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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통일을 향한 형제의식 (창 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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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주년 8.15 광복절을 맞았습니다. 해방된지 벌써 60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해방'이라는 말과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어떤 분이 '해방'과 '광복'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매우 지당하고 바르게 사용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 맞는 말이지만 '해방'되었다는 말은 얽매여 있던 자들이 누구의 도움으로 풀려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는 분명, 몇몇 강대국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일본의 사슬에서 풀려났습니다. '8.15 해방'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남의 도움으로' 풀려 났다는 수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자유하도록 풀어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뜻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복'이라는 말은 '잃었던 나라나 국토를 다시 회복함'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매우 능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복'은 분명히 좋은 말이고 우리나라에 복이지만 광복은 우리 스스로가 이루어 낸 것이 아닌 것입니다. 광복이 이루어 진 것이지 우리 스스로 광복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분명히 광복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광복을 주신 하나님, 우리나라를 도운 국가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36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온갖 억압과 착취와 고통과 슬픔을 당했습니다. 국토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언어도, 성도, 이름도 빼앗기고, 우리의 고유한 문화도 빼앗기고, 모든 자유도 빼앗겨서 일본제국주의의 노예가 되었던 민족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우리민족이 힘이 있어서 군대의 힘으로, 무력으로 일본과 정정당당하게 전쟁을 해서 승리하여 얻은 해방이 아닙니다.

독일이 세계 제2차 대전에서 유엔연합군에게 패하고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므로 인하여 우리에게는 어부지리로 얻은 해방입니다. 그렇다고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국가적인 힘이 전혀 없어서 총칼한 번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의 주권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이 임한 것입니다.

8월 15일 당시 우리의 부모님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환회와 감격에 휩싸였습니다. 한반도 전 국토가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45년 12월 28일 모스코바 삼상회의(미영소 3국 외무장관회의) 결과 신탁통치가 결정되어 우리나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다가 1950년 6월 25일 우리 민족에게 또 다른 아픔의 역사인 한반도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3년간의 말도 안 되는 우리 민족간의 전쟁은 한 민족 국가인 우리나라의 허리를 자르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서로 원수지간이 되게 했습니다. 같은 조상을 두고 같은 말과 역사를 지닌 한 나라 백성이 이제는 서로가 가장 미워하는 원수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북한은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여행 할 수 없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가지 못하는 고향과 북녘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3년 내내 전쟁을 하다보니 농사도 못 짓고, 장사도 못하고, . . 3년간에 걸친 6.25 전쟁은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내었습니다.
전투 병력의 손실만 해도 유엔군과한국군을 포함하여 18만 명이 생명을 잃었고, 공산군측에서는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

또한 전쟁 기간 중 대한민국의 경우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남한 지역을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인민재판 등의 무자비한 방법에 의하여 "'반동계급"'으로 몰려 처형당한 억울한 희생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엄청난 이산가족들이 발생하게 되었고 전쟁 기간 중 북한은 8만 5000명에 달하는 각계 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을 대한 민국으로부터 납치해 갔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국회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저명한 학자, 종교인, 공무원들이 상당수 포함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북한 지역으로부터는 30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탈출, 자유로운 생활을 찾기 위해 고향과 가족, 친척들을 북에 둔 채 남한으로 월남하여 대한 민국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1950년 당시 북한 지역 인구는 1,200만 명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그 가운데 1/4 정도가 북한을 떠나 남쪽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남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은 약 7백67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중 분단을 직접 경험한 이산 1세대는 1백 23만여명이고, 60대 이상의 고령 이산 가족은 69만명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가면서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됩니다. 아울러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90년대 초만해도 북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을 때인데 교회는 동포애를 발휘하여 북한 주민을 돕는 일에 앞장 섰습니다. 지금은 기업이나 민간단체에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북한돕기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이 일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감리교회에서도 서부연회를 세우고 북한선교와 북한돕기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지난 7월 5일 동아일보 기사에서 세계은행이 2004년 전세계 185개국의 국내 총 생산(GDP)을 기준으로 순위를 산정한 결과에서 우리나라가 1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북한의 경제적 상황은 어떠합니까? 국내 총생산(GDP)이 남한의 1/33수준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의 북한 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생겨나고, 먹을 것을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탈출하고 있습니다
.
최근 북한의 식량 실태에 대한 보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럴드 버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대변인은 북한은 지난 (05년) 1월 1인당 하루 식량 배급량을 300g에서 250g으로 줄였으며 이달 초 200g으로 삭감했다가 중순에 다시 250g으로 늘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하루 최소 필수 열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입니다.
최근 인권위에서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 결과 탈북자의 3%가 직접 강제낙태를 당했고 21%가 강제 낙태를 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보도도 있었습니다. 북한에는 아기를 낳으면 안전원이 아기 코를 땅에 닿게 엎어 좋는다고 합니다. 애가 살겠다고 버둥거리며 우는데 엄마는 갇혀서 가슴만 쥐어뜯으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데 건강한 애는 3, 4일 울고 보통은 이틀 울다 죽는다고 . . 어떤 탈북자는 인터뷰에서 “병원에 약이 없으니까 안전원들이 임신부의 배를 발로 막 차서 조산하게 하거나 유산시키는 일이 한 달 동안 계속됐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탈북자의 말을 빌리면 북한에 주민들이 씹을 거 없이 강냉이의 뼈대까지 갈아 먹었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동물이 먹고 괜찮으면 사람이 먹어도 된다고 해서 말입니다.

