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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승리 (롬 8: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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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제 7,8월 여름에 여름 출애굽운동이라는 주제로 신앙의 수련의 기회를 가지며 지냈습니다.  여름에 우리가 어디에서 떠나고 어디로 들어가야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데 과연 우리는 이 여름을 벗어나서 가을로 들어갈 때 정말 벗어나야할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야할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여름을 벗어나면서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미움의 세계를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그 미움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교회도 가정도 미움과 분노, 원망, 그 모든 그물을 벗어나서 정말 홀가분하게 새롭게 출발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화가난 신앙생활에서 이제 놀라운 화평, 용서와 사랑이 가득한 어떤 세계로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여름출애굽의 큰 결실이 오늘 이 시간에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가을에 열매를 꼭 맺고 꼭 추수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큰 경계선을 확실히 넘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이쪽에서 저쪽, 바로 우리가 있는 이쪽의 사랑의 경계선 안쪽
으로 완전히 옮겨져서 사탄의 모든 공격과 유혹에서 벗어나는 평안과 보호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운전을 하다가 보면 아파트 앞이나 학교 앞 같은 곳에는 곳곳에 과속방지턱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지요.  사실 노란 색으로 줄을 그어 놓더라도 운전을 하다가 보면 저게 진짜 턱인지 아니면 그냥 그림만 그렇게 그려 놓은 것인지, 멀리서는 분별이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처음 운전을 할 때에는 그 턱의 노란 줄을 보고 속도를 줄인다고 했는데도 그 턱에 걸려 차가 덜컹 할 때가 있어요.  그 때는 아니, 턱을 왜 이렇게 높이 했어, 너무 높게 했어,라고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 지난 주 목요일에 우리 교우의 딸 하나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학원 스쿨 버스가 아파트 안에서 얘를 내려주고 깜빡이를 켜고 있는데 트럭이 추월을 하면서 그 버스 앞에서 걸어나 오는 아이에 부딛힌 것입니다.  트럭이 초등학생을 쳤으니 어떠하겠어요.  그런데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입니다.  어떻게 그랬을까요.  바로 그 아파트 안에 과속방지 턱이 높았는데 트럭이 이 때문에 속도를 콱 죽인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과속방지턱을 더 높이 해야할 것 같아요.  그랬다간 차가 지나가지도 못할 수 있지만요.

그러나 아이의 생명이 살고 무사한 것을 생각할 때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또 한가지 감사한 것은 그 높은 아파트의 과속방지턱입니다. 높은 것이 고마운 것이지요.  우리는 참으로 많은 위험과 역경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지금도 위험이 도처에 있습니다.  고난이 우리를 걱정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1.모든 것에 하나님의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 경계선을 사람이나 만물이 넘지를 못합니다. 넘는 것 같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경계를 딱 정해 놓으셨기에 그것을 넘지 못합니다. 아무리 인생이 오래 살려고 해도 죽음의 경계를 정해 놓으셔서 사람은 죽습니다.  만물이 다 그렇게 유한합니다. 유한의 경계선을 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경계선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경계선, 이 턱이 우리를 보호합니다.  죽음 때문에 지금 힛틀러가 없고 뭇소리니가 없습니다.  결국 죽음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난, 역경, 그 안에 우리를 위한 길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턱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바다가 아무리 거세게 쓰나미를 일으켜도 그러나 여전히 그 바다는 경계를 근본적으로는 넘지 못합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다에 모래를 두셔서 바다의 경계를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렘5: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시고 보호하시는 큰은혜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십자가를 넘어서 우리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모든 공격을 대신 막아주시고 약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방지턱입니다. 성경은 이 것을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5장11절을 보실까요. 바울사도가 갈라디아교인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갈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유대인이 전통적으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 8일만에 행하던 할례, 포경수술의 전통을 유대인 아닌 이방신자들이 어른이라도 다 받아야한다는 주장을 유대인신자들이 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반대했습니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게해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핍박도 받았습니다  믿음만으로 되냐, 라는 공격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용서, 그 사랑 만으로 우리는 구원받는다는 진리는 율법의 행위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치는 장애물이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과 그 용서, 그 보호의 은혜,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이 십자가의 진리는 유대인들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정말 거치는 장애가 되어서 그들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에게 구원이 되는 위대한 근거입니다.  십자가의 경계선에서 사탄은 무너지고 우리는 보호를 받습니다. 속도를 내어서 우리를 공격하던 사탄의 정죄도 십자가의 거치는 것 앞에서는 그만 속력을 잃고 멈추게 됩니다.  십자가
는 하나님께서 인생에 그어 놓으신 위대한 경계선입니다.  한계선입니다.  그 이상을 넘어서 그리스도인을 정죄할 세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위대한 경계선에 순복해야합니다. 감사해야합니다.  그리고 내가 비록 미워하고 그냥 두지 못할 사람이라도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을 때 우리는 깊이 용서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한계에 굴복해야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용서의 경계선 이 쪽에서 살아야합니다.  이때 우리의 입에서 나올 말은 주님, 알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용서합니다. 라는 말 뿐입니다.  한 번 그렇게 하십시요.  십자가의 경계선 이 쪽에서 사는 사람들의 언어를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경계선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계선, 십자가는 이제 우리에게 큰 보호가 됩니다.  우리 같은 죄인도 주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경계선 안에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의롭다 하십니다. 

