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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곱 교회 순례(1): '에베소교회' (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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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에베소 교회: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

<소아시아 7교회에 주님이 주신 편지>
이제 무더운 날씨가 한풀 꺾이고 선선해졌습니다.
학생들은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우리 앞에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좋은 결실의 계절에 우리의 신앙도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꼭 해보고 싶었던 연속 설교 중에 하나가 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였습니다.
소아시아의 7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7주 동안에 걸쳐서 이 7교회 하나 하나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학설이 분분하지만 계시록은 1세기 말,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81-96)가 집권하고 있었을 때 기록된 책으로 봅니다.
그 때 교회는 엄청난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교회 내부에는 각종 이단사설(異端邪說)이 일어나 교회를 일대 혼란으로 몰고 갔습니다.
외적으로는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이 로마의 황제숭배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지조를 지키다가 장렬하게 순교해갔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고난받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기록한 책이 계시록입니다.
지금은 환난을 당하고 있지만 잘 참아내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자,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관심은 계 2장부터 시작되는
소아시아의 7교회에 주신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이 7교회는 그 당시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교회들입니다.
어떤 가상적으로 지어낸 교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7교회에 주신 말씀은 각각 그 교회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7교회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7'이라는 숫자는 성수(聖數), 천수(天數), 혹은 완전수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7교회는 전 세계에 존재했고 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에베소 교회>
이제 소아시아 7교회 중에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요?

에베소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에베소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였던 아데미 여신전이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을 비롯한 각종 우상숭배와 황제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에베소에 교회가 개척된 것은 주후 52년 경 사도 바울에 의해서였습니다(행 18: 18-22).
그 후 바울은 다시 에베소를 방문하여 3년 가까이 머물면서 에베소 교회를
굳건히 세우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행 19장).
그러나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에 파송해서 계속 교회를 돌보도록 했습니다.

에베소는 가장 세속적이고 우상숭배가 판을 치는 도시였지만,
이와 같이 가장 일찍 복음이 전파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피땀 흘려 개척해서 터를 닦은 뒤, 디모데와 사도 요한이 목회했던 곳이었습니다.
저 유명한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이 강론했던 곳이 에베소였습니다(행 19: 9).
큰 성경학자 아볼로가 말씀을 가르쳤으며(행 18: 24),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목회했던 곳이 또한 에베소였습니다(행 18: 26).   
한마디로, 에베소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에 이어서
역사와 전통이 가장 깊은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생각하면 우리 내리 교회와 너무나 닮았습니다.
훌륭한 목회자들이 거쳐간 유서 깊은 교회요 자랑할 것이 많은 교회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은 이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본문 1절 말씀을 주목해 보세요.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계시록에는 상징적인 언어들로 가득차 있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계 1: 20에 보면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 즉 사역자들이요,
일곱 금 촛대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모든 교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교회 사역자들을 붙들어주시고
교회를 주관하시는 분은 한 분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교회의 진정한 가치는 역사와 전통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역자들이 있고 실력 있는 교인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교회의 진정한 가치는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의 크기나 예산이나 건물이나, 그 어떤 것도 교회를 지탱해주는 진짜 힘이 못됩니다!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내리교회는 오고 가는 세대에 이 진리를 영원토록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虛와 實>
자, 그렇다면 예수님이 보신 에베소 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요?
앞으로 살펴 볼 7교회에 주신 말씀의 한 가지 전형적인 패턴이 있는데,
칭찬받을 만한 일과 책망받을 만한 일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라는 것이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장점과 단점이 혼재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이 점에 있어서 7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상하게도
라오디게아 교회 하나만큼은 칭찬받을 일을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또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 두 교회는 칭찬만 했지 책망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주님이 보시기에 장점과 단점을 다 갖춘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장점
그렇다면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어떤 점을 칭찬하셨을까요?

2-3절 말씀을 보세요.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 말씀으로 보건대 에베소 교회는 네 가지 점에 있어서 칭찬받을만 했습니다.

첫째로, 에베소 교회는 아주 바쁘게 돌아가는 열심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는 교회였던 것이지요.
마치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넘치는 교회(살전 1: 3)였던 것처럼, 에베소 교회도 교회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정의로운 교회였습니다.
교회 안에 악한 무리들이 생겨날 때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잘 징치했다는 것이지요.

셋째로, 에베소 교회는 거짓 사도들을 잘 가려내는 분별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것은 특히 6절에 나오는 니골라당이라는 이단을 색출해냈다는 말입니다.
니골라당이 어떤 무리들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이들은 기독교인이 가지는 자유를 잘못 해석해서
교회 안에 혼란을 부채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을 수 있다,
부도덕한 성관계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상황윤리주의자들이었습니다.
에베소와 같이 우상신전이 많고 향락이 넘치던 도시에서
이러한 가르침은 교회에 큰 유혹거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현대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이런 유혹입니다.
"예수 믿어도 제사 지낼 수 있는 거 아니야?"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고사 지낸 고기 다 먹을 수 있어."
"예수쟁이라고 해서 점잔 빼지 말고 술도 마실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워낙 정통 신앙을 잘 붙들고 있었기에
이런 유혹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정통이 무엇인지 이단이 무엇인지 식별해 낼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세속적인 가치관과 타협하거나 혼합주의적인 태도를 단호히 배격했던 것입니다!

