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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 한번 질끈 감고... (삼하 2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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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9월을 맞은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이 달에도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무엘 상·하서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왕조의 시작을 그린 사무엘서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해도 다윗입니다.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다윗의 시대는 가고 곧이어 열왕기서로 넘어가면서 솔로몬의 시대가 열립니다.
그렇게 보면 이 사건은 다윗왕의 마지막 기사(記事)라고도 볼 수 있는데, 다윗왕의 마지막 치적으로 보기에는 조금 아쉬운 점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리 유쾌한 사건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을 치시기로 작정하심
1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해 진노하셨습니다. 이에 다윗의 마음에 잘못된 마음을 부추겨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합니다. 이 기록과 동일한 사건의 기록이 똑같이 역대상 21장에 나오는데 그곳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상 21:1) 『사탄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일어나서, 다윗을 부추겨,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였다.』

어쨌든 본문에서 정확히 드러내진 않지만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징계하기를 원하셨고, 그 징계의 원인제공으로 다윗은 인구조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기 마련인데, 본 구절에서는 명확히 하나님의 진노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킨 이스라엘의 범죄는 압살롬의 난(15:7-12)과 세바의 난(20:1, 2)에 보여 주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적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조심스러운 성서 주석가들의 의견입니다. 즉 그때에 이스라엘 국민의 다수는 유감스럽게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다윗 왕을 반역하고, 그를 대적하여 압살롬과 세바를 좇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왕을 세웠던 하나님을 향한 저들의 반역죄였던 것입니다.

■ 우리 속에 일어나는 악한 생각.
성경의 표현에, ‘다윗을 감동 시키사...’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공동번역 성경의 번역은 이렇습니다.

(삼하 24:1) 『야훼께서 다시 이스라엘에 진노를 내리실 일이 있어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셨다.』

개역 성경의 ‘감동’, 또 다른 번역 성경의 ‘부추기다’, ‘마음을 품게하셨다.’라는 표현의 란 영어 단어는 ‘자극하다, 격려하다, 선동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마음, 생각은 곧 모든 선함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든 죄, 악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고 경고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최초의 죄를 지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따는 그 행위가 있기 전에 사탄이 넣어 준 생각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되새김하다가 결국은 그 생각을 실천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5:18-19) 『[18]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19]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오는데,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탄식하면서 외쳤습니다.

(렘 4:14)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가룟유다의 마음에도 사탄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성경은 기록했습니다.(요 13:2)
사랑하는 오천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악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도록 마음에 성령의 파수꾼을 세우십시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 인구조사
사탄의 악한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네, 그것은 인구조사였습니다. 다른 성경 번역은 ‘병적조사’라고도 표현합니다.
사실 인구조사야말로 합리적인 통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숫자를 세는 것으로만 기록된 책 민수기(Numbers)라는 책도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한 기록도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출 30:12, 38:26 / 민 1:44-46, 26:51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다윗이 명령한 인구조사에 대해 진노하셨을까요?

다윗이 인구조사를 명령했을 때에 군대장관이 요압이 다윗에게 권한 충언의 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서에서 요압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이 백성을 백배나 더하실텐데 궂이 그러실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역대상에서는 이 백성이 다 주의 종인데 어찌 이 일을 명령하시느냐고 묻습니다.

다윗의 인구조사의 저의(底意)를 파악해야 합니다. 문제는 다윗의 인구 조사가 군사적인 목적, 또는 왕권의 강화를 위해 시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우선 합법적인 인구 조사는 제사장들이 그 일을 감당하였습니다(민 1:3, 26:1,2). 이에 반해 다윗은 군대장관인 요압을 인구 조사의 책임자로 임명하였습니다. 또한 합법적인 인구 조사는 조사받은 각 사람에게 생명의 속전(贖錢)을 내게 하였습니다(출 30:2). 그리고 이 생명의 속전은 성소에 봉헌됨으로써 여호와께 속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고백하는 의식이었습니다(출 30:13).
그러나 다윗은 본 인구 조사에서는 이를 시행치 않았습니다. 이로 보아, 다윗은 단순한 인구 조사를 명령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인 목적과 왕권의 강화를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행위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일까요? 이 일이 하나님을 향한 진노의 행위가 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다윗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으려 하지 않고, 강화된 군사력과 왕권에서 얻으려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순수했던 소년 다윗 시절, 다윗은 골리앗과 맞서서 싸우러 나가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삼상 17:47) 『또 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께 달린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

