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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선교회헌신예배] 진정한 헌신 (요 14: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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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여선교회 헌신예배에 참석하신 회원들과 성도들 위에 우리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존 멕스웰이 쓴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우라.”는 책에 한 등대지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암벽해안에서 일하던 등대지기는 한 달에 한 번씩 기름을 받아 등대 불을 지폈습니다. 등대가 마을에서 멀리 있다 보니 손님들이 자주 왔습니다.

하루는 어떤 여자가 난방이 필요하다며 기름을 구하러 왔습니다. 또 하루는 어느 남자가 등잔불을 켠다며 기름을 청했습니다. 모두 그럴듯한 요구인지라 달라는 대로 기름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등대의 불을 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여러 척의 배가 암초에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상부에서는 이 등대지기를 다음과 같이 질책했습니다.

“당신에게 기름을 공급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등대를 밝히라는 것이었소.”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신 것은 헌신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을 통하여 수많은 길 잃은 영혼들이 주 안에서 길을 찾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위로받고 힘을 얻으므로 말미암아 주의 일이 수년 내에 부흥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등대는 외롭게 캄캄한 바다위에 홀로 서 있다고 할지라도 빛을 비추이므로 수많은 배에 탄 사람들이 인도를 받고 평안이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교회의 문제 중의 하나는 교회도 많고 교인들도 많은데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작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기독교인의 숫자가 적은 구한말에는 한국 교회가 사실 한국민족을 이끌어갔고 사회 변혁을 주도했습니다. 3.1운동을 비롯하여 독립운동을 비롯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요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모여 태극기를 만들고 앞장서서 만세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 온지 40년도 채 안되는 상태에서 민족대표 33명 중에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국민의 20%가 그리스도인이지만 우리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헌신 된 그리스도인들의 부족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주님을 위하여 헌신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신을 태우는 양초의 헌신처럼 자신을 녹여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적인 평안을 통하여 세상의 어떤 핍박과 고난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위로해 주시고 보호해 주심으로 능히 승리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의 제자 중 가륫인이 아닌 유다(다대오)가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물으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메시야임을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승리를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 라고 요청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대오가 주님께 요구한 것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을 통하여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첫째, 인기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은 세 번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마귀가 40일 금식하던 예수님에게 돌들로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하였고,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하였고, 세 번째는 마귀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절하면 이 도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시험했습니다.

이 모든 시험은 명예와 관련된 시험입니다. 이 세상 사람치고 명예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정받으려 하고 있으며,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곳이 축복의 자리인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기발한 것을 찾게 하고 주목 받는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곳은 시험의 자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그런 자리에 있을 경우 빨리 내려와야 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였고, 잔칫집에 가서도 먼저 상석에 앉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최근 종료된 주말 대하사극인 <불멸의 이순신>이란 프로가 있습니다. 이 사극은 작가도 울면서 대본을 썼고, 시청자들도 좀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 방송을 시청했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인 1592년은 조선이 임진왜란이라는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를 맞아 멸망의 위기에 있을 때입니다. 이 때 한 사람, 그 조용하고 선한 성품을 가진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23전 23승이라는 전설적인 승리를 이루고 갈기갈기 찢어진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고 그들을 변화시켰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순신 장군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을 살리고 조선이라는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은 살신성인의 자세로 온몸을 던집니다. 적군의 총탄에 어깨가 뚫리고, 무능한 조정과 정치가들의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명령에 항거하다가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이에 굴복하거나 조선에 대한 증오를 키우지 않고 여전히 조선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엄청난 패배로 인해 불구가 되고 의욕을 상실한 몇 천의 수군과 13척의 배만 남았을 때 이순신장군은 “신에게는 13척의 배가 있습니다. 제가 있는 한 적군은 감히 조선을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300척의 일본군을 물리치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노량해전에서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 나라와 민족을 걱정한 이순신 장군의 그 위대함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작가는 울고 또 울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헌신의 정신은 밀알정신입니다.

사람들의 신앙이 천박해지는 이유는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1에서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기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칭찬이나 인정, 평판이 아닌 주목받지 않는 곳에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헌신이요, 진정한 영광입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교회 안에서도 3D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전도요, 두 번째가 새벽기도요, 세 번째가 주방 봉사라고 합니다. 마리아 여선교회는 이 3D뿐이 아니라 그 어떤 남들이 힘들어하고 기피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묵묵히 앞장서서 충성하는 헌신의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다 드러내십시오.”라는 다대오의 요청에 하나님의 일은 인기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영광을 드러내는 일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디서 누가 병을 고치고 기적을 일으킨다고 하면 몰려듭니다. 진리의 말씀이 있느냐는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표적은 부교제입니다. TEXT북은 하나님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는 그것으로 전도의 도구로 삼지 않으셨고, 바울도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삼층 천에 다녀와서도 그것을 전도의 도구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요, 영광의 길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감격에 젖어 있을 때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마태복음 17장 5절에 “거기에 머물지 말고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죽 변화산 체험에 붙들려 있지 말고 말씀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적으로 무엇을 하기 전에 먼저 말씀을 듣는 자리에 앉아 있기를 바랍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셨을 때에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마르다와는 달리 예수님 곁에 앉아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마리아가 마르다보다 더 큰 헌신을 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메산골에서 화전민의 딸로 태어나 농사일만 하던 소녀가 서울에 가정부로 오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첫날부터 마당에 가득한 풀을 보고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3일째 되던 날 주인이 외출하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착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쇠꼬챙이로 질긴 풀뿌리를 뽑아내느라 온 몸이 땀에 젖었고 손에는 물집이 생겨 아팠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후 4시쯤 작업이 끝났습니다. 자기가 한 일을 칭찬해 줄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집에 돌아 온 주인은 그 동안 정성들여 가꾼 잔디가 모두 뽑혀진 것을 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잔뜩 칭찬을 기대한 소녀에게 돌아온 것은 주인의 심한 꾸중뿐이었습니다. 힘을 다해 일하고 꾸중을 들은 소녀는 억울해서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착한 마음 하나만으로는 좋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말씀의 바탕이 없는 자의 무분별한 말씀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귀를 기울여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유다 다대오가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요구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순종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헌신이 되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어야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진정한 헌신이 되기 위해서 인기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평판이나 인정에 마음을 쓰다보면 실족하기 쉽습니다. 내가 드러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알아주면 교만하고 우쭐해지기 쉽고, 몰라주면 섭섭해 하고 실망하다가 스스로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짜 헌신은 언제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요, 진정한 헌신은 사람의 칭찬과 평판이 아니라 예수님만 바라보고 주목받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충성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내가 충성하고 헌신하는 근거도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마리아에선 교회 헌신예배를 맞이하여 회원 한사람 한사람이 어떤 큰일을 이루기보다는 오늘 내게 주어진 사명의 자리에서 묵묵히 충성을 다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의,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도우시고 함께하시므로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일터에서 쓰임받는역사가 일어나기를간절이 축원합니다. (김 명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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