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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하나입니다.(전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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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사명 2005’로 명명된 중국과 러시아의 사상 첫 군사 훈련이 25일 서해에서의 폭격 및 미사일 발사와 산동반도 공수보대 낙하 훈련을 끝으로 8일간의 작전이 마무리했습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훈련이 미국의 패권 확장을 견제하면서 대만해협과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것으로 세계 전략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분’은 이번 작전이 21세기 초 강대국 간에 벌어질 ‘거대 게임(Great Game)’의 시작이라며 “미국은 물론 동북아시아 국가들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훈련에 참가한 중국 병력이 육해공군 특수부대원 8,000여명으로 공군 최정예 주력기종 전투기 및 폭격기, 조기경보기, 최신형 잠수함, 최신형 미사일등이며. 러시아병력은 육해공군 및 태평양함대 등 정예부대원 1,800명과 중장거리 폭격기 최신예 잠수함 10여척과 구축함 다수가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번 군사 훈련은 우리나라 두만강 북쪽에 있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해를 지나 제주도 남쪽을 거쳐 중국 산동반도로 이동하면서 훈련을 했습니다.
북한이 붕괴되고 대만이 독립하게 되면서 동북아가 화약고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이 나를 29%밖에 지지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대통령 노릇을 어떻게 해 먹겠느냐. 곤란하다’는 식으로 투정만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에는 관심 없이 자기의 사상만을 주장하고 펴 나가는 일에만 여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과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최선을 다해도 힘든데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권력 다툼에 여념이 없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전혀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동남아시아지역을 가보면 우리나라가 그래도 괜찮은 나라라고 느껴지는데 중국을 가 보면 ‘우리나라가 이러다가는 머지않아서 중국에게 뒤떨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돌아보면 세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밀림의 사회입니다.
밀림 속은 생존의 경쟁이 치열한 현장입니다.
먹느냐 먹히느냐, 죽느냐 사느냐의 살벌한 투쟁이 벌어집니다.     
이 사회가 살기 위해서는 폭력과 투쟁, 그 어떤 방법도 불사합니다.
사생결단의 사회입니다.
두 번째는 스포츠의 사회입니다.
규칙의 범위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워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스포츠와 같이 법규에 따라서 정의에 의해 경쟁하며 싸우는 사회입니다.
승자와 패자가 있습니다.
승자는 기쁘고 자랑스럽지만 패자는 슬프고 괴로운 냉혹한 사회입니다.
세 번째는, 교향악의 사회입니다.
여기에는 투쟁도 없고 승자나 패자도 없습니다.
교향악에서는 모든 악기가 정연한 질서를 지키면서 절제된 자기의 소리로 협동과 조화를 창조해 냅니다. 
각기 다른 악기들입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고 특색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음악을 위하여 마음을 모으고 조화를 이루는 그래서 감동을 주는 사회입니다
여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투쟁도 없습니다.
오히려 창조만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힘이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의 공동체가 어떠한 공동체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이 사회의 모습은 밀림의 모습과 같고 스포츠 경기장과 같습니다.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남을 밟아야 하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는 냉혹함과 비참함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요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 군사훈련이 있는 것이고 이라크의 전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향악단과 같은 모습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교향악단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으로 인하여 세워진 생명공동체입니다.
경쟁심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터로 해서 생각과 경험과 배경과 방법,...  각각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예배와 양육, 교제 봉사, 선교라는 교회의 목적을 위하여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으고 조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행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이기에 전형적인 교향악과 같은 사회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서 연합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대제사장으로서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먼저는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세 번째는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드릴 때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앞으로 세워질 교회에 대해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하실 수 있었지만 특별히 교회의 하나 됨에 대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이 의미를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연합과 하나 됨, 이것은 교회 생활을 하는 우리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영역의 하나입니다.
여기에 힘이 있고 여기에 창조가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 연합과 하나 됨으로 인하여 어떠한 삶을 얻게 되는지에 대해서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지혜자 [솔로몬] 왕, 그는 인생의 모든 것을 경험한 왕입니다.
그는 힘과 권력을 가진 자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얻어 인생이 무엇인지를 잠언과 전도서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의 지혜의 결론은 하나님 밖에서 인생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 하나님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아지려고, 가지려고, 누리려고 애써도 설사 그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지혜자로서 [솔로몬]은 우리에게 연합과 하나 됨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힘과 역사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될 때 서로 힘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4:9-10)

