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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유능한 의사 (출 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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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정복 전쟁을 할 때입니다. 대군을 거느리고 적 고지를 산을 향해 ‘나를 따르라’하고 돌진합니다.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산꼭대기까지 단순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 산이 아닌게벼”그럽니다. 병사들은 힘이 들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다시 돌격 명령을 내리자 옆 산을 향해 올라갑니다. 정상에 올라간 나폴레옹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아까 저산이 맞는 가벼”합니다. 병사들은 아무래도 똥개훈련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군댄데 명령하면 해야죠. 부하 몇 명이 “장군님 여기도 저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작전을 다시짜죠?”하고 말했는데도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웁니다. 이곳 저곳으로 그렇게 몇 번 하니까 병사들 사기도 떨어지고 힘도 없고.. 지켜보던 적군이 ‘이때가 기회다’하고 기습해서 나폴레옹 부대가 전멸했습니다. 지휘자 한 명이 자기 고집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 순간입니다.

1. 먼저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참 고집 센 사람이 있습니다. 고집 센 사람을 만나면 고래 힘줄보다 더 질기다고 말합니다. 고래 힘줄은 테니스 라켓에 매는 줄로 사용되기도 하고, 낚시 줄의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참 질기고 끊어지지 않아요. 사람이 때로는 고집도 좀 있어야 하지만 너무 고집만 부리면 주위 사람들이 피곤해집니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가장 용감하다’는 말이 있지요? 어디서 책 한 권 달랑 보고 와서는 자기 말만 맞다고 생떼를 쓰는 사람 있잖아요? 이런 사람이 고집 센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 인물 중에 이런 사람 하나만 있어도 곧 분쟁이 생깁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까 굉장히 고집 센 사람 하나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게 누굽니까? 애굽왕 바로입니다.    하루는 절친했던 형제인 모세가 바로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곤 “바로형 우리 이스라엘을 그만 놓아줘. 이제 그만 애굽을 나갈 수 있게 풀어줘!”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 그렇게는 안된다는 겁니다. 이 상황을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는데 모두 합해 열개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재앙의 강도를 보면 점점 세어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바로는 결코 고집을 꺾지 않아요. 갈 때 까지 가자는 심산입니다. 막가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막가파지요. 왜 그래요? 너도 죽고 나도 죽자고 무작정 덤비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로왕이 그런 사람입니다. 혈기 등등해서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 한번 해보죠? 나도 우리 백성들에겐 신이란 말입니다.’하면서 맞서고 있는 거예요. 이 얼마나 무모합니까? 한낱 인간이 하나님께 도전하다니요. 계란으로 바위치기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교만하면 이럴 수 있어요. 우리는 이런 교만을 경계해야합니다.
  결국 고집 센 사람 하나 때문에 애굽이란 한 나라가 휘청거립니다. 그리고 애굽 백성들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큰 통곡을 해야 했습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백성들도 괴로운 거예요. 같이 고통당합니다. 바로왕은 그걸 몰라요. 고집 세고 완고한 자기 때문에 얼마나 비참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지 아직 깨닫지 못합니다. 이렇게 바로가 완고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을 때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출 11:5절을 보면“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은지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태어난 사람의 아이든지 동물의 새끼든지, 왕의 장자든지 평민의 맏아들이라도 그 첫 열매가 다 죽었습니다. 6절을 보면 이 때문에 애굽은 큰 곡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멀쩡해요. 끄떡없었습니다. 7절을 함께 볼까요?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하셨습니다. 개가 혀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짖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애굽은 성난 개가 물어뜯듯 휘저어 놓으셨지만 이스라엘은 털끝하나 상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왜 그랬나요? 첫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을 이끄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요, 둘째는 백성들 역시 하나님만을 섬기는 백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요.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의롭지 못한 자들을 멸하시고 그들의 올무에서 여러분을 구출해내어 인도하십니다. 털끝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시며 사랑함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니 먼저 자기 자신의 고집이 꺾여야 합니다. 고집 센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어쩔 도리가 없으십니다.
