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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한 남성이 있는 교회 (민 1:1~4, 고전 16: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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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총회가 정한 남선교회주일입니다. 모든 남선교회 회원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며 우리 남선교회들이 전도하며 봉사하는 일에 더욱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최근 우리 국회에서는 호주제 폐지가 통과되어 여성의 지위가 많이 확보되고 가정에서도 남자들이 호주라는 이름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도 부모의 성을 선택할 권리를 가져서 형제간에도 성이 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느 신문에선 “여성의 능력과 지위가 향상됨에 따라 남성 위주의 전통적인 결혼 관념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하였습니다. 전통적인 결혼 관념은 무너져도 성경적인 결혼 관념은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지위가 함께 보존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 인구 중 여성은 52%입니다. 남성이 48%입니다. 수가 적은 남성이 움직이는 세계적인 힘은 엄청납니다. 그러나 소리 없이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의 힘도 무시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서 남성의 역할이 적어지면 안 됩니다. 역시 남자는 남자입니다. 남자가 강해야 합니다. 너무 기죽이지 말고 기 살려주어야 합니다.

  한강을 한강(恨江)이라고 합니다. 한 많은 강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강에 몸을 던지는지 몰라요. 빚에 시달려, 명예 실추 때문에, 하루 1명꼴로 한강에 투신한다고 합니다. 한강에 투신하는 사람 가운데는 남성이 전체의 90%이고 50-60대의 중환자가 많습니다. 유명인사들은 명예 탓에, 서민들은 생활고 탓에 몸을 던집니다. 이런 때에 사회는 남성들의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남성의 85%가 가부장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사내대장부의 콤플렉스입니다. 생활의 책임을 짊어져야 합니다. 사소한 불평이나 고통내색, 걱정거리를 표현하지 못합니다. 울고 싶어도 “남자가 운다”는 말 때문에 울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스트레스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남성들에게 교회는 위로와 힘이 되어야 합니다.
  중년남성들의 젊어지기 붐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최근 노화방지 클리닉에서는 유행 ‘보톡스’ 요법으로 얼굴 근육 일부에 주사를 놓아 근육을 당겨주어 주름을 없앤다고 합니다.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기억력이 회복된다고 하여 주사를 맞는다고 합니다. 기억력이 없어지는 것도 좋은 일인데 말입니다. 중년 남성들 사이에 첨단 의학 기술로 신체 나이를 되돌리려는 ‘안티 에이징(Anti Aging 노화 방지)’이 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외형적인 노력이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힘을 키워야 합니다. 외형적인 힘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힘을 키워야 합니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의 땅이라고 우기지 못하도록 힘을 키워야 합니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지 못하게 힘을 키워야 합니다. 분단국가의 설움을 말끔히 날려버릴 수 있도록 힘을 키워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우리 힘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힘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세상입니다. 힘이 없으면 결국 스스로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성들에게도 이런 힘이 필요합니다. 힘이 있어서 누구도 얕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힘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단어는 ‘차일’(chayil)인데 ‘추을’(chuwl)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추을’이란 말은 진통이나 출산을 의미하는 구약성서의 단어입니다.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진통과 같은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출산과 같은 고통 끝에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열대 아메리카산인 짖는 원숭이가 정글에서 가장 소리가 큰 동물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힘이 센 것은 아니다”. 소리가 크다고 힘이 센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소리가 없는데서 큰 힘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포스코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곳곳에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We move the world in silence)고 써놓았습니다. 이건 포스코에 써놓을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에 써놓아야 할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고요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고요합니다. 겁이 많은 개가 크게 짓습니다. 우리가 소리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강력한 힘입니다.
  우리 남선교회 회원들이 힘이 있는 남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세 가지 힘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를 강하고 지혜롭게 살기 위하여 필요한 세 가지 힘을 잘 이해하고 힘을 키우기를 바랍니다.

첫째, 영력이 강한 남성

  영성은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하나님의 숨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위대한 교부 성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성이란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영성이란 ‘그리스도와 일체된 삶’입니다. 영성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게 하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삶의 방법과 생각을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주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닮아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영성이란 성령 즉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영성적 힘이 제일 먼저 필요합니다. 영성적 힘이 영력입니다. 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미래인이 추구하는 영성의 제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어야 세상에 대하여 영성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앙드레 말로는 “21세기는 종교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요즘, 현대 의학의 가장 뚜렷한 흐름의 하나는 기도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의과대학에서 기도와 영성을 가르치는 학교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기도하며 치료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정보사회는 양극화 시대입니다. 양극화란 경제뿐만 아니라 영성도 양극화됩니다. 이런 영성의 양극화 시대에는 결국 영적인 그리스도인과 이름만 가지고 있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nominal Christian)으로 크게 나누어질 것입니다. 칼 라너(Karl Rahner)도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오늘날에는 신비주의자가 되든지 아니면 불신자가 되든지 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생명을 얻는 영성이든 아니면 생명 파괴적 영성이든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한국 교회의 주제는 “예수 믿고 천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샌가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로 변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영적인 관심으로 교회의 관심이 변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 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삶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머리 속에 있는 영성이 아니라 삶이 영성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삶이 영성적이 되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영력을 키우는 방법은 기도와 말씀과 예배와 봉사 등입니다.
  삼손은 성경에 나온 인물 가운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던 남성이었지만 자기의 충동을 통제할 만큼 강인하지 못했습니다. 외형적인 힘은 있었지만 내면적인 힘이 없었습니다. 외형적으로 강한 자가 내면적인 약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형 인간이 되어야 하고 영성적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지력이 강한 남성입니다.

