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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 아버지 집 (눅 15: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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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비유는 우리 모든 인류의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우리 인간을 향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우리 인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천 년 쌓았던 태산과 같은 문제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눈 녹듯이 녹아집니다. 억ㆍ천만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문제를 주는 종교가 아니라 답을 주는 종교입니다. 모든 문제에 대해 대답하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고 지식이 발달해도 우리는 더 큰 복잡한 문제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또 문제를 단순하게 우리에게 대답해 줍니다. 처음에 있는 이 뿌리, 답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문제를 역학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문제를 찾아 올라갑니다. 어디에서 문제가 왔느냐? 온 세계로 문제를 찾아 나갑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처음부터 대답을 알려줍니다. 너는 이미 삼 년 전 교회를 떠날 때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위에서부터 답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학적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아서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위에서 답을 찾아 아래로 내려오면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탕자가 아무리 자기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들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결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저는 명성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해양교회라는 곳에서 십 년 동안 목회를 했습니다. 그 교회는 실을 만드는 연사공장입니다. 한 삼 백여 명의 직원들이 있습니다. 많은 아가씨들이 밤낮으로 교대를 하면서 근무합니다. 정말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는 실을 꼬아서 이렇게 재봉틀, 옷을 만드는 실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실을 기계로 감다가 실이 엉키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모든 아가씨들은 소매치기도 아닌데 면도칼을 다 갖고 있습니다. 이 실이 엉키면 딱 그어 버립니다. 완전히 팍팍 그어 가지고 다 뜯어내 버리는 것입니다. 한 가닥 , 한 가닥 가는 실을 찾아 나가면 또 실에 얽히고 얽혀서 나중에는 전체가 헝클어져서 복잡하게 되어 찾아 낼 수가 없습니다. 이틀, 사흘 걸
려도 못 찾습니다. 손에 있는 면도칼로 그어 버리는 것입니다. 버리고 새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우리 가정이 복잡하고 내 인생을 사회에서 다 잃어버렸을지라도 거기에 또 가서 찾아와야 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술 먹는 사람은 술을 끊어야 할 것입니다. 화투치는 사람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본전이라도 찾아야지, 살지 못합니다. 돈을 더 잃는 것입니다. 이미 잃어버린 인생, 잃어버린 물질은 칼로 그어 버리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면 잃어버린 것도 주시고 새로운 것도 주셔서 하나님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것과 같이 큰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탕자는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길이 바로 사는 길이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 나는 주려죽는구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밖에 없습니다. 넓은 문이 있었지만 한 순간에 문이 다 닫혀버리는 것입니다. 이 넓은 세상에 피할 곳도, 숨을 곳도, 맞아 줄 곳도 없습니다. 아무 곳도 없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는다’는 말입니다. ‘아 피곤해 죽겠네, 속상해 죽겠네’ 요사이 여름에는 더워죽겠네, 얼마나 이 말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은 죽겠네 하다가 죽습니다. 죽음입니다. 사망의 그늘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피할 수 없습니다. 정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식당에 가서 보면 대화하는 것 보세요. 늦게 와서는 ‘아, 배고파 죽겠네’라고 말합니다. 배가 고프면 왜 죽습니까? 먹으면 되는데 왜 죽습니까? 속상하면 풀면 되는 것이고, 더우면 선풍기 가지고 바람 쏘이면 되는 것이지 왜 죽습니까? 많은 사람은 죽음과 함께 살아갑니다. 죽을 이유가 없는데도 모두 자살해 죽습니다. 저는 어제 현대 정회장님이 마지막 유언한 것을 읽어보니까 죽을 이유가 객관적으로 전혀 없는데도 자기 부인에게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남겨두고 간다고 그렇게 유언하고 그만 자기 사무실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자식 있지, 아내 있지, 돈 있지, 대통령 하신 분들 다 친구같이 친하지, 온갖 권력 있지 보화, 그렇게 많지 왜 죽습니까? 그러니 하나님 없는 인생은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죽음으로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물고기를 잘 잡았습니다. 황새같이 잘 잡습니다. 