혹 한사람이 넘어지게 되면  다른 한 사람이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팔레스타인 지방의 길은 주로 사막과 같은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러한 길을 갈 때 세찬 모래 바람의 위험이 있고, 험한 바위나 돌에 의해 상해를 입을 수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길을 가다가 넘어지거나 잘못 되었을 때 옆 동무가 있다면 그가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고 함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붙들어 세워 줄 사람이 없을 때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둘이 하나가 되어 간다는 것, 연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줍니다.
이것이 힘입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이 항상 평탄한 것이 아닙니다.
항상 잘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날이 있는 가하면 궂은 날이 있고 험한 날이 있듯이 좋을 때가 있는가 하면 궂은일도 있습니다.
고난의 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때로는 실패하고 병들고,... 그래서 낙심하고 절망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때 나 혼자라면 일어날 수 없지만 곁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험한 길이 있을 때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혼자는 일어설 수없지만 둘이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럿이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영적인 시험에 들어 낙심하거나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보세요.
악의 상징인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이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자신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보복 선언을 하자 낙심하고 광야로 도망을 합니다.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 앞에 죽기를 자처합니다.
때로는 강하다가도 약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인 반복, 형식 등에서 오는 공허함과 무기력함 등으로 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러할 때에 나와함께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위로를 받고 격려 받으면서 도움을 받아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 [알렉산더 솔제니친]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스탈린]을 비판한 글을 썼다가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에 유배되어 힘든 노동과 굶주림으로 싸워야 했습니다.
너무도 배고프고 힘들어서 좀 쓰러지거나 쉬면 그대로 무서운 채찍이 날아옵니다.
일을 하자니 힘이 들고 안 하자니 매 맞고.... 죽을 지경입니다.
마침내 그는 생각합니다.
‘아! 이거 안 되겠다. 이렇게 인간대접 못 받고 짐승같이 매 맞고 굶주릴 바에야 차라리 매 맞아 죽는 것이 낫겠다. 더는 못 견디겠다.’ 하고 일을 중단했습니다.
감독이 저기서 막 달려옵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절친한 죄수 한 사람이 그의 삽을 빼앗아 가지고 발 앞에 심자가를 그려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지워 버렸습니다.
발밑에 그어 놓은 십자가를 보는 순간 주님의 고난과 그 십자가의 형상이 보이면서 새로운 소망과 용기가 솟아올랐습니다.
아주 신비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을 이기고 딛고, 몸도 영혼도 구원받게 되었다고 솔제니친은 간증합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주님의 십자가는 위로가 됩니다.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생명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이 십자가를 깨닫고 부활을 바라보도록 나를 인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내 곁에 있을 때 나는 위로받게 되고 용기를 얻고 힘을 낼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것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곁에 누가 있습니까?
매일 불평불만 쏟아내는 사람들은 아닙니까?
무관심하고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가진 이기적인 사람들은 아닙니까?
이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매일 그 모양입니다.
함께 망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꿈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해 보세요.
매일 위로를 얻고, 격려를 받고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여러분 곁에 비전의 사람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십시오.
그런 사람과 함께 하십시오
여러분의 소중한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과 비전을 가지고 위로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서 능히 위로케 하는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위로자가 되십시오.
영적으로 약한 사람, 낙심한 사람, 고난 당하는 사람,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십시오.

