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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7대 표적 (5) : 물 위를 걸으신 기적 (요 6: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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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흥미롭고 뜻있는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씨가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두 아들과 함께 헤엄쳐서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횡단한 일입니다. 정말 대단하죠? 하지만 세계적인 수영 선수라도 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물 위로 걷는 것’입니다. 아무리 수영을 잘 한다 할지라도 물 위로 걷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게 자연의 법칙이요,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성경 보니까, 예수님이 그 일을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군중들이 바라는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영적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 홀로 기도하러 산에 가십니다. 한편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갑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따로 떨어져 한참 항해하는데 큰 풍랑이 닥쳐옵니다. 그들은 난파지경에 처해 무척 괴로워합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워 떱니다. 예수님이 다가오셔서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심으로 그들을 안돈시켰고, 결국 제자들이 탄 배는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역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7대 표적 중 다섯 번째 ‘물 위를 걸으신 기적’입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도 기적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거센 풍랑이 닥쳐오는 인생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지 그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1] 인생 항해에 닥쳐오는 풍랑 : 고난

흔히 인생을 가리켜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비유합니다.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바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항상 순풍만 부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생 항해가 어려운 것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물론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동시에 우리 인생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제자들 중 여러 명이 어부 출신입니다. 기술도 있고 경험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돌풍이 불고 풍랑이 일자 꼼짝없이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갈릴리 바다는 본래 ‘호수’입니다. 가로(東西) 13 km, 세로(南北) 21 km로 하도 커서 보통 ‘바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주위의 지형이 특이합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골짜기가 있습니다. 수면은 지중해보다 200 m나 낮습니다. 그러니까 꼭 웅덩이처럼 되어 있습니다. 밤이 되면 산 쪽은 기온이 낮아지고, 바닷물은 상대적으로 기온은 높은 채로 있다 보니까, 그 온도차로 인해 때때로 돌풍이 불게 됩니다.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언제 바람이 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단 바람이 불면 풍랑이 대단합니다.
그날도 그랬던 겁니다. 본문 16절~18절 보면 당시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18절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이 사건이 마14:22 以下, 막6:45 以下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마14:24을 보면 당시 상황을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인생에 대해 어떤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① 고난은 누구에게나 닥쳐온다는 사실입니다.

기술이 있고 경험이 많은 노련한 어부들에게도 풍랑이 닥쳐왔습니다. 베테랑 어부라고 바람이 비켜가지 않습니다. 초보자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초보자에게도, 베테랑에게도 바람은 사정없이 불어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바다를 항해할 때 그 누구도 고난의 풍파를 비켜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남 보기에 체면도 있고 굳이 밝힐 것도 없어 웃고 다니니까 그렇지, 고난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은 잠시 없다 해도 과거에 있었고, 앞으로 얼마든지 닥쳐올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동서고금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습니다.

② 고난은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온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베드로 등 어부 출신 제자들은 나름대로 항해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출발했을 겁니다. 만약 큰 바람이 불 것이라고 확신했다면 출항하지 않았겠죠.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닥친 겁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에도 고난은 예고 없이 닥쳐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때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찾아옵니다.

③ 신앙생활을 잘 해도 고난은 닥쳐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는 없지만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의 병행 구절을 보면, 제자들이 항해한 것은 순전히 예수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마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그러니까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어려움이 닥치네. 이건 좀 이상하지 않아?” 이와 비슷한 다른 사건이 마가복음 4장에 나옵니다. 그때는 제자들이 배에 예수님을 모시고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광풍이 불고 풍랑이 일었습니다.

