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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 (마 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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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기도의 대명사로 불리는 구절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세 가지는 기도의 삼박자입니다. 기도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구하면 얻고, 찾으면 찾고, 두드리면 열립니다.

8 절을 보면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심지어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22>

이 말씀은 기도의 공식처럼 여겨집니다. 공식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구하면 구하는 대로 척척 얻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가 무슨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것입니까? 실제로 그렇게 기도하면 구한대로 다 응답이 됩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하면 구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하면 어쩌다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은 괜한 말씀이 됩니다. 이 말씀은 기도에 대한 보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언약의 말씀이니까 예외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예외가 너무 많습니다. 말씀이 잘못되었을까요? 말씀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사람이 잘못일까요?

기도 응답이 안 되면 사람들은 믿음이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믿고 구하는 것은 받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응답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믿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주여! 밋씁니다.” 그래도 뚜렷한 반응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교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저 남하는 대로 따라하면서 배웁니다. 그래서 잘못하는 기도가 많습니다. 기도에 대한 오해도 많습니다.

오늘 설교를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대한 대전제, 즉 기도개론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기도를 다 들으십니다. 일단 우리가 하는 모든 기도는 모두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다가 응답이 없을 때 ‘혹시 못 들으셨습니까?’ 하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잠잠하실 때가 계십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놓치거나 못 들으신 것은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생각까지도 훤히 아십니다. 머리털 가닥의 개수까지도 다 세십니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한 모든 기도는 다 들으셨다는 것을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럼 왜 응답이 더디거나 없을 때가 있는 것일까요?

이 숙제를 풀려면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계가 아닙니다. 수학 공식처럼 일정한 답을 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인격적이십니다. 사람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감정에 따라서 그 답이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면 통곡의 벽이 유명합니다. 솔로몬 성전에 이어 헤롯이 성전을 지었는데 전쟁으로 다 파괴되고 오직 서쪽의 옹벽만이 남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파괴와 예루살렘 함락을 슬퍼하면서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마지막 남은 이 성전의 벽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통곡의 벽 돌멩이 틈 사이에 소원을 비는 기도문을 꽂아 놓습니다. 얼마나 많은 기도 쪽지가 꼽혀 있는지 돌멩이 틈새마다 하얗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높은 곳에 꼽으려고 책상 위에 올라가서 꽂기도 합니다.

최근에 이스라엘 체신부 ‘베제크’에서 통곡의 벽 옆에 팩시밀리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그 팩스 번호를 선전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수수료와 함께 팩스에 기도문을 보내면 대신 꽂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또 인터넷 사이트도 생겼습니다. 전자우편으로 기도문을 보내주면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종이에 옮겨서 대신 꼽아 줍니다. 한번 비용이 18$입니다.

이런 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인격이신 하나님께 이런 식의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기도는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인격이신 하나님을 대하려면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소원을 비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들은 진지합니다. 무당이 부적이라도 써주면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소문난 무당에게 굿을 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비싼지 모릅니다. 한 번 굿을 하는데 수백만 원씩 듭니다. 그러나 아무리 진지하고 돈을 많이 써도 그것을 신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미신은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신은 신을 비인격적으로 대합니다. 밥상을 밖에 대문 앞에 차려놓습니다. 귀신이 집에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먹고 가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나님을 비인격적으로 대한다면 기도 응답은 커녕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해도 응답이 없다면 내 기도가 하나님을 비인격적으로 대한 적이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구하는 기도를 할 때 주의점이 있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본문 11 절에 보면 무엇을 구해야 할지 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1>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할 것은 바로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좋은 것을 구해야 합니다. 아무것이나 구한다고 다 응답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7 장은 6 장의 연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6:33 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또 누가복음에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란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마태복음의 ‘좋은 것’이 ‘성령’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13>

이제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구하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그리고 성령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무엇을 어떻게 구하느냐가 남아 있습니다.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인격이신 하나님께 예의를 갖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구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의 기도가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그 사람의 기도는 틀림없이 응답이 됩니다.

꽃은 향기로 말을 겁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께 말을 걸겠습니까?

하나님은 무엇에 감동하실까요? 우리는 그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얼 좋아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받기만 하는 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무언가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드릴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목숨을 다해 주님을 사랑한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감동을 드린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구하는 것을 거의 틀림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길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기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본문 말씀을 아주 좋아합니다. 기도하면 소원이 척척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좀 더 신중하게 읽어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더 중요한 메시지는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11 절 말씀은 문법으로 볼 때 비교급입니다. 9, 10 절은 세상 부모가 주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11 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의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떡을 달라는 아들에게 돌을 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는 부모도 없습니다.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제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세상 부모 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내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기 욕심껏 구합니다. 꼭 필요한 것을 구하기보다는 세상 욕망의 법칙에 따라 구합니다. 아이들이 구하는 것은 밥이나 김치 같은 것들이 아닙니다. 주로 아이스크림, 초콜릿, 사탕 같은 것을 구합니다. 아이들이 달라고 조른다고 그런 것을 모두 들어주는 부모는 친부모가 아닙니다. 이빨이 썩고 어린이 비만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군것질로 배가 차면 영양이 골고루 들어있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없어도 되는 것들을 구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챙겨주는 것들은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들입니다. 잘못된 것을 구하면 들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부모는 자녀에게 더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믿는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부모보다 한 술 더 떠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하이라이트는 11 절에 있는 ‘하물며’라는 단어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1>

이 ‘하물며’는 앞에서 말한 악한 부모를 하나님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악한 부모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줍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보다도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최대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12 절입니다. 이 12 절을 황금율이라고 부릅니다. 기독교 윤리의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이 말씀을 오늘의 메시지로 바꿔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얻으려면, 너희도 하나님을 감동시켜라.”
여러분!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황 금 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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