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학생회헌신예배] 피그말리온 효과 (마 18:3)

  • 잡초 잡초
  • 710
  • 0

첨부 1


“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학기 초에 담임선생님에게 학생명단을 넘겨주면서 심리학자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검사한 결과에 따르면 당신에게 넘겨주는 이 학생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잘 교육시키면 크게 성공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 난 뒤 모든 학생들 앞에서도 크게 성공할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심리학자의 지명을 받은 학생들을 10개월 후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역시 심리학자의 예견한 대로 그들의 성적은 월등하게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성실한 학생으로 변화되어 있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심리학자가 담임선생님에게 넘겨준 명단은 선별된 특별한 학생이 아니라 그냥 보통학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특별한 잠재력을 가졌는지 조차 검사한 적이 없는 그저 무작위로 추출해서 넘겨준 명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격려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로 큰가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로젠탈(T.L.Rosenthal)이란 심리학자가 처음 실험하였던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이와 같이 격려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교육학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이 자녀들과 학생들과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탄식하고, 원망하고, 짜증내며 한숨 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이 미완성의 상태에 있는 그들이 모습을 본 것일 뿐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무한의 잠재력을 보지 못한 탓입니다.

또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또한 가장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학생회원들이 바로 이러한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저는 오늘 이시간 학생회원들을 관리해야 하는 교회와 부모와 교사의 입장에서 본문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첫 번째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위해 신앙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왕대밭에서 왕대난다”는 말과 같이 신앙도 위대한 신앙인 부모 슬하에서 위대한 신앙인 자녀가 태어나 성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의 신앙이 그대로 자식들에게 상속되어 옮겨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밑에서 이삭이, 이삭 밑에서 야곱인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밑에서 요셉이, 아므람과 요게벳 밑에서 모세가, 한나 어머니의 밑에서 사무엘 선지자가, 로이스와 유니게 할머니와 어머니의 의 뒤를 이어 디모데가 위대한 신앙의 지도자로 자라나게 된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신앙인 밑에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자녀를 원하면 위대한 신앙의 부모, 위대한 신앙의 교사가 먼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육학자 콜만 매카시는 1978년에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6세 된 아이의 성격과 행동은 12세 때 이미 결정되었고, 12세의 아이가 취한 행동은 8세 때 이미 그 원인이 잡혔으며, 8세의 아이가 나타낸 행동은 3세나 4세 때에 그 뿌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3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의 올바른 신앙교육은 이런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시각으로 자녀를 보아야 합니다. 고대인들은 어린아이를 어른의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취급하고 학대하였습니다.

희랍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뜨거운 알코올에 담가 두어서 거기서 살아남으면 기르고 그렇지 않으면 산 속에 갖다 버렸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남자 아이는 가난해도 기르고 여자 아이는 부자라도 버려도 좋다는 아테네의 법률을 인정했습니다.
로마에서는 아이를 노예로 팔 수 있는 권리를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어떤 지방에서는 아이가 셋이 되면 하나는 눌러 죽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 올 수 없다고 비유의 모델로 사용하셨으며,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주님처럼 영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그를 환영하고 그를 위해주고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인류역사상 예수님만큼 어린이를 존중해주신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8장 6절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셨고, 18장 10절에서는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무조건 용납하셨고, 안아 주셨고, 축복해주셨습니다. 철인 소크라테스는 말하기를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없어질 물질을 위해서는 많은 관심이 있는데 진짜 유산인 아이들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테네의 가장 높은 탑에 올라 한마디 말을 남기고 죽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면 나의 한 마디는 '시민들이여 어린이에게 투자하라'는 말일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어린아이가 자라서 학생이 되어 버렸다면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이용해 어린아이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고, 용기를 주고, 무엇보다 믿음으로 생활하도록 지도해야만 합니다.

미국 버지니아 해안에 가보면 맥아더 기념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맥아더 장군이 일생동안 받은 훈장과 상장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평소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받은 훈장 중에 가장 위대한 훈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자랑스러운 아들을 주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맥아더는 자기 아들이 태어나는 날,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선물을 주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의 유업입니다.

