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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의 비젼 (겔 4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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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는 서로를 세우고 함께 승리하는 기도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보기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자의 기도입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기도입니다.

중보 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위해 중보해주시듯이 나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중보기도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최고의 길입니다.(당신은 축복의 통로이십니다)

우리교회에 새벽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는 제 자신만 불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작은 불씨들이 모이면 큰 불이 되고 그 힘이 대단해지는 것입니다.

새벽부흥이 우리 영생교회의 기도부흥으로 이어지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금요일 심야기도회는 성령이 충만하고 뜨거운 기도가 있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나와서 함께 찬양을 하며 합심 기도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초대교회의 뜨거운 열정이 재연되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꿈꾸며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 영생교회에 와서 기도했던 것인데 그동안 그 기도가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다시 시작한 기도입니다.

새벽부흥과 심야기도회의 부흥을 위한 기도입니다.
구체적인 기도는 솔로몬 성전에서의 기도 모임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기도부흥을 통해서 그렇게 해보자는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기도하는 성도님들로 차고 넘쳐서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오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가정을 살립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교회를 살립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민족을 살립니다. 기도하는 민족이 세계를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성도요 기도하는 교회요 기도하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부흥은 기도의 부흥이었습니다. 마가 다락방에 임한 성령강림의 역사는 바로 기도부흥의 역사였습니다.
베드로의 옥문이 터지고 착고가 풀린 것은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섬김과 봉사의 사람 도르가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도 사랑하는 이들의 중보기도의 능력이었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1903년 원산에서 대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디선교사의 눈물의 회개에서 원산대부흥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은 서로의 죄를 자백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고 성결된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 당시 교회에 드려지는 헌금 가운데는 양심전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한국인 전도자중 윤승근이라는 사람은 당시 뛰어난 실력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은혜를 받고 선교사의 돈을 회령한 것을 회개하고 그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또한 선교사를 만나기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윤승근은 과거 예수를 믿기 전에 횡령한 것도 생각나는 대로 갚기 시작했습니다.

인천주전소에서 근무할 때 회령한 것도 생각났습니다. 그 돈을 갚기 위해 그는 어렵게 20원을 모았지만 인천주전소는 폐쇠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국가 재정을 관리하는 탁지부로 가서 사정을 말하고 돈을 내 놓았습니다.
이렇게 찾아다니며 갚는 돈에 양심전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수 없는 경우 교회에 바쳤습니다. 이렇게 양심전으로 바쳐지는 돈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부어진 성령은 그들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증인들로 변화시켰습니다. 기도하는 초대교회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기도하는 초대교회는 놀라운 초대교회 부흥의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산부흥운동은 서울로 평양으로 전개 되면서 1907년 평양 대 부흥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모든 부흥의 역사에는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실한 회개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통해 한국초대교회 부흥의 역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선교 120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1903년부터 1907년에 있었던 대 부흥의 역사가 이제 곧 다시 찾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영생교회가 영적 대 부흥의 중심에 있기를 원합니다.
부흥의 불길이 우리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기도부흥은 바로 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불길은 너무 미미한 수준입니다. 

여러분, 한사람의 기도가 더 필요합니다. 힘을 더 실어주셔야 합니다.
지금 성도님 한 분의 결단은 우리 교회 부흥의 불길을 더욱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끌고 성전의 문으로 갔습니다.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고 있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의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렸습니다. 또 바깥 북문으로 가서 보니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왔습니다.

이렇게 성전 문지방에서 흐르는 물은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큰 강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며 모든 생명이 풍성히 일어났습니다.
대 부흥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메마른 대지가 비옥해지고, 죽었던 땅이 다시 생명을 내는 땅이 되었습니다.
강 죄우에는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새 실과가 맺어졌습니다.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대 부흥의 역사를 시작한 근원지가 성전입니다. 성전의 문지방에서 흐르는 생명수였습니다.

에스겔의 환상은 앞으로 실현될 이 땅, 우리 교회와 민족의 영적 대 부흥의 비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 땅 이민족을 향한 부흥의 비젼입니다.
에스겔이 본 부흥의 비젼을 오늘 우리들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흥의 비젼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흥의 비젼을 성취하기 위해서 지금 시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시작해야 합니다.

성전에서 흐르는 생명수는 참된 생명의 원천으로 황량한 사막과 같은 세상에 생명수를 공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땅에 유일한 생명이시며 길이시며 진리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황량한 세상에 생명의 역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멸망의 길에서 건져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모든 어두움을 물리치는 참 빛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는 자리마다 회복이 일어납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묶인 것이 풀려지고 모든 악한 것들이 물러가고 참된 자유가 실현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며 모든 병든 자들이 치유함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세상에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58:11-12)
교회가 세상에 생명수의 발원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이 땅의 대 부흥의 근원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한국교회에 영적 갱신과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첫사랑의 열정과 믿음의 능력을 되찾아야 합니다. 교회 속에 진정한 회개와 정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아니하면 내가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나는 부자라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 책망의 말씀은 오늘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조금 가진 것 같고 굉장히 가진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이 땅에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영적각성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영적각성운동은 기도운동입니다. 말씀운동입니다. 뜨거운 성령 충만의 운동입니다.
영적 각성운동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운동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해지는 운동입니다.
이와 같은 영적 각성운동은 이 땅의 황무함을 고치고 회복시키며 부흥케 할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지는 아름다운 회복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성전문지방에서 흐르는 물을 일천 척씩 잴 때마다 물의 깊이는 더하여졌습니다.
일천 척을 재니 발목에 이르고 또 일천 척을 재니 무릎에 이르고 또 일천 척을 재니 허리에 이르고 다시 일천 척을 재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점점 더 풍성해지고 많아지고 깊어지는 부흥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부흥의 강물이 잴수록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 부흥의 강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더니 온 천지를 휘감아 돌아나는 큰 강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그리고 우리들이 온전히 보아야 할 부흥의 비젼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품어야 할 부흥의 꿈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출발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곧 그것은 큰 물이 되었고 모든 생명을 살게 하는 생명의 강물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기도가 아주 작은 것일 수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도 잇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눈물과 열정과 사랑과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진정 생명의 역사가 그 속에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작지 않습니다. 결코 보잘것없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은 곧 커질 것입니다.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전의 나중 영광이 이 전 영광보다 크리라” 학개 선지자에게 주신 비젼입니다.
이것은 우리 영생교회의 비젼이며 성도들의 비젼이며 한국교회의 비젼입니다.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면 재건된 스룹바벨 성전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초라해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하셨습니다.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다.”
“이곳에 내가 평강을 주리라.” 아멘

그렇습니다. 부흥의 비젼을 꿈꾸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 언약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주의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마25:23) 아멘
기도하는 일은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되지 못하면 큰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니 큰 일이 주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하나님은 큰 일, 부흥의 비젼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 영광에 참여할 축복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광 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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