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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 소망을 가지라 (벧전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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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 셀러 가운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교수와 그의 제자 미치 앨봄입니다. 모리는 브랜다이스 대학의 교수로 노년에 루게릭이란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이 병은 근육이 자꾸만 굳어져 마지막엔 심장이 멎어 죽는 불치병입니다. 은사인 모리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수제자 ‘미치 앨봄’ 이 화요일마다 찾아와 대화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길을 가는 교수와 제자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의 내용을 편집해서 앨봄이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이 책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배려하고 활발하게 감정을 나누는 인간, 그리하여 작별 인사의 시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만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주 생동감이 있는 대화들이 많이 오고갑니다. 이런 말이 마지막에 나옵니다. “어떻게 죽어야 할 지를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도 알 수 있느니라”.

  참 소망은 여기에 있습니다.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사는 사람은 땅의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망을 미래에 두고 사는 사람은 현재의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망이 확실하게 마음에 들어 올 때, 우리가 당하는 조그마한 현실은 별로 문제될 게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본은 소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도 바로 이러한 소망이 있었기에 극심한 어려움과 환난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AD 64년 7월 로마시내에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악독하기로 유명한 네로 황제가 지른 불이었습니다. 그는 불타는 로마 도성을 바라보면서 춤을 추며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의 항의가 시작되자, 네로 황제는 백성들을 잠잠하게 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소문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가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 죽임을 당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지금의 터키 지방인 소아시아로 건너가 바위 굴 속에 피신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소망도 없었습니다. 언제 굴에서 나갈지 모를 암담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여기에서 ‘산 소망’ 이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living hope’, 즉 살아있는 소망이라는 단어입니다. 베드로는 소망을 두 가지로 보았습니다. 산 소망과 죽은 소망입니다. 하나님께 두는 소망이 산 소망이라면 사람이나 세상에 두는 소망은 죽은 소망입니다. 모든 희망을 상실한 채 동굴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아직도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있다. 힘을 내라” 고 권면 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에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베드로는 동일하게 외칩니다. “좌절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다. 이제 산 소망을 가지라”.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가지도록,

  첫째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영국에 에드워드 모우트( Edward Mote)라는 목공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반항심,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삶은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가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목사님이 거듭남에 대한 설교를 하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도 거듭나야 한다’ 는 강렬한 소원이 마음속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성령의 역사로 마음의 문이 열려 예수를 영접하고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모우트는 거듭난 후 그의 일기에 기록하기를 “내 망치 소리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그는 완전히 변하여 행복한 목공이 되었습니다. 목공소는 점점 확장되었습니다. 에드워드 모우트는 쉰 다섯 나던 해에, 거듭나게 하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놀라와 자신의 전 재산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그의 사업을 정리하여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던 첫 날, 서른 일곱 살 때 거듭나게 하셨던 주님의 사랑과, 그 소망을 주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썼습니다. 그것이 찬송가 539장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우리에게 이런 소망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에드워드처럼 아무 소망 없이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매주일 교회에는 출석하지만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를 구원의 주님으로 신뢰함으로 거듭남으로 산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옛것은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순간 산 소망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본래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 말라버리는 풀처럼, 떨어지는 꽃처럼 절망을 안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는 순간 우리의 삶이 바뀌어집니다. 절망의 상태에서 소망의 상태로 바뀌어집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에 기쁨 늘 충만하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면 고백이 바뀝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어둡고 절망스럽다 할지라도 다시 사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소망이 있습니다.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동행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붙들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 무력한 자리에 계십니까? 좌절하며 낙담하고 있습니까? 절망하고 있습니까? 거듭남으로 산 소망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업을 잇게 하십니다
  대구에서 30년 동안 믿음 생활한 69세의 김창제 집사는 교회의 기도모임에 가려고 전철을 탔다가 지하철화재 사고를 당했습니다. 김집사는 출입문이 굳게 닫혀 나갈 수 없는 상황으로 불타고 있는 전동차에 갇혔습니다. 부인 석태순집사는 김집사에게 여러 번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전화가 연결되었는데 김창제 집사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렸습니다. “나 하늘나라로 먼저 올라가네. 할렐루야 아-멘”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습니다. 전화 통화된 지 다섯 시간 후 성경책을 꼭 품은 채 눈을 감은 남편의 시신을 부인 석집사는 병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김창제 집사와 같이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하늘나라에 먼저 올라가네 할렐루야 아멘” 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약속 받았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는 산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믿는다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안식처인 집을 빼앗기고, 피땀 흘려 일군 재산을 탈취 당하고 생명과도 같은 기업을 빼앗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산 소망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의 기업을 잇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는 약속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을 위하여 빼앗기지 않는 기업, 흔들리지 않는 기업, 영원한 기업을 하늘에 준비시켜 놓으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확실한 보장을 받은 우리들은 어떤 어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음으로 산 소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능력으로 보호하십니다
  19세기의 명 설교가였던 스펄전목사에게 한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인의 모습으로 사는 가증스러운 위선자 같습니다.” 그러자 스펄전목사는 “소망이 없다면, 교회에 나오지 말라” 고 합니다. 부인이 대답합니다. “안됩니다. 지금도 소망이 없는 것 같아서 불안한데, 교회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스펄전목사는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주면서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남아있는 소망을 나에게 파십시오. 그리고 이제 교회에 나오지 마십시오.” 그러자 부인이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안됩니다. 비록 내가 가지고 있는 소망은 보잘 것 없지만, 수백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절대로 소망을 팔 수는 없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스펄전 목사가 말합니다. “맞습니다. 지금 부인은 수백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팔 수 없는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과 상관없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5절에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의 말씀은 ‘보호하심을 입고 있나니’ 가 정확한 번역입니다. 즉 하나님의 보호는 과거에 한 번 임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보호라는 말은 군대용어입니다. 군인들이 부대를 보호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능력으로 성도들을 현재도 보호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절대로 우리의 소망을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부적이고 외부적인 위험들과 공격들로부터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산 소망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산 소망은 모든 고난을 극복하게 합니다. 산 소망은 위축된 신앙을 회복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부디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산 소망으로 환란도 이기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며 고통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영광과 즐거움을 바라보며 어려움 중에도 산 소망을 가지고 언제나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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