저 할례 없는 이방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군대를 모독할 수 있는가? 내가 전쟁에 나가 싸울 것이다. 내가 골리앗을 상대할 것이다.’

여러분, 누가 보기에도 이것은 싸움이 안되지 않습니까? 어린 소년과 전쟁터에서 뼈가 굵은 3m 거인 골리앗과의 싸움은 보나마나 결과가 뻔하지 않겠냐 말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예상을 뒤엎고 다윗이 승리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 앞에 보기 좋게 넘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앞에 버티고 있어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주눅 들게 만드는 골리앗은 무엇입니까? 경제 불황입니까? 우리의 실패와 실수입니까? 질병입니까? 또한 불신 세력입니까? 또한 물질권세입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이 골리앗에 대항해 승리한 비결을 다윗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함께 다윗의 삶으로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먼저 다윗은 마음에 평정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을 보는 순간, 다윗은 전쟁에 참가하고자 하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다윗의 발목을 잡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늘 우리를 방해하고 괴롭히는 사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형제나 친척이나 친구나 직장 동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나다를까...그의 큰 형, 엘리압이 다윗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엘리압은 다윗을 어떻게 비난합니까? 28~2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장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가로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제일 큰 형님인 엘리압은 아마 나이가 다윗보다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엘리압은 다윗을 향해서 노를 발했고 그를 비난했습니다. “야 이놈, 너 양치는 게 하기 싫으니까 핑계대고 전쟁구경 왔지? 건방진 놈, 네가 지금 영웅 심리와 교만에 빠져서 골리앗을 대항하겠다고 하는거지? 너는 골리앗에게 새발의 피도 안돼!” 이렇게 다윗을 비난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의 마음을 곡해한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모욕을 견딜 수 없어서 의분을 가지고 나가려는데, 주위의 가족이나 이웃이 다윗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같이 대들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내가 무엇을 하였습니까?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이 골리앗을 어찌 그냥 두고 볼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나가서 싸울 것입니다.”라고 형에게 답변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형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형의 권위와 질서를 인정하면서 온유하게 형을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거대한 원수 골리앗 앞에서 싸워보기도 전에 형제와의 싸움을 힘을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거대한 원수 앞에서 가족끼리 싸우고, 형제끼리 싸우고, 직장동료끼리 싸워서 힘을 다 분산시켜버리고 낭비해 버리곤 합니다. 오늘 세상에 패배하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갈등하고 비난하고 분열하고 힘을 다 소진해 버린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 싸울 여력이 없습니다.

다윗은 분노를 다스릴 줄 알았습니다. 그는 마음에 평정심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와 위기를 당하면 당황하고, 마음에 평정심을 잃고 그릇된 판단을 함으로써 더 깊은 몰락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분노를 앞세우고 감정을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승리자는 마음을 다스리는 자입니다. 결코 우리는 냉정함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잠언 16:32에 보니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허브스라는 분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뇌의 크기이고, 뇌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크기이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마음이 큰 사람이 결국에는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얼마나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 입니까? 그러나 모세도 한 때 마음의 평정심을 잃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지팡이로 쳐서 홍해를 가르고, 200만이 넘는 백성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광야를 지나가다 보니 물이 부족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부족할 때마다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모세는 참다 참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분노를 터트리고 평정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르비딤에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했는데, 지팡이로 한 번만 쳐야 될 것을 감정이 격해서 두 번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길이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도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사로운 것에 목숨을 걸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사사로운 일에 생명 걸고 싸우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크고 아름답고 위대한 목표를 위해서 오늘을 인내하시고 마음에 평정심을 잃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수천 명의 무리를 향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와서 예수님을 임금 삼겠다고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이라고 인기 있는 것이 싫기만 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고 그들을 떠나서 산에 올라가 조용히 기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1주일이 지나면 저들은 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무서운 폭도들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기 앞에서, 실패 앞에서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그리고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십시오. 가족 간에 싸우지 마십시오. 부부 간에 다투지 마십시오. 성도 간에 다투지 마십시오. 우리 앞에는 거대한 골리앗이 버티고 있는데, 여기서 힘을 다 빼면 어찌할 것입니까?