흔히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은 신앙이 나쁘거나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곁길로 갈 때 고난을 통해 깨우쳐 주시고 교정해 주십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잘 하고, 죄가 없어도 얼마든지 고난이 닥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증거로 성경에 욥이라는 인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동방의 의인입니다. 신앙생활 너무 너무 잘 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극한 고난이 닥쳤습니다. 그 많던 재산 다 잃고, 열 명이나 되는 자식 다 잃고, 자기는 병까지 얻고 ... 그 이상 어떻게 더 큰 고난을 당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을 잘 해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분명한 예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고난을 당하지만, 신앙의 사람은 그것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혹 고난을 당할 때 괜히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지 마십시오. 고난 중에 더욱 괴로워지는 게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정 마음에 거리끼는 게 있으면 회개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깨끗해집니다. 더 이상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꾸 그런 생각을 반복해서 가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아니, 안 됩니다. 그건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면 우선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그러려니... ”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표현만 바꾸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벧전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 ” 이런 자세가 고난을 이기는 첫걸음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풍랑보다 더 큰 문제 : 불신앙

제자들이 한참 괴로움을 당할 때 예수님이 물 위로 오셨습니다. 그들을 도와주려고 오신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19절. “ ... 제자들이 ...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 ” 예수님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둔한지 모릅니다. 그들은 이미 여러 가지 이적을 체험했습니다. 방금 전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앞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마가복음 4장,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배에서 잠을 주무시던 깨어나 광풍을 잔잔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달아야죠.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응용을 해야죠. 예수님이 멀리 계신다 하더라도 핑계가 되지 않습니다. 불러보기라도 해야죠. “예수님!” “주여!” 하고 말입니다. 소리라도 쳐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가오셔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마14:26에 보니까 심지어 예수님을 가리켜 유령이라고 소동을 부립니다. 이것이 그들의 근본 문제입니다. 심령이 둔해서 아직도 온전한 신앙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문제점을 막6:52은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들에게 온전한 신앙이 있었다면 풍랑이 무슨 문제가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을 부르고 도움을 청하면 다 될 것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불신앙이 문제이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불신앙이 문제다!”

이런 예를 가지고 생각해 봅시다. 이차 방정식을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 풀라고 주면 사색이 될 겁니다. 이건 한 마디로 불가능입니다. 그런데 대학생에게 주고 풀라고 하면 실소를 할 겁니다. 사람 놀리냐 이거죠. 대학생에게는 이차방정식쯤은 문제도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 고난이 닥쳐와도 신앙 실력이 월등하면 문제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문제 자체에 연연해서 스스로 좌절하지 마십시오. 우선 나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십시오. 불신앙의 요소를 제거하고, 신앙의 실력을 키우면 거뜬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변해서 축복이 되고, 시련이 변해서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3] 인생의 풍랑을 이기는 길 : 예수님을 바로 알고 의지하는 신앙

신앙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잘 모르면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옆에 모시고도 유령이라고 부르는 한심한 일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을 수 있는 게 당연한데도 그걸 모르고 놀란 겁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0절. “내니 두려워 말라!”(It is I. Don't be afraid!) 예수님은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나야 나!”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출3:14의 말씀과 같은 겁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백성들에게 뭐라고 소개해야 되나 질문하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라는 식의 알쏭달쏭한 말씀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인간의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자존자(自存者)요 무한자(無限者)요 전능자(全能者)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에게 당신임을 알리면서 동시에 하나님으로서의 모습을 나타내신 겁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내니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내 보이셨습니까?

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 곧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물 위로 걸으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가 당면한 어떤 문제라도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보다 더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도움은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도움입니다. 인생에 풍랑이 닥쳐올 때 전능자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큰 도움을 얻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②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희생하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요10:11 보면 당신을 선한 목자로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

예수님은 우리를 ‘항상’ 사랑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떨어져 계시니까 자기들끼리 방치된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따로 계셨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동시에 신적인 능력으로 그들을 계속 주시하고 계셨습니다. 막6:48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 ” 제자들을 보고 계셨다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합니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인데, 게다가 최소한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육지에 계셨는데 어떻게 보셨을까요? 야간 투시경이라도 착용하고 계셨나요? 그분은 육신을 입고 있어도 하나님이시므로 신적인 능력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계셔도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금세 물위로 걸어오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주목하고 살펴보고 계십니다. 시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의인법적인 표현입니다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향해 주목하시고, 귀를 기울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49:15~16에는 항상 잊지 않고 사랑하고 계신 사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 ”