저는 빈손으로 갈지라도 얼마나 물고기를 잘 잡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 아래는 일 년에 한 번씩 가끔가다가 그 낙동강 상류 물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물고기 잡는 약을 뿌립니다. 그러면 그 밑에 있는 강물에 물고기들이 다 죽습니다. 가마니, 가마니로 물고기가 나와서 몇 백 명이 와서 그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입니다. 옛날입니다. 그 약을 한 번 뿌리고 나면 수많은 팔뚝만한 메기들이 그냥 다 밖으로 나옵니다. 뱀장어들이 수 백 마리가 날 살려달라고 다 나옵니다. 수많은 고기들이 다 나와 죽습니다.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위에서 그러면 아래로 내려가면서도 다 죽습니다. 우리 인간은 아담이 범죄하고 나서 사망이 들어온 이 땅에는 살아날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위에서부터 이 땅에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위에서 새로운 강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이 강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물은 독이 있는 물이 아닌, 영생의 물이요 생명의 물이라는 겁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강물을 마시고 믿는 사람은 사망에서, 저주에서 구원함을 얻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행위의 종교가 아닙니다. 저주받을 땅에서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고 아버지 집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아버지가 주시는 생명, 아버지가 주시는 생수를 마시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물이 다 죽기 때문에 하늘에서 생수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저주받지 않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나는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런 죽음도 죽음이고 저런 죽음도 죽음입니다. 어디에서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이 온갖 저주에서 살아나는 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고치는 약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짐을 벗겨 주실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이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우리는 브엘세바로도 가지 말고 길갈로도 가지 말라’고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든지 가지 말고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말레이시아 선교사 대회를 다녀왔는데 선교사회 회장님이 여자 선교사님이었습니다. 여자 선교사님으로 회장을 맡으신 분은 제가 처음 보았습니다. 역사도 짧은데 전체 선교사 회장을 하신다는 것이 참 감명스러웠는데 이 분은 경주 양동에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순희 선교사님입니다. 양동은 우리나라에서 손 안에 꼽는 양반들만 사는, 지금은 민속마을로 지정이 될 정도로 몇 백 년 된 고가(高價)의 아주 웅장한 집들만 가득 차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이씨 가운데서도 이 집이 종가 댁이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매를 맞고 욕을 얻어먹었다고 합니다. 사정없이 맞아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다니는 자기 남동생이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다. 대한민국에 유명한 병원, 서울대학 병원, 동산병원 등 어디에 가도 고칠 수 없었습니다. 종가 댁 할아버지 가족에게 한 순간 슬픔이 오고 그 동네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고 합니다.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침통하고 슬픈 이 가정에서 이 이순희 선교사님이 그 때에 학교를 다녔는데 할아버지에게 그랬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예수 믿으면 내 동생 삽니다. 내 동생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이 세상의 방법을 다 써 봐도 길이 하나도 없을 때 예수 믿으면 산다고 하니까 그러더래요. ‘얘만 살려주면 믿을 게.’ 그러더래요. 그런데 이순희 선교사님이 그랬대요. ‘기독교는 그러면 안 됩니다. 믿어야 살지 살면 믿는 게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교회에 나와야 이 동생이 삽니다.’ 담대하게 증거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지식적으로 믿는 사람은 그렇게 전도 못합니다.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믿고 만나는 사람은 하나님을 담대히 증거 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 내려오는 저주가 끝나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고민하고 슬퍼하던 가정에서 할아버지가 결단을 내리더래요. 내가 돌아가신 조상보다는 살아 있는 이 가정의 손자를 잡아야 되겠다. 그리고는 온 가족이 교회로 나왔는데 그 아들이 살아났고 그 아들은 지금 목사님이 되어서 LA에서 목회를 하고 두 남매가 다 목사가 되었다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삽니다. 교회는 목사 보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가대 보러 오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 하나님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면 살아납니다. 아버지 품 안에 생명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죽었던 사람, 어떤 저주 아래 있던 사람도 살아납니다. 우리 마을에도 우리 집안 형님 한 분이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아주 완고했습니다. 바로 몇 년 전입니다. 