히10:24절에서 말씀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페하는 어떤 사람들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
이러할 때 내가 살게 되고, 내 형제가 살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 되고 힘을 얻게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주도해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하나 됨의 원리, 이 연합의 비밀을 삶으로 능력으로 가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 됨, 연합이 있을 때 따뜻한 삶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전4:11)

팔레스타인의 사막지대는 밤이면 춥습니다.
이 사막에서 잠을 잘 때는 몹시 춥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료와 함께 잠을 자면 서로 온기로 인하여 따뜻하게 잠을 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비유로 지금 두 사람이 함께 하면 따뜻하다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썰렁한 방에 혼자 들어가 보셨어요?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어요.
일을 하는데 마음이 통하는 사람, 함께 협력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렇게 고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통하는 두 사람, 세 사람이 함께 할 때 따뜻합니다.
한 덩이의 숫 불이 난로 바닥에 있다고 한다면 추운 사람은 몸을 녹일 수가 없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숯불은 쉽게 꺼질 것입니다.
그러나 숯불 위에 숯이 모이고 그 위에 또 숯이 모여질 때 불은 화력을 내게 되고 마침내 추위를 녹이는 에너지가 됩니다.

교회는 함께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이 됩니다.
함께 하기를 즐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힘을 얻습니다.
둘보다는 셋, 셋보다는 넷, 넷보다는 다섯.... 예배시간에 더 많은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면 참으로 따뜻하고 힘이 됩니다.
어떤 일이든 함께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따뜻하고 힘이 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함께 할 때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함께 할 때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함께 살게 됩니다.
공동체가 살게 됩니다.
이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한 사람이면 싸움에서 패하지만 두 사람이면 승리합니다.

한사람보다 두 사람이 강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

한 사람이면 패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흩어진 개인주의는 아무리 숫자가 많다 해도 적고 약한 것입니다.
시험과 유혹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왜 범죄 했는지 아세요?
그는 한 순간 게을렀습니다.
군사들은 전선에 나아가 싸움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왕궁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가하다보니 낮잠을 자게 되었고 그러한 여유 속에서 사단이 틈타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세요.
일정기간동안 그가 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절친한 동무이자 신하요 부하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쟁터로 나가고 그와 함께 일할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홀로 있다 보니 지나치게 한가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 개인적이고 지나치게 한가하게 되면 사단이 틈을 탑니다.
그리고 교회가 연합하지 못합니다.   
사단이 틈타서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삼겹줄이 된다면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
‘삼겹줄’이란 단 세 겹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3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연합의 완전함, 견고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개인적이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한 사람입니다.

중동의 인구가 이스라엘의 인구보다 많습니다.
2억대 400만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많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중동은 많은 수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 사람이요 소수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열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곧 삼겹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승리하게 됩니다.

성도가 연합하고 하나 될 때, 시험과 유혹을 이기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 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서로 섬기며 하나 된다면 그 삶은 승리의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옥스퍼드대학에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함께 소그룹 운동을 벌여 서로 영적으로 격려해 주는 동시에 죄에 물들지 않도록 서로를 영적으로 감시해 주는 운동을 벌렸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영적인 부흥이 그 학교 안에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교향악과 같은 모임입니다.
하나 되고 연합되어야 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바램이요, 뜻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많은 사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역들은 각각 다르게 일하고 있지만 주님 안에서 같은 목표를 놓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인정하면서 서로 세워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북이 소리를 아주 크게 낼 수 있지만 다른 악기의 소리에 맞추어서 내야 합니다.
바이올린 소리가 아주 여리게 나지만 다른 악기들이 조화를 맞추어 주니까 아주 멋있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면서 훌륭한 음악을 연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성 찬양대원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여성의 소리만 크게 낸다든지, 남성의 테너 대원의 인원이 많다고 해서 테너소리를 크게 내면 그 찬양은 진정한 아름다운 찬양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평화의 사명 2005’와 같은 전쟁연습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객체는 각각 다르지만 서로를 인정해 주면서 하나 될 때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용기를 얻고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따뜻함과 밝음이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승리와 부흥을 이루는 김포중앙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항상 연합과 하나 됨을 위한 마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김포중앙교회의 비전을 위하여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는 역사가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박  영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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