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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하나임 (창 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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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외적인 삶과 내적인 삶을 가지고 있고, 육적인 삶과 영적인 삶을 가지고 있으며,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 세계와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세계를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실체가 있습니다. 하나는 감각적 실체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 실체입니다. 감각적 실체는 느껴지기 때문에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영적 실체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실체보다 더 확실하고 불변한 것은 영적 실체입니다. 영적 실체가 보이는 실체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감각적 실체만 추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적 실체를 추구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야곱은 메소포다미아에서 가나안으로 귀향 하는 도중에 있었습니다. 야곱의 과거는 고독과 두려움과 고난과 인내의 연속이었습니다. 야곱이 고향 땅을 향하여 길을 진행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에게 나타났습니다. 야곱이 천사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천사들이 야곱을 만나 주었습니다. 부푼 가슴으로 고향 땅에 돌아오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군대가 나타난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군대를 만났을 때 야곱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임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을 만났을 때 야곱이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불렀습니다. 마하나임이란 ‘군대들', '진영들', '떼들' 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들 즉 마하나임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 마하나임 사건

천사는 하나님의 사역을 돕기 위한 영물로서 인격적인 실제 존재입니다. 그러나 영물이기에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에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천사가 나타난 사건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큰 위험이 있을 때, 특별한 사역이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전할 때, 구원사역에 관계될 때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하나님의 천사가 가시적으로 인간에게 나타났습니다.

야곱에게도 하나님의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마치 돌아오는 개선 장군을 영접하는 환영 단들처럼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을 환영하고 영접했습니다. 야곱은 20년 전에 밧단아람을 향하여 쓸쓸히 떠날 때에 벧엘 들판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 때 하늘과 땅에 걸친 사닥다리를 통해 하나님의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광경을 꿈에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향 땅을 되돌아오고 있는 야곱에게 또 다시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많은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고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수가 많고, 질서가 있었고, 힘과 권세를 가지고 있었고, 임전태세를 갖춘 무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수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26:53절에 예수님께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하였습니다. 시편 68:17에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천천이요 만만이라는 말은 수없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천사는 질서가 있습니다. 군대는 질서가 생명입니다. 계급, 조직, 규율이 있습니다. 명령 계통이 엄하고 철저합니다. 천사들의 세계도 군대와 꼭 같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하늘군대입니다.

천사는 힘과 권세가 있습니다. 천사는 주로 성도를 보호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악한 자를 징벌하는 일들을 수행합니다. 그러한 임무수행을 위해서는 자연히 권세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34:7에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은 항상 전쟁에 임할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전투에 임할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가장 적절하고 타당하고 올바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사랑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그 장소를 마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II. 마하나임 사건의 의미

하나님의 군대가 야곱에게 나타난 의미를 생각해 보면 오늘날 천사가 우리를 위하여 일하는 성격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군대가 야곱에게 나타났을까요? 이 사건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인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영물이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육신의 눈에 보이도록 나타났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시키려는 의도였음이 분명합니다. 마치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를 환영하기 위해 마중을 나왔다. 네가 벧엘에서 돌베개하고 잠을 자던 그 날 밤의 사건을 기억해 보라. 너는 하나님의 간섭과 보호의 덕으로 무사히 네 고향의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보이지 않게 야곱을 보호하고 지키던 천사들이 이제는 보이는 모습으로 야곱을 맞는 영접대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천사를 보내어 야곱을 환영해 줌으로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벧엘에서의 옛 약속을 되살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하셨던 옛 약속을 회상시킴으로 하나님은 ‘그 언약에 충실하시다’, ‘그 약속에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옛날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언약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창 28:15에 그 내용이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20년 동안 동행하셨고, 순간순간마다 야곱을 도우셨고, 지키셨고,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야곱이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 하는 것은 야곱의 능력이 남보다 뛰어나고 재주가 남다르고 재치가 있고, 수단 방법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성실히 지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지금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20년 동안 내내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 약속을 이행해 주셨습니다. 지금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는 그 약속을 이루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고 그 약속을 성취시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제일 힘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신 그 약속을 성취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0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약속을 잊고 살 때에라도 사건을 통해, 천사의 출현을 통해, 말씀을 통해, 특별한 관계를 통해, 그 약속을 생각나게 해 주실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모든 것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되었음을 깨닫고 내 삶의 초점을 하나님께로 빨리 옮겨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와 힘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의 보호를 깨닫게 하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야곱을 지키시고 보호하셨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실 뿐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가장 부담스러운 사건인 형 에서의 얼굴을 대하는 문제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삶의 순간마다 위기의 고비마다 하나님의 간섭의 손길이 같이 하고 있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임재보다 자기 수단과 방법을 더 의지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야곱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야곱으로 깨닫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천사들의 나타남은 과거에도 내가 보호하였고 앞으로도 내가 보호하겠다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야곱 너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와 사랑을 받는 특별한 존재라는 사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와 같이 세심하게 살피시며 보호하십니다. 시편 91:11에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내어 성도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3)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야곱을 위하여 하나님의 군대를 동원해 주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한 사람 야곱을 환영하기 위하여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환영 퍼레이드를 베푸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한 사람 약속의 상속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가장 적절하고 필요할 때 하늘 군대를 파송하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야곱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 깊이 느꼈기 때문에 그 곳을 마하나임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악된 인간이 깨달아야 할 근본문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보다 우리를 더 크게 하고 더 깊게 하고 더 넓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 절정입니다. 로마서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왜 우리의 영혼이 불안하고 인생의 삶이 피로에 지쳐있고, 우리의 마음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으면 감격의 생활, 행복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곱에게는 너무도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야곱을 군대로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묵상하면서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하나임의 사건은 그 때 한번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 항상 계속되는 영적 사건입니다. 마하나임의 축복을 깨닫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황 광  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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