손자가 어려움이 있어서 못 고친다고 하니까 어떤 점쟁이가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얘는 못 고친다’고, 현대 의학으로도 안 되고 이런 저런 방법 다 안 되니까 형님이 교회로 나오셨습니다. 나와서 이 손자 깨끗하게 치료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못 할 일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아니 한 가정만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국가도 살아나고, 세계도 살아나고, 민족이 살아납니다. 북한? 일 년에 몇 십 만 명이 굶어죽지만 예수 믿으면 저 나라에 굶어 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50만 톤씩 쌀을 가져다주어도 저렇게 굶어죽습니다. 굶어 죽는 사람을 살리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북한도 살고, 러시아도 살고, 세계가 다 산다는 것입니다. 가정만 사는 것이 아니고, 개인도 살고, 모든 인류가 다 살아납니다. 죽었다가 살아납니다. 멸망에서 살아납니다. 저주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 가?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발견하기 전에 아버지는 이미 먼저 아들을 발견했습니다. ‘아, 내 아들이 온다’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 다음에 아버지는 이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항상 기다렸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버지를 떠난 우리 인간이 항상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기다리십니다. ‘삼환아, 빨리 오라’, 집을 나간 아들이 얼마나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까? ♬집은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오라♬ 이 아들은 옷과 얼굴이 온갖 냄새로 가득 차 있었지만 아버지는 전혀 그런 냄새를 탓하지 않고 안아 주셨습니다. 아버지 앞에 나올 때 죄악의 온갖 냄새나는 것, 하나님은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돈을 다 잃어버렸으나 하나님은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사람은 아무리 늦게 나오고, 아무리 죄와 허물을 가지고 나와도 하나님은 절대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를 멀리하고, 온갖 방탕한 죄를 짓고, 불효막심한 일을 했지만 아버지는 입을 맞추어 주셨습니다. 사랑의 입을 맞추어 주셨어요. 이 아들이 죄에 대하여 하나도 고백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 속에 있는 내 모든 것 다 용서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입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새 옷
을 갈아입습니다. 마음의 새 옷이 바뀌어 집니다. 양심의 옷을 갈아입습니다. 거룩한 믿음의 옷을 갈
아입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옷을 갈아입습니다. 죄악의 온갖 냄새나는 더러운 옷을 다 제거하고 주님
이 주시는 거룩한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아무리 옷이 화려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옷을 입지 않으면 인간은 탕자인 것입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었습니다. 가락지는 무엇입니까? 노예는 가락지가 없습니다. 버림받은 종은 가락지
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가락지에 뭐가 있습니까? 도장까지 다 있습니다. 재산관리, 모든 결재를 가락
지를 가지고 다 하는 것입니다. 권력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여러분의 손은
능력 있는 손이 됩니다. 우리 인간의 손은 권력의 손이 아닙니다. 물질을 잡고 있는 물질의 손이 아닙
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과 성령의 가락지를 끼고 있을 때 우리 인간은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성공하는 삶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발에 신을 신겨 주었습니다. 노예는 신
이 없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노예는 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신을 주었습니
다. 이 세상 살아갈 때 신발이 없을 때 돌에 차이고 사람에 차이고 가시에 찔립니다. 그래서 이 세상
은 하나님 없이 살면 상처가 한 없이 많습니다. 배신당하고, 사람에게 속고, 멸시천대 받고, 짓밟힙니
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 환난, 사고, 질병과 가시에 찔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집에 나오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은 주께서 주시는 든든한 신발로 내가 어디에 갈지라도
주님이 우리를 안전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네 번째는 송아지를 잡아라. 죽었다가 살아났구나! 내 아
들을 위하여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같으면 아이고, 어린 송아지 불쌍한 송아지를 왜 잡나? 여러분은
고기를 먹을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이나 소고기 잘 먹는 나라들, 선진국은 제일
좋은 고기가 송아지 고기입니다. 살살 녹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제일 좋은 고
기인 송아지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십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에 나오는
사람은 죽지 않고 살 뿐만 아니라, 권력과 능력과 거룩함과 아름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배부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헐벗고 굶주립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은 재미있는 것
같아도 없습니다.

