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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어버린 능력을 회복하라 (왕하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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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놀라운 기적을 보게 됩니다. 물에 가라앉은 도끼가 물 위로 떠올랐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을 가지게 됩니다. 그 첫째는 어떻게 쇠도끼가 물 위에 떠오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말씀을 읽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둘째는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며 ‘기적은 있다’라고 시인하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의 인생에 고난이 올 때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성경은 거짓이 없는 참된 진리임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도끼가 어떻게 물 위에 떠오를 수 있는가?라는 기적이나 이적의 방법을 기록한 말씀이 아닙니다. 본문의 말씀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고 기록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사를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어느 생도에게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빌려 온 도끼로 나무를 베다가 그만 물에 빠뜨린 것입니다. 도끼가 물에 빠져 버리자 기능을 상실하고 능력을 상실한 도끼가 되었습니다. 나무를 베려고 했던 그 최초의 목적도 이룰 수 없는 도끼가 되었습니다. 도끼에서 날이 날아가 물에 빠진 순간 그가 하려고 했던 모든 소망과 꿈과 계획은 깨지고 목표도 깨어진 것입니다. 인생의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그 능력이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선 이 사람이 도끼를 왜 빌려 오게 된 것입니까? 1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하는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그곳에 우리의 거할 처소를 세우사이다”라고 했습니다. 도끼를 빌려오게 된 동기가 다른 것이 아니라 선지자의 생도들이 거하고 있는 그 장소가 부흥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사를 따르는 제자들이 더욱 많아지고 영적 부흥이 더욱 크게 일어나자 더 이상 그 좁은 곳에 머물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요단 가까이에 넓고 큰 새로운 집을 지어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연마하고 기도처소를 넓히기 위한 선한 사업을 하려는 목적으로 도끼를 빌려 온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부흥이 이 교회에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영적 부흥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가득 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도 이처럼 부흥하고 번성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대로 가정이 부흥이 되어 좁아지려면 아이를 순풍순풍 많이 나야합니다. 그래야 방도 좁아지고 터도 좁아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엘리사 시대는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좇고 하나님을 버린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적 어둠의 시대에 빛으로 일한 사람이요, 깨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예사랑 교회도 날마다 세상의 빛이 되고, 깨어 있는 교회로 영적 부흥을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흥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계획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일이 실천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손을 대는 것마다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복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자꾸 커지고 넓어지고 깊어지고 넘쳐나는 것이 복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번에 울산에 갔다 왔습니다. 그곳에서 유치원을 하시는 원장님이 계신대 그분은 제가 20대에 후반에 전도 여행을 통해 만난 분입니다. 그분이 처음에 유치원을 시작할 때에 제가 그곳에 가서 번성하도록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5년 만에 만났는데 정원이 넘쳐서 150명이 모이는 유치원으로 성장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원아들이 많이 모이는지 원아 모집을 하면 하루에 모두 원아가 채워지고, 원아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서 이번에 다른 장소에 유치원을 개원하면서 “그때처럼 목사님이 꼭 와서 기도를 해 주시면 번성하고 문제도 해결 될 것 같은 믿음이 있어서”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을 전할까 기도 중에 신명기 1:9-10절의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말씀에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케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같이 많거니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하였으니 현재 보다 천 배나 더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한 것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이러한 번성의 복을 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우리 모두의 인생이 확장되고 번성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과 물질과 사업과 자녀와 인생의 복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은 번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번성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라고 했습니다. 생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곳에서 “각자가 각각 한 재목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생도들이 할 일은 다른 일이 아니라 각자가 열심히 말씀을 장소요 기도의 장소요 은혜의 장소인 집을 세울 나무를 베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재목”을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재목이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코라’라고 해서 일반적인 나무를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자신들의 집을 받쳐줄 기둥과 들보로 쓸 나무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도끼를 가지고 하나님의 예배 처소를 위해 기둥으로 쓸 나무를 베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 역시 엘리사의 생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할 나무를 베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상징되는 도끼를 가지고 성령의 능력을 통해 나무를 베도록 명령받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말하기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3:10)고 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끼라고 했습니다. 심판의 말씀을 도끼라고 했습니다. 그 능력을 가진 예수님을 도끼로 표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베는 생도들과 같습니다. 전도서 10:10절 말씀에는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도끼 날을 우리는 날마다 잘 갈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뎌지면 힘이 들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생의 연장도 날마다 잘 갈아 두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인생의 실패를 맛보았지만 내일을 위해 그물을 기우며 주님을 그 아침에 만나 주님께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을 때 즉시로 그 수리해 두었던 그물을 사용했던 것처럼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인생의 연장들이 주님을 위해 즉시로 사용될 수 있도록 늘 준비되어 있어야하고, 날이 서 있어야 합니다.