1988년에 있었던 아르메니아 대지진 당시의 실화입니다. 당시 사망자가 3만 명이었는데 그 와중에 극적으로 구조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지진 당시 학교에 있었는데 그 건물이 주저앉아 그 밑에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달려왔습니다. 미친 듯이 매몰된 잔해를 들춰냅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구조대원들이 하도 딱해서 만류합니다. “아버님, 유감입니다만 아드님이 살아남아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고정하시죠. 저희들이 시신을 찾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제 아들에게 평소 약속을 했습니다. “아들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아빠가 달려가서 도와줄 테니까 항상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라.” 제 아들은 그 약속을 기억하고 이겨낼 겁니다.” 도저히 만류할 수 없게 되자 구조대원들이 함께 잔해를 수색합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고 14시간이 더 지났을 때 잔해 더미 밑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 ” 구조대원들은 환청이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소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정말 그 소리를 따라 수색한 결과 소년을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소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빠가 나를 사랑하고 약속을 꼭 지킬 줄 믿었습니다. 그래서 숨이 막히고 고통스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끝까지 참고 기다렸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그 소년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나를 항상 사랑하고 계심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는 어떤 고난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그 후에 어떻게 하십니까?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 항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도와주십니다. 이 세상 살 동안, 그리고 그 후에 천국에 안착할 때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노후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기 있는 것 중 하나가 ‘종신 보험’입니다.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다 보장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상을 보장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은 종신 보험 정도가 아니라 ‘영생 보험’을 든 것입니다. 주님은 종신토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사46: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백발이 되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시107:30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소원의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소원의 항구(목적지)가 어디 입니까? 천국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도와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고 항상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③ 예수님은 우리 삶의 현장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제자들과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사실은 늘 함께 계셨습니다. 그분은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금방 물 위로 걸어오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활 승천 후에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 임재해 계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부터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리고 승천하면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마28:20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 외에도 우리는 성경 도처에 임재의 약속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히13:5 “ ...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 ”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아프리카 대륙도 많이 도시화되고, 정글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정글도 많고, 식인종이 득실거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프리카로 간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다 말립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아주 강력하게 만류합니다. 그들을 설득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제발 나를 예수님과 함께 보내주시지 않겠습니까?” 자기 혼자 가는 게 아니라 임재하시는 주님과 함께 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정말 리빙스턴은 임재하시는 주님과 성공적인 사역과 인생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렇게 좋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모든 고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개인의 인생 항해에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주님 바라보십시오. 풍랑이 잔잔해 질 겁니다. 우리 가정에도 풍랑이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큰 풍랑이 일고 있습니다. 내일은 마치 광복 60주년인데, 마음이 착잡합니다. 신문을 펼치면 가슴이 답답하고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모습이 마치 큰 풍랑이 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쪽배와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나라와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세계교회 역사 가운데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것을 봐도 그렇고, 위태위태한데도 그래도 굳게 세워져 가는 나라의 모습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제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작은 증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교회 중등부에서 대만에 단기선교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잠시 이야기를 나눴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중학생들을 기도하고 보내면서 솔직히 이 아이들이 가서 뭘 할까, 가서 많이 보고 도전받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노란 티를 입고 한국말로 “예수 믿으세요!”하면서 전도지를 나누 주는데 너도 나도 몰려와서 받더라는 겁니다. 현지 교회 1년 치 전도지를 다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 전도 집회에 와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한류의 위력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한류가 왜 생겼습니까? 연예인 몇 분의 성공 때문입니까? 물론 그분들의 수고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마지막 시대에 한국교회를, 한민족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만 내지 말고, 낙심만 하지 말고 좋으신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같은 민초들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해서 나라를 바로 세우겠습니까? 기도하는 거죠. 그러나 감사하게도 기도가 가장 큰일이란 사실입니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 말씀대로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이 이 나라를 바로 세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풍랑 가운데 물 위로 걸어오셔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 “내니 두려워 말라!” 부디 이 말씀 붙들고 인생의 바다에 닥쳐오는 풍랑을 이겨내시고, 소원의 항구에 안착하는 승리의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 문 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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