북한이 식량난에 계속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비료 공장들이 죄다 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력난도 심각해서 평양 시내도 밤이 되면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이 밤 하늘보다 더까맣다고 합니다. 아파트에 전등불 하나 안 들어 온 곳도 많다고 . . . 40층 높이의 아파트들로 즐비한데 꼭대기층에 사는 사람들은 전기가 안 들어오면 오죽하겠습니까? 엘리베이터도 안 올라갑니다. 물도 안 나옵니다. 난방은 물론. . . 전기가 안 들어오니 TV가 있다 해도 거의 애물단지. . .
오늘은 8.15해방기념 주일이자 북한 선교주일입니다. 60주년 8.15해방 기념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자유 주시고 주권국가가 되게 하신 것.
둘째,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하신 것.
셋째, 천만이 넘는 기독교인을 주신 것.
일찍이 조국통일을 위해서 서독국민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상당한 통일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서독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먼저 동독을 도왔습니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도운 것입니다. 서독과 동독의 상황도 처음에는 우리와 똑 같았습니다. 주어도 감사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계속적인 도움의 손길을 펼칠 때 얼어붙었던 동독도 차츰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예상치 못한 빠른 통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동,서독의 통일도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오랜 세월동안 이것 저것 도와주는 이 물밑교류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특별히 서독교회가 그 일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서독교회는 통일을 위해서 적어도 20년 전부터 동독사람들을 도왔습니다. 많은 돈, 물자들, 먹을 것, 입을 것, 생필품 . . . 법으로는 금지된 일이었지만 . .서독정부도 이것을 알면서도 모른 채 덮어두었습니다. 오히려 도와주도록 장려를 했습니다. 그렇기에 동서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서로 나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끈끈한 형제애의 정을 가지고 서로 서로 교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란덴부르크라는 이 동서독을 갈라놓은 이 장벽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한국교회는 북한 동포들에게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북한의 기아들, 탈북자들 그리고 지하교회의 성도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돈, 쌀, 비료, 의약품, 옥수수, 밀가루 . . . .북한 동포들 돕는데 만큼은 I. M. F를 별로 타지 않았습니다. 매스컴을 봐도 한국교회의 북한돕기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종파로 봐도 한국교회가 모든 종파의 90% 이상을 도와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이 어떤 상황을 전제할지라도 북한동포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줘야 합니다. 언젠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을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해방 60주년을 맞이한 올해 교회와 성도들이 더욱 분발하여 평화적인 남북의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진정 민족의 화해와 명화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의 의식전환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의식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것만큼 움직이게 됩니다.

본문에는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가졌던 평화의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의식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형제의식입니다.

첫째,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데서 옵니다.
요셉은 자기 형들에게 미움과 시기를 받아 죽음의 위기까지 넘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처절한 시련의 날들을 극복하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를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에 내려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요셉의 눈에서는 증오의 불길이 솟아 올랐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일방적 음모로 생명의 위기를 겪었고, 노예로 인신매매까지 당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실은 요셉은 그렇게 자기를 미워했고, 자기의 인생을 무참하게 짓밟았던 그 형들을 여전히 변함없이 형제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4절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형제의식이 바로 그 형제들과 더불어 화해를 가능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60년 동안 남북한 사이에는 이러한 형제의식을 가지고 살지 못했습니다. 서로를 향해서 괴뢰, 빨갱이, 원수, 오랑캐 . . 이런 단어들을 거침없이 사용해 오지 않았습니까?
저들이 지금은 예수를 모르고 복음도 듣지 못하고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그들도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그들 역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와 동일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의 형제들이 되는 것입니다. 선교학에서는 이것을 가르켜 ‘가능성의 형제의식(Potential Brotherhood)’ 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한 피조물이라는 넓은 의미에서 그들을 ‘형제’라는 안목으로 접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역사를 인도하심을 믿는 믿음’에서 옵니다.
요셉은 지금, 최고로 좋은 보복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그 형님들은 독안에 든 쥐입니다. 형들에게 보복, 혼쭐을 내줄 좋은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당한 고난과 아픔이 형님들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진행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7절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 . ”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훌륭한 믿음입니다.
요셉은 “형님들 걱정하지 마세요. 염려하지 마세요. . . ” 도리어 위로합니다. ‘이런 어려운 시대에 우리 가족을 구원하고, 우리 민족의 양식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주께서 앞서서 나를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믿음입니까? 수준높은 믿음입니까? 요셉은 분명히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모든 사건,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믿은 것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들의 고난도 고통도 상처도 합력하여 선한 결과로 열매 맺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민족의 드라마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련 형제의식과 섭리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남북관계는 다시 아름답게 회복되고 통일의 그날이 하루 속히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임 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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