  제가 알던 어떤 분이 계셨는데 정말 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얼마나 먹기를 좋아하면 남들 밥 한 공기 먹을 때 3공기씩 드시고, 남들 국수 한 그릇 먹을 때 그분은 4그릇씩 드셨지요. 그러다보니 몸이 디룩~ 디룩~ 살쪄서 보기에도 조금 미련해 보였습니다. 한 번은 너무 걱정이 되어서 먹는 것을 자제하라고 했더니 자기는 먹는게 좋다고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곤 여전히 잘 먹는 거예요. 운동도 안하고 먹기만합니다. 먹고 또 먹고.. 그런데 그렇게 잘 먹던 분이 갑자기 먹는 양이 줄었어요. 그래서 다이어트 하냐고 물었더니 아니랍니다. 이제는 속이 매스껍고 해서 많이 못 먹는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는데 자기는 강철같이 튼튼하다고 괜찮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그분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고, 병원에 입원했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먹는거 줄이라고.. 병원 좀 가보라고 했는데 고집부리다가 결국 간경화로 죽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겸손히 무릎 꿇고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제가 다 옳은 것 같아서 제 생각대로 했었는데 결코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결점 투성이입니다. 교만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때 왜 진작에 하나님 말씀을 안 들었었는지 후회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알고 고백하게 되면 딱딱하게 굳어져있던 불신앙의 종양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아픔과 눈물로 보내던 병상에서도 일어나 퇴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집부리다가 병을 키워서 큰 재앙을 맞는 어리석음을 버리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그때가 가장 수술하기 좋은 때요 병이 낫는데 적합한 때입니다. 그때가 지나면 말기가 돼서 손쓸 도리가 없습니다. 불신앙의 종양을 말끔히 제거하고 신앙을 다시 회복하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 병이 나으려면 좋은 의원을 만나야합니다. 

바로를 비롯한 애굽 사람들은 완고함의 질병을 앓다가 결국 귀한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스라엘은 이런 무시무시한 재앙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tv에서 하는 사극을 가만히 보면 온 나라에 역병이 돌아서 많은 백성들이 죽어 나가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지금은 의학이 하도 발달해서 예전에는 불치병이었던 병도 쉽게 치료가 가능해 졌지만 그 당시에는 변변한 약도 없고 장비도 없고 의원도 없다보니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마냥 지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허준이나 이재마 같은 명의가 있어서 많은 병자들을 살릴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지요.
  이제 내가 완고함을 벗어 버리니까 불신의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병에 걸렸다면 병원에 가야지요. 그런데 아무 병원이나 가면 되나요? 이가 아픈데 산부인과 가고, 배가 아픈데 정형외과 갑니까?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병원으로 가야지요. 그리고 그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를 만나야 합니다. 잘 못해서 돌팔이 만나면 어떡합니까? 병 고치러 갔다가 오히려 다른 병까지 달고 나오면 안 되잖아요. 명의를 만나야 합니다. 명의는 좋은 약도 쓰고, 좋은 장비도 쓰고, 병을 고칠만한 능력도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명의인가요?
  본문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실 때 이스라엘을 구하시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어린양은 흠 없고 일 년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하나님은 아무런 이유도 말씀치 않으시고 한 가정에 양 한 마리씩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양이 다 되는건 아니고 양 중에서도 순전하고 일 년산이며 수컷인 양으로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양을 준비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서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하나님은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양을 통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이라는 말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재앙은‘파괴적인 질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열 번째 재앙은 일종의 무시무시한 질병이었던 것입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새로운 병이 도래하면 그것을 퇴치할 백신을 만듭니다. 백신이 있으면 병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질병을 막아줄 유일한 백신은 바로 양이었습니다. 7절에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또 13절에 “내가 애굽땅을 칠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즉, 양을 잡아 그 피를 문 꼭대기와 좌우에 바르면 무시무시한 질병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지요. 그러니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파괴적인 죽음의 질병을 퇴치하고 치료하는 방법은 모두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명의이십니다. 마 9:12절을 보면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고 하시면서 병든 우리들에게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피 흘리시지 않았습니까? 그 보혈이 죽음을 이겼습니다. 보혈이 죽음의 질병을 퇴치하였고 우리도 그 보혈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좋은 의원을 만나면 살 수 있습니다. 아멘?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명의를 만나는 큰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예수님께서 처방하시는 대로 순종해야 완전히 병에서 치유될 수 있겠지요? 이제 우리 쪽에서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주의사항을 알려주시고 약을 주고 정성껏 돌봐주지요? 우리가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만 하면 퇴원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병을 완전히 고치기 위해서 주님이 처방전을 써 주시면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주님은 병든자에게 어떤 처방을 내리셨나요? 8절입니다.“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이스라엘에게 3가지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첫 번째는 무엇입니까?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라는 것입니다. 날로 먹어서도 안 되고, 물에 삶아서 먹어도 안 됩니다. 자기 기호대로 맘대로 먹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구워먹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양이라면 양을 먹는 것은 예수님을 먹으라는 이야긴데, 여러분, 이 상황을 보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지 않나요? 한번 떠올려 봅시다. 먼저 테이블이 보입니다. 그 위에는 빵과 포도주잔이 놓여 있어요. 테이블 중앙엔 예수님이 앉아계시구요, 제자들이 테이블을 둘러서 앉습니다. 예수님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보이십니다. 그리고“이것은 나의 몸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잔을 들어“이것은 내 피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서로 음식을 나누며 식사를 나눕니다. 여러분, 첫 번째 처방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양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교제하는 거예요. 환자는 의사와 교감을 나누어야 합니다. 명의는 나의 아픈 곳을 손으로 만져주고 나는 명의에게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힘든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교통해야 더 빠른 쾌유를 기대할 수 있어요. 명의이신 주님과 교제를 나누십시오. 주님과의 교제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이니까요. 기도하십시오.
