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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속죄제의 피뿌림(레 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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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장에 나오는 번제는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받고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레위기 2장은 소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소제는 곡물로 드리는 피가 없는 제사입니다. 이 소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해서 드리는 헌신과 봉사를 의미합니다. 레위기 3장은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기쁘고 감사해서 기쁨의 표현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를 드린 사람, 즉 예수 믿어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이 감사한 마음으로 헌신봉사하고 기뻐하면 그것으로 끝날 것도 같은데 4-5장에는 계속해서 속죄제와 속건제에 대한 규정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4장과 5장에는 온통 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스개 소리로 “왜 이렇게 많은 피의 이야기를 해서 공포감을 조성하느냐?” 하고 질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하는 피가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키는 죄입니다. 우리는 죄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몇가지 대원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 가운데 “심은 대로 거두리라”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원리는 바로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도 이 말씀이 반복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피는 어떤 피입니까? 죄 있는 제물의 피가 아니라 흠 없는 제물의 피가 흘려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대원리인 것입니다. 레위기 4장을 보면 성막의 휘장도 피투성이요, 금 제단의 뿔도 피투성이요, 번제단 밑도 피투성이요, 제사장 옷도 피가 묻어서 피투성이입니다. 죄인들은 이 피를 볼 때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저 피로 말미암아 내가 죄사함을 받았고 내 양심의 고통에서 해방되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레위기 4장을 대하면서 ‘번제도 있고 소제도 있고 화목제도 있으면 그것으로 끝낼 만도 하신데 왜 속죄제와 속건제를 4-5장에 또 규정하고 계신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속죄제라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 또 필요한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속죄제가 필요한 이유

속죄제는 두 가지 때문에 필요합니다. 첫째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짓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로만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그 후에 또 죄를 짓고 연약해서 죄에 넘어집니다. 즉, 구원받은 이후에 지은 죄도 사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속죄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죄를 더 이상 짓지 않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요한일서 1장 8절에 사도요한은 분명하게 대답을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 받았을지라도 “나는 이제 죄 안 짓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봐도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왕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거쳐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했습니다. 홍해를 맨땅처럼 지나서 건너왔습니다. 애굽의 모든 군대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홍해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기 15장에서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가 나의 하나님이시로다.” 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노래했습니다. 이 홍해를 건넌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백성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예표합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너온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아무런 죄도 없었습니까? 아무 적도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지날 때에 내부의 적도 있었고 외부의 적도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대항하는 고라, 다단, 아비람, 온과 같은 적들이 내부에 있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아말렉 군대가 있었습니다. 혹은 발람, 발락과 같은 거짓 선지자들과도 싸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도 내부의 적, 외부의 적과 싸우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헌신하고 기쁨을 표현한 성도가 되었고, 이제는 지옥가기 다 틀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아직도 두 가지 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부의 적이요 또 하나는 외부의 적입니다. 내부의 적은 우리의 죄성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부패성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가리켜서 육신이라고 했습니다. 또 외부의 적도 있습니다. 외부의 적은 마귀요 그 졸개인 귀신들입니다. 마귀와 귀신들은 성도들을 시기해서 어떻게 하든지 죽이고 멸망시키고 망하게 하려고 온갖 역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 여러분의 가정이 원인도 모르게 당하는 일이 있다면 귀신의 역사를 의심하시고 믿음으로 대적해서 물리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내부의 적, 외부의 적들과 싸우면서 죄를 짓기도 하기 때문에 번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난 이후에 지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속죄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
다.

예수 그리스도는 번제 제물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어 처음 구원 받을 때에도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지만 예수 믿고 나서도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속죄제물이 된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날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아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죄 가운데에는 몰라서 지은 죄도 있습니다. 무지로 말미암아 혹은 부지중에 지은 죄도 있기 때문에 속죄제가 필요합니다. 속죄제가 필요한 이유를 레위기 4장 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여호와의 금령’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명령입니다. ‘그릇 범하였다.’고 할 때 ‘그릇’은 영어로 'unintentionally' 입니다. 이것은 고의성이 없이 부지중에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죄를 위해서 속죄제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지해서 죄를 범했는데 그것을 물질적으로 배상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속건제사가 되는 것이고 물질적으로 배상할 수 없는 경우에는 속죄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법을 잘 몰라서 범죄한 경우에도 죄는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범죄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 가운데 우리가 모르고 짓는 죄가 더 많은 것입니다. 모르고 독극물을 먹었다고 하면 죽습니까? 죽지 않습니까? 모르고 먹어도 죽기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모르고 죄를 지었어도 그 죄 때문에 우리는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잘한다고 생각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자기는 농담으로 이야기했는데 남에게 큰 상처가 되고 괴롭힘을 주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장난으로 연못에 돌을 던질 때 개구리는 맞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
다. 그것은 개구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큰 죄가 된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도 나쁜 습관을 가지고 부지중에 여러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죄를 위해서 속죄제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 죄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모든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게 되면 하나님은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번제로 충분한데 왜 속죄제를 또 정하셨느냐?” 하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됩니다.