다윗은 인구 조사를 통해 자기의 세력을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이 이룩해 놓은 영광스러운 번영을 확인하고 자랑하려 했습니다. 특히 군사력에 대한 실세를 파악한 것으로 오늘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9절 말씀에, 요압이 인구를 보고하니 그 중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이스라엘 팔십만, 유다 오십만을 합쳐 130만이었습니다.
자꾸만 숫자를 세고 헤아리는 이러한 의도는 첫째로 번영의 근거가 바로 자신에게 있다고 믿으며, 둘째로는 이제 하나님 보다는 군사력을 더욱 신뢰하려 했던 다윗의 교만함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흔히 자신에게 찾아온 행복과 번영을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목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과시욕과 명예욕은 그러한 번영과 힘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일로서, 결국 그분의 진노를 자초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일의 결과로 다윗은 세가지의 재앙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쓰디 쓴 고뇌의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 숫자를 넘어서는 믿음으로~!
저는 오늘 이 다윗의 이야기를 거울 삼아 제 자신과 또 우리 교회의 모습을 비춰보았습니다.
숫자적으로 보면 5년전 제가 부임한 해의 예산 결산은 5억1천9백 이었는데 올해 예산액은 10억으로 2배가량 증가했습니다. 예배 평균출석인원은 524명이었는데 지난 주 주보 통계를 보면 (예배 인원은 2배는 안됐군요.) 609명이 출석하셨네요.

사탄은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계속 숫자를 세게하는 마음을 줄 수 있습니다. 이천이라는, 또 마장이라는 작은 영역 안에서 다른 교회와 비교해 가면서 우리 스스로 위안도 삼고 또 자부심도 가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사실 큰 도시에 있는 교회와 상대적으로 비교할 때에 우리 교회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숫자에 기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겠다는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교회가 비전을 외치면서도 만일 현실에 안주하면서 현재의 숫자만 헤아리고 있진 않은지요?
교회학교 선생님들, 마장면의 학생들 수가 줄은 통계수치만 바라보면서, 또 지금 눈 앞에 모여있는 학생들의 숫자만 세어보면서 안주하고 있진 않습니까? 교회학교 교실이 텅텅 비는 것을 보아야만 우리가 정신 퍼뜩 차리고 새 마음으로 무장될 수 있습니까?
어제 노인성경학교가 잘 마쳤습니다. 버스 한 대 가득차서 제천으로 즐거운 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그 숫자에 위안이 되었다면 큰 오산입니다. 노령화 된 지역인 마장면에 노인인구를 따지자면 이 숫자는 10분의 1도 안되는 수입니다.
면단위 교회가 600명 예배드리니까 이젠 전도 안해도 될까요? 마장면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받는 백성이 되고, 이 지역사회가 성시(聖市), 거룩한 도성이 되는 꿈을 포기하면 안될 것입니다.
교회 재정 통장의 잔고만 헤아려 보면서 얼마가 모아졌으니 요거 해야겠다, 예산이 없으니 이 일은 그만 두어야겠다 라고만 생각한다면 도대체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써야 하는 걸까요?

숫자가 주는 안도감에서 탈출 하십시오!
또 숫자가 주는 두려움도 극복하십시오!