많은 가장들이 밖에 나가 왜 실패하는 지 아십니까? 밖에 나가 싸워야 할 대상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집안에서 부부싸움 하느라 힘을 다 빼버리기 때문입니다. 밖에 나가 싸울 힘이 없는 것, 의욕이 없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일들은 양보하시고 서로 협력하십시오. 이제 우리는 힘을 모으고 더욱 집중하여서 더 큰 싸움을 향해서 승리하는 분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다윗의 승리의 비결을 살펴보면, 다윗은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용기와 사기입니다. 용기 있는 군사만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싸워보기도 전에 사기를 잃고 낙담한다면 그 결과는 뻔합니다. 그러기에 지도자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용기와 자신감입니다. 지도자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당장 내일 실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오늘까지 자신감을 가지고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안타깝게도 사울 왕이 이미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낙심에 빠진 지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미 왕이 두려움에 빠지니 병사들은 의욕을 잃어버리고 도망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어린 다윗은 승리의 확신으로 가득 찬 용기 있는 젊은이였습니다.

오늘 성경 32절 말씀을 읽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저 골리앗 장수 때문에 낙담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공동 번역으로 보면, “상심하지 마십시오.” 새 번역으로 보면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영어 번역으로 보면 “저 골리앗 때문에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마음에서부터 골리앗에게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의 군사들마저 싸움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사기를 잃는다는 것은 마음을 잃는 것이고, 동시에 마음에서 지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울에 비해 다윗의 최대 장점은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보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마음의 용기와 자신감과 사기를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 번 실패 했어도 용기를 가진 사람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 속 인물 중, 이순신의 용기와 자신감을 생각 할 때마다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드라마에도 나오듯이, 삼도수군통제사인 원균이  이순신을 끌어 내리고 통제사가 되었지만, 칠천해전에서 수백 척의 배를 일본군에게 다 빼앗기고 패배했습니다. 몇 만의 수군을 다 잃어버리고, 열두 척의 배와 천명의 수군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군의 배는 무려 천척에 이르렀습니다. 열두 척을 가지고 어디 천척을 감히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봐도 승리라고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걱정하는 선조 왕에게 이렇게 상소문을 올립니다.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그는 용기와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병사들도 두려움에 빠지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순신의 용기를 보는 순간 그들도 힘을 얻습니다. 이 장군과 함께 싸우다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순신은 열두 척의 배를 이끌고 삼백척이 넘는 일본군과 싸워서 명랑해전에서 세계 해전에 남을 만한 큰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열두 척을 가지고 삼백척의 배를 무찌르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승리가 전쟁의 흐름을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순신은 예수님도 안 믿었는데, 어떻게 그런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역사에 그런 훌륭한 인물이 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처지와 곤경에 처하더라도 용기와 자신감을 잃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용기를 잃는 자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용기 있는 사람은 꿈을 가진 자요 미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실패 속에서도 반드시 상황을 승리로 바꿔 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호기심 많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승에게 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 인생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요? 저를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스승은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스승이 제자를 부르더니 제자에게 조그만 돌덩이 하나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값을 흥정해 보거라. 절대로 팔아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 배추 를 파는 곳에 가서 “이것 사세요.” 했더니 처음엔 아무도 안 쳐다보더랍니다. 이윽고 지나가는 한 사람이 그것을 보더니 “내가 두 냥을 주겠습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팔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와서 “내가 다섯 냥을 주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팔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가지고 귀금속 시장을 갔습니다. 돌덩이를 내 놓고 “사세요.” 했더니 한사람이 보더니 50냥을 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더니 눈이 번쩍하며 “일만 냥을 주고 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팔고 싶지만 팔 수 없었습니다. 스승의 명령이었으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는 최고급 보석상을 찾아갔습니다. “이 돌을 사라”고 했더니 “삼만 냥을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안 판다고 했더니 너무 적은 줄 알고 오만 냥을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돌덩이가 뭔데 오만 냥을 주겠다는지 그는 놀랐습니다. 돌아와서 스승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습니다. 스승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여보게 이제 내가 그 일을 시킨 이유를 알겠는가? 보석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나 가치가 있는 법이야. 인생도 그렇다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거라네.” 