어떤 강도가 돈을 훔치려고 어느 할아버지가 하는 집 밖에서 들어가려고 하는데 방안에서 무슨 소리
가 들렸습니다. 연세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화투를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밖에 있는
강도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할아버지가 그러는 것입니다. ‘빨리 먹
어’ 그러니까 ‘먹을 게 없어’, ‘아, 그렇게도 없어?’ ‘빨리 먹어’, ‘먹을 게 없다니까’, ‘아, 먹어봐’ 그러니
까 ‘똥밖에 없어’, 화투는 열 달로 되어 있어 서 열한 달째는 똥이고, 열두 달째는 비고, 시월 달은 단
풍입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계속 똥이라도 먹어야지 빨리 먹어 그러니까 아이고 똥밖에 없네 그
러고 딱 치는데 밖에 있는 강도가 세상에 이렇게 가난한 집이 어디 있나? 아무리 먹으라고 해도 먹을
게 똥밖에 없다고 하니까 벌었던 것 다 주고 갔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먹을 게 없습니다. 항상 어렵
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있어도 그렇게 가난하게 삽니다. 쌓아 놓고도 걱정하며 살고, 불안하게 삽니
다. 그러나 교인은 없어도 부자같이 삽니다. 먹을 것 다 잘 먹고 내일 또 주시는데 뭐! 그래서 우리 성
도들이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길은 누가복음 15장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와 아버지 집
을 찾는 것! 아버지 성전, 아버지 계시는 교회로 나오는 것! 하루라도 빨리 나오는 것, 회개하고 나오
고 하나님의 성전에 감사함으로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풍요로움, 인간의
능력과 자유, 아름다움과 권세를 가지게 되는 길입니다. 오늘의 이 시대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
화가 다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모든 예술이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모든
가정이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정치, 문화, 예술, 과학, 지식, 교육 모두 아버지께로 돌
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세계를 움직이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모든 교육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입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창조자를 섬겨라. 부모들도 너는 부모 말 잘 들어라 그게 아닙니다. 모
든 부모가 자녀들에게 너는 너의 하나님이 하늘의 하나님이시니 하늘의 하나님 잘 믿으라고 애들을
가르치니 그 아이가 나가서 세계적인 인물이 다 되는 것입니다. 학교 교육, 대학 교육도 다 아버지께
로 가게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 전 국민이 이렇게 방황하고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버지 집을 떠났
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집이 없는 쇼, 아버지 집이 없는 드라마, 아버지 집이 없는 문학, 어디로 가고
있느냐 말입니까? 유명한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는 ‘교육부가 백 년 걸려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철학자가 평생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1 분이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다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 년 고생하고 길을 잃어버려도 아버지께 한 순간
만 돌아가면 이 모든 저주에서 살아나는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버지께로 돌
아가 새로운 삶을, 아버지 아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저씨의 삶이 아닙니다. 사장님의 삶이 아닙
니다.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 아들로서의 삶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능력이요, 권세인 줄로 믿
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어렵습니다. 마치 무엇과 같은
가? 양반과 같습니다. 조선 왕조 때 실학자인 박지연이 지은 『양반전』이 있습니다.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지은 책인데 이 책의 내용은 그렇습니다. 충청도 양반 한 분이 해마다 정부의 양곡
을 빌려다가 먹고 가을 농사 거두어서 갚는데 이 양반이 도무지 갚을 길이 없습니다. 몇 년, 몇 년 늘
어나서 흉년이 들어 갚을 수 없으니까 얼마나 많이 늘어나는지 빚이 많이 늘어나는 거예요. 정부에서
는 갚으라고 하고, 사또도 와서 갚으라고 하는데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 부자가 하나
있는데 돈은 많지만 쌍놈입니다. 그 당시에는 파는 것이 전부 허용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직분도 많
이 팔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양반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그 대신 그 집 논과 양식을 받아들여서 빚도
갚고 이 분이 잘 살게 됩니다. 이 쌍놈이 양반이 되었을 때 세상에 양반이 상놈보다 참으로 고생스럽
다는 것을 죽~적어 놓은 것입니다. 첫째로 변소에 가서도 힘을 주어서도 안 되고 방귀를 뀌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쌍놈이야 방귀를 노래같이 뀌어도 괜찮지만 양반이 되면 그게 안 되는 것입니다. 조
심해야 합니다. 한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옷을 벗어서도 안 되고, 의관, 정관을 다 해야 합니다. 정장