사업하는 분들은 잘 헤아려 사업을 하셔야 합니다. 장사하는 분들은 항상 재고파악과 시장조사, 재무구조 파악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만큼은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눈 한번 질끈 감고 하나님을 붙잡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육관 건축이 곧 시작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저도 기도를 하면서 예산걱정도 합니다. 성도들의 가정경제도 마음에 부담을 갖습니다. 앞으로 성전건축을 해야 하는데 성전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정도의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지, 또 우리 교회가 과연 어느 정도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리저리 규모도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 앞에 걱정스런 기도도 드립니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는 것보다 예산에 대한 믿음을 더 갖는 것입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사 놓은 땅, 쌓아 놓은 잔고에 대해 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또한 더더욱 두려운 것은 숫자를 헤아려 보고 자신감을 잃거나, 비전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꿈과 희망, 비전을 포기하는 것은 가장 큰 형벌입니다.

예 >>> 동안교회 성전 건축 이야기 / 향상교회 건축 이야기.

다윗은 인구조사 후에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범죄함을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온역으로 치심을 받았습니다. 온역으로 백성들이 칠만명이 죽었습니다. 건장한 전사 숫자를 헤아려 자신의 힘을 확인 받으려 했으나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싸움터로 나가야 할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그제서야 후회한 다윗이 하나님 앞에 참회하였습니다.
역대상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예루살렘을 멸하려 칼을 빼어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윗은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외쳤습니다.

(대상 21:17) 『그 때에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 백성의 인구를 조사하도록 지시한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닙니까? 바로 내가 죄를 짓고 이런 엄청난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백성은 양 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주 나의 하나님! 나와 내 집안을 치시고, 제발 주의 백성에게서는 전염병을 거두어 주십시오. "』

천사가 멈추섰던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은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화해의 의미로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역대상에서는 21장의 이 사건 후에 22장에 바로 다윗이 성전건축을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전염병으로 예루살렘을 치려 했던 천사가 멈춰 선 바로 그 타작마당에 훗날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군사적 힘으로, 숫자로 나라를 세워보려 했던 다윗은 뉘우침과 사죄의 마음으로 이제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로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믿음을 담아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춥니다. 이 일을 역대기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대상 22:18-19) 『[18] "주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셔서, 여러분에게 사방으로 평화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 땅 주민을 나에게 넘겨 주어, 이 땅 사람들을 주님과 그의 백성 앞에 굴복시키셨습니다. [19] 이제 여러분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 여러분의 하나님을 찾고, 일어나서 주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십시오. 그래서 주의 언약궤와 하나님의 거룩한 기구들을 옮겨 와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여 놓도록 하십시오. "』

오늘 설교가 교육관 건축에 대해 말하려고 했던 설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정리하다 보니 오늘 이 말씀과 우리가 지으려고 하는 교육관 건축과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려고 했던 것을 참회하면서 그 신앙고백으로 성전을 지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번 교육관 건축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 해 볼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성전건축은 물질을 의지하려는 의존적인 마음을 포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숫자적 두려움이나, 의존성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교육관 건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보실 줄로 압니다. 적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 일을 맡겨주신 것처럼 이번 교육관 건축을 통해 하나님께 칭찬 듣는 교회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전건축의 비전도 성취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 맺으며
숫자가 주는 안도감에 여러분을 맡기고 싶은 유혹이 들 때가 있습니까?
그럴 때, 눈 한번 질끈 감고 하나님 만을 붙잡아 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물리적인 힘이 주는 든든함 때문에 혹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까?
그럴 때, 눈 한번 질끈 감고 하나님에 대한 전적 의지를 시험해 볼 생각은 없으신지요?

재정, 예산, 통장 잔고가 바닥나서 불안에 떠실 때가 있으시죠?
그럴 때, 눈 한번 질끈 감고 믿음으로 상황을 보시기 바랍니다. 눈을 뜨면 상황이 보이지만, 눈을 감으면 하나님의 길이 보일 줄로 저는 확신합니다.

다윗왕의 후회가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우리가 같은 후회를 반복하게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 우리 모두 눈 한번 질끈 감고 하나님의 손 의지하고 앞으로 힘차게 나가 현실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정 연 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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