롬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리고 이 경계선 때문에, 이 용서 때문에 이 의롭다하심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큰 역경도 벗어나면서 영혼만이 아니고 인생의 구원을 받게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어도 우리는 반드시 보호를 받습니다.  모든 역경, 환난 속에는 하나님의 경계선과 과속을 막는 속도조절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턱이 있습니다.  보호하실 뿐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연결되었고 다 서로 간에 연결되어서 깊이 하나로 성장합니다.  누구든지 이 것을 막을 수가 업습니다..  그러므로

2. 모든 것에 하나님의 연결선이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 사이를 서로 끊으려고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 사이가 끊어집니다. 부부 사이가 끊어집니다.  이웃과도 또는 교우들 사이에 쐐기가 들어오면 끊어집니다.  그런데 이 끊어짐이 신기하게 사라집니다. 쐐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어느 때인가 사라집니다. 사탄의 역사가 사라집니다.  어느덧 때가 되어지면 우리를 갈라내던 어떤 쐐기 같은 힘이 없어져버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를 서로 연결하시는 연결선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입니다.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연결선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 감동되어서 생긴 확신입니다.  확신의 연결선이 우리를 서로 묶고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합니다.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찬송을 부르곤 합니다. 

찬송가383장1절, ,
(1)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2)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환난, 핍박, 감옥, 고난, 이 모든 것을 받아도 기쁨이 충만하도다, 죽어도 영광되도다, 죽도록 충성하겠네, 라고 하는 이 찬송의 가사는 우리를 숙연하게 하지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연결선이 있어서 우리를 늘 하나님과 묶고 그리고 서로를 묶는 힘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선언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줄, 사랑의 손입니다. 찬송가424장입니다.

(2) 괴론 세상 지날 때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주를 믿고 나가면 나의 길을 잃지 않겠네
한번 불러보실까요. (후렴)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매소서 아멘

주님의 사랑의 줄이 있습니다.
호11: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서 늘 불평이 많았습니다.  왜 우리를 이렇게 광야로 데려 왔습니까, 우리가 그냥 그곳에 있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죽이려고 이곳에 데려 왔습니까, 라는 불평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사랑이셨습니다.  구원을 주시고 노예의 멍에를 벗기시고 광야에서 40년간 지낼 때 늘 먹을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셨습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의 줄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묶여 계셨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자녀에게 사랑의 줄로 묶여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을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돕게 됩니다.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줄에 우리에게 매여 계십니다.  우리를 떠나지 못하십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붙잡으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런 분에게서 누가 우리를 끊어 낼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는가’, 라고 말이지요.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환난이 무엇인가요.  곤고, 핍박은? 다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기근, 배고픔, 아무 것도 없는 적신은 또 어떨까요. 옷도 다 빼앗기고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강도만나서 옷도 다 뺏긴 사람같이 되어 고난을 겪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환난이 우리를 향해 모든 힘을 다해 몰려오고 달려들어도 두려워마십시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하나되어 계시는 그 모습을 볼 때 사탄은 화가 나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주님이 보호하시니 두려워마십시요.  경제적인 문제, 인생의 문제가 심각합니까.  그래도 주님께 연결된 우리는 결코 세상 속에서 끌려갈 수 없습니다.  기도하십시요.  주님이 보호하십니다.  주님께 연결되어서 주님께로 피하게 됩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함께 피할 길을 얻습니다. 그렇게 연결되어지고 그 연결된 줄이 우리를 건져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연결된 사람은 십자가 다음의 부활의 피난처를 반드시 경험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의 줄로 우리는 묶여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 우리와 그 분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이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 줄은 절대로 끊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서로 떨어지는 것 같아도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 주님의 사랑의 줄, 연결선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하나로 묶으시는 성령의 역사, 교통하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성령의 사랑의 줄로 우리는 서로 하나됩니다.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 안에서 하나로 연결된 이 줄이 있습니다. 하나되었습니다.  힘써 지킬 이 줄은 신앙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결코 서로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확신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결코 여러분을 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버리심으로 얻으십니다.  제가 대학생 때에 친구들과 ‘30인의 표류자’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독일 해군이 던져놓은 수뢰에 부딛혀서 배가 폭파하고 삼십명의 표류자가 작은 보트를 타고 거친 바다의 풍랑을 견딥니다.  그대로는 다 죽을 형편입니다. 리더가 결단을 내리고 결국 한 사람 한 사람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바다에 던짐을 받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큰 배를 만나서 보니 그 던짐을 받은 사람들이 다 그 배에 구조되어서 보트에 남은 사람들을 내려다 보던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던짐을 받았으나 생명선에 의해서 구조받은 그들 사이에 하나님의 연결선이 있어서 서로를 한 줄로 묶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연결선은 사랑의 줄입니다. 그러므로 때로 우리가 서로 떠날 수 있습니다. 또는 단호히 떠나 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해야합니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믿기에 또한 때로는 결혼도 시키고 교우를 떠나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로 깊이 사랑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연결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 안에서 연결선으로 묶인 우리에게 큰 은혜가 있습니다.

