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화목제가 주는 격려 (레 3:1-5)

  • 잡초 잡초
  • 791
  • 0

첨부 1


레위기를 설교하면서 깨달은 것은 레위기만큼 재미있고 교훈이 풍부한 책도 드물다는 것입니다. 누가 레위기를 지루하다고 했습니까? 누가 레위기를 재미없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오늘 증거하고자 하는 화목제의 선물은 우리 영혼에 주신 기쁨의 선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쁨의 큰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성령의 기쁨이 구원의 기쁨이 화목제의 기쁨이 여러분 속에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친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년 만에 반갑게 만났습니다. 둘 다 성공을 했습니다. 한 친구가 “내가 너희 집에 방문을 해야겠다.” 하니까 다른 친구가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너는 우리 집을 올 때에 지하 주차장이 있는데 거기 문을 열 때는 반드시 발로 차서 열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누를 때에는 팔꿈치로 눌어야 하고 벨은 이마로 눌러야 한다.” 라고 말하니 얼마나 이상합니까? 그래서 묻습니다. “왜 손을 두고 발로 문을 열라고 하고 팔꿈치로 엘리베이터를 열라고 하고 이마로 누르라고 하는가?” 그러니까 “야 니가 20년 만에 우리 집에 오면서 빈손으로 오겠느냐? 손에 가
득 선물을 들었을 텐데 네가 손을 쓸 수 있겠느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빈손으로 오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가운데 큰 선물은 기쁨의 선물입니다. 오늘 화목제는 기쁨의 제사입니다. 화목제는 ‘Peace offering’입니다. ‘peace’라고 하는 것은 평화입니다. 평화는 소극적인 측면에서 ‘두 당사자 간에 적대감이 존재할 때에 적대감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이 측면에서는 두 당사자 가운데 큰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적대감이 없어진 인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큰 기쁨을 누리며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레위기 1장은 번제를 규정하고 있고 2장은 소제를 설명하고 있고, 오늘 우리가 읽은 레위기 3장의 본문은 화목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3장 말고도 7장과 10장에서 화목제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제는 가장 기본적인 제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번제와 화목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번제와 공통점

