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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확신하노니 (롬 8: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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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인 영국의 래클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메시아 오라토리오 중에서 소프라노 아리아인 ‘내 주는 살아 계시고’ 라는 곡을 소프라노 가수가 부르는데 정확한 음정과 박자, 아름다운 음색과 호흡을 통해 노래를 부릅니다. 모든 청중들이 잘한다고 생각하며 듣고 있는데, 갑자기 지휘자가 노래를 중단시켰습니다. 노래 부르던 가수는 말할 것도 없고 오케스트라 단원들. 심지어 청중들까지 놀라며 서로 마주 보았습니다. 이 때 래클이 가수에게 “당신은 정말 내 주가 살아 계신 것을 믿습니까?” 그 때 가수는 너무 뜻밖의 질문이라 당황하며 ‘그렇다’ 고 대답했습니다. 래클은 “그렇다면 그 믿음으로 다시 불러보세요” 하며 지휘를 시작합니다. 소프라노 가수는 그 순간부터 음정. 음색. 호흡. 박자. 감정은 생각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많은 청중들이 조금 전까지 참 잘한다고 생각하며 노래를 들었는데 다시 부르는 노래를 통해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흘리면서 들었다고 합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노래를 불러도 확신을 가지고 부르는 노래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확신에는 힘이 있습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의 확신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신데 누가 너를 송사하며 정죄할 수 있느냐?” 우리들이 진정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면 바울같은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또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감사와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고통이나 절망도 확신이 있으면 딛고 일어 설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백하는 “내가 확신하노니” 의 확신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장하여 주십니다

추운 겨울날 무디 목사님은 어린 딸과 함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눈 쌓인 길을 가며 어린 딸이 넘어질까 염려가 되어 손을 붙잡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싫어요. 나 혼자 걸을 수 있어요” 말하며 혼자 앞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무디의 눈에는 금방 넘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딸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그것 보렴. 아빠가 붙잡아 준다고 하지 않았니?” 딸은 그제 서야 “그러면 이 손가락 하나만 잡아주면 갈 수 있어요” 라고 말하며 손가락 하나만 밀었습니다. 무디는 딸의 손가락 하나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다시 눈길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딸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이제는 꽉 잡아 주세요”. 무디는 큼지막한 손으로 딸의 조그만 손을 꽉 붙들었습니다. 딸이 넘어지려는 순간마다 꼭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번도 눈길에 넘어지지 아니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을 잡으면 불안하지만 하나님이 내 손을 잡으시면 완전한 보장입니다. 우리 혼자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나, 강한 팔로 도우시는 하나님 보장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우리를 변호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삶을 보장해주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현재 고난은 그 어떠한 것이라도 우리에게 보장된 장래의 영광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35절을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바울은 고난을 몸소 겪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당했던 환난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번 감옥에 갇혔습니다.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태장으로 맞았습니다. 돌로 맞기도 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핍박이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나 칼이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을 겪었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그러나 어떠한 고난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안전을 보장하고 계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미리 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미리 정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감히 그 무엇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가 있습니까?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이 모두 합친다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보장에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최후의 승리와 영광이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추진하면서 수 없는 위험과 박해에 직면했습니다. 그때마다 루터는 책상위에 손가락으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라는 말을 반복해서 썼다고 합니다. 비록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에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교황 편이고 모든 상황과 조건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도 루터는 힘과 능력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종교개혁의 승리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는 하나님을 향한 루터의 확신 위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37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기에서 ‘넉넉히 이긴다’ 는 헬라어 동사는 ‘휘페르니코멘’ 입니다. 이 말은 휘페르 ‘무엇 위에' 라는 말과 ‘니코메’ 라는 ‘정복한다’ 는 두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정복이상의 정복을 얻게 된다’ 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어떤 싸움에서도 결코 패배하지 아니하고 승리 이상의 승리를 쟁취해 낼 수 있고 정복자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We are more than conquerors’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는 정복자보다 더한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정복자란 말은 이미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승리를 쟁취한 정복자보다 더한 정복자로 삼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정복자가 얻는 이상의 승리를 얻게 하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를 죽이려는 세력들이 강하고 악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둘러 진쳐 주신다면 우리를 해할 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현재의 고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넉넉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겨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니 어떠한 고난도 넉넉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겨우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스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고도 남는 것입니다. 넉넉히 이겨냅니다. 이와 같은 확신을 가진 바울은 육체에 있는 가시까지도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기뻐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넉넉히 이기는 자의 모습입니다. 넉넉히 이기는 자의 확신입니다. 마지못해 고난과 고통을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향한 확신으로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고 자랑할 수 있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1869년 프렌티스(E.P. Prentiss)는 결혼한 지 11년에 얻은 두 아이가 전염병으로 죽게 됩니다. 한 날 한 시에 그들을 묻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슬픔과 눈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낙심과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프렌티스야, 많이 슬프냐”, “예 많이 슬픕니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너는 너의 영원한 저주와 사망을 대신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를 내가 네 대신에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건에 대하여 슬퍼해 본적이 있느냐” 프렌티스는 하나님의 물음에 크게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주님, 저는 세상 기쁨만 위했습니다. 이젠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소원이 되고 이것이 나의 기도제목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찬송시를 썼습니다. 찬송가 511장은 프렌티스 여사가 드린 기도문의 내용입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전엔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38절과 39절을 통해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선포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환난 속에서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 속에서도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의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현재의 그 누구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등이 수없이 많다 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이 있기에 얼마든지 넉넉하게 이기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임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서 8장 말씀을 펼쳐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로마서 8장 마지막 부분에 있는 “내가 확신하노니” 라는 말씀 위에 놓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가족들은 그의 손가락을 로마서 8장 38절 말씀 위에 올려주었습니다. 그는 그 말씀을 읽어달라고 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망조차도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씀을 들으며 그는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은 천국 가는 그 시간까지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을 향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고난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도 이기게 하시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사랑이 결코 우리에게서 끊어지지 아니함을 믿음으로 지금보다 더 강한 삶을 살아가는 복된 확신의 사람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 광 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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