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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심산과 에발산 (신 11: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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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광주의 한 복권판매점에서 한 달 새 로또 복권 1등 짜리가 14억, 22억 이렇게 두 번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가게에서 3등짜리도 무려 14번이나 나왔습니다. 희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이런 소문이 퍼졌다고 합니다. 그 가게 바로 옆에 장례식장이 있는데, 상여가 나가면서 복을 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소문을 듣고 원근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러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먼 지방에서는 아예 우편으로 주문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무지하구나!” 그렇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학력도 높아지고 유식해진 것 같은데, 인생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무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학식이 많아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영적으로 무지한 것입니다. 롬1:21~23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입니다. “ ...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다니는 사람,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도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그 죄로 인해 영안이 가려집니다. 그래서 무지한 가운데 헛된 우상을 숭배하고 미신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복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는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정해 놓으신 공식대로 살 때 비로소 진정한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알 것은 인간이 자기 생각대로 자기 방법대로 열심히 산다고 해서 무조건 복을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시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무조건 열심히 산다고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헛된 우상을 섬기고 근거 없는 미신을 따라 간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오직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축복의 공식’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가능하지만, 인생의 현장에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축복의 공식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이 ‘축복의 공식’을 재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공식대로 살아서 정말 축복의 인생, 승리의 인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거행할 의식 : 축복의 공식 체득

본문은 모세가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통과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해도 진정 복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가나안을 가리켜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복지(福地)’ 곧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라고 부르지만, 무조건 축복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 순종’이라는 ‘축복의 공식’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아주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당부하고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꼭 새겨지도록 아예 실습을 시킵니다. 이런 교육 방법을 흔히 ‘역할연기’(Role Playing)라고 부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선 26절~28절에서 축복의 공식을 다시 언급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 불순종하면 저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그리고 나서 무엇을 당부합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한 가지 의식(Ceremony)을 꼭 거행하라는 것입니다.

29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보다 자세한 내용이 신명기 2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때는 모세는 없고 여호수아의 지도 하에 이 의식을 거행했는데, 그 기록이 여호수아 8장에 나옵니다. 이 구절들을 모두 읽고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가나안 중심부(Center)인 세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산들입니다. 세겜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창12:6~7) 말하자면 세겜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그리심 산은 해발 850미터, 에발 산은 해발 940 미터로 엇비슷합니다. 그리고 이 두 산은 골짜기를 두고 마주하는데 거리가 아주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각각 서 있으면 서로 마주 보고 말소리도 잘 들립니다. 그런데 두 산이 아주 대조적입니다. 그리심 산은 북쪽, 에발산은 남쪽입니다. 그리심 산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이고, 에발 산은 그늘이 진 음지입니다. 그래서 그리심 산에는 숲이 울창하고, 에발 산은 초목도 없는 바위산입니다. 그리심 산은 태양을 바라볼 때 오른 쪽이고, 에발산은 왼쪽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에게 오른 쪽은 축복을, 왼쪽은 저주를 상징합니다. 요컨대, 그리심 산은 축복의 산이요 에발 산은 저주의 산인 것입니다.

이 두 산에 이스라엘 12 지파를 여섯씩 두 파트로 나눕니다. 그리고 한 가운데 레위인 제사장들이 법궤(하나님의 임재 상징)를 메고 섭니다. 이것은 백성들 앞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심을 의미합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향해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합니다.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양쪽에서 백성들이 “아멘!”하며 화답합니다. 이런 의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게 하셨습니다. 그만큼 이 축복과 저주의 공식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산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스라엘과 동일한 죄인으로서 말씀대로 살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정말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축복의 공식대로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2] 순종하는 삶의 3 단계 : 말씀 사모, 말씀 경청, 말씀 실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려면 다음의 3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① 말씀 사모 :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기계적으로 순종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니고 맹종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맹종하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격적인 존재로 스스로 자진해서 마음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자유 의지입니다. 이것이 다른 피조물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요즘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열대야로 고생했던 적이 바로 몇 시간 전 같은데, 어느 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코스모스도 여기저기 피기 시작합니다. 절기를 따라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섭리에 절대 순종하는구나!