번제와 화목제는 두 가지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첫 번째는 피의 제사라는 것입니다. 제사 가운데 피흘림이 있는 제사는 모두 다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흘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또 번제와 화목제는 두 번째로 그 제사의 과정이 동일합니다. 먼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흠 없는 제물을 찾아서 끌고 와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서 그 죄를 제물에 전가(imputation of sin)합니다. 세 번째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회막문에서 그 제물을 죽입니다. 자기가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는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의 사면에 뿌립니다. 그러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기쁨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번제나 화목제를 드릴 때 부수적인 제사로서 곡물의 제사인 소제가 따라오게 됩니다. 그런데 번제와 화목제는 세 가지 점에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제물에 차이가 있습니다. 번제의 경우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의 수컷만 됩니다. 암컷은 번제의 제물로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수컷과 암컷이 모두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의 제사를 드릴 때는 제물의 암수를 구별하지 않아서 좀더 제물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제물 분배의 차이가 있습니다. 번제의 경우에는 분배할 것이 없습니다. 가죽을 벗겨서 가죽만 제사장이 갖고 나머지는 전부 각을 떠서 번제단 위에 올려놓고 태워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를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번제를 ‘Burnt offering'이라고도 하고 'Holocaust'라고도 합니다. 우리가'Holocaust' 라고 하면 나찌가 유대인 전체를 대상으로 자행했던 그 대학살을 생각하기 때문에 어감이 나쁘지만 원래 이 단어는 번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번제는 통째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하나님의 몫이 있고 제사장의 몫이 있고 제물을 드리는 자의 몫이 있습니다. 삼등분해서 나누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몫은 짐승의 내부입니다. 3장 3-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하나님의 몫을 태워서 화제로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그러면 제사장의 몫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레위기 7장과 10장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소나 양이나 염소의 가슴부위, 그리고 우편 뒷다리를 먹는 것입니다. 가슴은 무엇입니까? 갈비입니다. 갈비고기와 갈비살과 우측 뒷다리 고기는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제사장은 가슴고기를 요제로,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하나님께 드린 후에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 10장 1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희생 중에서 네 응식과 네 자손의 응식으로 주신 것임니이라.” 그런데 우리가 사무엘상 1장과 2장을 보면 부패한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가슴과 우편 뒷다리 말고도 다른 것에 더 욕심내었습니다. 갈고리를 만들어서 화목제를 드리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그 음식을 갈취해서 자기가 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제사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전투에 나가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머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몫입니다. 제사 가운데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예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화목제 하나뿐입니다. 내장을 제외하고, 기름을 제외하고, 가슴과 우편 뒷다리를 제외하면 고기가 얼마나 많이 남습니까? 엄청나게 많이 남습니다. 화목제물은 빨리 먹어야 하는데 그것은 종류에 따라서 조금 다릅니다. 감사제의 경우에는 하루 안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원제라든가 낙헌제의 경우는 이틀 안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 그 많은 고기를 가족이 혼자 어떻게 다 먹습니까? 이웃도 불러다가 먹이고 평소에 원수같이 지내던 사람도 불러다가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화목제는 결국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기쁨이 있고, 인간끼리도 화목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제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시면서 사람과도 화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제물을 먹는 데에는 세 가지 경고가 있습니다.
레위기 7장 15-26절에 보면 첫째로는 제 삼일에는 어떤 종류라도 조금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과의 화목은 오래 두고 미뤄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오래 미뤄둘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가 있어서 용서함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오늘 내일, 짧은 시간 내에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는 문제는 오래 미뤄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년에 살아있을지 어떻게 보장합니까? 10년 뒤에 살아 있을지 어떻게 보장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은 미뤄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몸이 부정한 자가 화목제의 고기를 먹으면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고 레위기 7장 20벌에 말씀했습니다. 시체를 만진 자와 몸에 유출병이 있는 자들을 부정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화목제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원할 때에는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의 피로 씻음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분은 “나는 예수는 안 믿고 하나님은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의 피로 씻음을 받아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공자가 하나님께 가는 길이 아닙니다. 부처가 하나님께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 이외에는 하나님께 가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레위기 7장 25절-26절을 보면 희생의 기름이나 짐승의 피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기름을 많이 먹으면 사람은 고혈압이 생기고 혈관이 좁아져서 일찍 죽습니다. 특히 내장의 기름은 통풍이라는 병을 야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못 먹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의 피를 그대로 먹으면 그 세균으로 인해서 괴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목제 제물을 먹을 때의 세 가지 경고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제사의 목적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번제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한 번제 제물이 되어 주심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죄와 자범죄의 덩어리를 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번제의 기본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화목제의 경우는 레위기 7장 11-17절을 보면 세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제입니다. 화목제가 큰 범주이고 그 밑에 세 가지 이름을 가진 제사가 있는데 하나는 감사제(Thank offering)입니다. 인생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았거나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게 되었다, 혹은 사업이 크게 성공하거나 목적한 일을 잘 이루었을 때에 하나님의 자비에 감동이 되어서 드리는 제사가 감사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감사제를 드릴 일이 많이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서원제(Vow offering)입니다. 사람은 위기시에 하나님께 서원을 드리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 이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면 내가 소 한 마리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 서원한 것은 갚아야 합니다. 갚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서원제인 것입니다. 신명기 23장 21절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고서 그 일이 이루어지면 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로는 낙헌제(Freewill offering)가 있습니다. 이 낙헌제는 아무 이유가 없어도 마음에 감사해서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화목제는 감사할 때나 서원 드린 것을 갚을 때나 마음이 즐거울 때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제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3. 화목제의 특징

이 화목제의 특징은 피가 있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3대 축복입니다. 의롭지 못한 자가 의롭다 칭함을 받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과 화친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죄를 지었고 앞으로도 죄를 지을 것이지만 그 죄에 대해 심판을 받지 않고 죄사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칭의와 화친과 사죄의 축복, 나아가서 성령을 마음속에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게 되면 천국이 예비 되어 있고, 영생을 얻었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여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동행하며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모든 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피흘린 희생에 근거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런 축복의 하나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없다면 기독교는 무능한 도덕일 뿐이요, 기독교는 아무 가치가 없는 이신론에 불과할 것입니다.