  현대를 살기 위해서는 지식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지식사회 혹은 정보사회라고 하는 현대사회는 과학과 기술, 정보와 지식으로 대변되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 살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지식 사회의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지식은 국경이 없습니다. 둘째는 지식은 상승 이동이 쉬워집니다. 셋째는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는 지식근로자 혹은 지식기술자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입니다. 지식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정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식사회입니다. 지식이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가져야 살 수 있습니다. 힘도 이전에는 물리적 힘을 말하다가 이제는 지식의 힘을 말합니다. 힘도 이동된 사회입니다.

  인간의 의식도 지정의(知情意)로 말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지성입니다. 정신 활동의 근본 기능이 지성, 감정, 의지인데 배우는 것은 지적 요소를 충족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어디까지나 미완성적인 존재이므로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인간이야말로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미숙한 존재입니다.

  유대인들은 배움을 강조했습니다. 학자 라무단은 “학자는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배우는 자가 가장 현명한 자라고 합니다.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일입니다. 성경도 배움을 강조합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서를 읽어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신 17:19)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하십니다. 바울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빌 4:9)고 합니다.

  영성가 리처드 포스터는 ‘영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Discipline)이란 책에서 “묵상은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칼 바르트도 “한 손에 성경, 한 손에 신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만 가지고 있으면 부족합니다. 중요하긴 하지만 신문이 있어야 성경도 가치를 발하게 됩니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습한 제자였습니다. 그는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전 지식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신자들을 박해하는 도구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의 지식은 신앙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의 지식은 신앙을 만나 비로소 온전한 지식이 된 것입니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에서 학습할 때에 18년 동안 하였습니다. 처음 6년은 자연과학을 공부합니다. 중간 6년은 인문과학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6년은 신학을 공부합니다. 신학은 세상의 학문을 공부한 다음에 했습니다. 세상의 지식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13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것 즉 신앙과 아는 일 즉 지식이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됩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종교 없는 과학은 위험하고 과학 없는 신앙은 맹목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앙과 과학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폴 투르니에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라는 책에서 “말을 통해 남자는 생각을 표현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여자는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말한다”고 합니다. 남자들의 말은 지식 전달이 많습니다. 그 것이 남자들의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식을 더 많이 쌓아야 합니다.

셋째, 체력이 강한 남성

  현대 사회에서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관심의 하나는 건강입니다. 건강하면 굉장한 관심을 가집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은 체력입니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체력은 곧 생명입니다. 온 천하를 다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류가 직면하게 될 가장 큰 폭발의 첫째는 인류의 수명의 폭발이며 둘째는 정보의 폭발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남자가 72.8세이고 여자가 80세입니다. 평균수명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21세기 삶 보고서’에 의하면 2025년 인류의 평균 수명은 73세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합니다.
  효경에는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孝之始也)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몸을 헐어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하물며 우리에게 이 좋은 육체를 주신 하나님께 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신 몸을 성령의 거룩한 전인 줄로 알고 육체를 보존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19에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잘 보존해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롬 12:1) 자세가 육체를 잘 보존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보존은 예수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살게 하는 것입니다(갈 6:17). 성경대로 살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은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하-8)고 합니다. 우리가 육체를 위하여 연습해야 합니다. 운동해야 합니다. 바울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유익합니다. 자신의 체력과 형편에 맞는 적절한 운동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40대 남자는 여자에 비해 사망할 확률이 3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40대만 지나면 몸을 조심하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을 위해서,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우리나라의 정상 여성 85%가 자기가 비만이라 생각한답니다. 비만 남성 85%가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꼭 건강검진도 받으시고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특출한 경제 최고경영자(CEO)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철인처럼 일을 합니다. 체력을 키우기 위하여 자기 단련에 충실합니다. 그래서 엽기적인 체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들은 괴력의 소유자입니다. 한달 평균 30권 이상의 책을 읽습니다. 독서는 자기 계발의 필수과목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 정신 자세가 탁월한 리더를 만드는 것입니다. 체력을 겸비한 남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어떤 물리학자가 만일 1그램 물질 속에 있는 에너지를 완전히 전환하면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1천 5백 명을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까지 끌어올릴 수가 있다. 5천 5명의 사람들에게 각각 4리터의 물을 끓여줄 수 있다. 1만 5천명 규모의 도시에 1년 동안 사용하는 양의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에너지를 모아 힘을 만든다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교회 남선교회 회원들의 힘만 모아도 엄청난 폭발력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의 힘만 가지고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득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힘을 가진 남선교회 회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남선교회 회원들이 남자같이 강건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외형과 내면이 함께 강한 남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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