다 해야 합니다. 쌍놈이야 항상 배 내 놓고 살아도 되지만 그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
렵습니까? 돈을 벌어도 손으로 세지 못합니다. 하인이 세게 하지 그런 시시한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입
니다. 양반은 벌써 수준이 높습니다. 부인 방에 들어 갈 때도 여종을 시켜서 며칠 날 내가 가려고 한다
는 걸 알려야지 시도 때도 없이 제 멋대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쌍놈이야 물어 볼 필요도 없
이 막 가는 것입니다.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쌍놈은 욕도 하고 제 멋대로 나오는 대로 말하고
아무데나 가지만 양반은 말하는 것도 예절 있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
람 관계에서도 너나 나나 전부 제 멋대로 사귀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존경하고 전부 예의가 있는 삶
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걷는 것도 양반은 천천히 절도 있게 걸어야지, 예술적으로 걸어야지, 미친 듯
이 걸어도 안 됩니다. 죽~그런 게 나오는 것입니다. 양반전에 양반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
러분, 이걸 잘 아셔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뭡니까? 쌍놈에서 양반 되는 것입니다. 말 함부로 하면 안
되고, 아무것이나 먹으면 안 됩니다. 힘듭니다. 그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욕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양반이 되면 아무데나 제쳐놓고 배꼽 내 놓으면 안 됩니다. 단정하게 살아야 합니다. 양반
은 예절 있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양반입니
다. 동물같이 저렇게 마음대로 살면 안 됩니다. 부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2단 옆차기나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양반은 그러면 안 됩니다. 쌍놈이야 막 여자보고 욕합니다. 그것은 에베소서에서 뭐라고 그
랬습니까? 그것은 이전에 몰랐을 때 마귀의 종노릇 할 때 삶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가는 곳도 아
무데나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멀리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
다. 그래서 양반 술 먹는 법도 또 다릅니다. 거기에 다 나옵니다. 우리는 술에 취해서 제멋대로 허랑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양반을 배워야 됩니
다. 깨끗한 마음과 깨끗한 행실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잘 섬겨서 영원히 양반으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
니다. 할렐루야! 겸손합니다. 진실합니다. 성실합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 집을 떠나
서 돼지 집에서 살던 그 삶이 완전히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하
나님이 이제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와 함께 하는 삶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인간의 집은 다른 집이 아무리 크고 웅장하고 대단할지라
도 아버지 집을 떠난 인생은 집이 없는 인생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저주와 슬픔이
있습니다. 기쁨과 평안과 풍요로움은 아버지 집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 나와서 마음
에 안 들면 교회에 안 나옵니다. 속상해도 안 나오고, 기분 나빠도 안 나오고, 설교가 마음에 안 들어
도 안 나옵니다. 교회는, 양반은 그렇지 않습니다. 쌍놈은 한 순간에 집어치우고 제 할 말 다하지만 양
반은 천 대, 만 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독교 국가들을 보십시오. 2천년을 믿어 내려오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동치 않고 한결 같이
가는 것을 보십시오. 아버지 집을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하에 내 잘났다
고 아버지 집 위에 올라가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버지 집에 살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포장마
차나 이 세상 가 보십시오. 대한민국에 제일 잘 난 사람은 그 안에 다 들어앉아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
가는 삶은 아버지 집에 못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을 높이고 아버지 집의 권위와 영광을 인정하면
서 아버지 집을 잘 섬기는 자가 영원히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시편 132편에 “내가 이 성의 식료
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
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성전에 나오는 자를, 아
버지 집에 있는 자에게 이런 면류관으로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47편 14절에 “네 경내를 평
안케 하시며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25절에 “너의 하나
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시편 54편 13절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너는 의
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146편 5절에는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
