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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롬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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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광복된 지 60주년이 되는 기념주일이다.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겪은 세대의 숫자가 줄어간다. 세대가 변해도 우리는 이 아픈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예루살렘에는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600만 유대인을 추모하는 기념관이 있다. 그 이름은 ‘야드바심’이다. 기억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민족이 참혹한 학살을 당한 것을 기억하고 절대 잊지 말자는 뜻으로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기억은 우리를 구원하고 망각은 우리를 다시 포로가 되게 한다."
물고기의 지능은 0.4밖에 되지 않고 기억은 3초밖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불과 수초 전에 물고 혼났던 미끼를 또 다시 물어 낚시에 걸린다고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의 결국은 죽음인 것이다.

성경을 보라. 구약은 출애굽의 사건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내용이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다. 과거에 도우신 하나님의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말씀이다. 요단강을 건넌 후에 돌탑을 쌓게 한다. 후손들이 묻거든 그들에게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고 전하기 위해서 그렇다. 유월절이 되면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다. 지난날 역사 속에 도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신약을 보라.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말씀이다. 성찬예식을 거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예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사건을 기억한다. 이같이 구약의 출애굽과 신약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기억한다. 그런데 막연한 기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는 힘이 있다. “기억은 우리를 구원하고 망각은 우리를 다시 포로가 되게 한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함으로 우리에게 계속해서 부활의 사건이 우리의 현장에서 일어나게 될 줄로 믿는다.

오늘 광복 60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해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지난 날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미워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힘을 모아서 일본 사람들을 향하여 보복을 감행하자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광복의 새 아침을 맞게 되었는가? 이것을 꼭 기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 나라가 해방의 새 아침을 맞게 되었는가? 어떻게 잃어버렸던 통치권, 영토, 이름과 우리의 말을 되찾을 수 있었는가? 이것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1910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한일합방의 조약이 맺어진다. 나는 첫 번째 조항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내용은 이렇다.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 영구히 일본국 황제에게 양여”한다고 했다. 대한제국의 주권과 영토, 국민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일본 왕에게 넘겨준다. 그 댓가로 조선의 황실과 친일파의 영예와 생활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법의 보호 밖으로 쫓아낸 것이 바로 합방 조약이다.

이러한 조약이 이루어지자 온 세계가 우리나라에게 불리하게 발언한다. 영국은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미국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인의 행복을 위해서 애를 쓴다.” 러시아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독일은 “앞으로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면 앞으로 경제적인 발전은 의심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실제로 경제적인 부흥을 가져왔는가? 그렇지 않다.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많은 화전민들이 생겼다. 땅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산비탈에 농사를 어렵게 짓는 화전민들이 그렇게 많이 생겼다. 완전히 거지같이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에 대해서 항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박해를 가했다. 그리고 목을 베어서 그 목을 빨래 줄에 걸어 두고서 우리 민족을 위협했다. 이것이 바로 지난 36년간 우리가 고통받은 역사이다. 어떻게 이 역사를 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일본의 억압이 심해지자 교회를 중심해서 항일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왜냐면 합방이 시작되었을 때에 우리 나라에는 이렇다할 민족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적인 연합이 어려웠다. 바로 이 때에 교회를 중심해서 전국적인 조직망으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던 초대 조선 총독으로 임명된 데라우찌는 교회에 핍박을 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일본의 천황의 사진에 절하게 강요한다. 교회가 이 의식에 따라오지 않으니 그 때부터 교회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감리교회는 연합해서 독립운동을 펼쳐 나갔다.

3.1운동의 33인 대표 중에 9명이 감리교 목회자이었다. 대한민국 건국훈장은 총 5등급으로 분류된다. 1등급이 대한민국장이다. 대한민국장을 전체 30명이 받았는데 그 중에 10명이 감리교인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김구, 민영환, 이승만, 이승훈, 신익희, 이준, 이시영, 안창호, 오동진, 서재필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광복의 새 아침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이다.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항일 운동을 하다가 법정에 섰다. 역사책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기 범죄인의 얼굴은 하나도 없다. 악질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요양과 인품의 고상으로 해서 그 생활이 한없는 순도와 성실로 차 있으며 신앙의 돈독과 경건의 깊이로 선교사들에게서나 겨레에게 친숙히 알려져 있는 사람들의 일군 밖에 거기 눈 띄는 사람이 없다.” 법정에 섰던 수 많은 사람들은 신앙이 돈독하고 경건의 깊이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광복의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된 뚜렷한 이유를 찾는다. 그 대답을 우리는 본문에서 찾는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버림받지 않는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유대인들이나 하나님의 백성이지 우리가 무슨 하나님의 백성인가? 이스라엘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나 하나님의 백성이지 우리가 무슨 하나님의 백성이란 말인가? 얼마든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중요한 점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디에 태어났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나면 무조건 그 사람은 미국 시민이 된다. 미국 백성이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 사람은 혈통주의를 따른다. 어디에서 태어났든지 부모가 한국 사람이면 대한민국 백성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뜻에 통치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신명기 말씀을 보라.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였느니라.” (신 26:18)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느냐 아니면 거절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책임을 져 주시는 것이고, 거절하면 다른 나라에 빼앗겨서 자신들의 통치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닌가?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때가 찼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전하셨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은 곧 하나님의 나라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나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그 백성을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 7:23)

이 약속은 옛날 약속이 아니다. 일제시대에도 유효한 약속이요, 이 시대에도 유효한 약속이다. “오늘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 까지이니라.”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복을 주시겠다는 그 약속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 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우리 민족의 통치권이 일본에 완전히 빼앗겼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왕도 없고, 대통령도 없었다. 그러나 많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일본의 통치보다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 왜 이 나라가 빼앗겼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본의 통치를 따랐지만 항일투쟁을 했던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했던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홀로 남아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직도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남겨두신 7천명이 있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 광복의 새 아침을 맞이 하였다.

바로 여기에 우리 민족의 장래가 달려있다.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통치하고 있는가? 물질이 우리의 마음을 통치할 때에 개인, 가정, 민족의 장래가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세상이 주는 권력이 우리의 마음을 통치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민족이 살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철저히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 나라를 살린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기에 이 땅에 광복의 새 아침이 왔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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