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삿 3:7-11)

  • 잡초 잡초
  • 284
  • 0

첨부 1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 사람을 슬프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 나는 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지금 너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저 사람들이 훨씬 중요해.”,  “네 몫은 없어.”, “너보다 잘 하는 사람 얼마든지 많아.”, “이제 너 할 일은 끝난 것 같다.” 등이 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힘이 쫙 빠지면서 인생이 슬퍼집니다.

반대로 “당신은 나에게 참 귀한 존재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내 삶이 행복해 졌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인생이 참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자녀들이 “아빠! 엄마! 세상에 많은 부모가 있지만 내가 엄마와 아빠를 통해서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라는 말을 부모에게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것입니다. 저도 교인들이 “목사님! 목사님은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분이예요.” 라고 하면 무척 행복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제가 “성도님! 성도님은 우리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이십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이 민족과 이 나라가 일깨워져 갈 소중한 분들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참 행복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가치를 존중받을 때 인간의 마음속에는 행복이 찾아옵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쓰임 받는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물며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을 받고 살아가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 하겠습니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이겨 낼 힘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워도, 조롱과 비난을 받아도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옷니엘은, 8년 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 함을 얻게 해주었던 사람입니다. 또한 40년간을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 한 사람 때문에 온 민족이 괴롭힘 속에서 자유함을 얻고 이 민족이 태평함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입니다. 무너져 가는 역사를 다시 쓰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나 쓰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무척이나 많았지만 그 중에 선택을 받았던 사람은 12명 뿐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가정에서는 여러분 때문에 화평함을 다시 찾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며, 교회에서는 성도님을 통해 우리 교회가 회복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삶의 원리가 무엇일까요?  그 원리를 옷니엘의 삶을 통해서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쓸모없어 보인다고해서 그냥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쓰실 수 있게 훈련하시며 갈고 닦으십니다. 쓰임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목표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 고민하면서 옷니엘을 통해서 자신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복된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째, 옷니엘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9절 말씀에 보면 백성들이 회개와 더불어 그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할 때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했는데 바로 ‘옷니엘’ 이었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옷니엘을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통 성경에서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지만 갈렙과의 관계를 명시해 놓음으로서 그의 사역과 삶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5:16~17 에 보시면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함으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유다지파와 갈렙이 헤브론을 치러 갈 때에 갈렙이 기럇세벨을 치는 사람에게 딸을 주겠노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때 그 말을 듣고 담대하고 용감하게 공격에서 승리한 사람이 ‘옷니엘’입니다. 옷니엘은 자신의 삼촌이자 장인이 되는 갈렙과 함께 믿음의 생활을 함께 해왔습니다. 믿음생활을 함께 하다보면 가치관이나 습관들이 닮게 마련입니다.

