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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사랑 (요 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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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특징을 말해보라고 하면, 여러 가지를, 말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이 나오는 것의 하나는, ‘어둡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두움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의 주변이, 어둡고, 아픔과 고통이, 큰 것은, 바로, 진리를 잃었고,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있는데, 사랑이 없습니다.
돈을 얻었는데, 사랑을 잃었습니다.
힘을 가졌는데, 사랑을 모릅니다.
삶에 집착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사랑이, 빠지지 않은 것이, 있나요?
책 속에도, 온통 사랑, 노래 속에, 영화, 연극......모든 예술 속에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랑 자체가, 병들었고, 그 개념 자체도, 이질화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느니,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다느니, 죽인다느니”, 사랑을 논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랑이, 상품화 되었습니다.
사랑이, 상품화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을, 장사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스스로, 속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 아닌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소유욕, 집착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매달립니다.

또 하나,
사랑을, 관념이나, 감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음에 끌리고, 정에 끌려,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으로 인해, 사랑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순수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배반을 당했느니, 거짓말이라느니, 후회하느니, 하면서,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 사랑은, 진리와 함께 존재합니다.

이것은, 진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존재합니다.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사랑의 표현을 하고, 사랑의 작품을 만들지만, 그 속에, 생명력이 없고, 창조력이, 없습니다.
진리가 아닌 이론이요, 픽션, 스토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함께 하는 사랑은, 진리를 기뻐하고, 진실하고, 공의롭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리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 요1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제, 주님께서, 공생애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몇 시간 후면,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줄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을, 은 30냥에 팔고, [베드로]는, 세 번 부인할 것이며, 다른 모든 제자들도, 흩어질 것을, 아십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3년 동안, 공들여, 훈련시킨 제자들인데, 그러한 저들이, 저지를,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솟구치고, 치를 떨어야 할, 입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저들을,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    랑 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    라.”                    (요13:34-35)
이 말씀을 하시고, 주님은, 십자가를, 지십니다.

저들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고난의 십자가를, 자청하셨습니다.
이 사랑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그 분이, 진리이심을, 믿습니다.

나아가, 그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살리는 말씀이요, 변화시키는 말씀이요, 창조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랑 때문입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입니다.
그리할 때, 그 사랑은, 깨끗하고, 진실한 사랑이, 됩니다.

사랑은, 깨끗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믿지 못하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하는, 형식일, 뿐입니다.
진실한 사랑일 때, 생명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변화시키며, 창조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해 보세요.
그 속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행복이, 솟구칩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랑 안에, 거해야 하고, 이 사랑이, 우리 삶 속에서, 흘러 나와야 하고, 이 사랑이,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 생명력이 나타나고, 내가 머무는 곳에, 변화가 일어나며, 내가 스치는 곳에서, 이 사랑의 향기가, 묻어나야, 합니다.

2. 우리 안에, 이 사랑의 저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저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능력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고, 그 분의 사랑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미, 그 사랑을 받았고,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은혜를, 베풀 수, 없습니다.

받아본 사람이, 베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느꼈고, 체험했기에, 주님과 같이 될 것이기에,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내가 받은 사랑, 내가 배운 사랑이, 능력이 되도록 하십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사랑을, 전해 보십시다.
내 가정 식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내 성도들을,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십시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우리의 이웃을, 올바로 섬기는, 사랑의 용사들이, 되십시다.
예수님의 그 사랑을, 전하십시다.

3. 우리는, 섬김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희생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이것을, 아가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다가갈 때, 능력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이 주님의, 이 십자가와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랑에 대해서, 들을 때, 감동적이고, 때로는, 눈물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나의, 죄인 됨을 깨달을 때, 그 때는, 눈물이, 솟구치기도, 합니다.

‘패션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볼 때, 모두가, 눈물을, 한바가지 씩, 쏟아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인중에, 눈물이, 전혀 없었다면, 장승같은 사람이거나, 냉혹한 사람, 초월자...... 뭐라 해야, 될까요?
그러나, 막상, 우리가, 그러한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내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을까요?

&&&&& 여러분! 이라크에서 희생된, 고 김선일 형제를 보세요.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보여 진, 그의 모습.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그의 모습.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모습.

어떤 목사님은, 그가, 그 자리에서, 저 테러 집단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비굴하게 굴었던 그 모습에 대해서, 비판하고, 부끄럽다고 하기까지, 했습니다만, 과연, 그것이, 쉬웠을까요?
그것이 어쩌면,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일 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려달라는 [김선일]씨의 처절한 모습을 보면서, 온 국민들은, 함부로, 돌을 던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생사 앞에서, 자기 목숨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연약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연약한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희생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말씀을 읽다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를,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5절)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다고,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지만, 주님의 십자가와 같은, 그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강요하신 것은, 아닙니다.
아니,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와 같은 것은, 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은, 주님이, 우리에게, 다른 면으로,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바로, 섬김의, 사랑입니다.
이것도, 희생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이 섬김이, 바로, 우리가 배우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해야 할, 사랑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만찬을, 나누기 위해,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시던 중, 주님은, 대야에, 물을 떠다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의 관례는, 외출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시에는, 반드시, 손발을, 씻는 것이, 율법입니다.

