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모세가 만난 하나님 (출 3:1~14 )

  • 잡초 잡초
  • 263
  • 0

첨부 1


오래 전 영국 Southwark에 있는 New Park Street Chapel 교회 목사가 신년 첫 주일 아침 예배에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연구해야 할 가장 합당한 연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셨던 그분, 그 하나님의 이름과 존재, 성품과 역사하심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 가장 차원 높은 학문이며, 가장 고상한 성찰입니다... 이 주제는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생각들이 그 속에서 길을 잃어 버리기 쉽습니다. 이 주제는 너무 심오해서 우리의 모든 자부심 따위는 그 속에 잠겨 버리게 마련입니다... 우쭐대며 지혜롭게 생각했던 것들은 사라지고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는 풋내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 주제는 우리를 겸손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식을 넓혀 주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는 것은 또한 우리의 심령에 커다란 위안을 가져다 줍니다... 그분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상처가 고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그 깊고 넓은 바다 속에 자신을 던져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그 광대하심에 자신을 빠뜨려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부터 150 년 전, 1855년 1월 7일 아침에 했던 설교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설교를 한 설교자의 나이는 겨우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찰스 스펄전! 그의 나이 열여섯 살이던 1850년 1월 6일, 눈보라치던 아침 콜체스터의 한 교회의 이름 모를 설교자가 한 “하나님을 앙망하라!”는 설교를 통해서 그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 후 열일곱 살 때 목회를 시작했고, 스무 살 때 그 교회에 청빙을 받아 겨우 팔십여 명이던 교인들을 1년 만에 이만 명이 넘는 교회로 부흥시켰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경험하는 것에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역한 젊은 설교자는 그 후 30여 년 동안 일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그가 만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당대 최고의 설교자이자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크게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했고,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하나님만 추구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보면 모세라고 하는 위대한 인물이 경험한 놀라운 사건이 그려져 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처음으로 경험한 놀라운 사건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은 붙었지만 타서 사라지지 않는 사건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를 피해서 애굽 땅을 떠난 후 벌써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꿈도 희망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 떼나 돌보다가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비한 사건 앞에서도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셨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그 때 비로소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중요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먼저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을 요구하며 바로와 담판을 지어야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히브리 노예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모세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의 말을 믿겠습니까? 때문에 그는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입증할 단서를 요구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 이름이야말로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은 히브리 노예들을 구원하는 것이 모세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런 점에서 볼 때 지독히도 불행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갓난아기 때에 강물에 버려졌습니다.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데 버려진 그를 바로의 딸이 발견하고 건져 주었습니다. 겨우 살아난 그는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어 바로의 궁궐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불행은 끝나고 행복이 시작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모든 것이 보장될 줄 알았던 그가 졸지에 살인자의 신세로 전락하여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꿈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평범한 양치기로 살게 되었습니다. 처갓집에 얹혀 살면서 그는 자식들도 낳아 길렀습니다. 평범한 삶에 만족하면서 그도 서서히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모든 꿈을 접고 촌부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또 얼마나 쓰라렸겠습니까? 정말 불행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외면하고 또 스스로도 포기한 그 모세를 그러나 하나님은 주목하셨습니다.

  한국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하면 밤이 새는 줄도 모릅니다. 고생했던 경험들을 떠들어 대는 것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군대 생활은 힘들고 고달픕니다. 특히 전시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실시하는 훈련을 정말 힘듭니다. 밝은 대낮에 하는 훈련도 고달프지만 야간 훈련은 더욱 고달픕니다. 저는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보병은 아니었지만 통신망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통신참모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정확한 공격 목표 지점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엉뚱한 곳을 공격 목표 지점으로 생각하고 깃발을 꼽고 안테나를 세웠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가짜 목표에 대한 유혹을 받습니다. 특히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짜 목표에 마음을 빼앗길 위험이 있습니다. 사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살아온 모세는 지금까지 가짜 목표를 취하려고 애만 써왔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끝내 수포로 돌아가자 유난히도 힘들어 하지 않았습니까? 권력자가 되고 싶었지만 처갓집의 양 떼나 지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천하를 호령하고 싶었지만 들판에 홀로 서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싶었지만 냄새나는 양 떼나 지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궁궐에 있고 싶었지만 황량한 광야에 홀로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아니 미처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와 함께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은 많은 것을 그를 위해서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사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로의 궁전도, 미디안 광야도, 십보라의 집도, 이드로의 양 떼도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절망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은 모세를 사명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찾아오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비록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해서 진행되게 마련입니다. 불은 붙었지만 타서 사라지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로 하나님은 오셨습니다. 분명한 음성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음성 앞에서 그는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그 신비를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떨기나무를 준비하셨습니다.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발의 신을 벗으라!” 가짜 목표들을 내려 놓고, 헛된 자부심 따위도 다 내려 놓고 다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필립 얀시는 “Reaching for Invisible God”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성과 그럴듯한 외모, 확신에 찬 태도와 정교함 등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계획하시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밖에는 모르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실제로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밖에는 모르는 사람들, 믿음을 버리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거룩한 바보들, 바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원 역사라는 막중한 책임의 자리를 향해서 나아가는 모세가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알아야 했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알아야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화려한 바로의 궁전이 아니라 절망할 수밖에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비로소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 안정이나 경제 발전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이나 평화 통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비록 오늘 주위는 어둡고 캄캄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오직 구원의 하나님을 뜨겁게 사모함으로 말미암아 그 옛날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던 모세처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그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쓰임받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 석 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