이 이야기는 요즘 베스트셀러로 많이 읽히고 있는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란 책의 저자인 ‘탄줘잉’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자신에게 매기는 값에 달려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는 남들의 평가에 의해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무한하므로 자신의 숭고한 가치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연마해야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석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기르면 자신의 가치를 더 분명히 알게 됩니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자신감은 일종의 흡입력입니다. 자신감을 끌어내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 없다고 여기던 일을 큰 용기를 가지고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낙심이 찾아올 때, 용기를 잃었을 때, 열등감과 시련일 때, 또한 골리앗처럼 거대한 세상 앞에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말씀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용기를 달라고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의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다윗의 승리의 두 번째는 바로 자신감과 용기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승리비결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다윗이 가졌던 용기와 자신감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요. 승리에 대한 믿음에서 온 것입니다. 33절에 다윗이 나가 싸우고자 하니까 사울왕은 다윗을 만류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아멘. 이 이야기를 바꿔 말하면 무슨 이야기입니까? “야! 너는 아직 너무 어려 너에 비하면 저 골리앗은 거대한 장수고 전쟁터에서 뼈가 굵었는데, 네가 어찌 나가 싸울 수 있겠니? 너는 안돼. 너는 싸워 봐야 질거야.” 도대체 사울 왕은 누구 편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지 않습니까?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군 중에 부정적인 보고자 10명은 이렇게 보고 했습니다. “우리는 올라가서 승리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한 민족입니다. 그들의 기장이 장대한 한데,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메뚜기 열등감입니다. 자기들을 메뚜기로 비하시킵니다. 마치 사울이 전쟁에 이길 수 없다고 미리 낙담에 빠져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민수기 14장 9절에 보면 “여러분,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마십시오. 그 땅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하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세요.”아멘.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서 믿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는 불의의 소리가 있습니다. “나는 안돼, 나는 못해, 나는 불가능해”하는 소리들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성령이 주시는 믿음의 소리가 있습니다. “너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할 수 있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사울의 부정적인 언사에 대하여 다윗은 그의 경험에서 우러난 승리의 확신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함께 34절부터 37절까지 마지막으로 읽겠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게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다윗이 가진 승리의 확신은 세 가지 조건에 연유한 것입니다. 그 중에 첫째는 그가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들을 몰고 그들을 입에 넣고 빼앗고자 하면, 다윗이 달려가서 사자의 입을 벌려서 양을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을 해치려 하면 쳐서 사자와 곰을 죽였다고 고백합니다. 비록 그는 어리지만 수많은 맹수와 싸우며 연단되고 훈련된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골리앗을 사자와 곰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내가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경험에서 오는 소리입니다.
또 하나는 오늘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사업, 여러분의 직장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업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책임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을 확신했습니다.

그 자신을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여호와께서 건져내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이 블레셋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을 내가 확신하노라” 다윗은 많은 위기 중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도 골리앗에게서 나를 건지실 것을 확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쟁의 승패는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더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누가 하나님의 승리를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 인생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이 종이는 힘이 없습니다. 물에 넣으면 몇 시간 지나면 풀어져 버립니다. 어린 아이도 찢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이 종이를 두꺼운 막대에 감아 붙인다면 함부로 찢을 수 없습니다. 단단한 막대에 종이를 붙인다면 이 종이는 결코 찢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 종이처럼 연약합니다. 쉽게 찢어 질 수 있고, 낙심하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후원자가 되어 주신다면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가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위기 앞에서 그가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패 앞에서 당황하지 마시고,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마시고,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그리고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십시오. 여러분 앞에 인생의 놀라운 승리가 펼쳐질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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