신명기 1:36에 보면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 후손들이 갈렙의 순종을 통해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렙을 칭하는 다양한 명칭 중 ‘순종의 사람’은 가장 특징적인 것입니다. 이 순종의 사람과 함께했던 옷니엘 역시 갈렙과 함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의 공통점은 순종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업을 하신다면 어떤 사람을 고용하시겠습니까?  유능한 사람이나 친척의 부탁을 받은 사람입니까? 물론 그런 사람을 쓰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사람, 자신은 잘 알지 못해도 리더의 의도에 따라주는 사람을 선호하실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드는 사람, 사사건건 반대하는 사람, 또는 여러분의 경영 마인드와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일하는 사람은 절대 쓸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행하신 일들을 바라보고 그 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좇아서 온전히 순종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에 주님은 앞에 놓인 홍해도 갈라 주셨고, 요단강도 갈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그 사역의 길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돌게 하시면서 그들에게 훈련시켰던 것 역시 이 백성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것’ 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내가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 테니 날 내버려 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 지식과 기준들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이 삶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아시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기를 꺾어 놓습니다. 교육학자들은 우리의 자녀를 교육 시킬 때에 5세 이전에 아이들의 기를 반드시 한번은 꺾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아이가 자신의 고집대로 살면 반드시 그 인생은 엉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고의로 여러 가지 사고를 내고 다니는 아이들의 행동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이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에 순종 할 수 있는 절대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데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쓰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뜻대로, 내 돈으로, 내 노력으로 삶을 산다고 할 때 여러분의 그런 삶 가운데 힘들게도 하십니다. 때로는 건강이나 목숨까지 위협하시면서 여러분의 삶에 관여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뜻대로 가는 삶이 우리가 볼 때는 옳아보여도 그것은 필경 죽음의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고를 받고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축복이 자꾸 늦추어 집니다. 기도 응답도 늦고 자녀와 자신의 삶에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깨달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 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축복의 길을 열어주시고, 삶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제자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라가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주님을 길을 따르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다 세우고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주님 말씀 앞에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승리 하는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쓰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좋은 엔진 , 디자인 , 내장 등을 갖춘 차가 있습니다. 그런데 핸들과 브레이크가 작동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차를 타지 않을 것입니다. 핸들이 고장 나면 차가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면 차를 세울 수 없어 큰 사고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말씀의 브레이크를 밟아도 자신의 욕심대로 가느라고 서지 않습니다. 말씀의 핸들을 꺾어도 하나님의 말씀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겠습니까? 계속 이렇게 자기 뜻대로만 간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결국 매를 드실 수밖에 없으실 것입니다.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따라가는 삶만이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옷니엘의 삶 속에는 이러한 순종이 있었습니다.

성 프란시스 사제단에 한 청년이 지원했습니다. 사제단은 이 청년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테스트를 거쳐 이 청년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지도자인 수도사가 청년에게 말합니다. “저기 심어져 있는 배추들을 거꾸로 다시 심으세요.” 이것은 상식에 맞지 않고 얼토당토 않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스승이 하는 말에 대해 얼마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려는 사제단의 목적이었습니다.

순종하지 않을 때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 쓰임받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께서 그 길을 열어 가시며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자신의 뜻과 계획대로 이끌어가는 것은 현재는 좋을 것 같지만 결국은 멸망의 길입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일평생 산다는 것은 낭비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 옷니엘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둘째, 옷니엘은 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옷니엘이 사사로 부름 받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여든 살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었을 때 여호수아와 함께 있던 갈렙이 여든 다섯 살이었으며, 이때 옷니엘이 쉰 살 쯤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지 삼십년 뒤에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사사로 불렀으니 옷니엘은 여든 살쯤 되었던 것입니다. 여든 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옷니엘은 이미 갈렙과 함께 많은 전과를 올렸었고, 개척시대에 누구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많은 승리들을 거두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지도자로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나이 여든이면 노년으로 자신의 남은 생을 편안히 마감할 준비를 할 때입니다. 이미 백성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터라 굳이 자신이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그 삶은 충분히 윤택하고 신뢰받고 이해받을 수 있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은 옷니엘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이에 옷니엘은 나갔습니다. 10절 말씀에 그가 나가서 싸웠다고 말씀합니다. 

이 전쟁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전쟁으로 8년 동안 심하게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메소보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이름은 영어로 보면 Double wickedness입니다. 얼마나 사악한지 그 사악함이 두 배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영향력은 매우 강했고 그의 지배하에 심하게 고생을 해온 백성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람과의 전쟁에 여러분을 부르신다면 여든의 나이에 나설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하는 의식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으로 인해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평안을 얻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옷니엘의 고백을 보면  하나님이 도전하신 이 일 앞에 자신의 안녕, 삶의 평안, 안전, 건강을 고려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른여덟 된 집사님 부부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지난 주일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큰 기업에서 일을 잘 하고 계셨는데 자신의 삶이 단지 이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면서 다시 한 번 도전의 삶을 살고자 영국의 공과대학 박사과정에 도전하러 가노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기업의 부장이셨던 집사님 한 분은 하프타임 설교를 들으시고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두셨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끝낼 수 없다고 결심을 하고 새롭게 인생을 개척해 보겠다는 다짐으로 LA에 있는 대학 MBA과정에 도전하셨습니다. 1년 반 정도 만에 오셨는데 고생은 정말 많이 했지만 배운 것이 무척이나 많다고 하셨습니다.