특히,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고,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다가, 바리새인들에게, 책망 받는 모습을, 성경에서, 보지, 않습니까?
저들은, 장로의 유전을, 범했다고, 질책을, 합니다.
손발을 씻는 것은, 저들이, 당연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누구도, 손과 발을, 씻지 않고, 만찬에, 임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들 간에, 알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자리로, 오는 과정에, 누가 높으냐의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주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제자들 간에, 권력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왜 너희가, 그 자리에, 앉아야 되느냐는, 논쟁을, 벌인 것이지요.
그때, 주님께서, 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    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    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 물로, 내주러 왔다”(막10:43-45)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당신도, 섬기러 왔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 말씀을 잊은 채, 여전히, 서로를, 못 마땅히 여기면서, 다락방 안에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저들은, 사실,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했습니다.
아니, 먼저, 주님의 발을, 씻어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상한 감정이, 그 마음을 닫아버려, 누구도, 주님의 발조차, 씻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먼저, 저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대야에, 물을 떠다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 앞에 앉아, 발을, 씻기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섬김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섬김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랑입니다.
내가 먼저, 찾아가고,
내가 먼저, 용서를 구하고,
내가 먼저, 저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내가 먼저, 격려해 주고, 축복해 주는 것,
그것이, 섬김입니다.
마음이 상하고,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찾아가,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오해와 다툼으로 인해, 멀어진, 관계 속에 찾아가, 화해하고, 화평케 할 수 있는 것,
힘들고, 지쳐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따뜻한, 위로의 말, 격려의 말로, 세워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섬기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밥 한 그릇, 작은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도, 섬김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 복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을 초청해서, 그리스도의, 따스한 사랑으로, 대접하고, 위로하고, 격려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 그것이, 섬김입니다.
그것이, 발을 씻기는 것과 같은,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확신한다면, 그리고, 그 분 안에서, 내가, 존재한 자임을, 확신한다면, 이제 우리는, 자존심 따위를,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주님께서, 나를, 존귀하다고 하시고, 나의 나 됨을, 인정하시고,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누가 뭐라 해도, 그 분 안에서, 가치 있는 존재요, 귀한 존재입니다.
내가 먼저 찾아간다 해서, 내 자존심에, 상처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명예에, 흠집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섬김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영광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4. 섬김의 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섬길 때, 오히려, 높임을 받게 되고, 다스리는 삶의 자리에,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    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절)

섬긴다는 말은, ‘디아코니아’라는 말로, ‘봉사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어원의, ‘디아코노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종’이라는,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권력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롬 13:4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자를, 이 ‘디아코노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minister 라고 하는, 왕의 권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섬기는 자가, 다스리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의 마음속에, 왕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해서, 그 분이, 더욱, 위대해    지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 분을 섬기면, 오히려, 우리가, 위    대해 진다.”

우리가, 형제를 섬길 때,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그 때, 우리는, 더욱, 위대한 사람으로, 서게 됩니다.
내가, 위대해 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기, 때문입니다.

2) 사람을, 얻게 됩니다.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이, 사람을, 얻게 됩니다.
예수의 섬김은, 초대교회의, 역사를 이루는, 위대한 사도들을, 얻게 됩니다.
섬길 때, 사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평화를, 이루게 됩니다.
섬기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공동체는, 평안이, 싹트게, 되는 것이지요.

3) 화평이,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저들 속에 있던, 미움과 다툼, 분쟁이, 누그러지고, 맙니다.
서로, 자리를 놓고, 불쾌한 기분을 쏟아내었고, 그래서, 누구도, 종노릇하기 싫어서, 발을 씻어주지 않는, 그 자리에, [베드로]가, 제일 먼저, ‘주여, 그러실 수, 없습니다. 제가, 주의 발을, 씻기겠습니다.’ 하고, 무릎을, 꿇습니다.

다툼 속에, 주님은, 화해를, 도모하십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서, 섬기십시오.
여러분으로 인해, 그곳에, 화평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4) 사랑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과,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사랑을, 주고받을 때, 십자가의 사랑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섬길 때, 그리고, 진심으로, 섬김을 받을 때, 그 큰 사랑의 의미를, 함께, 알게, 됩니다.
섬김은, 이렇게, 가치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M. 도즈]는, 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겸손한 1시간의 섬김이, 계산적인 근      면이나, 자만하는, 열심을 가지고 일하는, 평생의 섬김 보      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섬김을 받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사랑을 받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사랑으로, 나아갑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나도 모르게, 섬김을 받는 자리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을 얻게 되고, 평화를, 얻게 됩니다.
또한, 주님의 그 큰 사랑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체험하며, 갈 수, 있습니다.
막연히, 이론적으로 알 던, 그 사랑을, 뼛속 깊이까지 느끼며, 그렇게, 살아가는, 능력자가, 됩니다.

사랑하는, 꿈이 있는 교회, 성도 여러분!
지난 날, 여러분들이 겪은, 마음의 상처를, 무엇으로, 위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회복하시렵니까?
이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하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먼저 가신, 김 목사님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꿈이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그 사랑으로 사랑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서로, 섬겨, 봅시다.
참으로, 가신 목사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갚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섬기는 자가, 받을 복을, 마음껏, 누려 봅시다.
이, 섬김의, 능력과 축복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박 영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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