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행복의 열쇠 (막 12:28-34)

  • 잡초 잡초
  • 165
  • 0

첨부 1


너무나 사랑하던 두 남녀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군대에 가게 되었고, 급기야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험한 월남전에 보내 놓고, 무사하게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고국에 돌아가리라는 일념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넘기던 중, 남자는 그만 부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폭탄의 파편을 맞아, 양 팔을 다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남자는 이런 모습으로 그녀를 힘들게 하느니, 차라리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자고 맘을 먹고, 고국에 있는 여자에게, 전사했다는 편지를 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 후 남자는 양팔을 절단한 모습으로,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국에 돌아왔고, 행여나 여자의 눈에 띌까 숨어 살았습니다.
얼마 후, 그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맘이 아팠지만 그래도 그녀가 행복해 진다는 것에 기뻐했습니다.
몇 년이 흐른 뒤, 남자는 사랑하는 그녀를 그리워하다, 멀리서나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려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그녀의 집 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그녀는,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그녀는,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월남전에서 전사한 사랑하던 남자를 생각하여, 월남전에서, 양팔과 양다리를 잃은 남자를 보살피며, 살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웰빙 바람이 전국을 한참 휘몰더니, 요즘은 좀 주춤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보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 대단한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육체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건강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병들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음의 병은, 사랑의 결핍에서 생깁니다.
아무리 어렵게 살아도,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사람은, 마음이 병들지 않습니다.
음식의 영양실조보다, 사랑의 영양실조는 더 위험한 것입니다.
무서운 범죄가 모두, 사랑의 영양실조에서 발생합니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서 알려진, 모든 살인 사건의 범죄자들이, 사랑의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그 뿌리를 들여다보면, 사랑 결핍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충만한 사랑이 있으면, 모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지만, 미국 사람들은, 날마다 아프리카 사람들 50명을 살릴 수 있는 돈으로, 개에게 투자한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몇 번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버릴, 장난감을 많이 삽니다.
몇 푼 안 되는 돈이라, 아이들의 그런 행동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작난감 하나 값이면,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여러 날 먹을 양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애완견을 키우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장난감을 사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적어도, 애완견에게 기울이는 정성과 사랑을, 불쌍한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갖자는, 얘깁니다.

굶주림은, 양식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상에, 제일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필요한 것도, 큰 아파트이전에, 사랑입니다.
아이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것 이전에, 사랑이 더 먼저입니다.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질문을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로마에 세금을 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하는 바리새인의 질문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내라 하면 매국노가 되는 것이고, 내지 말라 하면 로마에 대한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혜롭게 대답하셨습니다.
로마 황제의 초상화가 있는 동전을 달라고 해서, 이 동전에 그림이 누구의 그림이냐 묻고, 로마 황제의 그림이라고 하자, 로마황제의 그림이 있는 것은 로마황제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데, 정말 몰라서 예수님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계명 중에, 무슨 계명이 제일 중요합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613개의 계명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계명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예수님은 서슴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하십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이, 제일 중요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실력이 없는 선생님은, 쉬운 것을 어렵게 가르칩니다.
613개나 되는 계명을, 일일이 기억해서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계명 자체를 기억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613개의 계명을 지키는, 간단한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다 지킨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이 말은, 간추리면 한 마디입니다.
네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되, 반 쯤, 되는대로, 형편 닿는 대로 사랑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랑하는데, 모든 것을 사용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네 자신을 사랑한 것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구약성경에서도 제일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사랑할 대상을 잘 보아야 합니다.
술을 사랑하고, 노름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됩니다.
정신적인 고통이 따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사랑했다가, 얼마나 큰 낭패를 보게 되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손해 보지 않습니다.
약할 때 힘을 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18:2,3)

모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초점을 맞추시는 것이,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갈5:14)
진실로 사랑하면, 실수를 좀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어느 교회에서, 노회에, 자기들 목사님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왜 목사님을 바꾸려 하느냐고 묻자, ‘우리 목사님은 항상 지옥설교만 하시기 때문에 지겹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노회에서 새로운 목사님을 파송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오신 목사님은, 지옥에 대한 설교를, 전에 목사님보다 더 많이 하셨습니다.
노회에서는, 곧 목사님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목사님 바꾸어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교인들에게‘새로 오신 목사님은, 지옥에 대해서, 더 지독하게 설교를 하시는데, 왜 목사님 바꾸어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은 “전에 목사님은, 우리가 지옥에나 갔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셨는데, 새로 오신 목사님은, 우리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하십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문제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겨납니까?
그러나, 사랑하면 거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인생 대부분의 문제들이, 사랑하지 않기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잘못된 습관 때문에 화가 나고,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사람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의 행동이, 자꾸 거슬리고, 하는 짓마다 밉게 보이고, 화가 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3장 18-19절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3:18-19)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그 사랑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원벤치에 앉아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얻습니다.
공원에서 뛰놀고, 모래로 장난을 하고, 나뭇잎을 가지고 놀고, 공원에서 마음껏 행복하게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부모에게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가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 아빠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저 때문에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자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볼 때, 그렇게 사랑스럽고, 우리 때문에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특별한 일을 하거나, 특별한 것을 드려야지,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 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것은, 부모에게 무엇을 해 주어서가 아닙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내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 때문에 기뻐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 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슥3:17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은, 내가 하나님께 예쁜 짓을 해서, 성품이 좋아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한 가지 조건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되, 시끄럽게 요란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조용히 잠잠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상시, 모든 일이 잘 될 때는, 시끄럽게 요란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정말 어려워서, 꼭 사랑이 필요할 때면, 요란하게 사랑한 사람들은 모두 떠납니다.
평상시에는, 쌀쌀맞은 것 같고,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어려움을 당할 때, 꼭 사랑이 필요할 때가 되면, 잠잠히 사랑하는 그 사랑이 빛이 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시끄럽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잠잠히, 조용히, 요란하지 않게,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정말 귀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귀한 존재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귀한 것은, 좋은 직장, 좋은 명예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위하여, 그의 아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부족한 것 때문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가를 알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어떻게 합니까?
사랑하면, 반드시 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전혀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하셨습니다.(요14:21)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그랬습니다.(요일5:3)
계명을 지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되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과, 자동차 경주하는 사람들은, 그 경주를 하는 동안,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죽을힘을 다해서 뜁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자동차의 속력을 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은, 경주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2. 우리가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고,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기쁨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시작은,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수준은, 자신을 사랑하는 수준입니다.
자신을 조금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남도 조금밖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자신의 삶에 기쁨이 있어야,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귀하에 여기고, 자신을 잘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사람의 욕망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 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만족은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마음의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은 천하보다 큽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사랑하는 한 남자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처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사랑을 채우기 위하여,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남자를 섬기며, 살았던 그 처녀.
얼마나 고귀한 사랑의 실천을 했습니까?
그 무엇으로, 그 사랑을 채울 수가 있었겠습니까?
최선을 다한,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천하보다 큽니다.
사람이 천하보다 큰데, 100평짜리 아파트가 채울 수 있겠습니까?
주식 백만 주가, 채울 수 있겠습니까?

사람보다 큰 것이 있어야, 채울 수 있습니다.
사람보다 큰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시니이다.”(대상29:11)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래서, 그 크신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의 영혼을 채우십시오.
그리할 때, 여러분 인생의 만족과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으로 결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만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십시오.
삶의 보람과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가를, 생각하고 실천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일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복의 열쇠입니다.
사랑은, 성공의 열쇠입니다.
사랑은, 기쁨의 열쇠입니다. -아멘-
(박 영준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