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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고후 1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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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후 12:5)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자랑하는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때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격 또는 심리 상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자랑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자긍 하는 표현 중 하나이기에 자랑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능적 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극한 열등감에서 자기 자신을 감추거나, 은폐하려는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자신을 과장함으로 자랑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자랑한다는 것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왜' 자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 가운데서 한 인물을 대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사도로서 세계 각처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바울'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자랑할 수 있는 많은 요인들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히브리인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랑스러운 혈통과 가문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고후 11:22). 또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유대인의 전통적 율법을 배웠고,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심오한 헬라 철학을 배운 학문과 학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위치와 명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 외에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성실한 믿음의 삶과, 자랑할 만한 깊은 영적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주리고, 목마르고, 매맞으며, 갖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전파를 위해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열심을 가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누구보다도 충성하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비한 종교적 체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령한 환상을 보았고, 또 셋째 하늘에 낙원에 이끌려 간 신비로운 체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상하게도 그가 자랑할 수 있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결코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부끄러운 것, 즉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없는 약점을 자랑한 것입니다.
  바울은 신체적으로 약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간질병'이나 '만성 안질'이라고 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이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었기에 '사탄의 가시'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가 너무 고통스러워 자신으로부터 떠나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씩이나 간절히 간구 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자랑할 수 있는 것들보다 자신의 가장 약한 것, 부끄러운 것, 수치스러운 것을 자랑하는 바울의 모습은 우리에게 귀중한 영적 깨우침을 줍니다. 바울은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고 했습니다. 이는 "나를 위해서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했습니까? 왜, 그의 약함인, '육체의 가시'를 자랑했습니까? 우리는 이 자랑의 이유를 찾음으로써 깊은 영적 깨달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깨달음은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약함이 스스로를 높이는 '자고성'을 극복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는 주님이 '너무 자고(自高)치 않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자고성(自高性)은 인간을 인간 되지 못하도록 하는 무서운 병균과 같습니다. 자고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도록 하며, 진실 되지 못하도록 합니다.
  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소극적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바로 보고, 하나님 앞에서 찾아야 할 참된 모습을 바로 찾게 하는 겸손을 만들어 줍니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은 자신에 대하여 진실 된 긍정이고 그 긍정에 적극적이게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높이는 것은 자신을 교만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찾을 수 있는 인간의 참된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고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바로 깨닫는 것은 자고성을 극복하게 하여 자기 교만에서 오는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깨뜨려 줍니다.

  약함이 우리를 온전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가시를 없애 주기를 세 번씩이나 간구 하는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9절)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짊어진 육체의 아픔 때문에 교만하여지지 않고, 그 아픔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과 함께 함으로써 은혜 안에서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느끼지 못하기에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편안함, 부요함, 좋은 환경이 오히려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바울이 갖고 있던 육체의 가시처럼 사람을 약하게 하는 요소들이 오히려 인생을 순수하고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들기도 합니다. 약함이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게 해주는 것을 봅니다.

  헬렌 켈러(Hellen Keller)는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삼중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약함의 의미와 가치를 바로 인식하였기에 그 약함 속에서 인간 생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아인슈타인(A. Einstein)은 대학입시에 떨어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끄러운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 약함을 바로 수용하는데서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링컨(A. Lincoln)은 초등학교를 아홉 달밖에는 다니지 못했지만, 자신의 약함인 불행한 환경 속에서 인간에 대한 참된 질문을 할 수 있음으로, 바른 지도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흑인 해방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온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온전함은 온전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가능합니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온전함을 이루게 합니다. 나의 약함이 무엇인지 깨닫고 인식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약함이 우리를 강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10절)고 하셨습니다.
  약함을 깨닫고 인식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강함이 인간의 강함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의 약함이 있는 그곳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시고(사35:3),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신다(사40:29)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네 가지 P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Pardon(용서), 둘째는 Purpose(목적), 셋째는 Peace(평화), 넷째는 Power(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용서를 체험하게 하시고, 삶의 목표를 간직하게 하시고, 평화를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며, 강한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약함을 바로 인식하고 깨닫는 사람에게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강함을 간직할 때 인간은 강한 인간이 됩니다. 하나님의 강함은 인간으로서의 약함을 깨닫는 데서 경험됩니다.

  화니 제인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여사는 금세기 미국이 낳은 위대한 찬송작가입니다. 생후 6주되던 때, 그녀는 감기로 인한 고열 때문에 눈언저리에 생긴 종기를 치료하던 중, 의사의 실수로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암흑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던 그녀는 31세 때 자신의 약함과 한계 앞에서 자신을 온전케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녀의 영혼에 빛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다시 태어나는 중생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녀는 약함 속에서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기에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며 주님의 은총을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찬송 204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는 구원받은 자로 약함 중에 함께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감격을 고백한 찬송입니다.
  특히 43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는 자신의 한계성을 실감하며, 약함 중에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를 체험하고 지은 찬송입니다. 이 찬송시는 1874년에 겪은 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어느 날 5달러 정도의 돈을 채워서 쓸 일이 생겼지만 그 돈을 마련해서 채울 만큼의 시간이 없었습니다. 5달러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약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54세가 되기까지 일생을 그렇게 살아왔듯이, 필요한 5달러를 위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짧은 기도는 어떤 방문객의 초인종 소리에 중지되었습니다. 그 방문객은 다만 크로스비 여사의 집 앞을 지나다가 유명한 찬송작가인 그녀를 뵙고 인사만 하고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짧은 만남 후 그 사람은 작별인사와 함께 악수를 하고 크로스비 여사를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다녀간 후 크로스비 여사의 손에는 5달러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무력한 자신을 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뜨겁게 체험한 것입니다. 크로스비는 너무나 놀랍고 감사하여 그 감격을 시로 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찬송434)
  스스로 높아질 수 없는 약한 자신을 온전케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감격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약함 가운데 있습니까? 그 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는 나의 강함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게 하는 하나님의 강함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자랑할 수 있는 깊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약함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약함이 내게 어떠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바로 보아야 합니다. 나의 그 약함을 인정하므로 자신을 무지하게 만드는 자고성을 무너뜨립시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할 수 있음으로 그 속에서 찾아야 할 나의 올바른 모습을 찾아냅시다. 바로 나의 약함, 그곳에서 만나주시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하십시다.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에 나의 약함을 시인하고 순종함으로, 그 속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십시다.
  약함을 자랑할 수 있음으로 자고성을 극복하여 온전하고 강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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