부딪히는 일마다 숨이 턱턱 막히고 힘이 들었지만 그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크고 엄청난 것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한 번 도전해 보십시오. 할 수 없다고 주저앉지 마시고, 하나님의 그 부르심을 따라 자신의 인생과 신앙, 그리고 가족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써 보시길 바랍니다.

초밥의 명장인 안효주씨가 있습니다. 이 분은 20년 전 일식당 주방의 냄비닦기로 시작했습니다. 그에게는 이 초밥의 전문가로 성공해야겠다는 도전의식이 있었습니다. 남들 모르는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꿈과 같은 일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가 생선초밥 한 개를 위해 밥을 쥐면 3백 50톨, 안주용은 280톨, 여성손님이 다이어트용으로 주문하면 2백 78톨이랍니다. 공개적으로 시험한 결과 10번 중 8번이 한 톨도 틀리지 않고 정확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이것뿐만 아닙니다. 10대 후반 성공하면 남을 돕고 살자는 그의 결심으로 지금은 한 달에 두 번씩 외로운 노인들에게 초밥을 대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도전 없이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도전하며 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일의 타성에 젖어서 안주하고 싶은 마음, 둘째 대강주의에 빠져서 그럭저럭 살고 싶은 마음, 셋째 인간의 본성적인 악한마음, 넷째 도전받기를 싫어하는 보수주의 및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비전센타를 건축하는 일 역시 편안한 것에 젖어 있는 분들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돈도 부족하고 많은 일들을 계획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면 누구라도 그 일을 감당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가지고 그 부르심 앞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돈으로 비전센타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가지고 기도와 도전으로 교회의 비전을 세워가겠다는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금년 초에 교회에서 예산을 선정할 때 제가 10%정도만 올리자고 이야기 했을 때 불가능 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현재 헌금이 10%이상 더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불경기일 때, 이렇게 어려울 때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계산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계산으로 관철시키고 설득하려 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도전은 누구에게나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내 삶과, 가정과, 신앙의 역사에 새롭게 도전해 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시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게 하실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는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동안교회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도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기도하며 나아간 우리 선배들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도전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주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 부름 앞에 응답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결단 아래 하나님은 기적의 일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셋째, 옷니엘은 영적 리더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본문 11절에 보면 ‘그 땅이 태평한 지 40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유지해 가는 것 역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주부님들이 왜 김치냉장고 사려고 합니까? 김치냉장고에 김치를 넣어놓으면 오랫동안 보존이 되기 때문입니다. 음식의 신선함을 보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이것은 대단한 과학 기술입니다. 하물며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이 백성들이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역된 것을 보면 악이라는 단어는 하나님 앞에는 사악한 것이고, 사람 앞에는 해로운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멀리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지 않고 엉뚱한 자리에 하나님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를 섬기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못할 때 하나님은 이 백성들을 징계하시고 고통 속에 몰아넣으심으로 하나님을 다시 찾게 했던 것이 이 사사기 역사의 순환적 모습입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평안했다는 것은 옷니엘이 영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바깥으로 나가려고 할 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하였습니다. 영적 리더십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자신이 관계를 가지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백성을 이끌어 가는 힘입니다. 여러분은 집에서 어떤 리더십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빠가 회초리 한번 들면 자녀들이 꼼짝 못하는 것은 회초리의 리더십입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리더십은 아닙니다. 자녀들이 엄마와 아빠를 생각할 때 부모를 보면서 바른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민족입니다. 처음 가나안에 들어가서 정착하려할 때 자신들은 텐트 치는 데에만 전문가이지 농사를 짓는 데에는 문외한임을 알았습니다. 양력과 음력을 살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바알은 태양을 숭배하는 신이었고, 아세라는 달을 숭배하는 신으로 양력과 음력을 주관하는 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옷니엘이 가르쳐 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이 사는 이들의 종말이었습니다. 