이제 두 번째 처방은 무엇입니까? ‘누룩 없는 빵’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제과점에 가면 빵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이 누룩이 들어간 빵입니다. 누룩이 들어가야 빵맛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누룩을 넣으면 발효되어서 빵이 쉽게 상하는 문제가 생기지요. 누룩은 본질을 변질시킵니다.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누룩을 제거해야합니다. 만약에 내가 쓰는 약이 쉽게 부패한다면 그 약을 쓸 수 있겠습니까? 부패하게 만드는 원인을 찾아서 제거해야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진정 낫고자 한다면 좋은 약을 써야 합니다. 값이 싸거나 불순물이 섞인 약을 잘 못 썼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누룩을 빼내세요. 죄와 항상 멀리해야 상처가 낫습니다.
마지막 처방은 쓴 나물을 먹으라고 합니다.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린다고 어머니께서 익모초 즙을 한 잔 주셨는데 그 맛이 얼마나 쓰던지 먹고 난 후에도 입맛이 한참이나 씁쓸했습니다. 예로부터 몸에 좋은 것은 쓰다고 했죠? 그래서 그런지 한약도 대체로 쓴맛이고, 양약도 쓴 약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몸이 나으려면 약이 좀 쓰더라도 참고 견디면서 꾸준히 복용해야 합니다. 조금 나아진 것 같으면 약이 쓰다고 약 먹기를 게을리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러면 병이 좀처럼 낫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애굽을 치실 때 밖에 나가면 안 됩니다. 꼭 양의 피를 칠한 집안에 있어야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몸이 근질거린다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금세 재발합니다. 그러니 쓴 나물을 참고 먹는 심정으로 끝까지 인내하면서 견디어 내시길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과 환란이 있더라도 소망을 가지고 견디어내세요. 양피를 칠한 곳, 즉 주님 품안에 있으면 어떤 화도 내게 엄습하지 않습니다. 다 나를 지나갑니다. 넘어갑니다. 그래서 ‘패스 오버’인 거예요.

사랑하는 세계로 성도 여러분!
애굽 사람들은 우상숭배라는 깊고 치명적인 병에 노출돼 있었으면서도 자기 고집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명의가 있음을 알면서도 돌팔이를 찾아갑니다. 좋은 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각제만 복용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은 순종의 민족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했습니다. 좋은 명의를 찾았고 좋은 약으로 예방접종을 했습니다. 그러니 질병도 그냥 지나가고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이제 이스라엘은 열 번째의 재앙을 끝으로 드디어 애굽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퇴원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내가 잘나서입니까? 운이 좋아서 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병상에서 고통당하며 신음할 때 내 병을 잘 아는 명의가 와서 나를 정성껏 보살피고 돌봐줬기 때문에 내가 나음을 입은 것입니다. 또 명의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그대로 했더니 쾌유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명의는 누구이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병약한 내게 오셔서 사랑으로 나를 돌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분의 한없이 크고 고마운 희생의 사랑이 내 병을 낫게 하고 이제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게 하시지 않습니까?
  우리 세계로 성도들은 주님의 처방에 순종하여 늘 주님과 교통하시고, 그 대속의 피를 늘 마음에 세기며, 죄 없이 깨끗하고 순전하게 살려고 힘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쓴 나물을 먹는 것과 같은 고난이 닥쳐온대도 인내하시고, 애굽을 나가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바라봄과 같이 새로운 비전과 사명을 취하고 이 땅위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여러분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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