유명한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이나 벤자민 프랭클린과 같은 사람들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헌법을 만든 사람들이지만 신앙에 관해서는 그들에게 배울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신론자입니다. 이성이 신을 만들어 내고 인간이 신을 만들어 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신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신론 아닙니까? 그것은 못된 종교입니다. 피가 없는 신은 성경의 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 다음에 감사할 일이 생기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무엇을 통과해야 합니까? 피를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가 없는 신은 참신이 아닌 것입니다. 피가 없는 신은 가짜신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리심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의 피로 피뿌림 받아 죄사함을 받은 기쁨이 있어야 그 다음에 우리는 천국과 영생, 그리고 부활을 기대하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종교이고, 불교도 유교도 종교 아니냐? 아닙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피가 없는 종교입니다. 피가 없는 종교는 인간의 무능한 거짓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인간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과 영생과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확실히 믿고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이 있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 없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내 죄를 위해서 흘리신 피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화목제는 예수의 피뿌림으로 말미암은 죄사함 다음에 오는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목제의 두 번째 특징은 순서상으로 소제 다음에 온다는 것입니다. 번제는 칭의를 위한 것이고 소제는 구원해 주신 것에 감사해서 헌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목제는 예수님께 헌신 봉사한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기쁨은 언제 옵니까? 예수님께 헌신 봉사한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 봉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할 때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면 마음속에 기쁨이 생겨날 것입니다. 기쁘면 헌신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신하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화목제는 짐승의 가장 내적인 부분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안에 있는 기름이, 콩팥, 간과 같은 가장 부드러운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예배드릴 때 몸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부분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깊은 사랑, 부드러운 감성, 진실한 감사로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릴 때에 그것이 참된 화목제가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화목제는 영적인 기쁨의 음식입니다. 기쁨은 세상에서도 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할 때에도 기쁨이 오지 않습니까? 논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사람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 하는 말입니다. 또 친구들과 사귀면 기쁘지 않습니까?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친구가 있어서 멀리서 스스로 왔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 하는 말입니다. 공부를 해도 즐겁고, 친구를 사귀어도 즐겁고, 여행을 가도 기쁘고, 꽃을 봐도 기쁘고, 음악을 들어도 기쁘고, 그
림을 보아도 기쁘고, 스포츠를 해도 기쁩니다. 세상에도 얼마든지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화목제의 기쁨은 아닙니다. 신명기 27장 7절을 보면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앞에 즐거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화목제의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요 하늘에서 오는 기쁨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하나님을 아는데서 오는 기쁨이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깨닫는 데서 오는 기쁨이요, 천국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요, 내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기쁨이요, 내가 죽어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것을 아는 기쁨인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이런 화목제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예수 믿게 되면 세상적인 기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그저 회색빛깔을 띤 암울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에 대한 결정적인 오해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기쁨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속에 성령으로 인해 엄청난 기쁨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 오는 화목제의 기쁨, 위에서 오는 기쁨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안에서부터 터져서 오는 기쁨이기 때문에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런 기쁨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제가 체험한 기쁨이요, 예수 믿는 여러분이 체험한 기쁨이요 화목제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사랑이 우리 가운데 넘쳐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기쁨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장 10절에 복음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속에 기쁨이 없으십니까? 시편기자처럼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마음속에 불안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근거 없는 불안입니다.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낙망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근거 없는 낙망입니다. 오늘 낙망을 물리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마음속에 있는 불안을 깨끗이 예수의 피로 몰아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의 피로 구원받아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죄로 말미암아 기쁨의 샘이 가려 있으면 부정한 자는 화목제 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하셨사오니 하나님이여 내 죄를 예수의 피로 오늘도 씻어 주시고 내가 피를 지나 화목제의 기쁨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나이다. 내 영혼에 기쁨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이렇게 뜨겁게 기도하시고 영혼에 밝은 기쁨이 충만케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죽지 마시고! 낙망하지 마시고! 절망하지 마시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불안해하지 마시고! 기뻐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  영 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