로마 가톨릭 사제들은 개신교를 향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너희들은 영세, 즉 침례를 받고 난 이후에 지은 죄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느냐? 가톨릭에는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는 성경을 그대로 믿습니다. 성경에는 번제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죄사함을 받는 것도 말하고 있지만, 속죄제를 통해서 자백하면 그 피로 씻음 받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신부에게 가서 무엇을 잘못했다고 고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속죄제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우리를 정결케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죄를 가지고 계시지 마시고 속죄제의 피로 씻음 받고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2. 속죄제의 네 종류

레위기 4장을 보면 속죄제는 복잡합니다.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신분에 따라서 제물도 다르고 제사의 방법도 다릅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 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제사장이 범죄한 경우에 드리는 속죄제도 있습니다. 이때는 흠 없는 수송아지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수송아지를 가져다가 안수기도를 하고 죽여서 그 피를 가지고 세 번 뿌립니다. 성소에 들어가서 휘장 앞에 일곱 번을 뿌리고, 한걸음 물러서서 향을 분향하는 분향단의 뿔
에 피를 바르고, 나와서 번제단에 남은 피를 다 쏟고 내장의 기름과 콩팥과 간위에 덮인 꺼풀을 다 태워서 여호와께 화제로 드립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진 밖에 가져가서 다 불태워 없애 버립니다. 그렇게 해야 제사장이 지은 죄를 사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13절에 보면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범하였을 때,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을 때 속죄제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온 백성의 속죄제도 제물은 수송아지로 같습니다. 단지 안수만 장로들이 합니다. 세 번째로 4장 22절에 보면 족장의 속죄제가 있습니다.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
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족장은 그 당시의 통치자들을 말합니다.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정치가들과 같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게 되면 수염소를 제물로 잡게 되고, 그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번제단 밑에 부음으로서 제사를 지냅니다. 네 번째로 평민들의 제사가 있습니다. 27절에 보면 “만일 평민에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러므로 이스라엘 평민의 속죄제사도 있는 것입니다. 평민들은 흠 없는 암염소나 어린 암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립니다.

신분에 따라 네 가지의 제사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복잡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원리는 간단합니다. 신분이 높을수록 값비싼 제물과 복잡한 제사가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에 동의하십니까? 송아지와 염소 중에 어떤 것이 비쌉니까? 송아지가 더 비쌉니다. 그리고 제사절차도 더 복잡합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이라든가 족장이라든가 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더 큰 책임과 더 큰 성결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고 직장에서도 높이 올라가고 가정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다면 더 큰 책임과 더 큰 성결, 더 큰 주의를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 네 가지의 속죄제사 시스템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백성들보다는 공무원과 정치가의 책임이 더 큰 것입니다. 정치가 한 사람이 말을 잘못하고 판단을 잘못하면 온 백성이 다 고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반성도보다는 집사, 권사, 장로, 목사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대전에 어떤 교회에 부목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성품은 좋으신데 성격이 급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지면 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봉고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다른 교회 장로님 한 분이 그 봉고차 앞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이 문을 열고 습관대로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퍼부은 것입니다. 이 장로님이 그 교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사님 내가 목사님 이름이 찍힌 봉고차 운전수에게 이렇게 큰 욕을 먹었습니다.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담임목사님이 생각해 보니 부목사님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은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 그 청년이요? 어제 교회 등록한 청년인데요. 신앙이 좀 어려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부목사님은 그 날로 교회를 그만두어야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분이 높고 지위가 높으면 그만큼 책임이 큰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 믿고 나서 신분과 지위가 높아지면 더 책임이 큰 것이고, 하나님은 더 큰 성결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속죄제사의 시스템을 통해서 깨닫고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3. 속죄제의 피뿌림

