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유대인과 이방인 (롬 11:11-27)

  • 잡초 잡초
  • 847
  • 0

첨부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는 서로 다른 두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참 많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있고 , 낮과 밤이 있으며 전기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고 자석에도 N극과 S극이 있고, 육지가 있으면 바다가 있고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울음이 있으면 웃음이 있고 , 뿌릴때가 있으면 거둘때가 있습니다. 사회경제에도 호경기가 있으면 불경기의 때가 있는 법입니다.

이러한 서로 반대되는 두가지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적당하게 잘 조화가 되어서 이 세상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썼습니다.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런데 로마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서로 다른 이중 인종으로 구성된 교회입니다. 스데반의 박해로 인하여서 흩어진 유대인들이 로마까지 와서 처음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이방인인 로마 사람들도 점점 복음을 듣고 교회로 들어와서 이제 교회 구성원이 유대인 반, 로마 사람 반 이렇게 반반정도 되었습니다. 서로 대비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같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 교회내에서 가끔 충돌을 빚기도 했습니다. 서로가 유대인이고 이방인이기에 정반대의 이질성이 교회내에서 같이 조화를 이루는 문제가 아주 심각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유대인만을 칭찬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이방인만을 칭찬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이 서로 다른 두 집단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적합한 것입니까?

이 로마서라는 바울의 편지를 보면서 우리는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보게 됩니다. 사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점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전혀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은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바울이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구원해 주는 것도 아니요, 이방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이 버리시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이 예수를 더 잘 믿을 것 같은데 거꾸로 됐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상하게도 예수를 거부합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그 당시에 더욱 복음을 잘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묘한 현상이 벌어지자 정말 로마교회는 심각한 갈등을 겪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이방인 들은 유대인들보고 오히려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흠을 보면서 괄시를 하곤 했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자기 동족들이 지금 복음을 무척이나 잘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사실에서 소외감과 낙심을 하고 나름대로 괴로와 하면서도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없지 않을까? 구약 율법에 명시된 할례같은 것도 받아야 참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냐 하면서 억지 주장을 썼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아주 시원하게 두 집단에 대하여서 말씀을 합니다.

구원은 반드시 믿음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고 할례와 같은 행위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내 혼자만의 힘으로는 건너편 언덕으로 뛰어 넘을 수 없고,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사실 예수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약적 전통이 오히려 걸림돌이 많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러한 걸림돌이 없는 이방인들에게 더욱 전도가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이방인들은 더 많은 숫자가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이방인들은 점점 득의 양양하게 됩니다. 교회내에서도 목소리가 커져 갔습니다. 그런 반면에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낙심되고 자기 동족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심히 고민하면서 괴로워하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예견한 바울은 이제 로마서 10장 11장에서 놀라운 지혜로운 말씀으로 이 두집단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첫째로 이방인들에게 너무 자긍하지 말 것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낙심을 해서는 안되며, 어떤 비밀스런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희망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히 이방인들 구원시키는 사도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갈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그러면 왜 이렇게 복음을 특히 이방인에게 더욱 열심히 전하게 하실까? 유대인인 바울 자신을 왜 하나님께서는 특히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셨을까? 자기 동족들도 안믿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손을 벌리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핍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그렇게 가고 싶었던 로마에 천신만고 끝에 도착을 했습니다. 도착해서 거기서 그 말을 했습니다. (행28:27) "이 백성들 (유대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귀는 감았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문을 이방인에게로 돌려서 이제 이방인들이 본격적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같은 사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마22:2-3)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22:8-9)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 대"

천국 잔치에 유대인들이 먼저 청함을 받았으나 오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청해서 이 구원의 잔치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오히려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더욱 힘을 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어쩌면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셈입니다. 국회의원 당선자가 무슨 사정으로 인해서 그 당선이 취소됨으로써 이제 차점자가 당선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절대로 자긍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공로인 줄로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전히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무슨 행동이 유대인들보다 나아서 구원받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요, 더욱이 지금은 유대인들이 마음문을 닫고 있어서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전도의 초점이 맟추어져 있는 상태라서 이렇게 이방인들에게 전도가 잘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또 이렇게 비유를 들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참 감람나무가 있는데 그 가지가 고약해서 몇 개가 꺾여졌고, 그 자리에 대신 저쪽의 돌감람나무 가지 몇 개를 꺾어다가 이 참감람나무 가지 꺾기운 자리에데 접붙여 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접붙임을 받은 이 가지는 하나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가지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가지를 보전하고 진액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자긍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스스로 높이지 말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원 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꺾어버리신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차하면 이방인들도 하나님이 아끼지 아니하시고 얼마든지 꺾어버리실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로마 교회내에서 득의 양양해 있는 이방인들에게 얼마나 지혜로운 말씀입니까?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이방인들에게하시는 말씀들입니다.

한편 그러면 유대인들에게는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1장 1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

이방인들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으므로 원 가지인 이 유대인들은 더욱 자기 감람나무에 접 붙이심을 얻게됩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요,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기가 알고 있는 비밀을 이제 25절에서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헤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 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이방인의 어떤 일정한 수가 들어오면 그 때에는 이방인에 대한 구원의 문은 닫히고 이제 유대인들이 예수를 잘 받아들이는 때가 되어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의 유대인들에게 자기 민족의 대다수가 예수를 부인하고 영접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갖고서 기다릴 것은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로마 교회의 두 종류의 사람들에게 바울은 각기 그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득의 양양한 이방인들에게는 조심하라 교만하지 말라 자긍하지 말 것을, 위축되어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낙심하지 말고, 언젠가는 구원의 날이 올 것이니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며 힘을 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현재까지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치 않고 있습니다. 구약전통 유대교만을 고집하는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현재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지금 현재 더욱 예수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입니다.