넷째로,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잘 견디어 냈으며
한번도 낙심한 적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담임했던 목회자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 디모데, 사도 요한, 당대 최고의 지도자들이 에베소 교회를 돌봤습니다.
이런 목회자들에게 신앙 지도를 받은 에베소 교인들은 인내심이 강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한 고난이라면 기꺼이 감수했고 웬만한 일이 아니면 지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불요불굴의 의지를 가진 강인한 교회가 에베소 교회였던 것이지요!

에베소 교회의 단점
그러나 이렇게 자랑할 것이 많은 에베소 교회였지만 한 가지 책망받을 것이 있었습니다.

4절을 다같이 보세요.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의 치명적인 약점은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역사도 깊고 전통도 깊고 교회일에 대한 열심도 있어서 항상 분주하게 돌아갔으며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고난도 잘 참고 견디며 쉽게 낙심하지도 않았으며
니골라당 같은 이단의 가르침에도 넘어가지 않고 정통성을 잘 지켰습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교회가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
외면적으로는 아무 나무랄 데가 없었는데
내면에는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순수성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와 같이 역사와 전통이 깊은 교회가 빠지기 쉬운 약점입니다.
다 잘하는 것 같은데, 예수님을 처음 영접했을 때의 감격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감동이 사라져버리고 쓸데없는 교만이 비집고 들어와서
코만 높아지고 초신자의 순수성과 겸손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기도와 찬양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는데
첫사랑의 감격 없이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생활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한 마디로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이 되고 만 것이지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에베소 교회나 내리교회나 역사 깊은 정통적인 교회들이 빠지기 쉬운 약점입니다.
주님을 위한 열심히 있어서 집회란 집회, 회의란 회의는 다 쫓아다니는데
첫 사랑의 감격과 순수성이 없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쫓아다닐 뿐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의 눈물과 기쁨이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다른 것 열 가지를 잘했어도 이 첫 사랑을 잃었기에 책망을 받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세월이 흘러갈수록 연애했을 때의 낭만이 사라집니다.
그 처음 사랑의 감격이 시들어가기에 부부 사이도 점점 멀어져 갑니다.
그리하여 사랑이 깊은 부부일수록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을 잊지 않는 법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내리교회가 혹 에베소 교회처럼 첫 사랑을 잃은 교회는 아닐까요?
남들이 보기에 다 칭찬받을 만한 모범적인 교회요, 자랑스러운 교회인데
우리의 헌신과 봉사가 첫 사랑의 감격과 순수성을 잃은 습관적인 것이 아닐까요?

이제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5절 말씀을 보세요.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첫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 세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로, 첫 사랑이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향한 우리의 첫 사랑이 언제 떨어졌을까요?
초신자일때에는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흘렀는데
언제부터 눈물이 마르기 시작했을까요?
그 계기가 언제부터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집사였을 때에는 참 순수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했는데
혹 권사가 되고 나서부터, 장로가 되고 나서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요?
평신도였을 때에는 그렇게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고자 했는데
직분을 맡은 후부터 목이 곧아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 첫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언제부터 첫 사랑이 떨어졌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순수함을 잃고 언제부터 형식적이 되었는지,
겸손함을 잃고 언제부터 교만이 스며들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둘째로, 회개해야 합니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첫 사랑을 잃게 되었는지를 깨달았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희랍어로 'METANOIA'인데 '∼∼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았으면 다시는 그 행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이지요.

언제부터 교만이 찾아왔고 언제부터 위선이 생겼는지 파악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뉘우치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쓰실 수 있습니다.
내리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서 계속해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처음 했던 행위를 다시 해야 합니다.
어디에서부터 첫 사랑이 떨어졌는지 알았습니다.
회개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첫 사랑을 간직하며 했던 행위들을 그대로 되풀이해야 합니다.

주님을 처음 사랑했을 때에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기뻐서 기도했습니다.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기쁨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신앙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다 보니
교만이 생기고 체면치레가 생겼습니다.

이제 첫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처음 행위를 다시 해야 합니다.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고, 더 뜨겁게 전도해야 하겠고, 더 충성스럽게 봉사도 해야 합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행위를 다시 하십시오!
습관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순수한 신앙인의 행위를 다시 하세요!

이제 주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5절 후반부에 보면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만일 에베소 교회가 어디에서부터 첫 사랑이 떨어졌는지 회개해서
그 행위를 고치지 않으면 주님이 직접 에베소 교회로 가셔서
촛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아무리 정통 신앙을 자랑하는 모범적인 교회라 할지라도
세계 선교의 사명을 다른 교회로 옮기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내리교회도 온 교인들이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을 회복하지 않을 경우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사명을 우리보다 역사도 짧고 작은 교회로 옮기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역사와 전통만 자랑하고 뭔가 신앙의 감격과 순수성이 없는 교회는
자꾸만 쇠퇴하는데 반하여 첫 사랑의 감격이 있는 교회는 점점 자라나서 큰일을 합니다!
오늘 우리 내리교회는 한국의 모교회요 장자교회로서 영광스러운 금 촛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바라보며>
결론을 맺습니다.
7절 말씀을 보세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먹게 하리라."

세상에 귀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에서 말씀하는 귀는 육신의 귀가 아니라 영혼의 귀입니다.
영적으로 분별력이 있어서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이기는 사람에게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 열매와 같은 영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지고 습관화된 종교생활을 이겨내고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잃어버린 첫 사랑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쓰실 수 있는 복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영생의 축복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김 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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