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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시 5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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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를 만나는 일이 갈수록 많아지는 세상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만해도 이라크에서는 "이곳에 테러리스터가 있다"는 말한마디에 두려운 나머지 이슬람 성지순례객들이 서로 밀고 밀쳐서 1000여명이 넘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하는 미국에서는 태풍 "카트리나"로 인해서 한 도시(뉴올리언스)가 그 기능을 상실해버리고 그 인명피해가 수천에 이를 것이라 합니다. 경제적인 피해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조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재난을 입은 미국 시민이 "어찌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고 한탄하는 말이 제 기억의 잔상에 남아 계속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태풍으로 인해서 100여명 이상의 인명이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중국에서 100쯤 죽었다는 말은 수 백명이 죽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중국에서는 몇명 죽는 것은 기사거리가 되지를 않습니다. 워낙 인구가 많고 큰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나라에서는 사건을 감추고 축소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반도를 향하여 지금 14호 태풍인 "나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매년 태풍으로 인해서 재난을 당하고 있으며 그 후유증을 곳곳에서 앓고 있습니다.

  어디 태풍뿐이겠습니까? 이런 저런 사건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터를 뒤흔들어버리는 지진과 난리의 소문은 날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흉악한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모든 날들은 두려운 날에 해당합니다. 이런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위험이 없는 "절대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절대라고 하면 안됩니다. 절대 안전한 곳은 아무 곳도 없습니다. 금번 태풍을 만난 미국 올리언스에도 한국인 2500정도 살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한국이 불안전하다고 안전한 곳인 미국으로 갔다가 전부를 잃어버린 한국인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 한분도 안전한 곳으로 이민갔는데 그곳에서 마켓을 하다가 강도에게 총맞아 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 사고가 두려워 운전을 못합니다. 차도 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차를 이용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신의 가장 안전한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자동차가 날아들어와서 교통사고 죽었습니다. 이제 안전한 곳은 지리적이며 세상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는 위기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위기가 더욱 강화되고 강력화되고 가중 될 것이라는 예고가 더 확실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위기관리 능력입니다. 위기가 없을 수는 없고 그리고 위기가 더욱 가중될 세상이라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떠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 그것을 얼마나 잘 타개해 나가느냐가 그 개인이나 사회의 성숙도를 판가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위기의 날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두려운 날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성도의 신앙을 판단해볼 수 있는 좋은 시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많은 위기와 문제와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돌파할 것이냐 꺽이고 말 것이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역사의 발전은 문제에 부딪쳤을 때 꺽이지 않고 돌파해 나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 1~2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고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문제의 도전을 돌파하였습니다.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위기를 돌파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까? 두려운 날에 꺾기지 않고 용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6번씩 "주를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 환란의 날에도, 그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날에도, 원수들이 호시탐탐 그를 죽이려고 노리고 있는 그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결단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하는 말 가운데, "의지한다"는 말씀은 "바타흐"라고 하는 이 동사는 "어디에 꼭 매어 달리다"(Cling to)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에게 착 달라붙어 안겨 있는 것과 같이, 어떤 대상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가지고 그를 완전히 의지하여 그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 모습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여기 사진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진은 인터넷 그림파일인데 아마도 화산폭발로 인해서 지금의 모습대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 그림에서처럼 가장 위급한 순간에 아이가 어른에 품에 깊이 안겨서 그 위기의 순간을 보낸 것과 같이 주를 의지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상고하는 이 시편은 위기의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의지하는 신앙의 모습이 돋보이는 시편입니다. 낙심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삶의 위기에서 낙심하지 않고 그 위기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은 그가 주님을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도 역경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창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창문을 통하여 그는 지속적인 영적 성장을 도모했고 포로생활속에서 자신에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의 섭리를 항상 기억하면서 자고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또한 낙심하지도 아니했습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불리한 조건이 생길 때 많은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문을 닫아버립니다. 은혜의 사닥다리를 절단해 버립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렇게 한 것은 위기관리능력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보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문을 닫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다니엘으 세 친구는 풀무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을 더 두려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자신의 목표에 실패하면 어떻게 합니까? 더 강도 높은 훈련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등산가가 등정에 실패하면 더 혹독한 등반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몇달전에 산악인 박영석씨가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뉴스가 전파를 탔습니다.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하려면 남극과 북극을 도보로 다녀와야 하고 에베레스트 산에서 8천미터 이상의 봉우리들을 모두 오르고 거기에다가 각 대륙의 최고봉을 다 등정해야 합니다.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 위해서 박영석씨는 얼마나 많은 훈련을 했겠습니까? 피난는 훈련이 없이 결코 그런 위업을 달성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도 몸부림치며 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의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실패했을 때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합니까? 오히려 포기부터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신앙인들은 위기를 만날 때 더욱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운 날에 사람의 위로를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위로를 구해야 합니다.
사람은 두려운 모습을 보이고 위로를 구하면 약한 자에게 강하는 구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용하고 약점으로 잡아서 부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를 의지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약할 때 강함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를 의지하면 위기때에 위로를 받습니다. 두려운 날에 주를 의지하면 위로를 받게 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로소서"했습니다. 그리고 사61:3에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로하심을 받게 합니다. 하나님이 그 유리함을 계수하여 주십니다. 
  인간의 위로도 약간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위로나 완전한 위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위로인줄로 믿습니다.

  주를 의지하면 하나님은 위기 중에 우리를 도우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막으시고 회복시키십니다.그러므로 두려워 하는 날에는 더욱 주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두려운 날에 "내가 하나님 앞에, 생명의 빛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애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말씀하십니다. 13절을 보면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치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했습니다.

  다윗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때로는 원수들의 공격 앞에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였으나, 이내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표제에도 보면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이 어디 단순한 상황입니까? 그러나 그는 두려운 날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12절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바로 자신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원수 앞에서 어떤 때는 미친 척까지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였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사정을 아시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환난 중에서도 오히려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네게 어찌 하리이까?"(10~11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억울할 때에, 내가 홀로 외로움으로 눈물지을 때에,내가 두려운 날에 우리가 결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눈을 열어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들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억울함과 탄식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서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나의 고통당함을 하감하시며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바라보고 계시고, 내가 하는 말과 나의 모든 것을 듣고 아심을 믿습니다.
     
  현대를 총체적 위기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성의 문제, 도덕의 문제, 안전의 문제 등등이 우리를 위협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더욱 의지함으로 위기관리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송 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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