결국
3.모든 것에 하나님의 생명선이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것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서로 연결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그 분의 생명의 역사와 연결된 생명선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 보면 환자들의 몸과 링게르 병과 연결되는 줄이 있습니다.  그렇게 연결되는 선이 생명선이지요.  그 연결선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있고 우리는 그 선 때문에 결국 모든 어려움을 이깁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중요합니다. 사랑은 바로 생명선입니다. 사랑 때문에 생명을 기대할 수 있고 예수님의 사랑에 연결된 인생이 곧 생명을 가진 인생입니다.  .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 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진정한 생명, 이것은 사랑의 말입니다. 사랑의 말 한마디, 속죄의 용서의 말한마디가 생명선이 되어서 우리를 살립니다.  이 사랑의 생명선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여름출애굽의 결론의 때에 우리는 이제 그 말로 미움의 세상을 벗어나서 가정과 교회가 다 새 출발을 해야합니다.  사랑으로 승리하셔야합니다. 진정한 출애굽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선을 그어서 사랑의 영토를 넓히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땅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약속의 땅
입니다.  사랑의 선을 긋는 일.

그러므로
4.모든 것에 하나님의 승리선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트 모양의 승리선을 그리기를 원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향해서 그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선은 승리의 선이 됩니다.  사랑은 이기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우리에게 큰 승리를 안겨줍니다.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니 우리가 이기는 것입니다. 승리의 선이 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가 우리가 이기는 선이다, 라고 하시면 그 곳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확대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고 선을 그으셨으면 그 선은 곧 하나님의 승리의 선입니다.  그 선안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지도를 놓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 선은 곧 승리의 선이 되어서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은 이스라엘의 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지도 곳곳에 승리의 선을 그어 놓으셨습니다.  사랑의 하트의 선을 그려 놓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그려놓으십니다.  사랑의 선은 그분의 영토가 되는 승리의 선입니다.  사랑의 하트를 그려 놓으면 사랑의 영토가 될 것입니다.  그 선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그들에게 경계선을 그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승리의 선으로 만드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믿음을 따라서 그 선은 그어집니다.  ‘내가 확신하노니’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승리의 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사랑을 따라 생깁니다.  주님의 사랑의 줄은 곧 우리의 신앙노선이요 신앙을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이미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신 승리를 얻습니다.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람들의 마음을 향해 승리의 지도를 그리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당신을 사랑으로 이긴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의 영토가 되게 합시다.  제가 민들레 영토 이야기를 읽으면서 민들레 영토, 라는 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나라 영토를 만들어 갈 교회입니다.  사랑의 줄을 대고 상대방의 마음에 사랑의 나라를 이룰 비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온갖 박해를 해도 어려움을 주어도 그 마음에 우리 주님의 사랑의 나라 경계선을 그 주위에 그리고 믿습니다, 확신합니다, 라고 고백하며 기도하면 그 핍박의 땅, 교만의 땅도 무너지고 결국 예수님을 믿는 땅이 될 줄 믿습니다.  제가 지난 수요일에 LA의 강신권 목사님의 말씀을 드린 것 같이 18번 흑인 도둑이 들었던 교회 목사님, 결국 도둑에게 편지를 쓰고 들어오는 자리에 두었고혈서로인을 쳤지요.  도둑이 감동되어서 결국 폭동 때에 그 교회를 돕고 자신은 도둑을 그만하게 되면서 변화가 왔습니다. 흑인 폭동이 일어날 때 1미터 간격으로 그 교회를 지켜 주는 흑인들을 이끌고 와서 돕고 또 보호하고 그리고 도둑질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뀌는 사랑의 나라 영토가 되는 일도 일어납니다.  사랑의 승리입니다. 

사랑의 성도님들
아까 부른 찬송의 나머지를 불러볼까요

찬송가383장,
3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사랑의 승리의 선, 사랑의 하트의 선을 사람들 마음을 향해 그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사랑의 약속의 땅이 앞에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그 보다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반드시 큰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의 선을 그리면서 그 선 안에 있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항복시켜 주님께 복종케 하는 사랑의 영토를 넓히는 교회, 가정, 인생, 주님의 사랑의 군대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 치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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