반면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말씀에 지겹도록 불순종합니다. 죄성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은 더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회개하고 죄 사함 받고 변화된 인간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죠.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돈으로 권력으로 강제로 데려옵니다. 복종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죠. 마음을 주지 않기 때문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화초가 좋아도 마음을 주는 인간보다는 못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주지 못하는 피조물보다 마음을 줄 수 있는 인간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반응이 하나님에 대한 태도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혹시라도 말씀을 가까이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날 말씀이 너무 흔해서 그런가요? 그 가치를 소홀히 여깁니다. 오히려 멀리 합니다. 홍수 때에 마실 물이 부족한 기갈 현상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말씀을 사모합 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란 책이 있습니다. 중국인 윈 형제의 체험담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예수를 믿고 지하 교회 중심을 활동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수없이 핍박 받고 투옥되다가 결국 서방 세계로 탈출했습니다. 많은 이야기 중 성경에 관한 것을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그가 예수 믿게 되니까 무엇보다 성경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먼 마을에 성경 갖고 있는 사람의 소문을 듣고 밤새 달려갑니다. 보여 달라고 통사정합니다. 멀리서 보기만 하겠다며. 그런데 무엇이 아까운지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성경을 갖고 싶으면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실망한 그는 돌아와서 금식 기도를 합니다. 그러던 중 천사가 와서 성경을 한 권 전해줍니다.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그런 기적을 행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성경을 잃어버릴까봐 아예 통째로 암송합니다. 그리고 지하교회에 초청받아 가서 집회를 인도하는데 설교도 하지 않고 그냥 암송한 성경 구절을 줄줄 외웁니다. 그런 가운데 놀라운 역사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뜨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② 말씀 경청 :

그 다음으로는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말씀을 잘못 들으면 실천해도 그것은 불순종이요 오히려 망치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선생님이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얘, 이 꽃병 좀 부셔 와라!” 순진한 아이는 이 말을 부숴 오라는 뜻으로 잘못 알아듣고 꽃병을 깨드려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얼마나 황당한 결과입니까?

그러므로 성경을 잘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은 본래 쉬운 말로 기록되었지만, 지금은 시대의 차이, 문화와 언어의 차이 등으로 인해 꽤 어렵습니다. 단순히 읽기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교회의 성경 강좌와 훈련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십시오. 개인적으로 성경 연구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잘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순종을 위한 중요한 단계입니다.

③ 말씀 실천 :

말씀을 경청하고 잘 깨달아도 아직은 완전한 순종이 아닙니다. 깨달은 말씀을 그 뜻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손해볼까봐 그런 겁니다. 잘못될까봐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그분이 말씀하시는 건데 어떻게 잘못되고, 손해 볼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전적인 착각이요 오해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이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손해 봤나요? 아닙니다. 이삭을 돌려받고, 아브라함 자신은 물론이고 자손 대대로 복을 받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오히려 탄탄대로가 펼쳐진 것입니다.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원주민에게 성경을 번역해서 가르치는 번역선교사입니다. 누가복음을 처음부터 몇 절씩 번역해서 가르치는데, 눅6:30에 이르러 고민에 빠졌습니다.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 이 말씀을 가르치면 분명히 그들의 모습으로 보건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요구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척하고 슬쩍 건너뜁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계속 양심의 가책을 줍니다. 결국 다시 돌아가 그 구절을 번역해서 가르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원주민들은 선교사의 모든 소유를 가져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기적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감동을 받고 가져갔던 물건을 자시 갖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은 선교사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합니다. “당신은 정말 하나님이 보낸 분이십니다. 당신을 보니까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손해 볼 것 같았으나 오히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은 의무가 아닙니다. 사실은 특권입니다. 말씀은 우리 인생을 위한 보호 장치요, 축복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거하는 것, 그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성경에는 3만 2천 5백 가지의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할 때, 특별히 말씀에 순종할 때 성취됩니다. 금광이 있는데 캐지 않으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마치 그것과 같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합니다! 시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 마음속에 잘 그려 보십시오! 여러분!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리심 산입니다. 그렇다면 그 선택에 합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공식대로 살아 그 공식대로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말씀을 사모하시고, 경청하시고, 아멘 하며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심 산처럼 충성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 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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