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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스바로 모이라 (삼상 7:5-11, 롬 7:19-25, 요 16:3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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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루이지애나의 카빌 나병재활원장인 폴 브랜드 박사(Dr. Paul Brand)라는 분은 한센 병 즉 나병에 대한 권위자로 상당히 이름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출장차 영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용무를 마치고 긴 여행 끝에 런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날 밤 호텔에 투숙하여 신발을 벗고 양말 한 짝을 벗었는데 발뒤꿈치에 아무 감각이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런 일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나병환자들을 수술하고 그들과 직접 접촉해 온 나병 전문가인 그에게는 순간적으로 아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마치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서 핀을 찾아 발의 복숭아 뼈를 찔러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감각이 없었습니다. 찔린 부분에서 피가 솟아났지만 아무 감각이 없었습니다. 자신도 나병에 감염된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브랜드 박사는 그날 밤 한잠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제 자신이 나병환자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을 생각해 보니 앞으로 닥치게 될 일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으로 인하여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되었으나 그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시 핀을 찾아 어제 찔렀던 부분을 힘껏 찔러보았습니다. 순간 그는 너무 아파서 기절할 듯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픈 것이 이제까지 겪었던 어떤 감격보다, 어떤 기쁨보다 더 컸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제 저녁에 감각이 없었던 것은 오랜 시간 여행에 신경의 한부분이 눌려서 발이 마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브랜드 박사는 실수로 손가락을 베었을 때도, 발을 삐어 절룩거리면서도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말이 “하나님, 고통에 대하여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고통이 있습니까? 감사하십시오. 오늘 우리 교회에 고통이 있고, 우리 각 사람이 그 아픔을 느낀다는데 대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시119:71에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여호와의 궤를 빼앗겼던 일은 엄청난 불행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습니다. 삼상 7:2 마지막에 “...온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고 하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통곡한 것을 말합니다. 자기들의 죄를 생각하면서 온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통곡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의 소망이 있고, 이것이 그들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우리의 아픔을 인하여 오히려 감사합시다. 우리에게 교회를 위하여 아파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하십시다. 아니 우리에게 생명을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사무엘상 7:은 소위 “미스바 성회”로 유명합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라는 곳으로 모으고 거기서 하나님 앞에 성회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지금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거국적으로 또는 거 교회적으로 기도회를 열 때 그것을 “미스바 성회”라고 합니다.

7:1-2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넣은 법궤를 잘 지켰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을 통하여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여 우상을 다 제거하고 그들의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우리 신앙에 하나의 신령한 공식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게 되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교회학교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로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들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시 1편의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듯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미스바 성회는 기도하기 위한 오임이었습니다. 5절에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나서 한 일이 기도한 것입니다. 말씀이 운동력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하게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기도회로 모여서 무엇을 어떻게 했습니까?

(1) 6절에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께 부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 물을 부은 일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물을 붓는 의식을 한 것은 성경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애가에 보면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2:19)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물 쏟듯 하는 것”은 회개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하늘 문이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용납 받고, 사랑 받고, 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일부터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개인적으로 회개할 일이 있습니다. 가정적으로 회개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적으로 회개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으면 온 민족이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마치 물을 쏟듯 우리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빈 마음에 주님이 임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말씀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이 명실 공히 우리의 주인으로 좌정하시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2) 다음으로 역시 6절에 “그날 종일 금식하였다”고 했습니다.

기도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3시, 6시, 9시에 기도했듯이 정한 시간에 맞추어 기도하는 것을 정시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한 시간 없이 하는 기도를 “무시기도”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께서 게쎄마네에서 그렇게 하셨듯이 밤을 새워가며 하는 기도를 철야기도라고 합니다. 보통 밤이면 잠자고 쉬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하고 기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금식 기도”가 있습니다. 밤을 굶으면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역에 들어가면서 40일을 금식기도 하셨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역시 40일 금식 기도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금식 기도하는 경건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 금식기도야 말로 생명을 내건 기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먹지 아니하고는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한 사람이 있었듯이 이 기도는 정말 “응답 아니면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기도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런 절박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이런 기도에 기꺼이 응답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그런데 뜻밖에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이 듣고 그들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전에 마귀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열심내면 마귀도 열심을 내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기도나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이런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작심하고 기도하려고 했는데, 작심하고 주의 일 하려고 했는데 뜻하지 아니한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 엄청난 시험꺼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야 하는데 마귀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귀는 바로 이것을 노립니다.

그러면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8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쉬지 말고(Do not stop!)"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던 선한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믿음에는 인내와 함께 소망이 따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일 하다가 다소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저런 비난이나 비판이 있다고 쉬 내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더 힘을 내어 감당하면 내 힘이 아니라 주의 능력으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욥기에서 보듯이 사탄이 아무리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온갖 짓을 다 저질러도 그 활동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마귀의 세력은 결코 절대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에 보면 고난의 기간 또는 시험의 기간은 “열흘”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시한부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견디면 마침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도는 결코 공중에 연기처럼 살아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하고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야곱이 있던 벧엘에서 기도할 때 땅에서 하늘까지 천사가 사닥다리가 놓이고 천사가 그 사닥다리를 통하여 오르락내리락 했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역시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엡3:20에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넘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오늘 사무엘서 본문에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초자연적인 승리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기도에 응답하실 때 오늘 우리에게도 역시 이런 기적으로 역사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운동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기도운동이요, 다른 하나는 블레셋의 전쟁입니다. 하나는 영적 운동이요, 다른 하나는 육적 운동입니다. 이 두 세력이 서로 싸웁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안에서 영과 육이 서로 싸운다고 했습니다. 그 싸움이 얼마나 심각했든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고 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롬8:37에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약하나 권세 많으신 주님이 우리 대신 싸워서 이기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블레셋의 침략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환란이나 시련은 우리를 금보다 더 귀하게 연단시켜 줍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주님의 군인으로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십니다. 이 승리와 함께 면류관과 상급을 주십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어떤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대처해야합니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금식하며 주의 도우심을 구할 때 이제도 기적을 발하셔서 우리에게 놀라운 승리와 성취를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고 하십니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주께서 놀라운 응답과 승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 
(김 오 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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