지금은 이방인의 수가 들어오고 있는 때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는 전도가 잘 되고 있는데 그러나 결국 언젠가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다시 구원의 손길을 뻗쳐서 유대인들이 비로서 예수를 맏아들이고 예수를 믿게 되어서 거의 모두 구원받는 때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는 이제 이방인들은 더 이상 구원되지 않고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전도가 되다가 드디어 이 세상 종말이 온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유대인들이 복음을 잘 받아 들였더라면 이방인들에게는 복음의 문이 안 열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이상하게도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핍박을 했기에 복음이 흩어져서 이방인들에게 전도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한참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때인만큼 이방인들은 자긍하지 말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알고 감사하며 스스로 높이지 말고 겸손하고 도리어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에게는 그들에게만 은혜가 올 때가 있습니다.

얼마나 참 적절하고도 이치가 맞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곰곰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진리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여전히 두종류의 상반되는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것을 봅니다. 현재 모든 것이 잘 되고 한참 형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여 지금 현재 한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 같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부유한 계층과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공존합니다. 공부 많이 해서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들과 그리고 공부할 기회가 적어서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보통 세상의 다른 공동체는 주로 같은 동질의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교회는 서로 정 반대의 다양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상태 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바로 로마 교회의 문제와 똑같은 문제들입니다.

현재 잘 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된다고 절대로 자긍하지 말것이며 이 모든 것이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하고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내가 잘 되고 있는 중이라면 내 사업이 잘 되고 있는 중이라면 다른 경쟁자의 사업이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유대인들에게 허용될 것이 이방인들에게 와서 지금 호황을 누리는 것처럼 저쪽으로 갈 것이 내게로 와서 내가 잘 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 사실을 깨닫고 자긍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내게 주셨음을 알고서 더욱 겸손하고 두려워하고 겸비해야 합니다.

한편 지금 현재 잘 안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면, 하나님이 그대들에게 주시는 때가 있음을 믿고 기다리며 낙심치 말고 힘을 내어야 합니다.

사실 이 두가지를 잘하면 정말로 훌륭하게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잘될 때 겸손하고 안될 때 용기를 내는것.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다가 보면 모든 것이 잘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내 공로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내 공로인 양 우쭐거린다면 이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또한 모든 것이 안될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너무 낙심하고 괴로워하고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 나아가서 남까지도 괴롭게 하는 그러한 사람들을 봅니다. 이것은 또한 얼마나 잘못된 모습입니까?

형통할 때에 오히려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어려울 때에는 오히려 용기를 가지고 힘을 내는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 것을 본문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빌립보서에서 고백한 바 있습니다. "내가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어떤 사람은 풍부에는 처할 줄을 알지만 궁핍이 오면 도무지 못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업도 잘되고 모든 일이 잘되고 물질도 넉넉해지면 우리 남편 최고라고 하면서 날마다 즐거워하며 감사하고 명랑해지고 교회도 잘 나오고 합니다.

그런데 사업이 좀 기우뚱하고 어려운 때가 오면 매일 바가지 긁어대며 죽는 소리하며 도무지 못살겠다고 난리를 피웁니다. 교회도 안나옵니다. 이 사람은 풍부에 처할 줄은 아나 비천에는 처할 줄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때에는 잘 견디어 냅니다. 가난할 때는 가정을 잘 지키고 아내 사랑할 줄을 알고 노력을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풍부해지고 부유해지자 그만 가정을 돌보지 않고 돈 쓰는 재미에 교회생활도 게을러지고 교만해지고 거드름 피우고 조강지처 버리고 갑자기 사람이 변해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비천에 처할 줄은 알지만 풍부에 처할 줄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세째로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사람의 경우를 봅시다. 모든 일이 잘되고 풍부하면 늘 겸손하면서 거드름 피우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조심하면서 늘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며 사치하지 않고 절제있게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풍부해도 세상으로 즐기러 가버리지 않고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 돈으로 세상 즐기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남을 도와주며 더욱 예수 잘 믿고 예배생활을 잘합니다.

그런데 또한 어려움이 닥쳐왔을때는 부부끼리 서로서로 격려를 하면서 서로 용기를 심어주고 위로를 해 주면서 언젠가 회복의 때가 올 것리라고 소망을 가지고 잘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더욱 요청하면서 기도생활 신앙생활을 오히려 더욱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정말로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아는 바울처럼 삶의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디쯤 속합니까? 뭔가가 잘 안되면 괜히 옆사람들한테 짜증을 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즘 아내를 구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회문제로까지 되고 있습니다만 바로 우리 주위에서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신자들 중에도 그러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그러한 나를 향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될 때는 부부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가정에 어려움이 오자 아내를 구타합니다. 부인을 때리고, 칼을 들고서 찔러 죽인다고 합니다. 우리 가정이 이렇게 된 것이 다 네탓이다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또 잘되면 다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인양 자긍하면서 높아져있지는 않습니까? 진정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그러한 나를 향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때로 낮과 밤이 교차되듯이 잘될때도 있고 안될때도 있습니다. 잘될 때는 오히려 겸비하며 은혜를 깨닫고, 안될 때 오히려 잘 견뎌내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렇게 살면 바로 승리하는 사람이 됩니다. 가장 소망스런 인생이 됩니다.

짧은 인생 이렇게 살야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성경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큰 깨우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낮설교(96/6/9)
99/08/11 자료올림
본문다운로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