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오직 믿음으로 (마 15:21~28)

  • 잡초 잡초
  • 248
  • 0

첨부 1


  어느 교회에 믿음이 좋고 금실도 좋은 집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8년이 지나도록 자녀가 없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문제였습니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봤지만 두 사람 모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녀를 얻기 위해서 8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 문제를 놓고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8년 만에 아기를 선물로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아기를 받아 든 두 사람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기는 중증 뇌성마비였습니다. 그 때부터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몇 날 며칠을 그들은 그렇게 아기를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아기는 더 이상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찌르는 가시였습니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울다 지쳐 쓰러진 아기 엄마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이 아기를 데리고 팔 년 동안 사방을 헤매고 다녔단다. 누구에게 이 아기를 맡기면 좋을까? 누가 과연 이 아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두루 찾아 헤매다가 결국 너를 찾았단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너라면 충분히 이 짐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제 이 아기를 너에게 맡기는 거란다.”

  사람들은 그 형태는 각기 다르지만 나름대로 삶을 힘들게 만드는 가시들을 다들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 등장하는 가나안 여자에게도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써 보았습니다.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딸의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녀는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왔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귀에 신기하고 놀라운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셨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져서 사람들이 데리고 간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그 예수님이 다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귀가 확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귀신 들린 자도 고쳐 주셨다는 소리에...

  다만 문제가 있다면 유대인들은 선민 의식이 지나치게 강해서 동족이 아니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분도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을까?’ ‘그분이 나같은 사람을 만나 주실까? 가나안 여자인 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예수님을 만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그녀는 더 이상 주저하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듣자하니 그분은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의 구별 없이 베푸신다고 하지 않던가?’ 예수님이 그녀가 사는 두로와 시돈 지방에 오실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날을 정해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몹시 지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소망이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지방에 그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달려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마치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인자한 얼굴 모습을 뵙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딸을 고쳐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외쳤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녀는 아첨하는 말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확신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떠도는 소문에는 예수님을 헐뜯는 이야기도 많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을 기다리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예수님을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너무나도 차갑게 그녀를 대하셨습니다. 아니 대꾸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한 말씀만 해 주셔도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 한 마디 말씀을 그렇게 간절히 기다렸는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눈물로 호소해도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부르짖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주 차갑게 외면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보다 못해 그녀를 거들고 나서지 않았습니까?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그러자 예수님은 마지못해 한 마디를 뱉으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듣기 민망한 말씀이었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녀와 그녀의 딸이 사람이 아니고 개라는 말입니까? 차라리 듣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넋을 잃고 서 있는 그녀의 귓가에 그 충격적인 말씀이 계속 맴돌았을 것입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어쩌면 그렇게 차가우실 수 있습니까? 어쩌면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는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적어도 예수님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잔뜩 기대했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심하게 차별하실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녀는 차라리 포기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입니다. 귀신 들린 딸을 가진 어머니입니다. 딸을 고치기 위한 일인데 어떻게 그 정도로 포기할 수 있습니까? 딸을 고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딸을 위하여 어머니로서 그 정도 모욕쯤은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개’라는 말을 하시면서 특이하게 애완용 개를 가리키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천덕구러기 개가 아니라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런 개를 가리키는 단어를 쓰셨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이방인이라고 해서 무시하시거나 업신여기신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그녀를 시험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녀도 예수님의 생각을 어느 정도 헤아렸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그녀는 예수님에게 그런 부스러기 은혜만 주셔도 고맙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찌꺼기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그와 같은 간절한 호소는 예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그녀에게 놀라운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요즘 안기부 도청 X-파일 문제 때문에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릅니다. 여, 야가 불법 도청 문제와 관련해서 각 당의 이해 득실을 따져가며 상대를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급기야 전직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워낙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장차 그 불똥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일이 믿음 없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불법으로 도청을 했고, 또 결과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철저히 배신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지난 정권 때 국정원 원장이나 정통부 장관이 뭐라고 했습니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광고까지 냈습니다. “휴대전화 도청은 하지도 않았고, 또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역 감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불법 도청도 별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진짜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믿음 없음입니다. 정치라는 것도 원래 믿음을 기초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 활동이라는 것도 신용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습니까? 언제부터인가 스승이 제자를, 제자가 스승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왜 교회마저 이 모양입니까? 교회들이 크고 작은 문제를 어디로 가지고 가고 있습니까?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심지어 법정으로 문제를 가지고 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주님을 믿는 믿음이 최우선적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 믿고 맡김으로 말미암아 소원을 온전히 이룰 수 있었던 그 가나안 여인처럼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오직 믿음으로 주님 앞에 맡김으로 말미암아 그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강을 오늘 여기서부터 마음껏 받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 석 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