허무와 죽음뿐인 하나님 없는 삶의 종말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죄와 쾌락과 어둠과 멸망 가운데 사는 그들의 실체를 보여주며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조금 불편해 보이고 손해인 듯 보이더라도,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고 복된 삶임을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모여서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릴 때 마다 마음을 돌이키지 않습니까? 자신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그 뜻대로 살아야겠다고 바뀌지 않습니까? 이것을 계속적으로 일깨워 줄 때 우리 신앙생활이 점점 하나님 앞에 복되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는 사람이 영적 리더십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가정에서 얼마나 영적 리더십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계십니까?  가족 구성원들이 일평생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 이상으로 초월해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줄 아는 시각을 열어주고 일깨워주는 일들을 하고 계십니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에 새로 나온 분들이 저에게 가끔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우리교회에 먼저 믿은 분들이 담임 목사님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때로는 험담을 너무 쉽게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보면 그 생각이 떠올라서 마음이 어려워지고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라고 합니다. 물론 제가 많은 부분 부족합니다만 이런 이야기를 먼저 그들 마음에 심어주시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역할에 맞는 행동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을 바꾸어서 “우리 목사님 부족한 것은 많지만 성도님들이 함께 도와서 여기까지 올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도 함께 우리 목사님이 더 하나님 앞에 이 교회를 잘 이끌어 가실 수 있도록, 영적으로 신령한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와주시는 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대화가 더 영적으로 영향력 있는 말이 되겠습니까? 부정적인 이야기를 자녀들이나 배우자가 듣게 되면 반발감이 생겨 결국 자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내 자녀들과 가족들에게, 내 구역 식구들에게 하나님이 원하는 영적 영향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왜곡되고 비뚤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이러한 영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드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족에게, 사랑하는 믿음의 이웃 식구들에게,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일깨워 줄 수 있다면 여러분의 삶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미국인들이 많이 쓰는 치약 중에 콜게이트라는 치약이 있습니다. 이 회사를 창립한 윌리엄콜게이트라는 사람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16세 때 고향을 떠나서 배를 탔는데 자신의 옆 집 할아버지인 그 배의 선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 했습니다. “제가 열여섯 살이 되었는데 이젠 부모님께 더 이상 의존하기가 죄송해서 뉴욕에 가서 제 꿈을 크게 한번 펼쳐보려 합니다.” 그러자 할아버지 선장님이 이 소년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얘야, 인생을 살아갈 때 세 가지만 반드시 기억 하거라. 첫째는 네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라. 보이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은 너를 보고 계시단다. 둘째는 열의 하나, 십일조는 하나님 것이니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야한다. 세째는 네가 어디를 가든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는 이 노인선장의 말을 일평생 간직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경영에 참여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무리 어려워도 십일조를 반드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부흥시켜 주셨습니다. 십의 이조를 드리고, 십의 사조를 드리다가 급기야는 그에게 꼭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나머지는 이웃들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그의 이야기는 수많은 사업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적인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어린 소년의 가슴에 새겨진 할아버지 선장님의 영적인 영향력이 현재 세계의 유수한 기업의 리더들에게 이렇게 엄청난 도전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매우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자녀의 말에 마음이 기우뚱하여 그것에 순종하는 삶입니까? 아니면  돈과 자존심에 쏠려 그것에 순종하는 삶입니까? 여러분 자신이 무엇에 잘 순종하는지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 마음이 따라가는 순종의 모습으로 내 삶의 궤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십시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주님이 약속하신 그 세계를 향하여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한번 도전하고 결단해 보십시오. 

말로만이 아닌 타인의 삶에 실제적으로 영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단,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영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단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실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정말 존귀하게 쓰십니다.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결단하며 여러분의 삶의 궤도를 수정 해 나가는 그러한 주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 형준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