속죄제의 피뿌림은 3개의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1단계는 휘장 앞에서 일곱 번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휘장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휘장은 죄인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휘장을 가르고 지성소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휘장 앞에 일곱 번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휘장만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다른 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성막의 지성소 안에만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휘장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차례만 휘장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고, 일반사람들은 휘장을 열 수도 없었습니다. 그 휘장 앞에 피를 뿌림으로 ‘하나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사오니 이 피를 보시고 내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하는 의식을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휘장 앞에 피를 뿌린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지은 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돈을 떼어 먹어도 그 죄는 하나님 앞에 지은 죄요 사람과 간음을 했어도 그 죄는 하나님 앞에 지은 죄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 18절에 탕자가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탕자는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서 먼 나라에 가서 다 탕진했습니다. 아버지께 죄를 지었지만 먼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시편 51편 4절에도 다윗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 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계신 지성소 앞에서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는 왜 일곱 번을 뿌립니까? 일곱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수입니다. 피의 속죄는 더 이상 붙일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완전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피 뿌림은 결국은 그림자입니다.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려진 그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던 그 휘장을 위아래로 찢어 주셨고, 죄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내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담대히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피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죄를 가지고 있습니까? 내가 노력해서 값아 보겠다는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죄를 더하면 더했지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죄가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게 되고 예수를 믿어 그 피를 의지하게 되면 어떤 죄라도 완전하게 다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알고 지은 죄나 모르고 지은 죄,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나 믿고 난 후에 지은 죄, 예수님의 피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씻어 주시기에 넉넉한 보혈인줄로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죄 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 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런 죄가 있는데 내가 선행을 해서 갚아 보겠습니다.’ 하는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내 죄를 씻어 주옵소서.’ 기도하시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뻐하시고 죄를 사해주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은 그 자체로 완전한 속죄제사이기 때문에 거기에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무슨 얼굴로 예수를 믿겠습니까? 내가 집에 돌아가서 단장 좀 더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오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일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죄를 고백하고 예수의 피로 씻음 받으면, 우리는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의 존전으로 언제라도 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사람만이 죽어도 천국 가는 것이고 이런 사람만이 죽어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해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피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영생천국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제사장이 휘장에  일곱 번 피를 뿌리고 한 발짝 물러나서 향을 피우는 금향단의 뿔에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향단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기도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과해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를 의지하지 않는 기도는 소용없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염불이요 중언부언의 기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요새는 불교신자들도 기도하러 간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안하는 것보다야 기도하며 반성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가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통과해야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남은 피를 성소 밖에 있는 번제단 밑에 다 쏟는 것입니다. 번제단은 자신을 다 드리는 희생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한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하나님이 그 희생과 헌신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보면 선한 일을 많이 합니다. 양로원도 운영하고, 고아원도 운영하고, 때론 큰 애국심도 발휘합니다. 그런데 피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는 희생과 헌신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선행봉사는 인간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지 하나님이 천국에서 상을 베풀어주시는 선행봉사는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인은 피없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의 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배척하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것이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참된 헌신과 봉사를 올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속죄제사의 결론은 우리는 예수 믿고 난 후에 지은 죄 이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부지중에 무지로 지은 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고 잘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속죄제의 교훈입니다. 제가 사역자들과 아침마다 오늘의 양식이라는 작은 소책자를 가지고 예배를 드립니다. 7월 29일자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비리치라고 하는 미국의 스턴트맨 이야기입니다. 바비리치라는 스턴트맨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지는 연기를 했습니다. 그는 사전에 이것을 잘 준비해서 성공적으로 떨어져서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몇 년 뒤에 뉴질랜드에 여행을 갔다가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귤껍질에 넘어져서 죽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선 살아난 사람이 귤껍질을 밟고 죽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지옥에서 해방되고 천국의 자녀가 된 사람이 인생을 살다가 귤껍질 같은 죄를 처리하지 않아서 넘어져 그의 인생이 망했다고 하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속죄제사의 교훈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그 이후의 죄를 잘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무지로 지은 죄도 잘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번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해 줍니다. 즉, 우리의 위치를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죄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하나님과 어떤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주느냐 하는 것을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번제제물도 되셨고 속죄제물도 되셨습니다. 번제제물인 예수님을 믿어 우리는 영생 구원을 얻었을지라도,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날마다 깨끗함을 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마음속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동안에 무지하여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 믿고 나서 지은 죄의 심각성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그것을 주님께 고백하고 예수의 피로 씻음을 받으며 살았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돌이켜 보고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이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영혼을 들여다보시고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죄를 고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 영  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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