  인생에 실패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자신의 연장인 도끼날을 잘 갈아 두지 못한 사람이 첫 번째입니다. 이 사람은 기회가 와서 사용하지만 결국 날이 날카롭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인생이 됩니다. 둘째는 오늘처럼 도끼날이 물에 빠져 낭패를 당하는 사람입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라는 미국의 대통령은 소아마비를 앓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장애인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날카로운 도끼 날을 사용해서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 부흥을 일으킨 대통령이 되었고, 경제 대공황을 극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은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베토벤을 청각장애인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할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도끼날이 날카롭고 예리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햄 링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를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무식한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를 노예를 해방시킨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할 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에 낙제한 사람입니다. 윈스턴 처칠 역시 재수생이었습니다. 에디슨은 학교에서 공부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누구도 이 사람들을 지진아나 바로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이 사람들을 최고의 과학자와 정치가요 발명가로 기억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도끼날을 날카롭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준비된 날로 갈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끼날도 잘 갈아 놓았고, 이제 나무를 베어야 하는 순간에 도끼날이 자루에서 쑥 빠져 물 속으로 들어 가버린 것입니다. 이 얼마나 허무한 순간입니까? 도끼가 없으니 무슨 나무를 벨 수 있겠습니까?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합니다. 나무를 베어야 겠다는 소망도 사라진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일할 능력도 있고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도끼날이 날아가 물에 빠져 버린 것처럼 모든 것이 망쳐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이제 이 말씀을 듣고 소망을 가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생도의 도끼날이 회복되었던 것처럼 진실로 주님의 능력이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도끼날을 찾아 다시 나무를 베어 인생의 계획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까? 그 첫째는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5절 말씀에 보면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 온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문제 해결자 이신 주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의 일에 참여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3절 말씀에 보면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가리라”고 했습니다. 문제 해결자이신 주님은 엘리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하신 일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실 때에 외쳐야 합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질 때도 그는 “주여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때 주님은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올려 주셨습니다. 수로보니게아 여인도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주님은 그를 향하여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마음의 소원되로 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의 바디매오도 외쳤습니다. 10명의 문둥병자도 주님을 향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외치는 자들에게 주님의 기적과 역사가 일어납니다. 선지 생도도 외쳤습니다. “주여, 이는 빌려 온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외치는 자들은 자신에게 문제 해결 능력이 없음을 알고, 오직 주님만이 문제 해결 능력이 있음을 믿고 외쳐야 합니다. 나는 불가능하산 하나님은 가능하시다는 사실을 믿고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기적이 있음을 믿고 외쳐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어디에 도끼날이 빠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6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기를 “어디 빠졌느냐?”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자신의 도끼 날이 빠졌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계시록 2:5절 말씀에 보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여호수아 시대의 아간은 물질이라는 호수에 믿음의 도끼를 떨어뜨렸고, 결국은 그것을 찾지 못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가롯 유대 역시 은 30이라는 물질의 호수에 에수님이라는 능력의 도끼를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섯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과 달리 게으름의 호수에 자신의 능력의 도끼를 떨어뜨림으로 주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야곱의 형 에서는 떡과 팥죽이라는 인간의 욕구의 늪에 빠져 장자의 도끼를 빠뜨리고, 자신의 장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가인은 혈기와 분노의 늪에 도끼를 빠트렸습니다. 사울 왕은 말씀의 불순종이라는 늪에 자신의 도끼를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들 모두는 자신의 도끼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혜와 능력의 도끼날들을 모두 상실함으로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빌려온 능력과 은혜와 권세를 어느 숲속 어느 늪에 빠뜨렸습니까? 이제 도끼날이 떠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믿음도 회복하고, 찬양도 회복하고, 기도도 회복하고, 능력도 회복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어느 숲에 어느 늪에 빌려 온 내 능력의 도끼날을 빠뜨렸는가?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가? 어떻게 이 도끼를 다시 물위로 떠오르게 할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다시 회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생도는 도끼를 찾아 도끼 자루에 다시 넣게 되었습니까? 6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빠진 물에 던졌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물에 빠진 도끼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라라는 쓴물로 고생할 때에 모세가 나뭇가지를 그 물에 던졌더니 쓴물이 단물이 되었듯이 엘리사는 나뭇가지를 빠진 물 위에 던지니 다시 도끼가 떠오르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나뭇가지는 예수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인생의 쓴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는 힘은 오직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물에 빠진 인생의 잃어버린 능력을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십자가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되지 못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권세가 됩니다.

  십자가는 약한 자를 강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천한 것과 멸시받는 사람들을 존귀하고 영화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부끄럽게 보일 수도 있고, 수치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구원의 유일한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기적을 맛보기 원합니까? 인생에서 잃어버린 능력을 회복하고, 다시금 인생의 계획을 마무리하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을 얻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능력의 도끼날이 빠진 그 물을 향해 이제 예수 십자가를 던지기 원합니다.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통해 기적과 이적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형통하기를 축원합니다. 따라하겠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반드시 잃어버린 도끼는 떠오릅니다.” 할렐루야! (한 용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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