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23편 6절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
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영원히
거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를 섬기며 멋있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능력 있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
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한 가지 말씀만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탕자의 비유는 다음 주까지 네 번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이제 아들 두 형제에 관한 말씀은 다음 주에 드리려고 합니다. 아버지를 저버
리고 아버지를 떠난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히틀러가 대표적입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
아 성 베네딕트 수도원이 있는 곳에서 수도원 학교를 다닐 정도로 신앙이 철저하고 부모님 믿음도 참
좋았다고 말합니다. 찬양을 잘 해서, 성가를 잘 해서 소년합창단 단원이었고 성직자가 되는 것이 꿈이
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려서 잘 믿는 것이 참 좋지만 계속해서 신앙은 끊임없는 변화와 고비 속에
서 이음줄이 잘 이어져 가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때가 젊을 때입니다. 대학 졸업하는 이러한 청년의
때를 잘 이어나가야 합니다. 히틀러는 그 때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세상으로 나갔습
니다. 하나님 아버지 집을 벗어나서 인간의 방법으로 사회를 개혁하고 국가를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잘 되었습니다. 얼마나 잘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가면 참으로 넓은 것이 맞습니
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을 선동해서 수 천 만의 청년들이 뒤를 따라오
고 독일 천하를 다 손 안에 넣고 유럽에 전쟁을 일으켜 모두 손 안에 넣었습니다. 여러분, 나치즘 마크
가 십자가 꺾는 게 나치 표시입니다. 독일이 기독교 국가 아닙니까?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 한 나라입
니다. 이런 나라에, 이런 포퓰리즘, 선동하고 이런 사람이 나라를 잡고 그 나라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
입니다. 처음에는 다 되는 줄 알았지만 후반부에 어떻게 됩니까? 그것도 몇 년 안 되어서 20년이라도
15년이라도 10년이라도 가면 다행인데 그 몇 년 사이에 전 유럽을 다 망치고 마지막에는 독일 천지를
다 망치고 남은 군대는 30만 밖에 없었는데 그 30만을 데리고 나가서 20만이 한 순간에 다 죽고 9만
명이 포로로 잡히고 마지막 6천 명 남아서 더 이상 갈 수 없어서 자기 아내를 총으로 쏴 죽이고 마지
막으로 자신도 쏴 죽었습니다.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반세기 전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
나님 없는 사람을 따라갔다가 전 국가와 민족이 몽땅 폐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옛날이야기가 아
니지 않습니까? 확실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다섯 살 부터 주일을 한 번도 결석
하지 않고 농촌의 가난한 집에 땅콩 집 농민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교사하고 성가대하
고 아버지 집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대통령 선거할 때 제일 문제가 주일은
유세에 몇 백 만 표를 그 날 다 모을 수 있는데도 주일날 유세하면 나는 대통령 되어서 버림을 받는 것
보다는 대통령 안 되고 하나님 집에서 섬기겠다고 해서 유세를 안 하고 주일날 교회에 예배드리러 갔
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중심으로 살아간 것을 여러분이 알지 않습니까? 그 다음 대통령
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되어도 예배를 꼭 지켰습니다. 아버지 집을 항상 귀히 여겼습니다. 백악관보
다 아버지 집을 목표로 해서 다녔습니다. 대통령이 끝난 다음에도 지금 25년이 넘었다고요. 이렇게 오
래 되어도 세계의 대통령 다 모은 힘보다도 카터가 일 더 많이 하고 헤비 타드 라고 우리나라도 그걸
해 가지고 얼마나 존경받고, 우리는 대통령 끝나면 X파일 때문에 갈 데도 없어서 꽉 갇히는데 하나님
교회 중심으로.. 성경이 말해요. 아버지 집에 오는 사람은 아버지가 복 주신다는 거예요. 오늘 이렇게
아버지가 돌보는 거예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에요. 우리 집에 우리 아이들이 왔을 때 잘나서 내가 맞
이합니까? 그게 아니에요. 오는 것만으로 다 최고예요. 여러분의 행실이 때에 따라 부족하고 허물이
많을지라도 아버지 집만 귀히 여기면 여러분은 절대로 버림받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 끝날 까지 아버
지께서 여러분의 길과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노후와 여러분의 자자손손을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
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이 거룩하고 거룩한 주일날 아버지 집에 나와 오늘도 우리에게 더러
워진 우리 몸과 마음에 새 옷을 입혀주시고 말씀의 하나님께서 좋은 꼴로 먹여주시니 진심으로 감사
합니다. 자자손손 영원히 내 집은 아버지를 섬기고 아버지 집에서 만 대에 축복 받는 우리 성도들 만
들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 삼 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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