시편 127편3절에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잘 양육하고, 돌볼 의무가 있음을 깨닫고, 진리 안에서 나라와 민족과 교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신앙의 지도자로 양육하여 길러내야 합니다.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할 의무가 부모에게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들에게 자녀를 양육할 것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을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양육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트르포>로서 "꽃을 기른다.", "애완동물을 기른다.", "몸을 돌본다."라는 말을 의미할 때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시편 34편 11절에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라."는 말씀이나 시편 78편 5절에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잠언 3장 1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인으로 양육하기 위해서 교회와 부모와 교사의 책임이 부모와??동일하게 있습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에서 신앙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11장 18절에서 19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잘 양육하기 위하여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하여 자녀를 가르치고, 양육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부모들에게 자녀를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신앙으로 모범을 보이고, 양육하고, 가르칠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교회와 교사 역시 동일한 책임이 주어져 있슴을 인식하고 신앙교육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가정교육을 학교 교육에 비한다면 가정은 학교이며, 부모는 교사가 되며, 성경은 교과서가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자녀에 대한 신앙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으로 양육함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예의범절이나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전문적 기술을 전수해 주는 것 보다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사도 바울도 어린이의 신앙교육을 중시했습니다. 사실상 어린이를 잘 교육시키는 것은 한 민족의 번영에 큰 공헌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 콜리지에게 한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평소 콜리지를 존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의 주제가 어린 아이에게로 옮겨졌습니다. 그 때 방문객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어린 아이들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일찍부터 자기 스스로 결심을 하는 법을 배우거든요. 어린 아이들이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완전하게 키워 나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콜리지는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우리 꽃을 보러 갈까요?" 이렇게 말하고 콜리지는 방문객을 꽃이 만발하게 피어있는 정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방문객은 그의 정원을 한번 둘러보고는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니! 왜 여기는 잡초 밖에 없나요." 그 때 콜리지는 "여기도 전에는 꽃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일부러 내버려 두었습니다. 자기들이 자라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어떻게 자라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잡초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라고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와 부모와 교사는 교육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자녀를 잘 양육하려면 먼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을 보시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골로새서 3장 21절에서도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격노한다”는 말이 본래는 "배가 항해를 하는데 바람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람이 없으면 배가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배가 더 이상 항해할 수 있는 추진력의 힘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녀들이 범사에 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 수 있도록 믿음 안에서의 양육이 필요하며, 용기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자녀를 질타하기만 하면 기를 꺾어버리고, 용기를 꺾어버리는 것이 되고야 맙니다. 만약 지나치게 자녀를 징계하거나 잘못 자녀를 징계해서 자녀의 마음속에 분노를 축적시킨다면 자녀는 나중에 기가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더 이상 항해할 수 없는 배처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상실합니다. 심지어 모든 삶의 의욕을 상실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으로 양육하되 격려하는 교사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위해 사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사랑이 없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디도서 2장 4절에서 젊은 여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사용된 단어는 아가페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녀를 사랑하라고 말할 때는 아가페가 아니라 필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여기 필로스는 친구의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 입니다.

부모가 자녀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 여러분! 자녀들과 얼마 만큼 친구가 되어 주십니까? 얼마만큼 자녀들과 대화를 하십니까?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자녀가 그런 부모의 사랑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잘못도 있지만 부모의 잘못도 있습니다. 전달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자기중심의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자녀들을 바로 이해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사랑을 베풀어주어야 합니다.

한 아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는 축 쳐져서 집에 돌아와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무래도 시험을 잘 못 본것 같아요."

이 말은 들은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럼 너 전교에서 등수안에는 드냐?"

"그럼 아버지, 전교 등수에 안드는 학생이 어디에 있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일러줍니다.

"그럼 이제부터 누가 '너 공부 잘 하지? 하고 물으면 '네! 전교에서 등수 안에 들어요!'하고 말해라... 아버지가 이ㅏㄹ러준대로 아들이 실천했답니다.

그런데 다른 어른들은 내용을 잘 몰라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 녀석 아주 공부 잘하는구나 전교에서 등수안에 들구!"” 이 후에 아들은 더욱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모와 교사들은 학생회원들에게 친구와 같은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 바른 양육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달라스 신학교에 계신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삶에서 아버지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새벽에 내가 거실을 지나갈 때, 나와 형제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시던 아버지의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들과 씨름하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이 두가 지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친구와 같은 사랑을 느끼도록 자녀들과 학생회원들과 자녀들을 지도하며,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6절 이하를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가장 훌륭한 인격자, 가장 좋은 지도자, 가장 믿음이 좋은 헌신자로 양육하는데 가장 좋은 교재가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링컨이 아홉 살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풍토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어린 링컨에게 "부자나 위인이 되기보다는 성경 읽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배워 살고자 하는 링컨은 대통령이 되었고,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노예를 해방 시켰으며, 미국을 더욱 큰 불행을 막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여 선의의 경찰국가를 만드는 일에 공헌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세계를 감동시키고, 모든 인류에게
커다란 모범을 보인 위인이 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할버튼이 어느 날 어린 아들과 친구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한 소년이 아들에게 이런 자랑을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시장님과 아주 친하단다." 그 때 아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꾸했습니다.

"그래, 우리 아버지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아주 친한데." 이렇게 대꾸하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렇게 확실한 신앙 고백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할버튼은 아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 어린 시절에 신앙을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건강한 부모의 신앙, 그리고 건강한 신앙적 교육의 자세, 말씀을 통한 신앙교육만이 건강하고 바로 사는 자녀와 학생회원으로 길러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인물들이 되어 위대한 삶을 살게 되는 은총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이 되어 위대한 자녀와 학생회원들을 훌륭한 신앙의 지도자로 길러내는 학생회 기관과 부모들과 교사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복 빌어 드립니다.

위대한 교육자는 어린이들의 가능성을 보는 사람을 가리키며, 또 그러한 눈을 가진 부모와 교사만이 위대한 인물을 양육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참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이 어린 아이들과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격려하신 모습에서 우리 교회와 부모들과 교사들은 신앙의 지도, 사랑의 지도, 하나님 말씀을 통한 지도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최대한 활용하여 신앙의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진심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황 영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