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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덴의 회복 (행 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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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결국은 구원이며 구원은 자유요, 인간됨의 회복이자 또한 하나님의 나라 회복인줄 믿습니다.
성자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위한 것인 줄 믿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 역시 하나님의 나라회복을 위한 것이며 목회자의 사역의 목적도 역시 이에서 벗어 날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을 세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에덴이고 또한 신약의 교회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거기 임하셨고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함으로 인간은 그 낙원을 잃었다.(失樂園)

구원이란 곧 에덴의 회복이며, 교회란 에덴을 회복하는 곳이요, 복음화란 에덴 화를 의미하며. 선교란 에덴의 확장인 것이다. 따라서 목회란 에덴의 복원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에덴이란 어떤 곳일까? 에덴의 뜻은 기쁨이라고 합니다.

1. 생명을 회복하는 것이다.(2:10)

에덴은 물 근원이 있었다. 물이 없으면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에덴을 회복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물과 피는 인간의 참된 생명의 근원입니다.
생명은 천하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입니다.
요7장에는 성령의 충만함 역시 생수의 강이라고 묘사하였습니다.
십자가의 피의 대속과 성령의 충만함 만이 에덴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니다.

2.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2:11-14)

에덴은 강이 발원하는 것이지만 거기서 갈라져 강물은 네 근원으로 갈라진다.
강은 생명인 동시에 또한 사랑이다.
①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신분이나 학력이나 나이를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자신을 송두리 체 주어버린다. 자신을 주어 생명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②물은 자신이 더러워짐으로 사람들의 추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해준다. 만일 물이 자신이 더러워지기를 거부한다면 인간은 얼마나 더러운 곳에서 살아야 할까?

③물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물은 그릇에게 나에게 맞추라고 하지 않는다. 큰 그릇이든 작은 그릇이든 그릇에 자신을 맞춘다.

●사랑에는 헌신과 낭비가 수반된다. /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려 주님께 부을 때 다른 제자들은 그를 허비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사랑은 거룩한 허비다. 무엇이든 아깝다고 여기면 이는 이미사랑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주고도 아쉬워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본질은 헌신이요 낭비이다.
에덴에서 발원한 이 강은 실개천이지만 이강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프라데, 네 강으로 퍼져나간다. 이 이름의 뜻은 ‘퍼져나간다’, ‘내어 뿜는다’, ‘열매를 거둔다.’ 는 뜻이다.
이 모두는 넘쳐흐르는 강이었다.

▶이강의 의미에서 보듯 에덴은 절대로 경제논리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네 강은 철저하게 경제논리로부터 자유 하는 강이다.

▶마19:23-24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부자 되기를 힘쓰지 말라고 하였다.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피력하셨다.
경제논리에 지배를 당하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즉 경제논리에 지배를 받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천국은 사랑의 논리에 의해서만 천국을 회복할 수 있다.
주님께서 지셨던 자기 헌신과 자기 낭비의 십자가위에서 들어났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위에서 한 강도에게 낙원을 약속하셨다.
계2장에 첫 사랑을 회복할 때 이 낙원을 주시겠다고 에베소교회에 약속하셨다.

3. 울타리를 회복하는 것이다.(2:8)

에덴은 동산이라고 하였다. 동산이라고 하면 한 작은 동산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히브리어로는 동산을 <칸>이라고 표기되었다. 칸이란 영어성경에 Garden이라고 번역되었다. 庭園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울타리입니다.
울타리 없는 정원은 결코 정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들판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에덴을 회복한다는 것은 바로 울타리를 회복하는 것이 된다.
울타리의 역할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保護와 구별이다.

▶ 울타리는 보호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그 울타리는 이중 평가를 받게 됩니다.
초원에 양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을 때 이리가 달려와 양의 엉덩이를 물고 늘어진다.
이때 총살같이 달려들어 이리로부터 양을 구해내기 위하여 목자의 손에 막대기는 휘 둘린다. 이때 목자는 양에게 그렇게 고마울 수 없는 생명의 은인이지만 이리에게는 자기 생존을 위협하는 폭도에 지나지 않는다.
한 목자를 놓고 이리와 양은 이처럼 상반된 평가를 합니까?  이는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소속집단에 따라 사고방식이 다르게 나타난다.
여기 제가 목사로 있지만 상반 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따라서 울타리는 구별의 의미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방식과 사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수 없다. 세속적인 방식과 하나님 나라와는 반드시 울타리가 있다.
이 울타리를 상실하면 에덴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울타리를 회복할 때 비로소 낙원이 회복되는 것이다.

4. 진리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다.(2:11-12)

에덴에는 금 곧 정금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었다.
이는 진주를 의미한다. 요한 계시록 21:18-21에도 옥으로 가득하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낙원이란 절대적 가치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교회와 목회의 목표는 진리의 절대적 가치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5. 봉사를 회복하는 것이다.(2:8)

에덴이란 기쁨이란 뜻이다. 이 기쁨은 말초신경적인 기쁨이 아니라 봉사를 통한 내적이고 영적인 기쁨이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섬김을 받으려하심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다. 봉사란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귀찮은 것이다. 그러나 그 달갑지 않은 봉사 가운데 기쁨이 자리 잡고 있는가? 왜 봉사 속에서만 진정한 기쁨이 회복되는가? 봉사 섬김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 은혜가 임하도록하신 것이다. ①목회란 봉사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②교회란 봉사하는 곳이다. 봉사를 하고도 자기이름을 숨기는 ③④익명의 봉사를 할 때 에덴은 회복된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기쁨의 에덴은 상실하게 된다. 교회는 익명의 봉사자로 세워질 때 거기에 에덴이 회복된다.

6. 선악과를 회복하는 것이다.(2:9)

선악과가 없는 에덴은 에덴이 아니다.
창2:17 선악과를 먹는 날에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
에덴에서 선악과를 제외하고는 다 마음대로 먹게 하셨다. 아담이 어떤 과일을 먹든지 자유다. 그 과일나무 앞에서는 아담과 하나님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담과 하나님의 명백하게 차이를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는 무엇인가? 이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다.
<만일 먹는 날에는 죽는다.> 이 나무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창조주요 인간은 그의 명령을 순종해야하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표이다. 그 표적이 에덴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이 선악과를 주저 없이 삼켜버리고 말았다. 인간과 하나님의 차이를 없애버린 것이다. 이것이 낙원을 상실한 원인이다. 에덴의 회복은 곧 선악과의 회복이다. 생명 사랑 울타리 가치 봉사 선악과의 회복이 곧 에덴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에덴을 만드실 때 거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시는 일부터 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인 되심을 일깨우시고자 함이다. 우리교회와 저의 목회의 그림은 에덴의 회복에 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유병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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